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페미니스트의 여정

2019-04-30     모나 숄레

1964년 어느 날,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택시 뒷좌석에서 두 남성 작가 게이 탈레즈와 솔 벨로 사이에 앉아 있었다. 탈레즈가 벨로 쪽으로 몸을 기울여 이렇게 말했다. “그거 알아? 매년 뉴욕에 상경해 작가 행세하는 젊고 예쁜 여자 한 명씩 있어. 올해의 주인공은 글로리아 스타이넘.”

하지만 스타이넘은 성차별적인 편견을 보란듯이 꺾었다. 50년 후, ‘젊고 예쁜 여자’였던 스타이넘은 전설이 됐던 것이다. ‘스타이넘의 인생을 담은 영화가 제작 중이다. 줄리안 무어가 스타이넘의 역을 맡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3년 스타이넘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했다. 스타이넘은 1960년대 말부터 페미니즘의 중심인물이 됐다. 오바마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취임한 2017년 1월 21일에 워싱턴에서 열린 여성 행진에서 스타이넘의 연설은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스타이넘은 미국에서는 스타이지만 희한하게도, 프랑스 등 미국 밖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열정적인 저서 『셀프 혁명』(1992년)만이 1997년 프랑스어로 번역 출간됐을 뿐이다. 하지만 2018년 포르트레 출판사는 스타이넘의 글을 모은 『파렴치한 행동과 일상의 반란』(1)을 출간해 공백을 메꿨다. 이어서 하퍼콜린즈 프랑스 출판사도 2015년에 출간된 스타이넘의 자서전을 『길 위의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했다.(2)

스타이넘의 명성으로 형성된 이미지와 달리 이 두 권의 책은 스타이넘의 과격한 성향을 조명한다. 1960년대 미국의 페미니즘을 주로 대표하던 인물은 베티 프리단이었다. 프랑스어로 재출간된 프리단의 결작 『여성성의 신화』(1963)는 중상류층 백인 여성들이 개인적인 야심을 모두 포기한 채 가정에만 안주한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3) 남편도 자녀도 없는 독신녀 스타이넘도시 서민여성 운동을 이끄는 데 기여했다. 스타이넘은 언제나 톨레도(오하이오주)의 노동층 여성들(흑인, 인디언, 레즈비언 여성들)과 연대했다.

스타이넘은 억압받는 모든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페미니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66년 기자였던 그녀는 세자르 차베스 노조 위원장의 부름에 응답해 투쟁하는 농민 노동자들을 취재했다. 스타이넘은 페미니즘 운동을 하던 초기부터 미국 곳곳을 누비며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는 운동가 플로린스 케네디, 그리고 흑인 변호사 도로시 피트먼 퓨즈와 손잡고 대중과 만났다. 1971년에 촬영한, 스타이넘과 피트먼 휴가 나란히 서서 주먹을 들고 검은 힘(블랙 파워)에 경의를 표하는 사진은 유명하다. 『길 위의 인생』은 스타이넘이 체로키 부족 국가를 다스린 최초의 여성 추장 윌마 맨킬러와의 돈독한 우정 덕분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문화와 투쟁을 발견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국 역사에서 거물급 인사가 된 스타이넘은 85세를 맞이했다. 스타이넘은 정치에도 활발히 참여했는데, 1972년 리차드 닉슨과 대선에서 맞붙은 민주당의 불행한 후보 조지 맥거번을 묘사하는 글을 썼다(『파렴치한 행동』 중 ‘대선 캠페인’에서).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았으나 최근에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기도 했다. 또한 스타이넘은 1963년 워싱턴의 여성 행진과 마틴 루터의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마릴린 먼로와 은밀했던 만남, 1963년 ‘바니’ 복장의 여성 종업원으로 잠입 취재한 기사를 써서 일약 유명해졌으나 <플레이보이>의 대표 휴 헤프너의 미디어 제국을 평생 증오한 일화, 1977년 휴스턴에서 열린 전국 여성회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스타이넘의 개인사는 위대하면서도 인간적이다. 『루스의 노래 La chanson de Ruth』에서 스타이넘은 결혼 후 기자 일을 그만두면서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길 위의 인생』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 노래로 시작된다. 골동품 상인이던 아버지를 둔 스타이넘은 12세가 돼서야 학교에 들어가는 등,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당시의 여성으로서는 매우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게 됐다.

 

 

글·모나 숄레 Mona Chollet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Gloria Steinem, Actions scandaleuses et rébellions quotidiennes(파렴치한 행동과 일상의 반란), Les Éditions du Portrait, Paris, 2018 (1쇄 : 1983)
(2) Gloria Steinem, Ma vie sur la route(길 위의 인생), HarperCollins, Paris, 2019.
(3) Betty Friedan, La Femme mystifiée(여성성의 신화), Belfond, Paris,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