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공식 노동자’여 단결하라

[Corée 특집] 불안정 노동의 시대

2010-12-03     최용찬/노동운동가

청년유니온 조합원 덕진(18)씨는 10대 남성들이 주로 ‘알바’를 하는 택배회사 물류창고에서 일하곤 했다. 같이 일한 100여 명 중 절반 가까이가 고등학생이었다. 물론 근로계약서 따위를 쓸 리 없다. 임금은 상대적으로 ‘후한’ 편이다. 힘이 많이 드는 일이라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과 달리 최저임금인 시간당 4110원보다 많은 4300원을 받았다. 성인이 받는 시간당 5천 원과 비교해도 그리 적지 않았다. 물론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무거운 짐을 옮기다 보면 “일당보다 파스값이 더 나오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저녁식사도 주고 야식으로 김밥도 챙겨줘 다른 회사보다는 나았다. 덤으로, “야, 이 ××야” 같은 관리자들의 욕도 많이 먹었다.

‘비정규’도 못 되는 ‘비공식’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필리핀에는 새로운 운송수단이 생겼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해본 사람들은 ‘툭툭’(타이), ‘릭샤’(인도) 또는 ‘트라이시클’(필리핀)이라고 부르는 오토바이를 개조한 삼륜택시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경제위기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이 자전거로 트라이시클을 만들어 마닐라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요금은 대략 10페소(약 250원)다. 도로가 혼잡하고 정체가 극심한 마닐라 거리에서 꽤 유용한 교통수단이다. 온종일 햇빛에 그을려 까맣게 탄, 젓가락 같은 종아리들이 21세기 인력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

‘알바생’, ‘인력거꾼’ 같은 이들도 노동자일까?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그렇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청년 알바생과 ‘백수’들의 노동조합을 건설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지난 11월 18일 서울행정법원은 청년유니온이 낸 노조설립신고 반려처분 취소소송에 대해 “실업자, 구직자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물론 서울행정법원은 ‘서류 미비’라는 옹졸한 핑계를 대며, 청년유니온의 노조설립신고를 반려한 노동부의 손도 들어줬다.

우리 주변의 많은 이들이 노동을 하고 그에 따른 보수를 지급받지만, 공식적인 경제 및 고용제도 틀 바깥에 존재한다. 노점상, 과외 선생님, 퀵서비스, 간병인, 가사도우미, 재활용(폐지) 수집인, 건설일용직, 유흥업소 종업원, 알바생 등의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이 이른바 ‘비공식 노동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여기에 해당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비공식 고용’(Informal Employment)을 “불법은 아니지만 법적·제도적 틀에 의해 등록·규정되거나 보호받지 못하는, 보수를 받는 모든 일자리(즉, 자영업과 임금고용 모두)를 의미”한다고 폭넓게 정의하고 있다.(1) 물론 비공식 경제·고용·노동자를 어떻게 정의할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하지만 ‘비공식’ 노동자는 ‘비정규직 보호법’ 등에도 해당되지 않아 그 알량하고 기만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비공식 노동은 ‘제3세계’ 국가 경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 연구에 따르면, 비공식 경제 규모는 2003년 기준 아프리카와 남미 경제의 약 43%, 아시아 경제의 30%를 차지한다. 1990년대 동안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북아프리카 43%,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75%, 남미 60%, 아시아 63%로 압도적이다.(2) 자본주의적 축적 체제가 확산되면서 세계 전역에서 시장을 위해 생산하는 일자리와 도시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공식 부문의 노동자도 늘어나고 있다(아프리카 대부분은 제외). 그러나 임시직이나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자영업을 하면서 생존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3) 한국도 1970~80년대 ‘이촌향도’로 대표되는 자본 축적과 이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를 경험했다.

자영업자, OECD 평균의 두 배

 

비공식 노동의 증가는 단지 ‘제3세계적’ 현상이 아니다. 선진 공업국에서도 ‘노동유연화’를 통한 불안정노동이 확대되면서 비공식 경제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다. 2003년 OECD 회원국의 평균 비공식 경제 규모는 16.3%로, 1990년의 13.2%에 비해 늘었다. 이 과정에서 청년, 여성, 노인, 이주노동자가 큰 피해를 입고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 공업국들에 비해 비공식 노동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OECD 회원국에서 한국은 경제활동인구 중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편이다. 2006년 OECD 평균인 16.5%의 거의 두 배인 32.8%나 된다.(4) 그런데 1997년 경제위기와 2008년 경제위기를 겪으며 자영업자의 처지가 더욱 불안정해졌다. 즉, ‘사장님’이 ‘노가다’가 되는 경우 혹은 그 반대의 경우가 비일비재하다.(5) 특히 2008년의 경제위기로 인해 “서비스업 판매서비스직 자영업자와 제조업 생산직 비정규직이 집중적인 타격”(6)을 받고 있는데다 형편없는 복지 수준이 더해져 한국의 비공식 노동자들의 고통은 더욱 크다.

비공식 노동자는 자신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고 있다. 이미 몇몇 개발도상국에서 비공식 노동자의 조직화 노력이 오래전부터 진행됐고, 조직화에 성공한 사례들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의 ‘자가여성연합’(SEWA·Self-Employed Women’s Association)이다. SEWA는 1972년 설립된 노동조합으로 비공식 부문의 여성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삼는다. 현재 120만 명의 조합원이 가입해 있다. SEWA는 임금 및 단체 협상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기존 노동조합과 달리 협동조합적 성격이 강하고 은행도 운영하고 있다. 즉, 국가나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는 의료·보험·주거·육아·교육·금융 등 다양한 서비스를 조합원에게 제공한다. 남아프리카에 기반한 ‘스트리트넷’(StreetNet)은 전세계 노점상의 국제 조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장님’과 ‘노가다’ 오가는 처지

선진 공업국에서도 최근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되고 있다. 비공식 부문 노동자가 자신의 조직을 건설하고 강화하는 방식보다는, 주로 기존 노동조합이 사회운동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비정규 및 비공식 부문 노동자를 조직화하는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비공식 부문이 상대적으로 적고 이미 강력한 노동조합운동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빵과 장미>로 유명한 ‘북미서비스노동조합’(SEIU)의 청소·보건 분야(이주노동자가 대다수를 차지한다)의 노동자 조직화 사례는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다. 영국·독일·네덜란드 같은 유럽 국가의 노동조합들에서도 비정규 노동자의 조직화 노력이 강화되고 있는데, 특히 비공식 부문에서는 이주노동자와 가사노동자의 조직화 노력이 인상적이다.

비공식노동자운동, 세계적 추세

비공식 부문의 조직화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비공식 부문 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그보다 더 힘이 들 수 있다. 청년고용, 영세자영업, 노인고용과 복지 등 비공식 노동과 관련된 문제는 자본주의 축적 체제에 뿌리박힌 구조적 문제다. 체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 변화 없이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기 어렵다. 반면 비공식 노동자의 자주적 결사와 조직화는 여러 이유로, 특히 내부의 차이와 다양성 때문에 결코 쉽지 않다. 조직 건설에 성공하더라도 경제 전체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힘만으로 근본 구조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비공식노동자운동은 현실 구조를 수용하고 그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면서 당장의 고통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흐를 수도 있다. SEWA 같은 강력한 조직도 정책 발굴과 선전을 통한 여론 환기, 정치인들에 대한 로비 활동에 주력하며 상호부조 같은 형태로 빈곤과 고통에 대한 비공식 노동자들만의 자체 ‘대안’ 찾기에 나서고 있다. 이런 대안적 노력이 문제될 것은 없으나 구조 변화를 위한 투쟁과 결합한다면 더 좋을 것이다.

비정규직노동조합의 대안이 비정규직노동조합 강화가 아니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이듯이, 비공식 노동자의 대안도 결국 각종 사회보장제도 도입 같은 고용의 공식화와 안정적인 일자리 확보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공식 부문 노동계급운동과 만날 필요가 있다.

청년유니온은 지난 10월 27일 프랑스 연금 개악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프랑스 청년과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에 한국의 청년노동자들이 연대한 것이다. 비록 프랑스 노동자와 청년들의 투쟁이 연금법 개악을 저지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 투쟁은 전세계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힘을 주었다. 노동자의 노년을 공격하는 법안에 맞서서 노동자는 파업을 벌였고, 구직자이자 실업자인 청년들은 도로를 봉쇄하며 노동자투쟁에 연대했다. 프랑스 청년들은 2006년에도 최초고용법 개악을 통해 불안정한 일자리를 늘리려는 정부의 의도를 무산시킨 적이 있다. 청년유니온이 연대한 지난 9~10월의 프랑스 투쟁의 열기는 이제 영국과 포르투갈로 확대됐다.

청년유니온, 그리고 노년유니온

청년유니온 김영경 위원장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실업 및 불안정고용은 구조적 문제”라며 “일자리 총량이 줄어들고, 대기업과 공공 부문의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상황이다. 청년들은 체감실업률이 20%가 넘는 절박한 생존권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래서 사회단체가 아니라 노동조합을 건설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절박한 상황 때문에 ‘힘’있는 ‘노동조합’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년노동자들의 세력화를 통해 청년고용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키고 (청년고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 기준을 이끌어내 그 내용을 제도화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비공식 노동자들이 세력화해 자신의 문제를 알리고 문제 해결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특히 청년유니온의 당당한 청년노동자선언은 다른 비공식 노동자에게도 힘을 줄 수 있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노년유니온’을 만들어 노인고용 문제를 제기할 날도 기대해본다.

고용유연화는 노동자를 공격하는 것이지만 의도치 않게 더 많은 노동자를 만들어내고, 또 한편으론 연대의 필요성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비공식 노동은 ‘사회문제’의 일부분이지만, 비공식 노동자는 ‘대안’의 일부분이다. 비공식 노동자가 조직의 노동계급투쟁과 만날 때 그 대안의 자리는 더 커질 것이다.

글•최용찬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등의 노동조합에서 정책, 연대사업 담당자로 일했다. 2010년 베를린경제대학 ‘세계화와 노동정책’ 석사과정을 마쳤다. <세계화와 노동계급>(책갈피·2010)을 공동 번역했다.

<각주>
(1) ILO, ‘Guidelines concerning a statistical definition of informal employment’, 2003.
(2) JÜTTING, J., J. PARLEVLIET AND T. XENOGIANI, ‘Informal Employment Re-loaded’, <Working Paper> No.266, OECD Development Centre, Paris, 2008.
(3) 크리스 하먼, <세계화와 노동계급>, 책갈피, 2010.
(4) Labour Market Statistics, OECD database, 2008년 8월.
(5) 계급이동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살펴보려면 ‘계급이동과 소득이동’(신광영·<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적 세계화>·문화과학·2007) 참조.
(6) 김유선, ‘경제위기와 노동조합의 대응’, <노동사회>, 2010년 5~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