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집착하는 저널리즘의 아이콘

2019-06-28     세르주 알리미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2019년 2월 3일, CBS에서 미국 프로미식축구 챔피언결정전 ‘슈퍼볼’이 중계되는 시간에 TV 광고비는 30초당 무려 525만 달러에 달했다. 이 황금시간대에 <워싱턴포스트>지도 유명 배우 톰 행크스의 내레이션을 입힌 1분짜리 광고(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연 매출에 해당하는 방송광고)를 내보냈다. 광고에서 톰 행크스는 이렇게 말했다(다음은 광고 전문). 

“우리가 전쟁터로 향할 때, 우리가 권리를 행사할 때(흑인 인권 투쟁), 우리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달 착륙), 우리가 희생자를 기리며 기도할 때(전사 군인 장례식장), 우리의 이웃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의 조국이 위협받고 있을 때, 누군가는 모든 대가를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수집해 당신에게 뉴스를 전한다. 앎은 우리에게 힘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고, 우리가 자유로운 존재로 남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 민주주의는 어둠 속에서 사멸한다.”

사실 이 광고가 꼭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 시대 진정한 내부고발자들(첼시 매닝, 줄리언 어산지, 에드워드 스노든), “모든 대가를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에게 뉴스를 전해준” 이들은 CBS의 광고주보다 미 사법부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신세니 말이다.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전설적인 콤비 기자, 칼 번스타인과 밥 우드워드가 권력자인 대통령을 사임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신문. 그런 신문이 흡사 몬산토(다국적 농업기업)처럼 자사 선전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다니, 일견 제 명성에 먹칠하는 짓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가 광고공세에 나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신문사가 ‘슈퍼볼’에 광고를 낸 시점과 맞물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초반을 다룬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가 출간된 것이다.(1) 하지만 (책 제목 속 ‘공포’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게) 우드워드는 이제 어떤 위험도 감수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라는 인물의 강박적인 집착과 거짓말에 대한 비판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됐기 때문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인기몰이에 성공해, 몇 주 만에 미국에서 무려 2백만 부가 팔려나갔다. 

그런데 이미 부자인 우드워드는 여전히 돈에 무척 집착하는 듯하다. 직업윤리를 중시하는 탐사취재 전문기자라면 회당 5만~10만 달러를 받고 시티뱅크나 미국냉동식품협회(AFFI) 같은 기업의 임원진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은 피했을 테니 말이다. 또한 양심 있는 기자라면 보험사와 제약 로비단체의 ‘온갖 뒤를 봐주는’ 와중에, 굳이 “시장이 제 역할을 훌륭하게 할 수 있도록” 이들 업계에 대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2) 

또한, “21세기의 현실”(3)이 맞이한 새로운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령층에 대한 의료비 예산을 삭감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망설였을 것이다. 이 워터게이트의 영웅은 추잡한 활동으로 올린 수입을 자신의 이름을 단 재단의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이런 자선행위는 그저 세금공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 수혜자 또한 자신의 자녀들이 다니던 워싱턴 엘리트 계층을 위한 사립학교다.

프랑스 일간 <리베라시옹>은 우리의 영웅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했으며, 출간한 18권의 저서 중 무려 12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75세의 밥 우드워드의 명성은 눈부실 정도다. (…) 심지어 과거 그의 엄혹한 취재의 대상이 됐던 이들마저 그의 직업윤리를 칭송할 정도다.”(4) 하지만 이런 글은 오히려 <리베라시옹>의 ‘체크뉴스’ 란에나 실리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하지 않은가. 왜냐하면 우드워드는 모든 이들에 대해 ‘엄혹한’ 태도를 보여온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드워드는 그의 저서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서 세계 최대부호인 자신의 고용주에게 무릎을 꿇고 싶은 유혹을 끝내 떨쳐버리지 못했다. “<워싱턴포스트>지에 고용되거나 혹은 이 언론사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마존의 창립자이자 회장인 제프 베조스가 <워싱턴포스트>의 사주라는 사실에 여러모로 고마워해야만 할 것이다. 그는 이 신문사가 심도 있는 취재를 할 편집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시간과 재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5) 이를테면 우드워드가 베조스의 적으로도 유명한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초반을 다룬 최근 저서에서 보여준 듯한 형태의 심도 깊은 취재라고나 해야 할까.

 

협력자는 영웅으로, 비협력자에는 응징을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드워드의 흥행 전술은 거의 변화가 없다. 그는 먼저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유명한’ 인물을 한 명 선택한다(베스트셀러의 조건). 그리고 그의 내부자들(혹은 정보원들)에게 영웅적인 역할을 맡김으로써 그들의 노고를 보상한다. 반면 협력을 거부한 자들은 철저히 짓밟는다. 그러면 모든 이들이 각자 우드워드에게 와서 검사에게 불듯 술술 털어놓는 것이다. 다른 증언자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는 상황인 만큼, 그들은 경쟁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으려 할 것이다. 

게리 콘과 롭 포터도 매우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게 분명하다.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서 대단히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진 것을 보면 말이다. 게리 콘은 골드만삭스의 사장을 거쳐 트럼프 행정부에 입성했다(그의 도덕적 엄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두 잣대). 거의 모든 사안에 철저히 순응주의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그는 우드워드와 똑같은 자유무역찬성론자로, 백악관 내에서 주인의 보호주의 충동을 저지하기 위해 두 팔을 걷고 투쟁했다. 

긴박감 넘치는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는, 대통령이 서명만 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할 수도 있을 문서의 초안을 게리 콘이 집무실에서 슬쩍 빼내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눈에 이 문서는 가히 ‘국가 안보의 잠재적인 재앙’을 의미했다. 우드워드는 이른바 이런 ‘행정부의 쿠데타’에 매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는데, 사실상 이 사건은 ‘딥스테이트’(권위주의 국가에서 암약하는 민주주의 제도 밖의 숨은 권력 집단-역주)의 존재가 단순히 편집증 환자들이 상상 속에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님을 여실히 방증했다. 

자신의 소임을 완수한 게리 콘은 샬러츠빌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집회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진지하게 사임을 고심했다. 하지만 그의 보스는 그의 애국심에 호소를 하고, 결국 그는 잠시 공동의 계획을 실현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임 시기를 미뤘다. 그 공동의 계획이 바로 부유층 감세였다. 한편 백악관 내 또 다른 레지스탕스 영웅인 포터도 가정폭력 혐의로 결국 백악관을 떠나야만 했다. 우드워드에 의하면, 그는 현재 “관계회복과 치료”(6)에 전념 중이라고 전해진다.

작가는 거의 예외 없이 모든 정보원에 대해 친절한 태도를 보여준다. 사실 백악관 주인 중에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만큼 우드워드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은 이는 드물 것이다. 우드워드가 부시에 관한 책을 3권이나 저술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그중 두 권은 위인전 수준이다. 반면 아첨이 빠진 마지막 책은 이라크전쟁이 악화일로로 치닫던 시기에 출간됐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부시가 이 재앙의 유일한 책임자라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 <워싱턴 포스트>, 즉 우드워드 본인의 전투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날조사실이 그렇게 심각한 유혈사태로 이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도 이 전설의 기자에게는 전혀 불평할 일이 없을 것이다. 우드워드가 저술한 그린스펀의 전기 『마에스트로』(Simon&Schuster, 2000)는 그가 얼마나 엄격한 관료였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드워드는 그만 헛다리를 짚고 말았다. 훗날 현시대의 금융위기 발생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연방준비제도(FED)이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트럼프는 우드워드보다는 오히려 트위터에 대고 자기 생각을 털어놓기를 더 좋아한다. 그럼에도 보스를 배반함으로써 추락한 명예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기회주의자들의 밀고 덕에, 우드워드는 백악관 회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회의 참석자 개개인의 생각까지 전부 읽어낼 정도로 말이다. 그는 예전부터 증언자의 말을 정말 그대로 옮긴 것인지 자못 의심스러운 대화들을 겹따옴표로 처리하는 문체를 구사해, 책의 흥미를 높여 왔다. 그가 구사하는 이런 ‘뉴저널리즘’은 사람들을 혹하게 하는 검증된 낚시법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기 초반을 다룬 우드워드의 저서는 1991년 클린턴 부부가 ‘더블침대’에서 나눴던 대화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이듬해 대선에 ‘빌’이 후보로 나서도 좋을지 함께 저울질하고 있었다. “당신은 꼭 나가야 해.” 힐러리가 남편에게 말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남편이 묻는다. “당연하지.” 부인이 강하게 답변한다. “결과는?” “당신이 이길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그렇고말고.” 

우드워드는 이 책의 머리말을 쓰는 동안 “역사의 정밀성과 저널리즘의 동시성을 한데 결합”한 독특한 기술을 선보였다. “이 책에 나오는 대화문과 인용문은 모두 해당 대화에 참여한 사람이나 혹은 그가 기록한 메모에서 따왔다. 누군가가 무엇을 ‘생각했다’라거나 ‘느꼈다’라고 설명한 대목은 그 사람이나 혹은 그 사람에게서 직접 들은 말을 옮긴 것이다.” 이 기술은 얼마나 정밀도가 높은지 심지어 우드워드는 자기 이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이 “반쯤 그렇게 생각”(7)한 사실까지도 다 파악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우드워드에 따르면 ‘단호함이 부족한’ 전임 대통령들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하메네이(이란 최고지도자), 푸틴, 아사드(시리아 대통령)의 세계에서는 정상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리라. 이 세계가 저 야만인들 대신, ‘카리스마 넘치는 무함마드 빈 살만(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같은 총명한 지도자들로만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빈 살만은 비전과 에너지를 지녔다. 매력이 넘치는 그는 과감하고 현대적인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살아있는 저널리즘의 전설이 이런 예찬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빈 살만은 <워싱턴 포스트>지의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끄지에 대한 암살 명령을 내렸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Bob Woodward,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Peur. Trumps à la Maison Blanche)』, Seuil, 파리, 2018년. 

(2) ‘Bob Woodward’, <All American Speakers>, www.allamericanspeakers.com.

(3) Ken Silverstein, ‘Bob Woodward's Moonlighting’, <Browsings>, 2008년 6월 12일, http://harpers.org.

(4) Frédéric Autran, Charlotte Oberti, ‘우드워드가 트럼프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트럼프의 비판이 우드워드의 명예를 실추시키다(Un costard taille Woodward pour Trump)’, <Libération>, 파리, 2018년 9월 6일.

(5) Bob Woodward, 위의 저서.

(6) Tim Weiner, ‘No heroes here’,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18년 11월 8일.

(7) Bob Woodward, 『The Agenda: Inside the Clinton White House』, Simon & Schuster, 뉴욕,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