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서 유행하는 ‘절망의 약’

2019-05-31     올리비에 피로네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2007년 이스라엘에 봉쇄당한 가자지구 주민들은 나날이 절망과 무질서에 빠져들고 있다. 그런 가운데, 많은 이들이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혹은 일시적인 즐거움을 찾아 ‘트라마돌’로 환각에 빠진다. 트라마돌은 암시장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팔레스타인 당국이 암매매를 막으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보건당국은 10여 년 전부터 모르핀계열 의약품 ‘트라마돌’을 본래의 용도가 아닌 유흥을 위해 사용되는 상황을 우려해왔다. 특유의 빨간 빛깔로 인해 아랍어로 딸기를 뜻하는 ‘파라울라’라는 별명이 붙은 알약 트라마돌은 지역 내 암시장에서 은밀히 거래되며 마약처럼 쓰인다. 이는 하마스당이 지휘하는 가자 지구에서 심각한 보건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5년 전에는 자치정부 측에서 의약품 남용 방지 캠페인을 벌였다. 심지어 2016년에는 마약밀매를 국가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트라마돌의 불법판매를 겨냥한 법마저 제정될 정도였다.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트라마돌에 따른 피해는, 이미 8년간 이스라엘과 네 차례 전쟁을 치르며(2006년, 2008~2009년, 2012년, 2014년), 파국에 가까운 위기에 처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심각한 문제다.
1962년 독일 화학자가 구상해 1977년 독일 제약기업 그뤼네날이 상용화한 트라마돌은 아편 성분의 마약성 강력 진통제로 관절통과 근육통 치료를 위해 흔히 처방된다. 다량 복용할 경우 쾌감과 흥분 효과가 나타나는 한편, 수면장애와 우울증, 신장 및 위장 장애, 신경손상 등 심각한 부작용과 중독증상이 유발될 수 있다.

 

청년층에서 인기 높은 ‘트라마돌’

트라마돌은 2000년대 중반 ‘알트라말’이라는 상품명으로 가자지구에 처음 등장했다. 원래 이스라엘군의 공격과 폭격에 부상당한 가자 주민들의 통증완화를 위해 처방됐던 이 오이포이드 계열 진통제는 순식간에 많은 청년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일부 청년들은 이 마약성 진통제의 환각작용에 매료됐으며, 이들은 트라마돌을 통해 절망을 잊고자 했다. 복제약 전용 연구소가 밀집된 중국과 인도에서 만들어진 ‘알트라말’의 복제약은 유효성분의 함량(225mg)이 원래의 5배에 달한다. 마리화나를 능가할 정도로 확산된 트라마돌은 이웃 나라 이집트에서 주로 들어와, 가자지구의 암시장에서 1개당 약 15~50셰켈(한화로 약 1300원~1만 5,000원)에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이 금액은 가자지구의 월평균 소득이 최고 400달러(한화 약 45만 원)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이다.

트라마돌의 소비량이 급증한 것은 2007년 6월 이후다. 파타당의 반대를 묵살하며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장악하자(하마스당과 파타당은 팔레스타인 양대 정파를 구성하고 있다-역주), 이스라엘은 그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전면봉쇄하고 군사로 포위했던 것이다. 2008년 말, 가자지구 알아자르 대학의 약리학자 마젠 알사카 교수의 추정치(참고 가능한 몇 안 되는 자료)에 의하면, 가자지구의 14~30세 남성 중 30%가 트라마돌을 정기복용하며 그중 수천 명이 약물의존증에 시달리고 있다.(1) 여성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얼마나 있는지 추정이 어렵다. 당시 가자지구 인구는 150만 명이었으나, 오늘날은 2백만 명에 달하며 그 중 70%가 30세 미만이다.

사실상 트라마돌 의존증은 팔레스타인 사회에 이미 뿌리를 깊게 내린 것으로 보인다. 지역 보건당국의 최근 보고서도 이 사실을 강조하며 가자지구 내 “고용량의 트라마돌 남용”을 언급한다.(2) 영토의 전면봉쇄, 계속되는 이스라엘군의 공격, 노동가능인구의 50% 이상, 청년층의 65% 이상에 달하는 실업률, 정치적·사회적 전망의 부재…. 이런 상황은 가자 주민들이 왜 약물에 의존하는지 잘 설명해준다. 2016년 인터넷 신문 <알모니터>가 해당 지역의 비공식 정보에 근거해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가구당 1명 이상이 트라마돌을 상습복용하고 있으며 전체 복용자 수는 수만 명에 이른다.(3) 

이처럼 상황이 심각해지자, 가자 당국은 처방전 없이 트라마돌을 판매하는 행위를 2008년부터 전면금지했다. 상당량의 밀수품이 적발됐으며, 이를 위반한 약국들은 폐쇄조치를 당했다. 그럼에도 트라마돌의 유통을 저지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이스라엘 측이 전면봉쇄에 나선 후 가자지구는 이집트와의 밀수유통망을 통해 전 종류의 상품을 공급받았다. 이 유통망 또한 엄청난 양의 트라마돌을 유입시키는 데 이용된다. 밀매가 한창 활발하던 시기에는 이 가자지구에서만 트라마돌 알약이 매일 50만 정 가량 팔려나갈 정도였다.(4)

 

단 한 곳에 불과한 중독치료센터

대부분의 밀수유통망은 2014년부터 2015년 사이 가자지역 남부의 라파 검문소를 통제하는 이집트군에 의해 파괴됐다. 그러나 일부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다른 유통방식으로 들어오는 트라마돌의 양 또한 상당하다. 2017년 초, 하마스 당국은 그 한 달 동안에만 2016년 전체 유통량에 해당하는 트라마돌을 적발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약 2백만 달러(한화로 약 23억 4천만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2018년 10월 22일, 가자 마약단속반은 2018년 초 이후 적발된 트라마돌 150만 정을 불태웠다. 2017년 3월에는 하마스 당국이 자국 내 마약밀매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두 명의 마약 딜러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이제 마약밀매는 더는 민사재판소 관할이 아니라 군사법원 소관이 됐다.

하마스 당국은 “마약과의 전면 전쟁”을 선포했지만,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서 트라마돌은 계속 맹위를 떨치고 있다. 가자지구 내의 중독치료센터는 단 한 곳, 그마저도 병상이 12개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여름 인터뷰에 응한 어느 트라마돌 ‘중독자’는 “오늘날 마약소비는 더욱 심각해졌으며, 마약중독의 악화는 가자지구의 상황 악화와 직접 연관돼 있다”고 전했다.(5)  

 

 

글·올리비에 피로네 Olivier Pirone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박나리
번역위원

 

(1) ‘Besieged and stressed Gazans fall victim to black market painkiller’, <The Guardian>, London, 2008년 12월 15일.
(2) ‘Illicit drug use in Palestine: A qualitative investigation>, Palestinian National Institute of Public Health(PNIPH)’, 팔레스타인 보건부, Ramallah, 2007년 11월.
(3) Shlomi Eldar, ‘Is Gaza facing an opioid epidemic?’, <Al-Monitor>, 2016년 8월 5일. 
(4) 위에서 언급한 기사
(5) ‘Gaza’s opioid crisis: Desperate Palestinians under brutal siege turn to drugs’, <The National>, Abu Dhabi, 2018년 6월 25일.

 

‘마담 쿠라주’의 유혹 환각제가 돼버린 파킨슨병 치료제 ‘아테인’

2015년 3월, 알제리 국가안보국은 자국 내 마약밀매 급증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세미나에서 발표된 수치들은 상황의 심각성을 잘 보여줬는데, 2015년 보안국이 압수한 대마수지(하시시)는 135톤, 향정신성의약품은 80만 정에 이르렀다. 또한, 체포된 1만 2천 명 중 85%가 청년층 또는 청소년층이었다. 세미나의 어느 발언자는 “마담 쿠라주가 우리 젊은이들을 죽이고 있다”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마담 쿠라주’란 1990년대 말 알제리가 내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던 때 등장한 표현으로, 이슬람 무장저항단체와의 전투 직전에 용기를 얻기 위해 알제리군 특수부대가 복용했던 약, ‘아테인’을 가리킨다. 아테인은 파킨슨병 치료를 위한 트리헥시페니딜 성분의 의약품이지만 알코올이나 암페타민, 마리화나, 벤조디아제핀(신경안정제의 일종-역주)과 병용할 경우 쾌감과 환각을 일으키며 폭력적 행동을 부추긴다. 하사관 출신의 저자 하빕 수아이디아의 증언록 『더러운 전쟁』(2001)에서는 군인들이 이 근육이완제를 복용하면 힘이 솟고 천하무적이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이 약은 가벼운 기억상실을 유발한다. 이 효과는 잔인한 행위를 저질렀을 때 요긴하게 쓰였을 것이다.

알제리의 ‘암흑의 10년(1990~2000년)’이 끝나면서 ‘가난한 자들의 엑스터시’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아테인은 알제리 청년층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중 일부는 공개적으로 이를 찬양할 정도였다. “우리는 마담 쿠라주 덕택에, (알제리를 탈출해 밀입국하기 위해) 바다를 건널 용기를 얻을 것이다.” 아테인 복용이 특히 군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국제적인 연구가 전혀 실시된 바 없다. 그러나 심리학자들과 알제리 비영리단체 ‘보건 증진 및 연구 개발을 위한 국립재단(FOREM)’은 약국의 불법영업, 고객을 가리지 않는 외국연구소에 연결된 마피아 네트워크를 문제 삼으며 주기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메르작 알루아슈 감독의 2015년 작 영화 <마담 쿠라주>는 알제리 서부에 거주하는 한 약물중독자 청년의 일상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2012년에 출간된 동명의 소설에서 소설가 세르주 카드뤼파니는 아테인 밀수와 이슬람주의자들의 네트워크, 알제리 정보국 이야기가 뒤섞인 음모를 프랑스와 북아프리카를 무대로 펼쳐 보였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번역·박나리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