페이크 뉴스 제조업자들의 자아도취

2019-04-30     세르주 알리미, 피에르 랭베르

오늘날을 요약할 키워드는 단연코 ‘가짜 뉴스’일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물론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가짜 뉴스 타파’가 정치적 우선순위로 손꼽히고 있으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올해 1월의 신년연설에서 “가짜 뉴스의 부상은 오늘날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위 정보들은 계속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허위 정보들은 계속 회자되면서 마치 사실인 것처럼 여겨진다. 물론 가짜 뉴스를 찾아 팩트체크에 성실한 ‘해독자’(1)들은 이를 잘 피해 가긴 한다.

 

베르나르-앙리 레비

프랑스 주간지 <르푸앙>의 논평가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자신이 싫어하는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모든 인물들을 나치에 비교하곤 했다.(2) 2010년 12월, 그는 한 기사에서 진상 밝히기에 신이 난 나머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전 편집장 베르나르 카상과 극우 성향의 반이슬람주의 운동가 피에르 카상을 혼동하고 말았다. 그러나 <르푸앙>은 피해자의 반론권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레비는 경범죄법원 17호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2013년 4월 23일 자 판결문). 

법원은 베르나르-앙리 레비의 “정확성 결여와 기본 의무 태만”과 함께 이 사건이 “심각성과 위험성”을 지닌 명예훼손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평가했고, <르푸앙>에는 3,5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그리고 지난 2월 7일,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르푸앙>을 통해 “세계적으로 큰 피해를 주는 가짜 뉴스들을 모아 실시간으로 순위를 매기는 ‘수치의 전당을 만들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또한 “네티즌들이 글, 영상, 저작물 등을 올려 그 안에 담긴 진실의 힘 또는 풍자를 통해 해로운 가짜 뉴스들을 무력화하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제안은 오히려 베르나르-앙리 레비 자신에게 위험한 일이다. 지금까지 그가 퍼뜨린 허위 정보들을 모두 언급하려면 본지의 한 면 전체를 할애해도 부족할 것이다.(3) 그러므로, 최근 문제가 됐던 내용만 살펴보자. 마침 미국 정부가 이란의 목을 조이는 이 시점에 출간된 그의 저서 『제국과 다섯 왕(L'Empire et les cinq rois)』에서,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 서술한 바 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처음 출간됐을 때도 파트릭 코엔(<Euopre 1>, 2018년 3월 3일), 알리 바두(<France Inter>, 2018년 4월 1일), 로랑 뤼키에(<France 2>, 2018년 4월 7일) 등 정확성과 팩트 체크에 많은 관심을 가진 프랑스의 언론인 및 논평가들 중 그 누구도 이 이야기에 대해 어떠한 제지도 하지 않았다.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1935년에 “나치 독일이 페르시아인들에게 역대급 거래를 제안했다. ‘우리는 앞으로 (…) 엄청난 모험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은 이를 받아들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페르시아가 국호를 아리안의 땅이라는 뜻의 ‘이란’으로 바꾸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히틀러는 아리안족을 유럽민족 중 가장 우수한 혈통으로 구분했다-역주).

이 내용이 발표되자 곧 수많은 이란 전문가들은 격렬한 항의를 표했다. 며칠 후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다른 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그중 일부는 이 위험천만한 거짓말에 연루될 것을 염려해 그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4) 결국 지난 2월 출간된 영어판에서는 근거자료가 수정돼 1935년 6월 26일 자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기사 내용이 추가됐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도 독일 대사의 ‘제안’만 언급돼 있을 뿐, 페르시아의 국호 변경에 대한 근거는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기사는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주장했던 것처럼 “독일이 이란 대사에게 요청해 왕에게 전달하도록 했던 명령”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지 못한다. 게다가 해당 기사는 <뉴욕타임스>의 ‘여행-항해-소풍’란에 실렸던 것으로, 지명이 변경된 여러 사례(산토도밍고에서 시우다드트루히요로, 스미르나에서 이즈미르로, 크리스티아니아에서 오슬로로)를 다루며, 그중 하나로 이란의 경우를 들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다리를 걸치고자 했던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의 내용(약 150단어)은 실상 이렇다 할 입증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심지어 이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는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자칭 이란 전문가인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근거자료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심지어 여행 정보에 관심 있는 독자들을 타깃으로 쓰인 이 기사는 1935년 6월 26일이 아닌 1936년 1월 26일 자 신문에 실린 것이었기 때문이다.(5)

한편 1935년 당시 국호를 바꾸기로 했던 페르시아 국왕의 결정과 오늘날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의 표적이 되고 있는 지금의 이란이슬람공화국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 걸까?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여기에도 명확한 연관관계가 있다고 봤는데, 이후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란의 정권을 장악하고 이슬람 공화국을 세우면서 ‘페르시아’로 국호를 되돌리지 않았던 것도 그의 측근 중 “하이데거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던 이론가들”이 세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는 “내 영화에 참여했던 촬영기사 중 한 명이 탄탄한 철학적 소양을 갖춘 이란 쿠르드 출신의 지식인이었던 덕분에 알게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978년 이후 역대 프랑스 대통령들은 한 명도 빠짐없니 베르나르-앙리 레비를 인정하고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왔다. 오늘날에도 레비는 대통령을 향해 끊임없이 찬사를 늘어놓고 있다. 그런 만큼, 마크롱 대통령 역시 그에게 가짜 뉴스들을 조사하는 임무를 맡기려 할지도 모른다.

 

로베르트 메나세

오스트리아 출신의 로베르트 메나세는 『수도(Die Hauptstadt)』로 2017년 독일문학상을 받은 소설가다. 또한, 각국의 과거회귀주의로부터 벗어난 하나 된 유럽을 위해 투쟁하고 몇 년 전부터는 독일어권 언론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상세히 설명해온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2013년 3월 24일, 정치학자와 함께 집필해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너 차이퉁>에 게재한 열정 넘치는 기사 ‘유럽 공화국 만세!’나, 같은 날 <디 프레세>에 실린 칼럼 ‘유럽 공화국 설립을 위한 선언’에서 메나세는 “유럽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이었던 독일인 발터 할슈타인은 ‘국가의 폐지야말로 유럽의 이념이다’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그는 그 뒤에 “지금의 유럽위원회 위원장이나 독일 총리였다면 감히 내뱉을 수 없었을 말이다. 내뱉기는커녕 떠올리기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비록 잊혔을지언정 분명한 진리다”라는, 허풍조의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1982년에 타계한 발터 할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2017년 10월, 저명한 역사가 하인리히 아우구스트 빙클러는 주간지 <데어 슈피겔>을 통해 이 내용에 대한 의구심을 표하며 메나세에게 출처를 밝힐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헛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나세 때문에 할슈타인의 발언이 돼버린 또 다른 문구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탈민족주의적 유럽을 만드는 게 목표이며 지금도 그렇다”라거나 “유럽통합 과정의 목표는 민족국가를 뛰어넘는 것이다” 등이다. 기막힌 일이었다. 빙클러는 “할슈타인이 실제로 이런 말을 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게다가, 그 내용 역시 과거 그의 발언들과 완전히 모순된다”고 비판했다.(6)

게다가 창의적인 소설가이자 저술가인 메나세는 할슈타인이 1958년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 위원장으로서의 첫 연설을 아우슈비츠에서 했다면서 “이 사실”이 “유럽위원회가 아우슈비츠의 비극에 대한 이상적 해결책임을 잘 보여준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또한 사실과는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7) 빙클러는 이런 정보 왜곡이 “역사에 대한 탈진실(post-fact)적 시각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봤다.(8) 특히 빙클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계나 지식인층에서 가짜 뉴스들의 내용이 계속해서 재사용되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욱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지난 11월에는 유럽의회의 보수진영 대표이자 EU의 차기 집행위원장 후보인 만프레드 베버가 잘못된 내용을 인용하는 일도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올해 초 1월 22일에 독일 아헨에서 체결된 프랑스와 독일 양국 간의 신우호조약이 프랑스의 알자스·로렌 지역을 독일에 넘기기 위한 조약이라는 가짜 뉴스가 떠돈 적 있다. 이에 프랑스 매체들은 곧바로 반박하고 나섰고, 이 가짜 뉴스의 장본인인 ‘드부 라 프랑스’당 소속의 한 유럽의회 의원은 거센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메나세의 가짜 뉴스들은 1년도 더 지난 지금에서야 독일 언론에서만 문제시되고 있을 뿐, 프랑스 언론들은 이를 다루기는커녕 오히려 메나세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기 바쁘다. 

무엇보다, 메나세 본인은 그 어떤 타격도 입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잘못을 정당화하기 위해 “학술적으로 따지자면 그 발언들을 따옴표가 들어간 인용구로 표기한 것이 잘못”이라고 인정했을 뿐이다(<디 벨트>, 2019년 1월 5일). 메나세는 지난 1월 19일 칼 추크마이어 메달을 수상했으며 라인란트팔츠 주 총리로부터 문학 훈장을 받기도 했다. 가짜 뉴스를 만든 인물에게, 라인란트팔츠 주 총리는 “유럽적 이념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며 그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9)

 

프랑스 앵테르

2019년 2월 7일, 니콜라 드모랑과 레아 살라메가 프랑스 공영 라디오 방송국 ‘프랑스 앵테르’에서 진행하는 한 방송에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 파트릭 부슈롱이 출연했다. ‘노란 조끼 시위’에 대해 명백한 반감을 보여 온 두 진행자와, 이들보다 더 큰 반감을 품은 부슈롱은 이 방송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특히 부슈롱은 ‘노란 조끼’를 지지하는 지식인들이 “반란을 조장하는 작은 마약을 만들어 팔고 있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으로 민중운동계의 권위자인 제라르 누아리엘을 지목하며 “제라르 누아리엘이 이번 시위를 ‘자크리의 난’(백년전쟁 중 북프랑스에서 있었던 농민폭동)에 비교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반면 다른 중세 역사가들은 이번 현상이 ‘자크리의 난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몇 주 전, 제라르 누아리엘은 노란 조끼 운동을 자크리의 난이나 푸자드 운동과 비교할 수 있겠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 어떤 역사적 사례와도 결코 비교할 수 없다. 노란 조끼 운동을 자크리의 난과 동일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며 모독적인 일이다. 자크리의 난, 즉 1358년의 대규모 농민반란은 백년전쟁과 흑사병으로 아사의 위기에 몰린 빈곤층이 일으킨 목숨을 건 폭발이었다.”(10)

한편 이번에는 프랑스 앵테르의 시사방송 진행자인 클로드 아스콜로비치가 방송 중 한참 동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러시아 언론의 가짜 뉴스를 비판한 뒤 이런 말을 덧붙이는 일이 있었다. “‘밤샘 시위’의 주역이었던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통해 러시아 국영 방송사인 RT가 비록 친(親)푸틴적 선전을 다소 과하게 하긴 했어도 ‘유일하게 명예로운 방송매체’가 됐다고 말했다. 이에 <샤를리 에브도>는 격분하며 ‘RT는 과거 나치 독일의 선전 잡지 <지그날>과 다를 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여기에도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해당 내용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게재된 것이 아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웹사이트 내에 개설된 로르동의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된 것이었다. 둘째, 인용된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 로르동이 올린 본래 문장은 다음과 같다. “RT가 거의 유일한 명예로운 방송매체가 돼버렸다(!)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역설적 상황을 볼 때 프랑스 저널리즘이 안고 있는 불명예의 크기가 드러난다.” 

그런데 주요 공영 방송국이라는 프랑스 앵테르가 옮겨온 문장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한 역설”, “거의”, 느낌표(예상치 못한 역설임을 강조하기 위한) 등의 표현들이 삭제돼 있다.(11) 그로부터 일주일 후, 니콜라 드모랑은 방송을 통해 다음의 말을 청취자들에게 들려줬다. 

“우리는 언론인들과 함께 확인한 사실의 전달과 더불어 오늘날에는 가짜 뉴스의 홍수에 맞서기 위한 팩트 체크를 주 업무로 삼는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미디어비평 행동단체 ‘Acrimed’에서 활동 중이며, 대안언론 <르플랑베(Le Plan B)>를 발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Libération, de Sartre à Rothschild 해방, 사르트르에서 로스차일드까지』(Raisons d'agir, 2005) 등이 있다.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번역위원

 

(1) ‘해독자들’은 <르몽드>의 웹사이트에 개설돼 있는 팩트 체크란의 명칭이다.

(2) Serge Halimi, ‘Tous nazis(모든 나치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7년 12월호.

(3) 대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프랑스어판 사이트에 관련글을 게시했다. ‘L'imposture Bernard-Henri Lévy(베르나르-앙리 레비의 허위 정보’), www.monde-diplomatique.fr

(4) ‘Ardavan Amir Aslani: N'en déplaise à BHL, la Perse n'est pas devenue l'Iran pour faire plaisir à Hitler!(아르다반 아미르 아슬라니: 베르나르-앙리 레비에게는 안됐지만, 페르시아는 히틀러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이란이 된 것이 아니다!)’, L'Opinion, Paris, 2018/05/23.

(5) Olivier McKee Jr, ‘Change of Santo Domingo to Trujillo City recalls others’, <The New York Times>, 1936년 1월 26일.

(6) Heinrich August Winkler, 『Zerbricht der Westen?: Über die gegenwärtige Krise in Europa und Amerika』, C. H. Beck, München, 2017.

(7) Patrick Bahners, ‘Menasses Bluff’ & ‘Fall Menasse. Psychopathologe’, <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 2019년 1월 2일, 1월 6일.

(8) <Der Spiegel>, Hambourg, 2017년 10월 21일.

(9) <Der Spiegel> Online, 2019년 1월 7일.

(10) <르몽드>, 2018년 11월 28일.

(11) SNS을 통해 논란이 불거지자 프랑스 앵테르 사이트에 업로드된 텍스트 버전의 방송 내용 중 해당 부분은 삭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