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로 천안함 묻을 수 있을까
[Corée]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이 사고 해역에서 발견한 녹슨 알루미늄 파편 역시 고열에 녹은 흔적 등이 없고 황산 성분까지 섞여 있는 점 등을 들어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는 천안함의 함체 내부 장비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으나, 조사단의 고위 관계자는 북한 어뢰와의 연계성을 주장해 논란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19일 <경향신문>이 ‘침몰 현장서 한글 찍힌 어뢰 파편 추정 금속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기사의 일부다. 5월 19일이면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이하 합조단)이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 하루 전이다. 이른바 ‘1번 어뢰’는 그 실체를 드러내기 전이어서 기자들조차 ‘알루미늄 파편’ 정도로만 알고 있던 때다. 이 기사는 나중에 가장 치열한 과학 논쟁을 불러온 천안함과 어뢰의 흡착물질에 관한 것이었지만, 당시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기사에 담긴 내용을 제대로 이해한 이도 거의 없었다.
정부, 흡착물질 진실 처음부터 알아
우여곡절 끝에 흡착물질을 입수해 민간 최초로 독자 분석한 언론 3단체(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의 천안함언론검증위원회는 10월 12일 “흡착물질은 군이 주장하는 폭발의 산물이 아니라 황산염의 일종”이란 사실을 발표했다. 이 결과는 이후 <한겨레21>과 한국방송에 의해 진행된 독자적인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렇게 되고 보니 비로소 5월 19일 <경향신문> 기사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이미 당시에 ‘황산 성분’이 언급된 것은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경향신문>은 어떻게 그 시점에 그런 보도를 할 수 있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합조단 의뢰로 분석을 담당한 국방과학연구소는 이미 알고 있었다. 흡착물질은 ‘황산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뢰 폭발과의 연계성을 부정하는 요소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11월 17일 한국방송 <추적 60분>을 통해 방송된 국방과학연구소 소속의 합조단 과학자 인터뷰 내용은 이런 사실을 확인해준다.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황산염은) 우리가 예측했던 것 중 하나이다.” 다른 과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황산염을 말했다가 힘든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서 피했다. 결론이 폭발재로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논쟁은 끝, 문제는 왜 감췄느냐다
천안함 사건 초기 군은 우왕좌왕했다. 사건 발생 시간조차 특정하지 못해 여러 차례 번복이 있었고, 열영상감시장비(TOD) 동영상도 처음엔 없다 했던 것이 조금씩 공개되면서 은폐 의혹을 자처했다. 군은 ‘침몰한 천안함을 찾지 못해 일부러 안 찾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사더니, 찾은 뒤에도 침몰 위치를 번복하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연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언론은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에는 군이 상황을 주도했다. 군 내부에서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결론을 내린 4월 초가 기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은 두 가지 중요한 대응 전술을 구사했다. 하나는 무너진 신뢰와 권위를 대체하는 ‘국제 조사단 구성’이며, 다른 하나는 ‘언론 길들이기’였다.
국제 조사단 구성은 말 그대로 ‘구성’이 핵심이었다. 실질적으로 국제적인 조사 활동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조사단에 참여한 외국인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립국 스웨덴의 참여는 백미라 할 만하다. 스웨덴은 지난 9월 발간된 최종 보고서에서 “참여한 부분에 대해서만 동의”한다고 밝혔지만 참여한 부분이 과연 있는지 의문이다. 보고서에 적혀 있는 ‘스웨덴의 천안함 프로펠러 변형 분석’도 확인해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스웨덴이 무엇을 했든 하지 않았든, 군 입장에서는 스웨덴의 참여 자체가 핵심이었다.
군은 군기 잡고, 언론 알아서 기고…
언론 길들이기는 사건 초기 그야말로 두드려 맞던 군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전술이었으리라. 주요 언론사 경영진이 정권 우호 세력으로 채워진 환경 또한 기대할 만했으리라. 군은 언론을 통해 쏟아지는 각종 의문과 의혹 보도에 고소·고발과 중재신청으로 응수했다. 누가 옳은지 결론이 나오려면 한참 멀었지만 지금 당장 기자들이 고생하게 된다. 반면 거대 조직을 거느린 군은 고생이랄 게 없을 뿐 아니라, 전술의 목적이 ‘처벌’이 아닌 ‘길들이기’인 이상 언제든 고소 등을 취하해 시시비비에 대한 결론이 가져올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실제로 군은 언론중재위 중재신청 8건 중 5건, 고소·고발 6건 중 4건을 취하했다(10월 기준).
북한과 관련한 중요 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시도를 ‘북풍’이라 부른다. 천안함 사건의 범인이 북한임을 공표한 날이 5월 20일이다. 그날은 6·2 지방선거를 불과 12일 앞두고 있었고,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북풍은 저절로 불 상황이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군의 결론에 의문을 품는 견해는 ‘친북’, ‘종북’으로 몰리게 되었다. 언론사 내부에서도 천안함을 취재하려는 시도가 ‘북을 유리하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손쉽게 제어당했다. 국방장관은 국회에서조차 ‘북한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를 쓴다’며 오만을 부리기까지 했다. 북풍의 반복에 우리 사회가 내성이 생긴 덕분에 6·2 지방선거에서는 오히려 역풍이 불었지만, 천안함 사건의 진상 규명 노력은 북풍에 가로막혔다.
그러나 군의 전술도, 북풍도 잠시 입을 막고 눈을 가릴 수는 있어도 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국제민군합동조사단이 내놓은, 군과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는 파산했다.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격침됐다’는 결론은 한마디로 증거 불충분이다. 언론이 역할을 다하지 못해 세세한 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흡착물질, 버블제트 물기둥, 북한 어뢰 설계도 등 제시된 주요 증거 어느 것 하나 논란에 휩싸이지 않은 것이 없고, 논란에서 반론을 제압한 경우도 없다. 오히려 흡착물질은 군이 발표한 물질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고, 물기둥도 실체가 없다. 설계도 역시 원본을 아무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조작 의혹만 부풀려지고 있다. 군이 천운으로 건져올렸다며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우는 어뢰추진체의 작은 구멍 속에서는 의문의 조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범행이 아니라는 증거 또한 없다. 어뢰에 의한 격침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천안함이 침몰했는지도 특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군과 정부의 결론에 동원된 증거들은 틀렸다’이다. ‘북한이다’라는 결론도 근거가 없고, ‘북한이 아니다’라는 결론도 조급하다. 복잡한 사실관계, 어지러운 상황논리를 이쯤 정리하고 나면 조금씩 군의 전술은 희석되고 북풍도 잦아들겠다는 판단에 이를 수 있다. 실제로 여론은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에서 불신으로 돌아섰다. 언론계 사정도 달라지고 있다. 언론검증위의 지속적인 활동과 최근 한국방송 <추적 60분>의 탐사보도 등은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낭중지추… 보도 흐름 바뀌어
군은 기왕 이렇게 된 것 밀어붙이자는 심산인지, 어뢰추진체에서 조개가 발견되자 일방적으로 이를 떼어내는 증거 훼손 행위를 저질렀다. 국정감사에서 천안함 유실 무기의 회수 현황과 증거들을 공개하겠다고 약속해놓고는 보여달라는 언론에 ‘이미 피폭 처리했다’고 믿기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이런 행위들은 여론을 더욱 악화해 군과 조사 결과에 대한 신뢰를 더욱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 그러자 이제는 북한군이 연평도에 쏜 포탄 잔해까지 제시하며 거기 쓰인 숫자가 이른바 ‘1번 어뢰’의 모든 의문을 해소해주는 것처럼 논리 비약을 감행하고 있다. 연평도 북풍으로 천안함 전세를 뒤집으려는 것이다.
‘1번 어뢰’의 주요 의문은 ‘누가, 언제 1번을 표기했느냐’는 것과 ‘유성 잉크로 쓰인 1번 표기가 폭발에도 타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먼저 연평도 포탄에 쓰인 숫자는 1번 표기의 주체와 시점을 특정해줄 근거가 될 수 없다. 또한 포탄의 지상 폭발과 어뢰의 수중 폭발은 폭발 환경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맹점은 1번 표기가 폭발에 타지 않는다 한들 ‘북한 어뢰임’과 ‘폭발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충분조건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사 결과가 틀렸다면 북한을 범인으로 특정하지 못할 뿐이지 아예 북한을 배제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런 사실을 모르지 않는 군이 비과학적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은 그만큼 과학적 실체 규명에 자신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배는 침몰했어도 진실은 떠오른다
연평도 사태는 북한이 자행한 민족 평화에 대한 도발임이 분명하다. 누가 먼저 자극했든, 우리 군이 대응을 잘했든 못했든 연평도에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진 바로 그 순간 씻지 못할 도발 행위가 성립했다. 그러자 언론은 천안함 사건 또한 북한 소행으로 은근슬쩍 묶어버렸다. 연일 “북한이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 사태를 일으켰다”고 보도한다. 천안함은 결론이 나지 않은 사건이라 한다면 ‘아직도 북한을 두둔하느냐’는 핀잔이 되돌아올 법한 상황이다. 천안함 사건의 범인으로 북한이 지목된 뒤 북풍이 잦아들기까지 5~6개월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언론이 천안함 사건에 과학적·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겨우 마련되려는데 연평도 사태가 터졌다. 잦아들었던 북풍이 다시 천안함 사건을 휘감고 있다. 흡착물질, 어뢰 조개, 물기둥, 천안함 유실 무기 등에는 철저히 눈감았던 언론들이 연평도 포탄의 숫자를 보도하는 데 전방위적으로 동원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북풍 또한 언젠가는 잦아들 것이다. 연평도 사태로 덮으려는 사안이 천안함 말고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정권의 언론 장악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언론인임을 자각한 기자와 PD가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진실을 좇는 언론은 이미 용암 분출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 분화구에 시멘트를 쏟아부은들 솟구치는 용암을 막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가림막 정도로 어찌 막겠다는 것인가? 천안함 사건은 이미 활화산이다.
글•노종면
<YTN> 기자와 앵커로 일하다,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위원장을 맡아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중 해고·구속됐다. 천안함 언론검증위원으로, 천안함 사태에 대해 저널리즘 차원의 진상 규명 활동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