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군부의 코스프레
지난 11월 13일 버마(미얀마) 군사정권은 구금 기간이 끝난 아웅산 수치를 석방하는 한편, 그녀가 반정부 대중 집회를 여는 것을 묵인했다. 이는 서방의 제재에서 벗어나려는 군부의 제스처로 해석된다. 하지만 군부는 그녀의 석방 시기를 총선 이후로 미룸으로써 국내 정치에서의 부담을 피해갔다.
지난 11월 7일 총선 실시와 함께, 버마 군사정권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는 민주주의(Disciplined Democracy)를 향한 로드맵’을 이행했다. 총선 실시 일주일 뒤에는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 아웅산 수치의 연금도 전격 해제했다. 하지만 수치의 석방을 둘러싼 기쁨 뒤로는 버마의 씁쓸한 현실이 드리워져 있다. 큰 변화에도 불구하고, 버마의 정치 지형을 주도하는 것은 여전히 군부(탓마도)이다. 이번에 실시된 허울뿐인 껍데기 선거나 2003년 군부가 계획한 민주화 이행의 전 과정(1)은 그저 시대착오적인 군사독재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그렇지만 군부나 야당 모두에서 전국적 혹은 지역적 차원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는 것은 무시할 수 없다.
군, 직접 통치에서 간접 통치로
정치, 경제는 물론 문화까지 장악하며 버마의 유일한 체계적 위계조직으로 군림해온 군은 반세기 이상 버마의 국정을 좌지우지해왔다. 어떤 통합 야당도 군부의 권위에 대적하지 못했다. 민족민주동맹(NLD)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결집한 야당 세력조차 역부족이었다. 1948년 독립 이후 버마에는 줄곧 군에 대적할 만한 국가기관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수십 년간 지속된 내전, 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인 버마의 독특한 지정학적 위상, 그리고 반식민 독립투쟁의 역사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동경에서 나온 군국주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버마 군정은 지난 10여 년 동안 주기적으로 잠재적인 반동세력을 숙청하며 군의 지휘체계를 쇄신해왔다. 그럼에도 군부는 전례 없는 대대적인 세대교체에 직면해 있다. 1988년 9월 18일 쿠데타의 두 주역인 탄 슈웨와 마웅 아예 장군은 현재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며 친인척, 민간 지지 세력, 재정 후원자들과 함께 정치 무대 전면에서 퇴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새로운 세대를 중심으로 카리스마를 갖춘 인물은 찾아볼 수 없다. 더구나 원로세력이 새롭게 출범할 ‘정체불명의 정권’을 무력화하려는 한, 앞으로도 새로운 인물의 등장은 요원해 보인다.
상·하 양원과 분권화된 14개 지방 정부 및 지방 의회를 창설(13개 군사 구역은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향후 버마의 정치적·군사적 지형은 지금보다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다. 현 지도층은 이런 변화가 힘의 균형을 실현하며, 내부 경쟁을 억제하거나 자신들의 퇴진이 점진적으로 이뤄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마의 정부 시스템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앞으로도 전제주의적 성격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군의 국정 개입 방식은 훨씬 민간적인 양상으로 변화할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 출범한 통합단결발전당(USDP)이나 군의 비호 세력인 재계 인사들을 활용하며 정권에 개입할 것이다. 이런 방식은 버마 군부가 군 관련자나 지금까지 군을 지지해온 기업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군부 당장 몰락하면 더 위험
올해 초, 군 수뇌부를 중심으로 여러 차례 대대적 인사가 단행됐다. 앞으로도 군부 개편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이런 내부 변혁과 함께 지난 2월부터 에너지, 항만관리, 금융 등을 중심으로 국영기업 민영화 바람이 불고 있는 사실이다. 군부는 민영화를 통해 퇴역 장성이나 그 가족에게 보상 차원의 수입원을 제공하려고 한다. 실제로 많은 퇴역 장성과 그 가족은 기존에 군부가 장악했던 수출입, 통신, 원유 개발, 금융 부문 등의 여러 기업을 손아귀에 넣으며, 새로운 재벌로 성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들 신진 세력은 타이 자가 이끄는 흐투 그룹 등 기존의 경제 거물들과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도네시아와 타이처럼, 사업가로 변신한 퇴역 장성의 후견주의는 현 정권에 일종의 보호막을 제공한다. 후견주의 전략은 퇴역 군인이 민간 야당 세력으로 변질되는 것을 예방한다. 정치권력보다는 재산 형성에 관심이 많은 퇴역 장성은 독점적 권리를 누리는 국가기관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국가기관이 공식 경제 부문을 지배하며 부의 분배를 관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과도 체제 전략이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군부 차원에서든 그 밖의 차원에서든, 신진 경제 세력을 관리하는 것은 새로운 알력 다툼을 불러올 위험성을 내포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현재 군부가 총선(비록 통제 속에 이루어졌지만)이라는 것을 실시하며 민간 정부의 모양새를 과시하고 있지만, 실은 군복을 벗고 대신 정치인처럼 ‘론지’라는 민간인 전통의상으로 갈아입은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는 1차원적인 분석일지 모른다. 앞으로 국가기구 개편이 순탄하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민정 이행이나 정치적·군사적 지형 변화는 정권 내부에 새로운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물론 그렇다고 군부통치 체제의 근간을 위협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치의 카리스마 약화… 각개약진
예를 들어 지금까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려온 군부와 USDP를 필두로 한 새로운 민간 및 의원 세력 사이의 역할은 어떤 식으로 분배할 것인가? 총선이 실시되기 몇 달 전 통합단결발전협회(USDA)- 이 협회는 1993년 이후 탄 슈웨의 비호를 받고 있으나, 군인 의무 가입 규정에도 불구하고 군 내부에서 외면되고 있다- 를 기반으로 창당된 USDP는 퇴역 장성이나 민간인 저명인사 및 재계인사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예상대로 가뿐하게 승리를 거머쥐었다(아직까지 공식적으로 선거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향후 USDP가 군부와 어떤 관계를 이어갈지는 불투명하다. 친군부 성향의 다른 정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가 국민통일당(NUP)이다. 이 당은 1990년 선거에서 “군부와 옛 정권을 위한 관제정당”이라며 맹비난을 받았지만, 현재는 향후 의회에서 핵심적 중재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본다.
뿐만 아니라 군부 수뇌부(민트 아웅, 코코, 민 아웅 흘라잉, 초오 스웨 등 50대 신진 소장파)와 원로 세력(테인 세인, 투라 슈웨 만, (티하 투라) 틴 아웅 민트 우, 마웅 우 등을 필두로 한 세력으로, 새로운 의회 무대 참여를 위해 자의든 타의든 군을 퇴역하고 전원 의원직에 선출됐다)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 파벌 간 이익 다툼이나 앞으로 중앙정부가 임명할 13개 군사 지역 사령관들의 알력, 그리고 14개 주(주 경계와 군사 지역 경계는 서로 다르다)에서 선출될 차기 수석장관 사이의 갈등은 또 어떻게 조정될 것인가?
이번 총선으로 야당 민주 세력 내의 내홍은 더욱 심화됐다. 이제 아웅산 수치라는 강한 카리스마의 인물, 그리고 최근 합법적 지위를 상실한 그의 역사적 정당인 NLD는 더는 민주화 세력을 결집하는 중심축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지난 총선은 새로운 민주 세력이 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이들 신진 세력은 아웅산 수치의 총선 보이콧 지시를 어기고 군부가 벌이는 선거판에 참여했다. 가장 주축이 된 정당은 과거 NLD 소속의 정치범으로 2008년 석방된 킨 마웅 스웨가 이끄는 민족민주세력(NDF)이다. 다른 소수민족 정당도 별다른 공동 강령도 없이, NLD나 과거 정치 동지들과 거리를 두며 이런 움직임에 편승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샨족 민주당(SNDP)과 라카인족 개발당(RNDP)이다. 20년 만에 처음 열린 총선을 통해 탄생한 새로운 (합법적) 야당 세력의 면면은 이미 실리주의자(신진 의원)와 이상주의자 사이의 내분을 예고하고 있다.
너무 느린 민주화… 필요한 건 ‘관리’
향후 버마의 정치 논쟁은, (NLD와는 달리) 총선 참여를 통해 ‘합법적’인 발언권을 획득한 민주 세력이나 소수민족 세력을 중심으로 각 신진 의원들이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아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느냐에 방점이 찍힐 것이다. 이 세력은 (서로 상당히 이질적이고, 이념적으로 세분되어 있지만) 지난 총선에서 다수의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했어도, 어쨌든 현 정권의 인정을 받게 됐다. 제한적이나마, 합법적 활동 영역을 제도적으로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혹은 차기 군부가 ‘공식적’이면서도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낼 이 새로운 야당과 계속 협력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지난 총선이 퇴보는 아니었다(그렇다고 진보라고 보기도 힘들다). 이제 아웅산 수치의 영향력에서 좀더 독립적이면서 공개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야당이 탄생했다. 1995년, 2002년 석방 때와 달리, 수치는 3차 석방 이후 나타난 대중의 기세를 효과적이고 결집력 있는 전략으로 변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아우라에 매료된 국제사회와 너무 오랫동안 고립되었던 버마 사이에서 훌륭하게 중재 역할을 해낼 수도 있다.
버마가 지나치리만큼 느린 민주화를 선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버마의 최근 역사와 일맥상통한다. 버마 군부는 현대의 전술을 더 잘 이해하고 활용하며, 이를 버마 사회의 정치적 환경에 적용해나가고 있다. 결국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아웅산 수치와 마찬가지로, 버마 군부도 군인이거나 혹은 민주 세력이기 이전에 ‘버마 국민’이라는 사실이다.
글•르노 에그르토 Renaud Egreteau
홍콩대 연구원. 주요 저서로 <버마 현대사: 군부의 나라>(파이야르 출판사·2010)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각주>
(1) ‘버마 군부, 영구 지배 위한 교묘한 전략’,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12월, 앙드레 부코, 루이 부코.
(2) 버마 민주화 로드맵 7단계는 다음과 같다.
1단계: 신헌법 마련을 위한 국민회의(National Convention) 재소집(2004~2007년). 2단계: 민정 수립을 위한 필요 조치 강구(2007년). 3단계: 헌법 초안 마련(2007~2008년). 4단계: 헌법 초안 승인을 위한 국민투표 실시(2008년 5월 10일). 5단계: 새로운 헌법에 따라 의원 선거 실시(2010년 11월 7일). 6단계: 상·하 연방의회 구성. 7단계: 국회에 의해 국가수반과 내각이 선출되는 현대 민주국가 수립.
(3) <AFP>, 2010년 11월 15일.
(4) 1990년 5월 27일 선거 당시 NLD는 특표율 59%로, 전체 의석의 82%를 차지했다. 하지만 군부는 NLD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