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싸움은 길어지나

[Corée 특집] 불안정 노동의 시대

2010-12-03     은수미/사회학 박사

지난 11월 1일 기륭전자 노사가 조합원 10명의 복직에 합의했다. 2005년 7월 파견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노조 결성과 뒤이은 집단해고 이후 1895일(5년 4개월) 만의 결과다. 철야농성, 단식농성, 집회 및 시위, 해외 원정 투쟁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 할 정도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저항 방식은 다양하고 격렬했으며, 저항 기간 역시 유난히 길었다.

이것은 기륭전자 노동쟁의만의 예외적인 현상일까? 아니다. 최근 사회적 쟁점으로 부상한 현대자동차 사내하도급 노동조합은 2004년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 이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집회 및 시위, 단체교섭 등을 전개했고 올해 다시 쟁의에 돌입했다. 기아차, 하이닉스-매그나칩, 군산KM&I, 현대하이스코, GM대우, 동희오토, 뉴코아, 이랜드, 코스콤, KTX 여승무원, 르네상스호텔 룸메이드 등 2004년 이후 현재까지 규모나 격렬함으로 기억에 남는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의 저항만 해도 10여 개다. 기간 역시 최소한 1∼2개월이고, 1년 이상 파업이나 집회 및 시위가 이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이후 노동쟁의가 지속적으로 감소한 것을 고려한다면 특이한 현상이다.

외국은 강한 규제, 국내선 공기업 앞장

사내하도급 노동쟁의는 왜 끊임없이 이어지고, 한번 파업이 일어나면 장기간 계속되는 것일까?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나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받아도 해결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글은 2000년대 이후 노동쟁의의 큰 특징 중 하나인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파업 및 시위에 초점을 맞춰 장기간 격렬한 저항이 발생하는 원인을 분석한다. 또한 노동부의 행정지도나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살펴본다.

사내하청·용역·위탁·외주화 등 다양하게 불리는 사내하도급의 역사는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한다. 조선업에서는 이미 1950년대에 시작됐으며, 자동차·전기전자·기계·철강 등에서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지배적 관행으로 정착됐다.

일부 학자들은 사내하도급이 ‘지주-마름-소작인’ 관계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전근대의 근대적 재현이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박제성은 “사내하도급은 전통적인 노동착취의 한 형태이다. 지주가 소작인을 착취할 때 중간에 마름을 세우는 것과 같다. 이익과 권한은 향유하면서 책임은 마름에게 떠넘기는 것이다”라고 한다.(1) 이 유형은 19세기 내내 프랑스나 독일(2) 등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성행했다. 그러나 현재 사내하도급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1848년 이 방식의 노동착취를 ‘마름짓’(Marchandage)이라고 해서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고, 다른 나라에서도 다양한 규제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급속한 자본주의적 성장에 따라 유연화와 경쟁력이 제1의 가치가 된 한국에서는 사내하도급 활용은 기업의 자유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계기로 제조업뿐만 아니라 전 산업으로 확산됐고, 민간 기업보다 공기업에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에서 더 많이 이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눈먼 사람들의 나라에서는 눈먼 사람이 정상이듯이, 사내하도급의 활용이 많은 나라에서는 그것이 정상이다. 사업주로서는 “모두가 사용하는데 왜 나만 문제인가”, “인건비를 절감해 흑자를 내면 됐지 나머지는 경영권 아닌가”라고 항변할 수 있다. 이처럼 한번 굳어진 관행은 고치기 어렵다. 불법파견 판결이나 사회적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갈등만 커질 뿐, 사용 관행은 계속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불법 판결 나면 오히려 쟁의 장기화

사내하도급 노동쟁의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2005년을 전후한 시기와 2010년, 이렇게 두 번이다. 두 번 모두 불법파견 판정이 직접적 계기인데, 첫 번째는 노동부의 불법파견 판정이고 두 번째는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이다.

노동부는 2003년 용인기업, 2004년 현대자동차 울산·아산·전주 공장, 2005년 기륭전자, 기아차, 하이닉스, 매그나칩, GM대우 창원 공장의 사내하도급 근로에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다. 이에 노동자들은 ‘정부 판단이니 곧 정규직이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으로 노동조합 가입을 서두르거나 미조직 사업장에 노동조합을 만드는 한편,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위한 단체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섭은 종종 결렬되고 곧바로 노동쟁의로 이어졌다. 결국 타타대우상용차 등 일부 기업에서 사내하도급을 정규직으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기업에서 그대로 사용했다.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이나 업체 변경시 고용승계는 가능하지만 정규직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기업의 강경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쟁의는 위축되고, 쟁의가 발생하더라도 정규직화 대신 임금개선이나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뉴코아·이랜드 장기파업이나 르네상스호텔 파업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용승계나 외주화 반대도 쉽지 않아 2007년을 고비로 대규모 노동쟁의는 사라졌다.

두 번째 파고는 2008년부터 이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정에서 시작됐다. 대법원은 2008년 7월 현대미포조선과 코스콤 일부 사건, 9월 예스코에 이어 2009년 2월 마사회 사내하도급을 불법파견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지난 2월 현대중공업 사건에 대해서는 원청이 노사관계의 실질적 사용자라고 판결함으로써 사내하도급 노사관계의 전기를 마련했다. 지난 7월 대법원과 11월 서울고법의 현대자동차 사건에 대한 불법파견 판결은 이런 일련의 판례의 연속이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쟁의의 직접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그런데 불법파견 판정이 노동쟁의의 계기가 되는 것은 사내하도급 문제 해결의 어려움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단체교섭이나 노동쟁의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노사에 의해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사내하도급 노동쟁의는 기존 법 테두리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에 노사 간에 자율적 해결이 어려우며, 법원에 갈 경우 몇 년씩 걸린다.

넓은 법적 틈새로 쏙쏙 빠져나기기 때문

왜냐하면 현행 노동법은 사용주가 곧 고용주인 전형적인 노사관계, 그런 점에서 사용주와 노동자 간의 ‘2자 관계’를 규율한다. 반면 사내하도급은 ‘사용주(원청)-고용주(하도급)-노동자’의 3자 관계이기 때문에 현행법을 적용하기 어렵다.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도급 노동자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 책임은 원청과 하도급 중 누구에게 있는지, 하도급 노동자가 원청 사업장에서 노동쟁의를 하는 것이 적법한지 등이 항상 문제가 된다. 결국 사내하도급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법이 없고, 파견법을 부분적으로 활용해 규제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법적 틈새가 상당히 넓다. 이것이 사내하도급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자 노동쟁의가 길어지는 원인이다.

법뿐만 아니라 노사관계 등 제도적 빈틈이 또 다른 요인이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2자 관계 중에서도 기업 내부의 관계만을 다루는 기업별 노사관계로 그 범위가 매우 좁은 반면, 사내하도급은 3자 관계일 뿐만 아니라 기업을 넘어서는 노사관계 유형이라는 점에서 불일치가 존재한다.

원청과 하청, 교섭 상대는 누구?

2008년 현재 300명 이상 사업장 중 사내하도급을 활용하는 사업장은 54.6%이며, 해당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28%가 사내하도급이다. 사내하도급 노동자의 소속도 다양해 평균 9개 하도급 업체 소속 근로자가 하나의 원청업체에서 일한다. 그러다 보니 하도급업체 하나에서만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으로는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원청 업체는 노동조합이 결성된 하도급 업체와 재계약하지 않는 방식으로 노사관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하나의 원청에서 일하는 모든 하도급업체 노동자를 조직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조직화가 어렵고, 혹 하도급업체 전체 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더라도 단체교섭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노동조합은 하도급업체 전체의 집단교섭을 요구하는 반면, 하도급업체는 개별 교섭을 하겠다면서 집단 교섭을 거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임금 및 근로조건은 원청과 하도급 간의 계약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하도급업체의 결정권은 매우 적다. 따라서 모든 사내하도급 노동조합은 필연적으로 원청과의 교섭을 요구하는데, 이는 현행 법률에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까지 현대자동차 사용자 쪽이 하도급 노동자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고, 하도급 노동자를 지지하는 정규직 노동조합만을 대화 상대로 삼겠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하도급업체 노동조합의 원청 사업장에서의 쟁의 행위는 불법이라는 해석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다 보니 교섭 대신 불법 시비가 불거지고, 사업주의 수억원대에 이르는 손해배상 요구는 당연한 절차라서 감정적 대립이 커지고, 노사 간 자율적 교섭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법으로도 노사관계로도 규율할 수 없다 보니 해결 방법이 적어 한번 쟁의가 발생하면 길어지는 것이다.

머잖아 사용자에게 부메랑 될 수도

외국에도 사내하도급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주요 산업에서 지배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보기 어렵다. 얼마 전 문제가 된 동희오토 사업장에서 자동차를 실제 생산하는 사람이 100% 사내하도급인 것처럼, 한국에서 사내하도급은 핵심 경쟁력이다.

원청은 다른 사람이 고용한 노동자를 자신의 사업장에서 일하게 하는 것을 통해 비용은 절감하고 이익은 최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원청이 비용을 더 줄이고 싶으면 하도급업체에 주는 도급 단가를 조정하거나 업체를 바꾸면 된다. 단가 인하 압력을 받은 하도급업체는 임금을 낮추거나 일부 노동자를 해고해 노동강도를 강화한다. 또한 바뀐 하도급업체는 기존 업체의 노동자를 새로 채용해 인건비를 줄인다.

원청의 입장에서 사내하도급 근로는 원청이 져야 할 부담을 ‘하도급 업체→하도급 업체 노동자’로 전가하는 자동장치다. 반면, 노동자의 입장에서 사내하도급은 고용불안과 임금저하가 수반되는 덫이다. 그래도 일자리가 없어 대기업의 하도급업체에 입사하겠다는 면접 서류가 책상 위에 그득하다니, 기업에 사내하도급이 요술램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장에 이익이 된다 하여 중·장기적으로도 이익일까? 향후에도 경쟁력일 수 있을까?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노동쟁의에 따른 비용이나 국제사회의 비난 등을 고려한다면 기업에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다. 또한 법원이 사내하도급의 무분별한 사용에 부정적이며, 향후 사내하도급을 규율하는 일반 입법이 마련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내하도급을 사용할 때 고용성과가 떨어지고 일자리 질도 나빠진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눈을 뜨고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해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다.

글•은수미
노동운동을 하다 사회학 박사를 받고, 지금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며, 노사관계·노동정치·사회운동 등을 연구하고 있다.

<각주>
(1) 박제성, ‘사내하도급과 노동법: 사업이전 및 위법한 사내하도급의 사법적 효과에 관하여’, 2010년 상반기 민변노동위원회 워크숍 발표문.
(2) 김기선, ‘간접적 고용형태에 있어 제3자의 노동법상의 책임’, <노동법연구>, 제24호, 2008년 상반기, 55쪽 이하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