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일수록 해롭다

2011-01-07     피에르 랭베르

요즘 영국에서는 경기침체, 금융가의 거액 보너스 잔치 등과 맞물려 사회 불평등 논쟁이 뜨겁다. 이런 분위기에서 한 연구 보고서가 임금체계의 이면을 파헤치고 나섰다.

 ‘경제적 수익성이 얼마나 되는가’를 잣대로 모든 사람과 사물을 평가하는 분위기이다. 누군가 “당신이 주주에게 가져다준 이익은 얼마인가?”라고 물어오면, 우리도 똑같이 수익성을 묻는 질문으로 되받아쳐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때 관점을 조금 바꿔 질문해보면 어떨까. “그러는 당신이 사회에 가져다준 이익은 얼마인가?”라고.

얼마 전 신경제재단(New Economic Foundation)이 발표한 연구 보고서(1)도 이런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다. 이 재단에 소속된 세 명의 연구원- 엘리스 롤러, 헬렌 커슬루, 수잔 스티드- 은 제법 흥미로운 방식으로 사회 불평등 문제에 접근했다. 이들은 소득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을 선별하고, 그중 몇 개 직업에 대해 소득액과 직업 활동에서 창출되는 ‘사회적 가치’를 서로 비교했다. 먼저 6.10파운드(약 7유로)의 일당을 받는 재활용 사업장의 노동자를 조사했다. ‘이 노동자가 사회에 기여한 사회적 가치는 임금 1파운드당 12파운드’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 ‘소득이 50만∼1천만 파운드나 되는 거물급 투자 은행가는 경제적 가치 1파운드를 생산할 때마다 사회적 가치 7파운드를 파괴’하고 있었다. 같은 방식으로 최상위 소득층의 직업 기여도를 모두 합산해봤다. 결과는 마이너스였다. 물론 2008년 이후 불어닥친 ‘금융 폭풍’으로 충분히 예견된 결과였다.

뒤집힌 직업 가치 대차대조표

각 직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수치화하는 데 이용되는 이른바 ‘사회투자수익’(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 방법론은 기존 경제이론의 허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까지 고소득은 우수한 능력과 높은 효율성을 갖춘 ‘인적 자본’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겼다. 연구원들은 “기존 이론은 인간의 유용성이 돈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돈을 더 많이 벌수록 더 유용한 사람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한 집단의 총소득이 증가해야 사회복지가 더욱 증진된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한다. 이런 논리로 인해 여성이 주로 참여하는 가사노동은 그동안 별 가치가 없는 활동으로 여겼다. 그리고 경제발전 과정이 비단 화폐 교환의 차원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간과됐다.

재화나 용역을 생산·소비하는 과정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발생한다. 이를 우리는 ‘외부성’이라 부른다. 외부 효과는 부정적이기도 긍정적이기도 하다. 때론 즉각적으로, 때론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나타난다. 이를테면 자동차는 이동을 돕는다. 하지만 오염을 유발한다. 책은 재미를 준다. 동시에 유익한 지식도 전달한다. 우리는 여기서 오염으로 인한 비용과 지식이 주는 효과를 수치로 환산해 부차적으로 발생하는 외부 효과를 측정할 수 있다. 같은 방법을 이용하면 직업의 가치도 측정이 가능하다. 연구원들은 “어떤 직업의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려면 그 직업이 경제나 환경, 사회 등의 분야에 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청소부의 기여, 세무상담사의 파괴

광고업자를 예로 들어보자. 광고업이란 소비를 촉진하는 일이다. 광고업자의 활동에서 일단은 일자리(광고 분야뿐 아니라 공업, 상업, 운송, 방송 등 다양한 분야)가 창출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채무, 비만, 환경오염이나 재활용이 되지 않는 에너지 등이 증가한다. 세 연구원은 창의적이고 때론 기상천외한 방법의 계산까지 동원하며 광고업으로 인해 각 부문에 발생하는 과소비 비용과 이윤을 측정했다. 그러고 나서 각 수치들을 조합했다. 연구 결과 ‘광고업의 경우 1파운드의 긍정적 가치에 대해 11.5파운드의 부정적 가치가 발생’했다. 광고업계 간부사원의 경우 ‘1파운드의 경제적 가치를 생산할 때마다 다른 한편으로 11.5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셈이었다.

병원 청소부는 정반대의 결과를 나타냈다. 청소업은 일이 고되고 눈에 잘 띄지 않을뿐더러 별로 인정도 받지 못하는, 보수와 처우가 나쁜 직종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의료 시스템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데 일조하고 있으며, 병원 내 감염을 줄이는 일에도 기여한다. 연구원들은 청소부 한 명을 추가할 때 발생하는 의료 이익에 관한 <영국의학저널>의 논문과 병원 내 감염으로 인한 비용을 토대로, ‘청소부의 월급 1파운드가 10파운드 이상의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들은 “청소부의 가치가 어쩌면 평가절하돼 있다”고 말한다.

동일한 방법으로 세무상담사의 가치를 측정해봤다. 한 사회의 세수를 줄이는 일을 하는 세무상담사는 생산 가치의 47배나 되는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육 종사자는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효과와 부모에게 돌아가는 유용 시간을 환산해보니 월급의 9.43배에 해당하는 가치를 사회에 기여하고 있었다. 물론 이 소수점 이하 수치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고는 보기 힘들다. 연구원들은 “계산할 때 정확도는 별로 따지지 않았다”며 “몇 가지 누락된 가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의 주목적은 문제 환기에 있었다”고 밝힌다. 이들은 ‘기업에 대한 가치 창출’을 ‘사회에 대한 가치 창출’이라는 개념과 대비시킨다. 또 해로운 직업에는 오히려 과도한 임금을 지급하고, 다수에게 이로운 직업은 무시당하는 현행 임금체제의 혁신을 제안한다. 물론 앞에 조사된 6개 직업 중 문제의 3개 직업에 대해 피해액 청구를 하는 의미도 있다.

소득과 사회적 가치는 반비례

예전만 해도 사회 불균형은 ‘낙수효과’(Trickle-down Theory)를 근거로 정당화됐다. 낙수효과란 부자들이 부은 물이 넘쳐 결국 서민의 이마를 적시듯, 고소득 계층의 부가 모든 이들에게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이론이다. 하지만 최근 사회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행복한 세계화’에 대해 마지막 남은 환상마저 산산조각이 나고 있다. 이제는 전문직 종사자마저 사회 양극화 현상을 우려하는 실정이다. 지난해 1월에 발표된 영국 정부의 보고서는 지속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문제를 낱낱이 해부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부유한 10%가 가장 가난한 10%의 100배에 달하는 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2) 1980년 중반∼2000년 중반 조사대상 24개국 중 19개국에서 소득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 결과도 인용했다. 심각한 사회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의료 및 사회 비용에 관한 자료도 이 연구를 뒷받침했다.(3) 하지만 아무리 진단이 동일한들, 선뜻 정부가 치료약을 처방하기는 쉽지 않다. 모두가 아는 ‘치료약’ 두 가지는 바로 고소득층에게 부자세를 부과하고, 서민의 부담을 덜기 위해 자유무역을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서울대 불문학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엘리스 롤러, 헬렌 커슬루, 수잔 스티드, <Calculation the real value to society of different professions>, 신경제재단, 런던, 2009년 12월, www.neweconomics.org.
(2) 존 힐스, <An Anatomy of Economic Inequality in the UK: Report of the National Equility Panel>, Government Equality Office-런던정경대, 런던, 2010월 1월.
(3) 역학연구원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이 진행한 23개 선진국 내 불균형 효과에 관한 연구조사 참조. <The Spirit Level: Why More Equal Societies Almost Always Do Better>, 펭귄북스, 런던,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