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대만, 당근과 채찍
2018년 3월 20일, 제13차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폐회식장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된 시진핑은 “대륙의 발전 기회를 대만 동포들과 공유하고, 그들의 안녕에 힘쓰고, 중국의 평화통일 절차를 진전시킬 준비가 됐다”(1)라고 선언했다. 이로써 대만 국민들은 어머니의 나라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지 보러 오라고 초대받은 셈이다. 시 주석은 어느 때보다도 강한 권력을 지닌 중국 지도자로서 중국의 복심, 그러니까 1982년 헌법의 서문에서 언급한 대만과의 통일을 재천명했다.
이 연설은 극도로 긴장된 정세에서 이뤄졌다. 2016년, 새로 선출된 차이잉원(2) 대만 총통은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어떤 ‘중국’이 합당할 것인지는 중국과 대만이 각자 해석)’를 선언하고 양안 관계를 발전시켜 온 ‘92컨센서스’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후, 중국은 도발을 일삼았다. 중국 공군은 2017년 7월부터 12월 사이에 대만 영공을 14차례나 넘나들었다.(3) 시진핑 정부는 대만이 2017년부터 활동해 온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에서 대만을 배제하고자 영향력을 행사했고, 국제항공사가 자사 웹사이트에 대만을 중국으로 표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게다가 대만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려는 협박 전술을 구사했다. 그 결과, 대만을 인정하는 국가는 2016년보다 5개국 줄어, 현재 17개국에 불과하다.
대만 자이 시 소재 중징대학 국제문제전략연구소의 자오웬지 소장은 중국의 정책 기조가 덩샤오핑이 통일을 촉구하는 첫 번째 연설을 발표한 1979년 이래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중국이 이전보다 강해졌다는 점이다. 일방적으로 처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은 대만의 정부 기관에는 ‘강경책’을, 대만 국민에게는 ‘유화책’을 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유화책’의 사례로 대만 국민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전략을 들었다. 2018년 2월, 중국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대만 시민을 결집하려는 31가지 조치를 발표했다. 그중 12개는 기업의 면세 혜택 등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 나머지는 고용 및 문화교류와 관련된 조치다. 안 펑샨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대만 잡지 <커먼웰스>(2018년 3월 1일)에 “전례 없는 이번 조치로, 대만 사람들이 더도 덜도 아니고 대륙 동포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됐다”라고 평했다.
사실상 중국 정부는 대만 사람들에게 특혜를 줄 태세를 취하고 있다. 가령 중국 명문대학에서는 대만 고등학생들의 입학요건을 완화했으며, 장학금과 숙소까지 제공한다. 이제 중국 학생보다 대만 학생이 명문 베이징대학교에 입학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게다가 졸업과 동시에 중국 노동시장으로의 편입도 보장된다. 반면 중국 학생은 치열한 경쟁과 고액 등록금을 감수한다. 중국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입학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저장대학교에서도 대만 입학생의 수가 2017년 150명에서 2018년 600명으로 늘어났다.
2008년 중국-대만 직항노선이 개설된 이래, 대학과 민간기구가 중국 내에서 운영하는 교류사업, 여름 캠프, 인턴십 활동은 크게 늘었고 가격도 파격적이다. 중국계엘리트연합(ACE) 등의 비정부기구(NGO)는 전체 해외체류 프로그램을 중국 대륙에서만 진행하면서 중국 내 사적지와 유수기업을 방문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며 인맥을 쌓는다.
명문 국립대만대학(NTU)을 졸업한 카티 린과 이리스 청(4)은 학생 때 이런 해외체류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적이 있다. 카티 린은 말했다. “대만에서는 중국과 관련된 논란을 어디서나 접할 수 있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라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중국에 가본 것입니다. 비용이 저렴하기도 했고요.” 그녀는 중국 남부의 광둥성에서 2012년 여름을 보냈다. 2014년 베이징의 주요 방송국인 베이징 TV 네트워크에서 두 달간 저널리즘 연수를 받은 이리스 청도 “호기심은 많고, 돈은 없는 학생들에게 이런 연수는 좋은 기회다. 중국 학생들에겐 이런 기회가 거의 없지만, 나는 쉽게 기회를 얻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연수에서 만난 동료 기자들 모두 친절했고, 대만에 대해서는 말조심하는 분위기였다. 편집장은 매주 다뤄서는 안 될 국제관계 현안 목록을 작성했다”라고 덧붙였다.
대만 청년들에게 중국은 매력적인가
대만의 언론과 일부 여론은 이런 현실에 경계심을 보이는 반면, 정부는 개의치 않는 듯하다. 우즈충 프랑스 주재 대만 대표(5)는 “대만 사람들은 대만의 임금 수준이 낮다고 불평하지만, 대만의 내수 구매력은 안정적인 수준이다. 중국의 전략은 효과가 없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설명했다. “중국이 대만 전역을 자국이 추구하는 대의에 동참시키려면, 연간 경제성장률을 10% 이상 높여야 합니다. 그러나 성장률은 둔화하고 있고, 중국 사람들도 실업문제를 겪고 있지요. 특혜 제공이 항상 현명한 선택은 아닙니다. 중국이 좋은 일자리와 넉넉한 급여를 대만 사람들에게 제공한다면, 중국인들은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경제적 번영에 기대 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이 중국의 사고체계를 수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셈법이 항상 통하지는 않는다. 상하이에 거주한 지 6개월 된 보니 청은 설명했다. “대만에서는 월급을 더 받으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을 거만하다고 여깁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임금협상을 하지 않으면 자신감이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깁니다.” 25세의 보니 청은 졸업 직후 중국으로 건너와 2주 만에 직장을 구했다. 하지만 중국에 계속 머물 것인지에 대해서는 망설였다. 그녀는 “내 관점에서는 중국의 관례와 관습이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이다”라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프랑스 현대중국연구소(CEFC)에서 대만 청년 문화를 담당한 탕기 르프장 특별연구원은 중국에서 가슴 떨리는 경력을 쌓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심이 대만 청년들을 중국으로 불러오고 있다고 봤다. 그는 설명했다. “대만은 노동시장 상황도 어렵고, 임금은 낮고 임대료는 높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찾아 중국에 온 청년들은 삶의 질이 떨어진다고 괴로워합니다. 서비스 수준도 떨어지고 검열과 환경오염이 심각하니까요. 결국 수입이 적더라도 대만으로 돌아가는 쪽을 선택합니다.”
따라서 대만 정부 측은 개의치 말자는 입장이다. 우즈충 대만대표는 “인재 유출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중국이 1순위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대만 언론 <비즈니스 위클리>(2016년 4월 4일)가 벌인 여론조사는 그의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만 청년들에게 ‘일하러 가고 싶은 나라’ 1위는 단연코 일본이다. 그다음이 미국, 그리고 유럽과 싱가포르가 뒤를 잇는다. 중국 대륙은 그다음이다.
시 주석의 31개 조치가 미친 영향을 가늠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르팡상 연구원은 “이 조치들이 대만 사람들의 환심을 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평가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독립을 지지하는 세력이 약간 감소하기는 했습니다. 당장, 또는 곧 독립해야 한다는 대답이 2016년에는 응답자의 22.9%였지만, 2018년에는 20.3%로 줄었습니다.(6) 중국 언론은 이 사실에 환호했지요. 하지만 시 주석의 유화책 때문에 독립에의 열망이 감소한 것은 아닙니다. 원래의 수치로 돌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독립에 대한 열망은 마잉주 전임 총통의 친중국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증가했던 것이니까요.”
2014년 중국과 대만의 교역량이 증가하면서 반중국 정서가 확산됐고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해바라기 운동’(7)이 시작됐다. 하지만 르팡상에 의하면 독립주의는 덜 타협적인 대중국 입장을 견지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집권한 이후에 누그러졌다. 대만 국민 대부분은 통일도, 독립도 지지하지 않고 평화적인 현상 유지를 바란다. “그들은 자신들이 중국인이면서 대만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아니라 중화문명권에 속해 있다는 의미에서 ‘중국인’이라는 거지요. 중국이라는 나라에 속해있다고 주장하는 3%는 보통 향수를 지닌 노년층입니다”라고 르팡상이 부연 설명했다.
전통적으로 자신들을 대만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선대보다 강한 청년들에게 중국 체험은 시 주석이 노린 효과와 정반대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2년 전부터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24세의 제니 왕은 다음과 같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전보다 중국인이라는 생각이 덜 들어요. 대만 민주주의에 더 애착이 가요. 중국에서 대만인으로 살려면 제가 스스로를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고 계속 확인시켜줘야 합니다. 네티즌들은 비애국적인 요소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달려들고요. 이런 것들이 역설적으로 제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생각을 굳히게 합니다.”
글·알리스 에래 Alice Herait
기자
번역·서희정
번역위원
(1) ‘Speech delivered by Xi Jinping at the first session of the 13th NPC’, <Xinhua>, 2018년 3월 21일.
(2),(7) Tanguy Lepesant, ‘대만 정권교체 이후의 쉽지 않은 과제들 Taïwan en quête de souveraineté économiqu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6년 4월호‧한국어판 2016년 5월호.
(3) ‘China-Taïwan tensions drive military exercises’, <Jane’s Intelligence Review>, London, 2018.
(4) 인터뷰이의 요청에 의해 모두 가명을 사용함.
(5) 프랑스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수용해 대만에는 대사관이 아닌 대표사무소만 설치했다.
(6) ‘Changes in the Taïwanese/Chinese identity of Taïwanese’, 국립정치대학, Taipei, 2019년 1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