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서치 회사, 노동권 사각지대
임시직 '리서처' 착취구조… 미래가 불확실한 '하루살이'
'프랑스기업운동(Medef)'단체의 의장인 로랑스 파리소 부인은 1990년부터 자신이 경영하고 있는 '프랑스여론기관(IFOP)'과 리서치 회사의 인사관리 방식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 직업관계에 더 많은 유연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고용 계약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
리서치 회사들이 거의 동일한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중 한 가지 사례만 들어본다. 가칭 '경향과 여론'사는 전화나 인터뷰를 통하여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중견 리서치 회사다. 이 회사 역시 대부분의 경쟁사들과 마찬가지로 시장조사를 주로 한다. 상근 직원은 20명이지만 어떤 달에는 200명 이상의 급여명세서가 발급되기도 한다. 여러 리서치 회사들과 번갈아 초단기 고용계약을 맺은 프리랜서들에게 급여명세서가 발급되기 때문이다.
리서치 회사들의 고용 유연성은 최근에 이루어진 노동법 개혁 때문이 아니라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시작되었다. 당시 몇몇 리서치 회사들은 안정된 지위를 누리는 '리서치 팀'을 운용했다. 그런데 '리서치 팀'의 출장과 유지비가 리서치 회사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2).
결국 인건비와 경비 절감을 위해 리서치 회사들은 단기 업무를 위한 리서처 네트워크를 개발했다. 노동법의 보호에서 교묘히 소외된 이 리서처들은 봉급생활자들이 아니라 단지 일한 대가를 지불받을 뿐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고용주들은 사회 분담금을 면제받는다. 리서처들은 사회보장보험, 실업보험, 퇴직보험과 같은 보험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예컨대 리서처 제르멘느는 1966년에 이 직업을 시작했지만, 처음 10년 동안 사회분담금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연금을 적게 받고 있다. 현재 72세임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하여 여러 리서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일회성 일거리 목매는 연속단기계약
그 후 리서처들은 봉급생활자로 통합되었지만 정규직 계약(CDI)에 비하면 매우 열악한 상태에 있다. 리서치 회사들은 노동법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즉 노동법은 고용계약을 지속하면서도 그 계약을 정규직 계약으로 간주하지 않는 연속단기계약(CDD)을 허용하고 있다. 이 점을 '경향과 여론'사는 입사 지원자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즉 입사 지원자들이 채용된다 해도 안정적으로 일할 순 없는 것이다.
고용주들은 노동력의 질과 생산성, 그리고 주문량에 따라 리서처들을 마음대로 채용할 수 있다. 이들 봉급 생활자들은 자신들이 조절하고자 하는 여가 시간과 급여를 고려해 자신들에게 제공되는 업무를 자유롭게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다. 노동경제학 원리의 지지자들은 일자리 공급과 수요의 문제를 개인들에게 맡긴다는 이 같은 이론에 감탄할 만 했다. 그러나 고용주들에게는 달콤한 이야기지만, 수급 선택의 '자유'의 대가를 비싸게 치러야 하는 리서처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리서처들은 불확실성속에서 살아야 하며, 항상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파트리스 씨(50세)는 일이 있는 달의 첫 15일 중 10일간의 풀타임 일거리를 얻게 되었을 때 '편안해지는 느낌'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너는 이제 먹을 수 있으니 궁지에서 벗어 난거야. 그렇다고 해서 일거리를 찾는 것을 멈추면 안 돼"라고 늘 되뇌곤 한다. 디디에 씨(39)는 "일거리를 항상 찾아야 하고, 경제적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전력투구해야 하기"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이들 리서처들은 "우울증에 빠지고,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린다." 게다가 한 달간 풀타임으로 일한다 해도 다음 달을 전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일거리가 있는 한 리서처들은 "결핍 장애 환자가 될 만큼", 심지어 "죽도록" 열심히 일한다.
'살기 위해 시키는 대로 죽도록 일해'
리서처들은 매 순간 고용주들에게 얽매이게 된다. 고용주들이 필요할 때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만약 고용주들이 부를 때 거절하면, 그 후에는 일거리가 없게 된다.
그 때문에 리서처들은 일하지 않는 시간에도 속박을 느끼게 된다. 수요일이나 토요일에 아이들이나 친구와 함께 하는 그 어떤 일도 계획할 수 없다. 토요일에도 부름을 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다보니, 결국 아무 것도 계획하지 못한다.
생활을 꾸려가기 위해 여러 고용주들과 일해야 하는 리서처들은 당연히 그들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자신들에게 부과된 조건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3). 리서치 회사 간부 직원 오드 씨는 "훌륭한 리서처는 설문지들을 올바르게 채우고, 속여먹지 않으며, 브리핑에 참석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예고해 주고, 정시에 도착하고, 자발적이고 역동적이며, 가격이나 설문지 양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리서처들은 생존하기 위해서도 고분고분해진다. 임무가 끝날 때마다 리서처들은 일자리가 항상 모자라는 인력 시장에 다시 내던져진다. 리서치 회사들은 역설적으로 리서처들의 과잉 때문에 유지되는 일시적 실업을 바탕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시 동원할 수 있는 이들 '예비군' 덕분에 리서치 회사들은 고객들의 납기와 수요에 맞출 수 있는 것이다. 리서처들은 필연적으로 활동 감소기간이나 비활동기간을 맞게 되는데, 보험 분담금을 충분히 납부한 리서처들만 실업보험에 의해 보상받는다. 결과적으로 이런 모델은 분담금을 정기적으로 낼 수 있는 고용주들과 봉급자들에게만 유리한 것이다.
간부들 맘대로…'파리 목숨'
실업보험이라는 버팀목 역시 간부들이 리서처들의 일거리를 박탈하는 '논거'로 이용되고 있다. 간부들은 "리서처들이 실업보험의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설문조사를 취소하거나 몇몇 리서처들을 일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리서처들을 관리하는 간부들은 감정이라곤 없다. 이런 현상은 그들의 고용주가 간부들에게 재량권을 양도했기 때문이다. 노동법이 부여한 자유뿐만 아니라, 역시 끊임없이 남용해온 노동법이 허락한 채용의 자유까지 양도했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은 '인터뷰, 회계 혹은 같은 유형의 다른 업무4)'에 대해서만 연속단기계약을 허용하고 있는 반면, 리서치 회사들은 모든 일에 수없이 많은 임시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 다른 리서치 회사처럼 '경향과 여론'사에서도 몇몇 임시 직원들은 풀타임으로 일하거나 여러 해 동안 일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볼 때 상근 직원임에도 불구하고 임시직 신분이다. 또 다른 위반사항을 보자. 노동법에 따르면 단기계약이라 할지라도 업무시작 후 48시간 내에 서명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 서명은 대체로 업무가 종료된 후에 이루어진다. 당연히 계약서가 존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업무의 본질도, 업무기간도 결코 미리 결정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는 업무의 연속 여부가 매일 저녁 결정된다. 리서치 회사들에서는 일용직 노동이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고 있다.
'비합리적 관행' 덕분 업계 생존
이런 식의 관행은 또한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에 통용되고 있다. 첫째 이는 비교적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둘째 채용과 노동 배분을 담당하는 간부들은 대부분 뛰어난 임시직 직원들이었다. 일반적으로 그들은 인적관리나 노동법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단체협약 조항을 모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단지 자신들이 아는 유일한 모델을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런 노동력 관리 방식은 일부 봉급자들이 동경하고 기대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임시직을 찾는 사람들과 대학생들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가변성'은 '시간 사용의 유연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직업적 프리랜서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중 일부는 수십 년간 일하고 있으며 생산의 중요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불확실성과 종속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상당수는 다른 봉급생활자들보다 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들의 자유가 환상이고, 그런 자유가 흔히 그 자체로 착취 조건을 띠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자유를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할 재판소에 제소되는 소송 건수는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각 고용계약 사이에 실업보험 수당이 지불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경우의 법 위반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불법관행을 고발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소송에 의해 정규직 고용계약을 하게 되거나, 때로는 상당한 보상금을 받게 된다. 만약 이런 소송이 증가하고, 임시직이었거나 현재 임시직인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시작한다면, 리서치 회사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할 뿐만 아니라, 수익성 등 존립 기반 자체가 위협 받을 것이다.
번역 | 고광식 kokos27@ilemonde.com*
* 파리1대학 교수·유럽사회연구소 연구위원
1) "인생, 건강, 사랑이 불확실한데, 어떻게 직업이 이 법칙을 피할 수 있겠는가?"라고 그는 2005년 9월 '프랑스기업운동(Medef)' 단체 연수중에 질문을 던졌다.
2) 자크 앙투완, <리서치의 역사>, 오딜 야곱, 파리, 2005, p. 52 참조.
3) 리서처들은 흔히 설문지 양에 따라 돈을 받는다.
4) 기술연구, 엔지니어-자문업무 사무국과 자문단체의 국가 단체협약(CCN), 1991년 10월 16일의 협정, 조항 44.
5)'리서치 회사 임시직 직원들의 '자유'', <엥테로가시옹>, 4호, 2007년 6월,
http://www.revue-interrogations.org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