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진실

『1984』 출간 70주년

2019-06-27     티에리 디세폴로 l 아곤 출판사 창립자

조지 오웰(1903~1950)에 대해서라면, 속속들이 이야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진실이든 오해든, 어쩌면 진실보다 오해가 더 많았을지 모른다. 여하튼 우리는 오웰이 영국 식민지를 비판했으며, 가난한 노동자와 부랑자의 삶을 증언했고, 영국 노동자들을 심층 취재한 이후에는 극도의 평등을 추구하는 급진 사회주의로 전향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는 사회민주주의의 미온적 태도에 반발해 인터내셔널리스트가 됐다. 스페인 내전에 직접 참전해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OUM)의 편에 서서 싸웠으며, 독일 나치를 향한 영국 민중의 저항이 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좌익 노동자당에 합류했다. 

그리고 결국 오웰은, 그의 저서 『1984』의 달콤한 성공을 제대로 맛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조지 오웰에 대해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은, 일부 좌파가 오웰을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작가로 인식하는 계기로만 이용된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신보수주의자들까지도 오웰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1949년에 나온 『1984』는 출간 즉시 영국과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널리 언론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오웰은 이때부터 종종 오독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특히 대서양 건너편 미국에서 유독 심했다. 그의 좌파 이력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그의 소설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서로 읽히곤 했다. 심지어 오웰 자신이, 전미자동차노조 앞에 자기 견해를 상세히 해명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을 정도였다.

프랑스에서는 <르몽드>의 칼럼니스트 로베르 에스카르피가 1949년 12월, 『1984』에 대해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재미있지만 너무 단순한 풍자”라고 평가했다. 1950년 6월에는, 작가 마르셀 브리옹이 프랑스어 번역본의 출간 소식을 알리며, “영국 최고의 소설가가 구사하는 최고의 언어로, 대가의 문체로 쓰인 이야기”라는 리뷰를 이 일간지에 남겼다. 그러나 두 번째 번역본이 출간된 1968년 이후에는, 출판사가 배포한 보도자료를 그대로 옮겨 적은 듯, 오독과 진부함이 가득 찬 서평이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더 이상 오웰은 과거 <르몽드>가 단 51자로 부음 소식을 전하던 시절의 그가 아니었다. 

1950년 중반, 오웰의 모든 주된 저서가 프랑스어로 번역(다소 형편없는 번역)되고, 『1984』의 판본만 무려 20여 본이 나왔지만, 그를 다룬 비평서는 단 두 권에 불과했다. 언론 또한 그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돌변했다. 1980~2000년대, 돌연 40여 권에 달하는 오웰 비평서가 쏟아져 나왔다. 그의 작품은 샹리브르 출판사에서 재번역(『1984』는 제외)돼 나왔고, 미출간 저서 9권도 추가로 출간됐다. 

1982~1983년, <르몽드>는 지난 30년 세월보다 훨씬 더 많은 지면을 오웰에게 할애했다. 이후 다소 기세가 꺾이는 듯 보이다가, 1995년 이후 또다시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다(2010년대 이후로 특히). 많은 변화가 일어난 후였다. ‘동구권’이 무너지고, ‘사회주의자들’의 신자유주의와 ‘공화주의자들’의 신자유주의가 번갈아 반복되면서 어느새 좌파와 우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 덕분에 알랭 핑켈크로트(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작가) 같은 신보수주의자들의 작업이 한결 더 수월해졌다. 

이제 오웰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하는 매체는 <피가로>였다. 오웰은 <리미트>에서 <코죄르>, <마리안느> 등에 이르기까지 혁명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매체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심지어 극우당인 국민전선의 지지로 당선된 로베르 메나르가 시장직을 맡고 있는 베지에의 지역신문 <주르날 드 베지에>마저도 오웰에 관해 이야기할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우익매체들이 자신들에게 그토록 적대적인 삶과 작품세계를 보여준 작가를 이토록 환대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오웰의 재발견’을 이끈 최고 공신은 장클로드 미셰아였다. 스스로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 철학자였던 미셰아는 1995년, 제목부터 독자들의 관심을 끌 법한 책, 『오웰, 토리 아나키스트』(Climat)를 저술했다. 사실 ‘토리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은, 오웰이 조너선 스위프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던 것이었다. 오웰은 작가이자 풍자가로서의 스위프트는 무척 경애했지만, 그런 만큼 그의 인품이나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었다. 

더욱이 오웰이 자신을 ‘토리 아나키스트’로 표현한 것은 오로지 이튼스쿨을 졸업할 당시 속물근성이 다분한 젊은 시절의 자신을 1937년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볼 때뿐이었다. 오웰과 토리당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오웰은 스탈린주의에 맞서기 위한 목적에서조차도 결코 토리당과 연계되기를 거부했다. “내 아무리 소련의 전체주의와 그것이 이 나라에 미친 악영향을 증오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분명 좌파에 속하고, 좌파의 품에서 작업해야 한다.”(1) 

우리는 미셰아가 ‘토리 아나키스트’라는 표현을 그가 맞서 싸우고자 하는, ‘자유지상주의적 자유주의자’나 그 외 교양 있는 부르주아지 출신의 ‘진보주의자’에 대한 반대말 내지는 그들을 치료할 해독제로 여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이런 세력들은 모두 오웰이 신랄하게 비판해마지 않던 자들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표현은 우파에 의해 전용됐다.

오웰이 ‘정치성향’상 보수주의 아나키스트에 속한다는 견해는 이미 『오웰 혹은 정치에 대한 공포(1984)』라는 제목의 결연한 비평서를 저술한 시몽 레이에 의해서도 제기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최대한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가령 “사회주의 이상을 향한 오웰의 정치참여가 얼마나 깊고도 진실했는가”에 대해 말하거나, “신흥 우파가 오웰을 추종하는 현상은 그의 사상이 잠재적 보수성(토리 아나키즘)보다는 좌파의 아둔함을 드러낸다고 봤기 때문”(2)이라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은 독자들을 오해의 길로 오도했다.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3) 노력한 오웰은 결코 ‘정치에 대한 혐오’를 표현한 적이 없었다. 그는 다만 ‘권력 정치’, 특히 소련의 제국주의적 정치를 비판하려 했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신흥우파가 오웰을 자신들의 작가로 생각하게 된 또 다른 요인은 과거 찰스 디킨스가 옹호한 개념이기도 한 ‘보통 사람들의 품위(Common decency)’에 근거한다. 노동자계급이 지닌 가치관들을 상징하는 동시에, 도덕적인 올바름, 관대함, 상부상조의 정신, 특권에 대한 혐오, 평등에 대한 갈증 등을 모두 함의하는 ‘보통 사람들의 품위’는 사실상 기독교와 프랑스혁명의 유산이라고 오웰은 인식했다. 서민이 자신들의 삶이나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사회적, 경제적 윤리’를 오래 존속시킬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서민에게 내재된 특성이어서가 아니라, 서민의 삶이 그런 윤리적 가치관을 유지하거나 물려주기에 적합한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사회계급이 어느 정도는 윤리적 가치관을 지니며 살아간다. 다만 우리 사회를 조직하는 지배관계가 이 가치관들을 끊임없이 훼손하는 것뿐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오웰은 혁명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그는 계급의 분리가 ‘보통 사람들의 품위’를 공동의 도덕적 토대로 삼는, 보다 공정한 사회질서를 정립하는 데 방해물이 된다고 여기며, 혁명을 통해 계급의 분리를 철폐해야 한다고 봤다.(4) 

이런 견해는 관습화된 보편적 규범을 지키지 않는 경우 군중이 엘리트층을 처벌할 수 있다고 본 영국의 사학자 에드워드 P. 톰슨의 ‘도덕경제’에 관한 분석과도 일맥상통한다. 혹은 권력이 ‘암묵적 사회계약’을 깨거나 ‘도덕적 책무’를 위반하는 경우 피지배자가 저항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한 미국의 정치학자 베링턴 무어의 견해와도 엇비슷했다. 

그런데도 신보수주의자들은 어떻게 스스로 ‘보통 사람들의 품위’를 표방할 수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이 개념에서 “관대함, 상부상조의 정신, 특권에 대한 혐오, 평등에 대한 갈증”을 빼보라. 프랑스혁명과 ‘계급 분리의 철폐’도 잊어라. 하지만 ‘도덕적 올바름’과 ‘기독교’만은 남겨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인) 노동자란 ‘우리’가 지닌 ‘보통 사람들의 품위’에 무지한 최하층 프롤레타리아의 유입으로 가난해진 중산층이라고 생각해보자. 자 이제 해답이 나왔다!

더욱이 좌파 지식인이 ‘보통 사람들의 품위’를 백안시한 점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개 좌파 지식인은 이 개념을 ‘부르주아적’이거나 ‘이상주의적’이거나 심지어 ‘우파적인’ 윤리라고 치부하며, 정치를 배척하거나 반지식인주의를 살찌운다는 의혹의 시선을 던지곤 했다. 일견 이해가 가는 반응이기도 하다. 오웰은 ‘보통 사람들의 품위’가 ‘근대 인텔리겐치아’에게는 결여된 가치관이라고 간주했으니 말이다. 그에 의하면, 지식인은 역사나 인간관계를 통해 이런 가치관을 체득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어떤 사회주체보다도 쉽게 자신들의 지위를 지켜주던 질서체제가 독재로 흐르는 것을 용인해버린다. 심지어 그들이 해방을 이야기할 때조차도 말이다. 

어쩌면 오웰은 사후 그가 노동운동의 사회주의적 가치들을 폄훼하기 위해 스탈린주의를 호명하는 데 열과 성을 다한 반공주의의 사도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된 것보다도, 오히려 ‘반지식인주의적’이라는 모욕을 받는 것을 더 참기 힘들어했을지 모른다. 사실 『1984』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풍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지식인들이 소비에트 정권으로부터 차용한 유토피아에 대한 풍자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5)  ‘전체주의가 미치는 지적인 영향력을 패러디한’ 이 유토피아는 특히 철학자였던 작품 속 당대표가 주인공을 고문하는 장면에서 상당히 잘 드러난다. 이 대목에서 그는 진리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본질을 초월한) 포스트모던적인 개념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인다.(6) 

당의 철학은, 포스트모던 철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진리가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며, 시대나 문화에 따라 상대적으로 생성된다고 간주한다. 이 고문자는 자신의 희생양에게 ‘2 더하기 2는 5’라는 사실이 진리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일보다 오히려 매 순간 상황에 맞추어 생각을 수정하는, ‘이중사고’의 기술을 가르치는 데 더 몰두한다. 

사실 이중사고 ‘능력’은 ‘각종 전체주의자들’만이 누리는 전유물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나는 항상 사실만을 말하려고 노력하고, 또 항상 사실만을 말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때때로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항상 진실하기를 원한다.”(7) 오웰의 전체주의 비판은 1995년 이후 인터넷이나 대중감시와 연계돼, 오웰의 정치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런 사실이 갈리마르에서 출간된 『1984』의 새 번역판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물론 갈리마르 출판사의 첫 번째 번역본은 분명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즉 정확도와 시대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눈에 띄며, 사소한 실수와 몇 가지 중대한 오역, 40여 개의 문장 누락이 있었다. 하지만 이 번역본은 오웰의 작품이 제시하는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을 프랑스어로 정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반면 2018년 새 번역본은 “『1984』에 문학적인 차원에서 보다 정당한 평가를 되돌려주겠다”며, 과거형으로 쓰인 문장을 모조리 현재형으로 옮겨 놓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정당’한 평가이기에 앞서 오히려 출판사의 장삿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도였다. 더욱이 새 번역본의 역자는 ‘Newspeak’가 언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어(Novlangue)’라는 단어를 ‘신 화법(Néoparler)’이라는 표현으로 바꿔 옮겼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분명 오웰은 주민들이 말하고 생각하는(혹은 생각하지 않는) 데 사용하는 ‘오세아니아 공식어’의 구조나 어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새 번역본은 사상경찰은 ‘정신경찰’로, 사상범죄는 ‘정신범죄’로 둔갑시키기까지 했다.

대체 이런 ‘자유’는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 텍스트를 읽고 해독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각자의 권리에서 비롯된다고 역자는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오웰이 이 풍자적 소설에서 그 위험성을 폭로하려 했던 바로 그 ‘상대주의’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 사실 작품 속 주인공에게는, 오히려 외적 진리의 존재가 개인의 자유를 가능케 했다. 우리가 누리는 특권, 특히 진리가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는 우리 자신이 지닌 능력을 제한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문학의 길을 빙자해 정확한 표현들을 공허한 ‘신 단어’로 둔갑시키는 시도는, 실은 신어가 꾸민 최후의 계략은 아닐까?  

 

 

 

글·티에리 디세폴로 Thierry Discepolo
아곤 출판사 창립자. 라뤼드리옹 출판사(몬트리올)에서 『1984』를 재번역해, 출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아톨 공작부인에게 보낸 서한, 1945년 11월 15일, 조지 오웰의 에세이, 논문, 서한 중 4권, Ivrea/Encyclopédie des nuisances, 파리, 2001년.

(2) Simon Leys, 『Orwell ou l'horreur de la politique(1984)』, Plon, 파리, 2006년.

(3) George Orwell, 『Pourquoi j’ecris ?(나는 왜 쓰는가?)』, 1946년, 에세이, 논문, 서한 중 1권, Ivrea/Encyclopédie des nuisances, 파리, 2001년.

(4) Jean-Jacques Rosat, 『Chroniques orwelliennes』, Collège de France, 파리, 2013년.

(5) 로저 센하우스에게 보낸 서한, 1948년 12월 26일, 조지 오웰의 에세이, 논문, 서한 중 4권.

(6) James Conant, 『Orwell ou le pouvoir de la vérité(오웰 혹은 진리의 힘)』, Agone, 마르세유, 2012년.

(7) ‘Donald Trump's wacky approach to truth, explained in 7 words’, <CNN>, 2018년 11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