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남미를 발견하다
2005년에 당선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는 1979년 혁명 이후 최초로, 브라질을 비롯한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서 환대받는 이란 대통령이 됐다. 경제관계에서는 우호적이지만 이데올로기는 대립적인, 이란과 남미의 동맹관계를 통해 지정학적 요인으로 동맹국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국제 관계 구조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란의 핵에너지와 관련해 지난 5월 17일에 체결된 브라질·터키·이란의 3자 협정(1)에 대해 터키의 일간지 <라디칼>의 논설위원이 흥분된 어조로 평했다. 협약 목표는 유엔의 이란 제재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핵연료 교환 합의를 제안하자는 것이었다. 합의는 꽤 의미심장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에너지기구 대표(동시에 이란의 부통령)는 “강대국의 지원 없이 신흥국도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권리를 수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방국가들이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들로서는 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2)라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남미 대부분 국가와 전방위 외교
물론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과 프랑스의 압박에 의해 유엔 안보리가 지난 6월 10일 최종 제재안을 서둘러 비준했기 때문이다. 반대표를 던졌던 브라질과 터키도 어쩔 수 없이 비준에 동의했다. 셀소 아모림 브라질 외무부 장관은 “브라질은 언제나 국제법을 신임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독재 노선에 대한 저항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모든 국가의 민간 핵기술 보유 권리를 재차 주장한 기회가 됐던 이번 사건은 급속도로 성장한 이란과 남미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줬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아홉 차례에 걸쳐 이란을 방문했고, 에콰도르·브라질·볼리비아·니카라과 대통령도 차례로 테헤란을 방문해 모두 국빈 대접을 받았다. 나아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아르헨티나·브라질·쿠바·멕시코·베네수엘라에 이미 설립돼 있는 이란 대사관에 더해, 볼리비아·칠레·콜롬비아·니카라과·우루과이에 대사관을 추가로 개설했다. 특히 볼리비아는 중동 지역에 주재하는 유일한 대사관을 카이로에서 이란으로 이전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이란과 베네수엘라 간의 쌍무무역 규모는 100만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년 만에 50배나 급증했다. 그 사이에 이란은 자전거·트랙터·자동차·시멘트 등의 제조공장을 베네수엘라에 설립했다. 베네수엘라가 노하우와 기술력 부족에 시달릴 때, 이란은 베네수엘라를 산업화의 길로 이끌며 우유 가공과 석유화학산업 등에 주력했다. 2009년에는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양국 간 무역이 33.8% 하락하는 고비를 겪었지만, 같은 해에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공동의 산업은행 창설과 70여 개의 추가적인 공조 협정 체결(총 300개가 됐다)에 합의했다. 나아가 두 국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힘을 합쳐 석유 가격을 상향 조정하는 성과도 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석유 개발에서 얻은 이익으로 자국의 사회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2007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운행되는 테헤란∼카라카스의 직항 항공편이 양국의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상징물이다.
미국의 뒷마당을 점거하다
베네수엘라와의 교역을 시작으로 이란은 본격적으로 남미 대륙에 침투했다. 남미 국가 중 이란의 7번째 교역 상대국인 에콰도르는 2007∼2008년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이어) 3번째 국가로 급부상했다.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는 남미 내 이란의 최대 시장으로 자리잡았다(세계경제 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2009년에도 3번째 국가의 자리를 고수했다). 이란은 수출에만 만족하지 않고, 수력발전과 석유화학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2008년 12월 8일 테헤란을 방문한 에콰도르 대통령은 열정에 넘쳐 25개 이상 부문에서 쌍무무역을 체결하며 양국 간에 더욱 긴밀한 공조 체제를 꾀했다.
중앙아메리카에 대한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발표와 함께 이란은 니카라과에 없는 심해 항구 건설 지원과 수력발전소의 건설 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란은 볼리비아에는 천연가스 개발을 최적화하는 데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볼리비아의 리튬에 대한 사전조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이란과 남미 간 총교역량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 인구는 2억 명에 달하고 경제 규모는 남미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은 이란과의 무역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2009년에는 무역량이 13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2008년에 80% 증가한 뒤 4% 증가한 수치). 이는 브라질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교역량(2009년 361억 달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009년 12월 브라질을 방문해 “양국 기업들이 더욱 분발해”(4) 2014년에 교역량을 1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기로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합의했다.
미국의 노골적 위협 다 함께 일축
미국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염려할 수밖에 없다. 2009년 12월 11일, 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란과 우호관계를 맺으려는 것은 “매우 나쁜 생각”이라며 이란은 “테러리즘을 지원하고 조장하며 전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란의 환심을 사기 바란다면 그로 인해 발생할 결과를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은 두 번 생각해주기를 요청하는 바이다”라고 경고했다. 우방국과의 우호관계 속에서 상호이해적 결과만 고려하길 원하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009년 9월 24일 “우리와 우방국들의 관계에는 한계가 없다”(5)고 일축했다.
하지만 그가 의미하는 ‘우호’는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통해 심오한 본질을 드러낸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2년 차베스 베네수엘라 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2009년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2009년 9월 18일로 계약이 만료되는 만타 미군기지 사용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해, 미국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지난 8월 5일 볼리비아 대통령은 미국이 “테러리즘이나 마약 밀매 같은 핑곗거리를 찾아내 남미에 개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하며 “미국의 핵심 목표는 우리의 천연자원을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6)라고 강조했다. (축출도 서슴지 않으면서) 다국적기업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줄이고 천연자원 분야에 대한 주권을 수호하려는 남미의 좌파 정부들이 자극을 받은 셈이었다. 지난 8월 1일 마이클 물렌 미 합참의장이 시인한 바와 같이, 세계에서 3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다고 확인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 계획(7)을 이란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북미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 입증
이런 상황에서 차베스 대통령과 함께 ‘반제국주의의 검투사’이자 ‘투쟁군 동무’이기를 자처하는 지도자들은 미국의 보복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2009년 6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정책에 대한 논리를 피력했다. “서방국가들이 이란을 고립시키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미국의 뒷마당’ 지원에 힘써왔다.”(8)
미국은 남미 지역을 관할하는 제4함대를 재창설해 대서양 연안에 배치했다. 또한 남미를 비롯해 이란의 국경 지역에는 수많은 미군기지가 설치돼 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베네수엘라는 이란과 군사적 공조 체제를 확장하기로 결심하고, 특히 군인 양성과 군수품 생산에 주력했다. 2009년 4월에 무스타파 모하메드 나자르 이란 국방부 장관은 “상호 방위조약의 틀 안에서 베네수엘라의 군사력 증진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9)고 약속했다.
유엔 경제 제재 돌파구 노릇
‘반제국주의적’ 연대는 군사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미국의 ‘술책’에 대한 반발심으로도 동맹국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형성된다. 그 결과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이란 대선에서도 이같은 연대감이 생겨났다. 브라질과 니카라과,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언제나 투표 투명성과 관련해 국제 선거 감시단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가 미국이 강도 높게 비판한 2009년 6월 이란의 부정선거(10) 당시 아마디네자드를 향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이란 야당이 항의함에도 차베스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활동을 고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룰라 대통령은 자국에서의 ‘반제국주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자신은 부시 대통령뿐 아니라 차베스 대통령과도 협조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미국이 브라질이 차지하던 최대 교역 상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넘겨버림으로써 브라질도 더 이상 중립 노선을 고수할 수 없었다. 견고한 경제성장으로 강력해진 브라질은 오늘날 국가들 간의 협력관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꾸준히 모색하며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미국과의 관계에만 중점을 두는 브라질의 전통적 외교 논리에서 탈피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 남반구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브라질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여기에 이란 핵에너지에 대한 3자 협정의 동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 선출된 지우마 호세피 브라질 대통령도 룰라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했다.
정치적 갈등 넘어서는 실용주의
이런 상황에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베네수엘라를 주축으로 창설된 ‘미주 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이 이란을 옵서버로 참여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ALBA의 활동 영역은 외교와 경제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ALBA는 출범될 때부터 급진적인 사회 해방을 위한 정치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 분야와 관련해 이란과 남미의 파트너십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남미 우파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남미 좌파 정권이 항상 견해가 일치하지는 못하는 나라와 우호적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인가? 여기에는 외교적 실용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을 몰살시킨 아랍 국가들과 소비에트연방 간의 관계도 그러하고, 중국의 마오와 칠레의 피노체트 간의 연맹,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속적인 동맹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총리인 파머스턴 경이 거의 한 세기 반 이전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에겐 친구도, 적도 없다. 이익만 추구할 뿐이다.”
“국제 관계 구조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이란의 핵에너지와 관련해 지난 5월 17일에 체결된 브라질·터키·이란의 3자 협정(1)에 대해 터키의 일간지 <라디칼>의 논설위원이 흥분된 어조로 평했다. 협약 목표는 유엔의 이란 제재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핵연료 교환 합의를 제안하자는 것이었다. 합의는 꽤 의미심장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이란 원자력에너지기구 대표(동시에 이란의 부통령)는 “강대국의 지원 없이 신흥국도 국제 무대에서 자국의 권리를 수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서방국가들이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들로서는 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2)라고 한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남미 대부분 국가와 전방위 외교
물론 제안은 실현되지 않았다. 미국과 프랑스의 압박에 의해 유엔 안보리가 지난 6월 10일 최종 제재안을 서둘러 비준했기 때문이다. 반대표를 던졌던 브라질과 터키도 어쩔 수 없이 비준에 동의했다. 셀소 아모림 브라질 외무부 장관은 “브라질은 언제나 국제법을 신임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의 독재 노선에 대한 저항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모든 국가의 민간 핵기술 보유 권리를 재차 주장한 기회가 됐던 이번 사건은 급속도로 성장한 이란과 남미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줬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아홉 차례에 걸쳐 이란을 방문했고, 에콰도르·브라질·볼리비아·니카라과 대통령도 차례로 테헤란을 방문해 모두 국빈 대접을 받았다. 나아가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아르헨티나·브라질·쿠바·멕시코·베네수엘라에 이미 설립돼 있는 이란 대사관에 더해, 볼리비아·칠레·콜롬비아·니카라과·우루과이에 대사관을 추가로 개설했다. 특히 볼리비아는 중동 지역에 주재하는 유일한 대사관을 카이로에서 이란으로 이전했다.
활발한 외교 활동은 활발한 자본이동을 수반한다. 주간지 <라틴 비즈니스 크로니클>에 따르면, 2008년 이란과 남미 간의 교역 규모가 29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3배가 증가한 수치다.(3) 이런 시장의 막대한 유동성은 2005년 8월 3일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현상이다. 결국 <라디칼>이 언급했던 ‘지각변동’은 경제적 변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다.
2004년까지만 해도 이란과 베네수엘라 간의 쌍무무역 규모는 100만 달러를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2년 만에 50배나 급증했다. 그 사이에 이란은 자전거·트랙터·자동차·시멘트 등의 제조공장을 베네수엘라에 설립했다. 베네수엘라가 노하우와 기술력 부족에 시달릴 때, 이란은 베네수엘라를 산업화의 길로 이끌며 우유 가공과 석유화학산업 등에 주력했다. 2009년에는 세계경제 위기의 여파로 양국 간 무역이 33.8% 하락하는 고비를 겪었지만, 같은 해에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공동의 산업은행 창설과 70여 개의 추가적인 공조 협정 체결(총 300개가 됐다)에 합의했다. 나아가 두 국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힘을 합쳐 석유 가격을 상향 조정하는 성과도 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는 석유 개발에서 얻은 이익으로 자국의 사회 프로그램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2007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운행되는 테헤란∼카라카스의 직항 항공편이 양국의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잘 나타내주는 상징물이다.
미국의 뒷마당을 점거하다
베네수엘라와의 교역을 시작으로 이란은 본격적으로 남미 대륙에 침투했다. 남미 국가 중 이란의 7번째 교역 상대국인 에콰도르는 2007∼2008년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이어) 3번째 국가로 급부상했다.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는 남미 내 이란의 최대 시장으로 자리잡았다(세계경제 위기 여파에도 불구하고 2009년에도 3번째 국가의 자리를 고수했다). 이란은 수출에만 만족하지 않고, 수력발전과 석유화학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2008년 12월 8일 테헤란을 방문한 에콰도르 대통령은 열정에 넘쳐 25개 이상 부문에서 쌍무무역을 체결하며 양국 간에 더욱 긴밀한 공조 체제를 꾀했다.
중앙아메리카에 대한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발표와 함께 이란은 니카라과에 없는 심해 항구 건설 지원과 수력발전소의 건설 자금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란은 볼리비아에는 천연가스 개발을 최적화하는 데 지원해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결과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볼리비아의 리튬에 대한 사전조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이 이란과 남미 간 총교역량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브라질- 인구는 2억 명에 달하고 경제 규모는 남미 지역의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은 이란과의 무역을 지속적으로 성장시켜 2009년에는 무역량이 13억 달러 규모에 달했다(2008년에 80% 증가한 뒤 4% 증가한 수치). 이는 브라질의 최대 무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교역량(2009년 361억 달러)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하지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2009년 12월 브라질을 방문해 “양국 기업들이 더욱 분발해”(4) 2014년에 교역량을 1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기로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과 합의했다.
미국의 노골적 위협 다 함께 일축
하지만 그가 의미하는 ‘우호’는 ‘적의 적은 나의 아군이다’라는 오래된 격언을 통해 심오한 본질을 드러낸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2년 차베스 베네수엘라 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다. 2009년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은 2009년 9월 18일로 계약이 만료되는 만타 미군기지 사용계약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해, 미국으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지난 8월 5일 볼리비아 대통령은 미국이 “테러리즘이나 마약 밀매 같은 핑곗거리를 찾아내 남미에 개입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고 비난하며 “미국의 핵심 목표는 우리의 천연자원을 손에 넣으려는 것이다”(6)라고 강조했다. (축출도 서슴지 않으면서) 다국적기업들의 경제적 영향력을 줄이고 천연자원 분야에 대한 주권을 수호하려는 남미의 좌파 정부들이 자극을 받은 셈이었다. 지난 8월 1일 마이클 물렌 미 합참의장이 시인한 바와 같이, 세계에서 3번째로 석유 매장량이 많다고 확인된 이란에 대한 미국의 공격 계획(7)을 이란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북미에 대항할 수 있는 능력 입증
이런 상황에서 차베스 대통령과 함께 ‘반제국주의의 검투사’이자 ‘투쟁군 동무’이기를 자처하는 지도자들은 미국의 보복 위협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2009년 6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정책에 대한 논리를 피력했다. “서방국가들이 이란을 고립시키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미국의 뒷마당’ 지원에 힘써왔다.”(8)
미국은 남미 지역을 관할하는 제4함대를 재창설해 대서양 연안에 배치했다. 또한 남미를 비롯해 이란의 국경 지역에는 수많은 미군기지가 설치돼 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베네수엘라는 이란과 군사적 공조 체제를 확장하기로 결심하고, 특히 군인 양성과 군수품 생산에 주력했다. 2009년 4월에 무스타파 모하메드 나자르 이란 국방부 장관은 “상호 방위조약의 틀 안에서 베네수엘라의 군사력 증진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9)고 약속했다.
유엔 경제 제재 돌파구 노릇
‘반제국주의적’ 연대는 군사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미국의 ‘술책’에 대한 반발심으로도 동맹국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형성된다. 그 결과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이란 대선에서도 이같은 연대감이 생겨났다. 브라질과 니카라과, 에콰도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언제나 투표 투명성과 관련해 국제 선거 감시단의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가 미국이 강도 높게 비판한 2009년 6월 이란의 부정선거(10) 당시 아마디네자드를 향한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일 것이다. 이란 야당이 항의함에도 차베스 대통령은 미 중앙정보국(CIA)의 활동을 고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룰라 대통령은 자국에서의 ‘반제국주의’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자신은 부시 대통령뿐 아니라 차베스 대통령과도 협조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미국이 브라질이 차지하던 최대 교역 상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넘겨버림으로써 브라질도 더 이상 중립 노선을 고수할 수 없었다. 견고한 경제성장으로 강력해진 브라질은 오늘날 국가들 간의 협력관계에서 영향력 확대를 꾸준히 모색하며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국, 미국과의 관계에만 중점을 두는 브라질의 전통적 외교 논리에서 탈피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에 진출하기 위해 남반구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를 위해 브라질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다는 능력을 증명해 보여야 했다. 여기에 이란 핵에너지에 대한 3자 협정의 동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새로 선출된 지우마 호세피 브라질 대통령도 룰라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했다.
정치적 갈등 넘어서는 실용주의
하지만 이란의 대통령 후보였던 미르 호세인 무사비를 비롯한 몇몇 이들은 “이란 정부가 주변국들에 투자하는 대신, 남미에 자금을 쏟아붓는 데 시간을 낭비했다”(11)며 빈정거렸다. 그들은 남미 투자를 통해 이란의 경제가 성장하고, 특히 유엔의 경제 제재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란이 항공산업, 석유 및 가스개발, 자동차 생산 등의 산업 분야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 듯하다. 자동차 생산 분야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차베스라는 최고의 광고대행업자를 얻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생산·판매되는 이란산 자동차 센타우로에 대해 최근 차베스 대통령은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고의 품질을 갖춘 저렴한 자동차입니다. (중략) 판매 가격은 7만6천 볼리바르(베네수엘라 화폐 단위, 약 1만2900유로) 정도입니다. 동급 사양의 모델로 도요타의 코롤라를 꼽을 수 있는데, 코롤라 가격은 16만2천 볼리바르(약 2만7700유로) 이상입니다. 그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품질은 비슷한데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 납니다!”(12) ‘시장 다양화’의 필요성을 느끼던 이란 석유화학회사의 대표인 레자 함제흘루는 지난 10월 18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라는 새로운 잠재고객을 찾았다는 사실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13)
이런 상황에서 볼리비아와 에콰도르, 베네수엘라를 주축으로 창설된 ‘미주 지역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이 이란을 옵서버로 참여시킨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로 볼 수 있다. ALBA의 활동 영역은 외교와 경제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ALBA는 출범될 때부터 급진적인 사회 해방을 위한 정치 계획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이 분야와 관련해 이란과 남미의 파트너십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는 남미 우파의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남미 좌파 정권이 항상 견해가 일치하지는 못하는 나라와 우호적 관계를 맺으려는 것이 그렇게까지 놀라운 일인가? 여기에는 외교적 실용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공산주의자들을 몰살시킨 아랍 국가들과 소비에트연방 간의 관계도 그러하고, 중국의 마오와 칠레의 피노체트 간의 연맹,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속적인 동맹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총리인 파머스턴 경이 거의 한 세기 반 이전에 이런 명언을 남겼다. “나에겐 친구도, 적도 없다. 이익만 추구할 뿐이다.”
글•니콜라스 코즐로프 Nikolas Kozloff
저널리스트. 저서로 <혁명! 남아메리카와 신좌파의 성장>(Palgrave-Macmillan·Houndmills·2008)이 있다.
번역•배영미 younmib@gmail.comde.com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알랭 그레슈, ‘이란, 포스트 옥시덴탈의 ‘국제사회’를 향하고 있는가?’, <Nouvelles d’Orient>, 2010년 5월 21일, http://blog.mondediplo.net에 협약 내용이 자세히 실려 있다.
(2) ‘브라질과 터키가 유엔 안보리의 이란 제재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다’, <AFP>, 2010 5월 20일.
(3) ‘Latin America: Iran trade triples’, <Latin Business Chronicle>, 2009년 12월 2일,
www.latinbusinesschronicle.com.
(4) ‘Iran-Brazil trade will amount to dlrs 10bn in five years’, <Iran trade news>, 테헤란, 2009년 12월 12일.
(5) 파비올라 모우라 ‘Iran’s relations with Brazil have ‘no limits’, Ahmadinejad says’, Bloomberg, 2009년 9월 24일, www.bloomberg.com.
(6) ‘Evo denuncia a Washington por los ataques a Sudamérica’, <AFP>, 2010년 8월 6일.
(7) ‘US Military Chief Admits to Iran Attack Plan’, <AFP>, 2010년 8월 1일.
(8) ‘Israel and Iran compete to expand influence in Latin America’, <The Sunday Times>, 런던, 2009년 11월 12일.
(9) 다니엘 커츨레벤, ‘Alliance Problematic for the U.S, but not threatening’, <Inter Press Services>, 2009년 8월 10일.
(10) 아마드 살라마티안, ‘종교지도자의 탐욕이 빚어낸 이란의 비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 2009년 7월호.
(11) ‘Ahmadinejad foreign policy ‘rattled’ Iran foes’, <Press TV>, 2009년 5월 25일, www.presstv.ir.
(12) ‘Chavez: Los coches iranies son mejores que los Toyota’, <El Mundo>, 마드리드, 2010년 6월 24일.
(13) ‘Iran targets South America for petchem exports’, <Tehran Times>, 테헤란, 2010년 10월 18일.
[박스기사] 자유의 장애물
“1973년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칠레에서 활동하던 저도 체포됐지만 여러 인권단체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중략) 여러분은 제가 독재자를 찬양하지도, 독재자와 어떤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도 않을 것이란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브라질 대선 당시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 대선 후보가 공약 발표 도중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을 빗대어 한 발언이다.
결선투표를 치르기 며칠 전,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노동당 후보에게 뒤처져 있던 세하 후보의 입지는 불안했다. 노동당(PT)의 지우마 호세피 후보는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의 지지(80%를 웃도는 지지도)를 받아 유리한 입장이었고, 브라질 국민도 룰라 대통령의 정책이 유지되기를 희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과의 우호관계에 대한 비판은 세하 후보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에 탁월한 주제였다. 야당은 이란과의 관계가 “룰라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판단했다.
세하 후보는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이란과의 조약 체결은 뮌헨에서 히틀러를 신뢰했던 것과 같다”고 주장하며, 집중적으로 룰라 대통령과 폭력적이고 무자비한 체제(1)의 유사성을 공격하고는 자신은 “최대 희생자인 여성들의 편에 서겠다”고 주장했다. 8월에는 노동당의 반대파들이 ‘자, 이제 룰라 대통령의 선택은?’이라는 제목의 탄원서를 통해 간통죄 혐의로 돌팔매형을 선고받은 이란 여성 사키네 아시티아니의 운명에 대해 룰라 대통령이 규탄해줄 것을 촉구하며 10만 명이 참여한 서명을 전달했다.
비록 낙태에는 브라질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부정적이지만(세하 후보도 이 주제에 대해 선거 캠페인을 벌였다), 여성의 권리 분야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된 호세피는 당선 연설에서 “여성에게 정의를 되찾아주겠다. 그 결과 전대미문의 이 사건(여성 대통령이 당선된 사건)이 이제 전혀 놀랄 만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 되도록 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브라질은 이란과의 관계를 지속해나가기를 희망한다”(2)고 밝혔다.
1년 전에도 비슷한 장면이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연출된 적이 있다. 2009년 11월 25일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카라카스를 방문했을 때, 야당 연합인 ‘민주통일연합’(MUD) 대표들이 거리시위를 벌였다. “우리는 모든 인류의 존엄성을 요구한다. 이란과 베네수엘라의 여성들은 모든 인간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한다”며 “우리는 이곳에 민주주의와 남녀 간의 동등한 권리가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이후 베네수엘라 헌법은 처음으로 가사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주부에 대한 임금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직장에서 남녀 평등을 보장하며, 성차별과 성희롱을 금지한다. 뿐만 아니라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 시술을 허용하는 법안은 현재 논의 중이다.
반면, 카르카스와 브라질리아의 시위자들은 이란이 여전히 일부다처제를 인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란 경찰은 공공장소에서 애인과 길을 걷는 젊은 여성들을 체포한다. 200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란 시민 수백 명이 거리에 나왔을 때도 정복 경찰과 사복 경찰들이 곤봉을 휘두르며 시민들을 공격한 사건이 발생했다.
동성애자의 권리 문제에도 이란과 남미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2008년에는 우루과이에 이어 에콰도르가 동성 간의 ‘시민 결합’(Civil Union)을 허용했고, 지난 7월에는 아르헨티나가 남미 국가로서는 최초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브라질의 일부 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동성혼을 인정해왔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란에는 동성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일축하며 이런 취향은 “인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3)이라는 점에서 자국을 자랑스러워했다.
<각주>
(1) 장피에르 랑글리에, ‘브라질: 룰라 대통령의 외교정책이 선거 판도를 뒤집다’, <르몽드>, 2010년 8월 18일.
(2) <이란 이슬람 공화국 방송>, 2010년 11월 5일.
(3) ‘Lula recibe a Ahmadinejad en Brasil’, <La Voz>, 코르도바, 200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