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노동운동 이합집산 혹은 줄서기
[Spécial] 연대의 재발견
프랑스 동쪽 지역(루아르아틀랑티크)의 토탈 정유공장에서 상징적인 장면 하나가 카메라에 잡혔다. 노동총연맹(CGT) 소속 토탈 노조 대표 크리스토프 이우가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의 오렌지색 모자를 쓰고 있고, CFDT 쪽 대표 디미트리 기예는 CGT의 붉은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10월 29일은 전국의 노동자들에게 고통스러운 날이었다. 전국노동자총회에서 파업 중단을 표결에 부치려는 순간,(1) 토탈의 두 노조 대표는 연대를 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연금법 개정을 막지는 못했지만 모두 책임 있게 투쟁에 참여했다는 것,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이번 실패에서 승리의 예감이 느껴진다.” 이우가 굳은 표정으로 덧붙였다.
“연금개혁 못 막았지만 자랑스럽다”
올가을, 연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거대한 시위의 물결이 프랑스 전역을 휩쓸었다. 전례 없는 일이었다. 10월 12일, 망슈 지역 쿠탕스에 2500명, 아르데슈 지역 오브나스에 4600명, 쥐라 지역 돌에 7500명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2) 특히 토요일에는 평소 보지 못한 얼굴들이 합세해 노조원들의 거리 행렬을 키웠다. 시위를 조직했던 한 사람은 “시위에 처음 나와본다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올가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위에 한 번이라도 참여한 사람이 정확히 몇백만 명에 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대략 헤아려도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우의 표현을 빌리면, 이는 “대중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석유 공급 부족으로 어려움이 따랐지만, 여론의 지지는 결코 약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데올로기적 승리는 정치적 패배라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파업으로 형성된 새로운 역학 관계에도 불구하고 권력은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연대노총(Solidaires) 중앙위원 피에르 칼파가 보기에, “파업에 참가한 인원은 결코 적지 않았다. ‘모두 함께’라는 구호가 시위 속에서 표출되었다”.(3)
이번 시위는 공공 부문 노조가 전체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대가 끝났음을 보여주었다. 베르나데트 그루아종 통일노조연맹(FSU) 위원장은 웃으며 말한다.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투쟁의 기관차 역할을 하는 데 진력을 다했다.” 디디에 르 레스트 CGT 철도노조 대표는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민간 부문으로 확산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강조한다. 한편, 베르나르 티보 CGT 위원장은 “공공 부문에 의한 ‘대리 파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노조 지도부는 공공 부문 파업 참가율이 예전보다 떨어졌다고 입을 모은다. 국영철도회사(SNCF)와 파리교통공사(RATP) 노조가 시한부 파업을 벌였지만 ‘최소 서비스 규정’(Service Minimum·파업 때에도 최소한의 서비스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규정)과 노조원들의 저조한 파업 참여 탓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2003년 프랑수아 피용 내각의 연금법 개혁안에 반대해 몇 주 동안 파업을 벌였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다.(4) FSU의 그루아종 위원장은 “당시 여론의 지지를 못 받은 공공 부문 노동자들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고 회고한다. 전국중등교육노조(SNES) 대표 안 프레이는 “이번 파업에 교사들의 참여가 저조한 이유는 파업의 성공을 확신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이데올로기적 승리, 정치적 패배
위기만으로 모든 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번 총파업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동쪽 지역의 토탈 정유회사 노동자 40%가 노조에 가입됐다는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반면, 프랑스 전체 노조가입률은 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8%에 불과하다. 이는 노조 활동을 제약한다. 파업이 ‘여론의 지지’를 받고 길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나온 것에 만족해버리면 이는 정치가들에게 분개한 대중의 화풀이로 그칠 공산이 크다.
지도부의 망설임이 미친 악영향
노조 지도부가 좀더 강경하게 나왔다면 파업이 전체적으로 확산될 수 있었을까? ‘노동자의 힘’(FO) 중앙위원 르네 발라동은 그렇다고 본다. “처음부터 투쟁 방침을 놓고 이견이 있었다. 시위대의 행렬이 길면 권력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다는 전통적인 노조 투쟁 방식은 현 대통령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좀더 거칠게 밀어붙여야 한다.” 전국 규모의 업종별 파업에 대한 제안이 나온 것도 이런 관점에서다. 그러나 노조 연합 지도부는 ‘투쟁의 날’을 선언하고 각자 알아서 행동 방침을 정하라고만 했다. 아니크 쿠페(Sud)가 보기에, “사르코지와 맞붙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연합 지도부는 정치적 모험에 뛰어들기를 원치 않았다”.
마르셀 그리냐르 부위원장(CFDT)은 노조 연합 지도부의 전략이 불충분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조작된 게임에 말려든 셈이다. 권력은 대화의 여지를 모두 없애버렸고, 노조들은 정치 투쟁을 전개할 생각이 없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소적인 현 정부는 노조의 책임 의식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CFDT는 경제위기로 임금노동자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상황에서 파업 방식이 ‘적절치 못했다’고 판단한다.
노조 연합은 이번 시위를 촉발한 힘이었지만, 동시에 시위의 급진화를 막았다. 그루아종 위원장(FSU)은 “모든 사람들의 단합을 이루어낸 힘든 과정이었다. 계속 단합을 유지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라며 만족해한다. CGT, CFDT, CFTC, CFE-CGC(관리직총연맹), UNSA, FSU, 연대노총(Solidaires)으로 이루어진 노조 연합은 큰 불협화음 없이 이번 투쟁을 이끌었다. FO는 공식 성명서에는 서명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회의에 참가했다. 연대노총은 각 노조가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도출하려는 시도에 맞서 때때로 지도부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했다.
노조 연합의 전략은 끊임없는 타협으로 도출됐다. CGT 내부에서조차 화학 업종 등 일부 노조가 지나치게 신중한 중앙 지도부에 반발했다. 반면, CGT와 CFDT를 중심으로 공조 입장을 취하는 노조들도 있었다. 문제는 각 노조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최종 방침을 결정하는 데 있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노조 간 단합을 유지할 수는 있었지만, 지도부가 때론 일관성 없는 지침을 내리거나 투쟁 일정이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어쨌든 CGT와 CFDT 간 연대가 강화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냐르 부위원장(CFDT)은 “이 두 노조가 노조 연합을 이끌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딘 프리장(CGT)은 두 노조의 ‘특권적 위치’를 지적한다.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두 노조의 연대는 전략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반응을 낳고 있다. 올리브 위원장(UNSA)은 “이런 연대는 노동조합운동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평가하는 반면, 르네 발라동은 “노조 연합을 통해 CFDT 위원장 프랑수아 셰레크와 CGT 위원장 베르나르 티보는 모든 조직의 대표자인 양 행세한다. 그러면 다른 조직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본다.
최대 노총 두 곳, 파업 중 연대
이런 전략적 공조는 서로 대립되는 양 노조 간 성격 차이를 극복하려는 의지에서 비롯됐다. 티보 위원장(CGT)은 “CFDT는 스스로 사회적 중재자를 자처한다. 그러나 CGT는 분명히 노동자 편에 서 있다”고 말한다. 셰레크 위원장(CFDT)은 “유럽의 노동조합은 확연히 둘로 양분되어 있다”면서 유럽연합에 우호적이며 정부와의 협상을 강조하는 ‘개혁주의적’ 경향과 반체제적 경향을 대비시킨다. 연금법과 관련해서도 두 노조의 노선은 서로 대립한다. CGT는 항상 자본주의 체제에 적대감을 표시해온 반면, CFDT는 체제에 적응해왔다.
그러나 양쪽 다 연대를 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라고 본다. 또한 양쪽의 연대가 제로섬게임이 아닌 이상 정부와의 힘겨루기에서 현실주의적 분석을 공유하는 다른 모든 조직에도 이익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CGT가 힘을 잃으면 CFDT가 전략적 이익을 보는 구조가 더 이상 아니다. 셰레크 위원장(CFDT)은 “한때 CGT에 대한 지적(知的) 지배가 CFDT의 장래를 보장하며, CGT의 세력 약화가 CFDT의 힘을 강화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CGT가 발전한다고 해서 CFDT가 잃을 것은 전혀 없음을 안다.” CFDT의 지도부는 심지어 CGT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 같다. 그리냐르 부위원장(CFDT)은 “스페인·이탈리아·벨기에 등 복수노조를 인정하는 국가들을 보면 대부분 서로 다른 경향들이 지속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며 안도감을 표시한다.
과거엔 제로섬, 지금은 윈-윈
한편, 전체 57%는 공공 부문에서 일한다. CGT는 민간 부문 노조원이 3분의 2에 달하는 CFDT와 공조하기 위해 민간 부문, 특히 중소기업 노조원 수를 늘릴 필요를 느끼고 있다. 이런 전략은 부분적으로 공공 부문에 치중하는 FSU 및 연대노총과의 연대에만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투쟁에 적극적이지 않은 민간 부문 노동자들과 관계를 끊지 않으려는 지도부의 신중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전략적 선택은 낭트에서 열린 CGT 총회(2009년 12월 7~11일)에서 논쟁거리가 됐다. 민간 부문과 공공 부문 노조원들은 서로 생각이 달랐다. CGT의 ‘조직 변화’ 방향에 지지를 보낸 쪽은 민간 부문이었다. 반대를 표명한 사람들 대부분은 조직 구조와 지금까지의 관행을 바꾸는 것에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CGT는 세력을 넓히기 위해 어려움이 있음에도 노조 지부를 줄이고 하청업체 노동자까지 포괄하는 새로운 노조를 건설하는 등 조직 변화를 추진해왔다.
4년 전 연금법 홀로 찬성, 조직 휘청
사회학자 프랑수아 피오테는 CGT에 대한 연구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CGT라는 조직 속에는 다양한 활동, 운영, 투쟁의 방식이 공존한다.”(6) 티보 위원장(CGT)은 “좀 정신이 없긴 해도 그것이 바로 CGT가 가진 힘”이라고 강조한다.
급진적 성격을 포기하고 쉬드체신노조와 강력한 연대를 표명하는 CFDT는 CGT에 비해 조직 내부 구성이 동질적이다. CFDT는 2003년의 상처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CFDT 지도부가 프랑수아 피용 내각의 연금법 개혁에 찬성한 뒤 4년간 8만 명이 조직을 탈퇴했다. 전국상공업고용연합(Unedic)이 CFDT의 주도 아래 실업급여 지급 기간을 단축한 것은 CFDT의 조직 운영이 표류하는 극단적인 예다. 셰레크 위원장은 “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부당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조직의 역할을 혼동한 데서 비롯된 실수다. 그 뒤 자기비판 과정을 겪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이번 파업을 기회로 노조원들이 자존심을 되찾았다고 말한다. 그는 니콜 노타(7)가 위원장이던 때 우파로 기울었던 CFDT가 시계추가 되돌아오듯 ‘중도’의 입장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냐르 부위원장(CFDT)은 “연대 투쟁이 모두를 움직이게 한 힘이었다”고 설명한다. 다른 조직과의 연대는 CFDT 내부에도 분명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008년 8월 20일 도입된 노동조합 대표 자격에 관한 법률로 입지가 달라지는 다른 노조들은 CGT와 CFDT의 연대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장클로드 마이이 FO 위원장은 “두 노조의 연대가 오랫동안 노조 간 관계에 해악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프랑스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노조인 FO는 새로운 세력 판도에 위협을 느끼기는커녕 더욱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다양한 세력으로 구성된 FO는 조직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 타 노조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려 애쓴다. 1989년부터 2004년까지 FO를 이끌었던 마르크 블롱델 위원장은 CGT가 현실 사회주의 몰락과 전통적 산업 기반의 해체로 비틀거리는 틈을 노렸다. FO의 새로운 지도부가 협상을 중시하는 온건 노선을 유지했던 전 위원장 앙드레 베르즈롱과 달리 급진적 태도를 내세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군소 노총들, 존재감에 대한 불안
그러나 FO는 프랑스 제1의 노조 CGT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셰레크 위원장(CFDT)은 “CGT의 변화가 FO를 죽이고 있다”고 분석한다. “FO는 CGT를 반대하는 입장에 있다. 1947년 상황과 무척 닮아 있다.”(8) 티보 위원장(CGT)의 설명이다. FO가 CGT에 실망한 사람들을 흡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노사조정법원(Conseil de Prud’hommes) 위원 선출 결과만 보더라도 FO의 영향력 감소가 확인된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 세력이 약화되고 있다. 반면, 민간 부문 노조원 수가 늘어서 전체의 54%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이이 위원장(FO)은 “새로운 규정 덕분에 노조들이 우리 쪽에 합세하고 있다”고 반색한다. 이는 FO의 내부 구성을 더욱 다양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FO의 하부 조직들은 현장에서 지도부의 강경한 노선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발라동 중앙위원은 “FO 소속 노조들의 10분의 9는 기본적으로 계급 결속을 위해 움직인다”고 말한다. 그는 독립노조들이 FO에 가입하면 동업조합주의로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일축한다. “자신의 업종을 방어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의 본질에 해당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노총을 가지고 있다. 현재 총 8개의 노총이 있으며, 그중 일반 노조만 6개(CGT·CFDT·FO·CFTC·UNSA·연대노총)에 달한다. 나머지 둘은 업종별 노조다(CFE-CGC는 관리직 노조, FSU는 공공 부문 노조). 제라르 아쉬에리 FSU 전 위원장은 “말은 안 해도 모두들 노총 조직 통폐합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루아종 현 위원장도 “8개 노총 체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며 맞장구를 친다. 단기적으로는 각 노조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기 때문에 급작스러운 재편은 쉽지 않겠지만, 노조 대표 자격에 관한 새 법률로 인해 노총 체제가 더욱 단순해질 것으로 보인다. “조직 통합은 항상 큰 사건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인위적 조치로 가능한 게 아니다.” 마이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현재 가장 위기에 처한 조직은 프랑스기독교노동자연맹(CFTC)으로, 전국적 차원에서 ‘대표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CFTC 위원장 자크 부아장은 “마지막까지 싸워보지도 않고 패배를 인정할 수는 없다”며 강력한 의지를 표명한다. 새 규정대로라면 CFTC는 CFDT에 편입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지만,(9) CFTC 쪽은 CFDT가 “중재를 내세우면서 양심과 타협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노조 연합 회의에서도 CFTC는 전국적으로 업종별 파업을 벌이자는 FO의 제안을 지지함으로써 CFDT 쪽을 놀라게 했다. CFTC 지도부는 점차 노조원들을 잃게 될지 모를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관리직총연맹(CFE-CGC)은 자신의 역사적 정체성에 덜 집착하는 듯 보인다. 심지어는 관리직을 위한 노동조합이라는 특수성을 벗어던질 의향마저 내비친다. 베르나르 방 크레이네스트 위원장은 관리직과 전체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점점 유사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유로 든다. 가령 그의 딸은 23살에 관리직에 근무하지만 한 달에 1800유로를 받는다. CFE-CGC 노조원 중 52%만 엔지니어와 관리직이고 나머지 48%는 기술자, 직공장(職工長), 영업직이다.
새로 도입된 법률은 관리직 사원 동업조합의 대표성을 보장하고 있지만 방 크레이네스트 위원장은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조직을 원하고 있다. 2009년 1월에는 CFE-CGC 내 규모가 큰 몇몇 노조의 반발로 UNSA와의 통합이 무산됐다. 그러나 방 크레이네스트 위원장은 “프로세스는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한다. 공공 부문의 UNSA와 민간 부문의 CFE-CGC가 힘을 합치면 상호보완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미 프랑스 텔레콤에서는 UNSA-CGC 연합 노조가 결성됐다. 프랑스 전력가스공사(EDF-GDF)에서는 노사기업운영위원회 대표를 뽑는 선거에 양 노조가 단일 후보를 냈다. 그럼에도 CFE-CGC 안에서 자신들의 특수성을 강조하는 일부 조직들은 다른 노조와의 통합을 내켜하지 않을 것이다.
양대 노총, 뒤론 각자 세 불리기
올리브 위원장(UNSA)은 “우리는 항상 노조 간 통합을 지향해왔다”고 말한다. 그는 역사가 길지 않은 UNSA가 발전하고는 있지만 대표 자격을 획득하는 게 쉽지 않음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UNSA는 교육 부문에서 비교사직 노조원이 많이 가입해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자율(Autonome)을 뜻하는 ‘A’에 이끌려 상당수 개별 자율노조들이 UNSA에 합류하고 있다. “우리는 개별 노조에 완전한 재량권을 인정해준다.” 전국위원장 파스칼 프리우의 말이다.
물론 UNSA의 지도부는 운영 방식의 한계를 인정한다. 프리우 위원장은 “이미 기존의 오래된 노조가 자리잡고 있는 사업장에는 UNSA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한다. UNSA의 ‘개혁주의적이면서 전투적인 중도 노선’은 CFDT와 많이 닮아 있다. 실제로 두 노조는 유럽노동조합연맹에 단일 대표를 두고 있다. CFDT의 셰레크 위원장은 ‘강한 개혁주의 노조’ 건설을 위해 UNSA와의 ‘협력’을 강화하기를 희망한다.
이런 협력 관계가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CGT는 좀더 전투적인 노조들을 규합할 필요성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연대할 세력은 분명 존재한다. 그루아종 위원장(FSU)은 “우리는 노조 연대에 참여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한다. FSU는 현재 CGT, 연대노총과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루아종 위원장은 양대 노총 체제가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의문을 표시한다.
노조원의 80%가 교사로, 주로 공공 부문에서 자리를 잡은 FSU는 부문별 노조의 성격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그루아종 위원장은 “우리 노조는 직업 정체성의 토대 위에 건설됐다”고 말한다. 과거 FEN(국민교육연맹 1947~92)의 ‘통일·행동’파가 떨어져나와 지도부를 건설한 FSU로서는 CGT와의 통합은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전국중등교육노조(SNES)의 안 프레이는 “만약 동료 노조원들이 우리를 따르지 않으면 부문별 노조로서 힘을 잃게 될 것”이라며 걱정한다.
전국 대표 자격, 몇 곳이나 얻을까
연대노총(Solidaires)은 ‘양대 노총 체제’라는 전망에 별로 반대하지 않는다. 칼파 위원장은 “연대노총의 존립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총 체제는 ‘노동조합운동의 두 가지 방향성’을 중심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즉 CFDT를 중심으로 ‘사회적 동반자’ 역할을 지향하는 세력과, CGT·FSU·연대노총을 중심으로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세력이 모여야 한다는 것이다.
CGT가 연대노총의 이런 전략에 동의하지 않는 상황에서 연대노총은 천천히 자신의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아니크 쿠페(Sud)는 “체제 개편은 계획과 실천을 통해 인내심을 가지고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대노총은 이미 남쪽 지역에서 CFDT 좌파와 ‘10개 노조 그룹’(10)에서 빠져나온 자율노조 좌파의 문화를 결합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연대노총 역시 약한 지역적 기반을 가졌음에도 민간 부문에서의 세력 확장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렇다고 전국적 대표 자격을 얻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눈치는 아니다. 쿠페는 “전국적 대표 자격을 얻지 못한다고 낙담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런 것에 익숙하다. 그러나 연대노총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프랑스 노조들은 앞으로 몇 년간 선거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올리브 위원장(UNSA)은 “노조 대표 자격에 관한 법 때문에 지금은 상상조차 못할 일들이 현장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미 CFTC 노조원들이 FO에 가입하거나 자율노조 노조원들이 CFDT에 합류하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따라서 초반에는 노총 체제가 단순화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업종 간 연대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각 노조가 원자화돼 흩어져버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페르노 연구원은 “개별적인 이해관계가 중요시되면서 각 사업장에는 특별한 논리나 전체적 일관성이 결여된 다양한 모습의 노조 연합이 등장할 것”(11)이라고 내다본다. 전국 혹은 지역 대표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각 노조나 동업조합들은 이해관계에 따라 이런저런 간판을 끌어다 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노조는 사회적으로 규정된 법규가 기업 협약에 의해 무력해질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 규모가 큰 노총들 역시 대표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할 것이다.
글•에리크 뒤팽 Eric Dupi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총회 장면은 인터넷 사이트 ‘Bleuspétrol’에서 볼 수 있다. http://bleuspetrol.blogspot.com.
(2) 노조에서 추정한 수치다. 예로 제시된 작은 도시들에서는 경찰이 내놓은 추정치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3) 출처를 밝히지 않은 인용은 모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다.
(4) 2003년 8월 21일에 공표된 이른바 ‘피용법’은 연금 공제 기간 연장과 1993년 발라뒤르법의 공공 부문 확대 적용을 골자로 한다. 같은 해 연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잇달았다. CFDT와 CFE-CGC는 그해 5월 중순 이미 연금법 개정에 찬성 의사를 표시했다.
(5) 2005년에는 CGT 전체 노조원 중 생산직이 33.4%, 사무직이 48.4%였다.
(6) François Piotet, <CGT와 노총 체제 개편>, Presse universitaire de France, 파리, 2009.
(7) 1992~2003년 CFDT의 위원장이던 니콜 노타는 현재 ‘기업의 지속적 발전과 사회적 책임 역량’ 평가 기업 ‘비제오’(Vigeo)의 회장직을 맡고 있다.
(8) CGT-노동자의 힘(FO)은 1947년 CGT에서 떨어져나왔다.
(9) 현재의 CFTC는 1964년 CFTC가 CFDT로 전환하는 것에 반대하는 소수파에 의해 만들어졌다.
(10) ‘10개 노조 그룹’은 1981년 12월 교통, 공무원, 세무(SNUI), 경찰(FASP), 언론(SNJ) 자율노조들이 모여 결성한 단체다.
(11) Jean-Marie Pernot, <노동조합: 위기 그 후?>, Gallimard, 2010.
[박스기사] 노동조합의 법적 대표 자격
2008년 8월 20일 새 법이 마련되기 전부터 프랑스의 5개 노총은 ‘법률적 간주’(Presomption Irréfragable·당연한 법률 효력 인정)에 의해 전국적 대표성을 인정받아왔다. 5개 노총은 노동총연맹(CGT), 노동총연맹-노동자의 힘(CGT-FO), 프랑스민주노동연맹(CFDT), 프랑스기독교노동자연맹(CFTC), 관리직총연맹(CGC)이다. 이 규정으로 각 노총은 각 사업장의 노조 대표를 임명하거나 합의 사항에 서명할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하향식’ 대표성은 ‘상향식’ 대표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노조의 대표 자격은 직원 투표로 결정된다. 이 2008년 법은 같은 해 CGT와 CFDT가 프랑스 전경련(Medef), 전국중소기업가총연맹(CGPME)과 합의한 ‘공동 입장’(Position Commune)을 반영하고 있다.
한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이 대표성을 획득하려면 노사공동기업위원회 혹은 직원대표회의 투표에서 최소 10% 이상 득표해야 한다. 부문별 노조의 대표 자격은 조직의 균형적인 분포와 함께 최소 8%를 득표해야 한다. 전국 대표 자격 역시 최소 8% 득표가 요구되는데, 산업·건설·상업·서비스 각 부문에서 8% 이상 득표를 전제로 한다. 합의 사항 서명 권리는 30% 이상 득표한 노조, 혹은 노조 간 연합으로 득표율이 50%가 넘는 경우에 주어진다.
새 법률은 늦어도 2013년에 시행될 예정이다. 공무원 노조는 대표 자격이 노사 동수로 구성된 관리위원회와 전문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이다. 또한 새 법률은 직원 수 11명 미만의 사업장을 위한 제3의 선출 방식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전체 법률 규정이 복잡해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차후에 개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