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이 된 민영화라는 망상

2019-06-28     마티아스 레이몽 l 몽펠리에 대학 경제학 부교수

‘문을 열자, 시장에 문을!’ 1980년대 이후 정부정책에 끊임없이 녹아든 유행가 가사다. 어떤 정부든 다 마찬가지였다. 코뮌(최소행정단위-역주)에서 국가 단위까지, 수많은 공공자산과 공공서비스의 관리가 민간기업의 손에 넘겨졌다. 덕분에 민간기업은 정기적인 사업수익을 챙기며 강력한 재정능력을 쌓았다. 그리고 계속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돈이 될 만한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파리 공항이나 프랑세즈데쥬(복권운영기관-역주) 같은 사업이 대표적인 예다. 정부는 수력댐 같은 중대한 사회기반시설의 관리를 포함한 공공영역을 민영화하고, 지자체의 역할을 줄이기 위해 어떻게든 유럽연합집행위원회의 힘에 기대려 한다.

 

처음에는 모두, 민영화가 마치 만병통치약이나 되는 줄 알았다. 1980~1990년대, 언론을 비롯해 전문가들과 정치인들까지 한목소리로 공공부문 개방과 민영화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소비자는 가격 혜택을 누릴 수 있고 기업은 혁신을 추진할 수 있으며, 지자체는 재원을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30년 후의 결과는 그다지 영예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민영화의 문제는 민간기업에 국고가 투입된 기업의 주식을 헐값에 사들일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1) 또한 복잡한 경쟁체제는 오히려 지자체의 비용 부담만 더욱 가중했을 뿐이다. 지난 경제사도 민영화를 변호해주지 못한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영화된 기업은 시장의 오류를 바로잡고 경제를 활성화하며, 안정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특히 한 나라의 경제정책과 산업정책을 이끄는 견인차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시카고학파에 속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로부터 깊은 영감을 받은 프랑스는 마거릿 대처(1979~1990년 집권)의 영국과 로널드 레이건(1981~1989년 집권)의 미국을 본떠 공기업의 비용 절감과 자본개방을 위한 온갖 정책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정부 당국은 국가의 자산을 마구 팔아치운 바람에, 경제 정책의 공공성을 포기한 꼴이 됐다. 프랑스 정부는 1986년, 당시 총리였던 자크 시라크가 처음으로 민영화를 추진한 이래로, 무려 1,500여 개의 회사와 1백만여 개의 일자리를 민간부문의 품에 안겨줬다. 전체 일자리 중 공무원직을 제외한 공공부문 일자리는 30년 만에 10.5%에서 3.1%로 급감했다.

 

민간에서 가능한 일은 전부 민영화해야?

20세기 말은 산업적·상업적 성격의 공공 서비스(SPIC) 부문에 경쟁이 과열된 시기였다. 하지만 헌법의 서문은 이렇게 확언했다. “일정한 자산 및 기업의 운영이 공공 서비스의 성격 또는 사실상의 독점적 성격을 지녔거나 지니게 되는 경우, 해당 자산과 기업은 모두 지자체의 소유가 돼야 한다.” 본래 프랑스 전기·가스(EDF-GDF), 프랑스텔레콤, 프랑스국영철도(SNCF)는 해당 분야의 모든 유관사업을 총괄했었다. 생산에서 유통, 인프라망 관리, 판매후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이들 기업은 국가 소유의 기업으로 경쟁사 없이 단독으로 사업을 총괄했다. 그렇기에 하나의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할 때 하나의 기업만 접촉하면 됐었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연합에 ‘왜곡 없는 자유경쟁(자유공정경쟁)’ 법규가 도입되면서, 각국 정부는 산업적·상업적 성격을 띠는 공공 서비스(SPIC) 부분에서 인프라의 운영과 관리를 서로 분리하는 한편(점차 주식회사의 형태를 띠었다), 신규 사업자들이 기존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줬다. 일례로 스웨덴의 경우, 1개 철도 노선 운영에 모두 30개 이상의 기업이 참여하기도 했다.(2) 

원래 자유주의자들도 한목소리로 오랫동안 자연독점(생산규모가 커질수록 생산단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산업 특수성으로 인해 생산규모가 가장 큰 선발기업이 다른 후발기업의 시장진입을 자연스럽게 봉쇄하게 되는 상황-역주) 분야, 즉 철도·케이블·도관·도로 등 규모의 경제 효과가 크게 일어나는 분야에는 경쟁체제를 도입하지 말 것을 주장해왔다. 이런 분야는 엄청난 투자비가 소요되기 때문에, 동일 노선을 운행하는 교통망을 2~3배나 늘린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다. 물론 사업 초기(제조)나 사업 말기(유통)에는 일부 경쟁체제를 도입할 수 있겠지만, 인프라 관리에는 사실상 경쟁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사실상의’ 자연독점 분야는 대개 공기업에 운영을 맡겨, 민간기업의 진입을 막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 철도망을 소유·관리하는 SNCF 레조와 프랑스 송전망업체 RTE다. 그러나 이미 단맛을 본 신흥재벌들은 식욕이 더욱 왕성해진 것일까. 민간기업들은 이 새로운 시장마저 개방하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결국 정부도 투자와 부채 축소의 필요성을 핑계 삼아, 어느덧 ‘고객’이 된 소비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면서까지 민간기업에 특혜를 제공했다. 심지어 2004년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는 이렇게 선언하기까지 했다. “민간부문에서 가능한 일은 전부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3)

 

이익은 민간의 것, 책임은 공공의 것

이런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가장 불공정한 분야가 바로 고속도로 사업이다. 비록 일부 아스팔트 ‘조각’은 여전히 공공 부분의 소유로 남아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수익성 높은 노선은 저마다 민간기업들의 손아귀로 넘어갔다. 사실 이 같은 독점체제에 반대해온 자들이 바로 경제학자, 그것도 특히 자유주의의 맹렬한 수호자들이었다. 그들은 제한된 수요를 대상으로 한 민간의 독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겼다. 이는 마치, 고립된 섬에 있는 유일한 상점이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생필품을 판매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국가는 고속도로를 팔아치워 국고를 채우기는커녕, 정기적인 사업수익만 잃고 말았다. 정부는 고속도로에 대한 사업권을 총 148억 유로를 받고 민간에 넘겨줬는데, 사실상 회계감사원이 평가한 금액은 240억 유로에 달했다. 말하자면 민간에 사업권을 내준 순간부터 이미 정부는 92억 유로의 손실을 본 셈이다. 2006~2011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다른 비금융 회사들은 한동안 순이익의 정체를 면치 못한 반면, 고속도로 회사들은 순이익이 연간 5.1%나 증가하는 쾌거를 올렸다. 

게다가, 이렇게 정부에 손해를 끼쳐가며 올린 수익은 기업에 재투자 되지 않았다. 곧바로 주주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2006년, 9,000km에 달하는 고속도로 구간에 대한 운영이 뱅시·에파주·아베르티 등의 기업으로 넘어간 이후, 이들 회사가 주주들에게 지급한 배당료는 무려 270억 유로에 달했다. 국고에 채워져야 할 정기적인 수입이 고스란히 날아간 것이었다.(4) 게다가, 고속도로 통행료도 이후 인플레이션 수준을 상회하는 수준으로 끊임없이 인상됐다. 2013년 회계감사원에 의하면, 민간기업에서 받은 이 두둑한 선물은 사실상 공익이나 가장 기초적인 투명성이 무시된 결과였다.(5) 그러니 부유층에 대한 하사품이자 특혜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톨게이트가 ‘노란조끼’ 운동 초기부터 이미 시위대의 타깃이 돼온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인 것이다.

영국의 경우, 수도를 관리하는 민간기업들은 수도관 시설에 대한 재투자는 등한시한 채 주주에게 무려 전체수익의 95%를 나눠주는 등 이미 민영화의 폐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경제 분야 전반을 민영화해온 영국은 오늘날 민영화의 폐해를 몸소 깨닫고는 다시 국영화 추세로 돌아가고 있다. G4S사가 인수해 2011년부터 운영을 맡아온 버밍햄 교도소로부터 시작해, 이스트코스트메인라인 철도노선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는 재국영화가 한창 진행 중이다.  

영국의 사례는 프랑스 등 이웃국가에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프랑스 참사원과 코페르니쿠스 재단의 일원으로 활동 중인 이브 살레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공공서비스의 소임을 다 하고 있는지를 감시할 규제자가 존재한다는 핑계는 이제 경험을 통해 무용지물임이 드러났다. 규제자에게는 초국적 기업의 행동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다.”(6)

사실 지난 20년간의 에너지 가격과, 특히 통신 가격의 추이를 객관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7) 소비양식의 변화를 함께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사실 한 가지는 경쟁의 도입으로 공동체가 책임지게 된 비용은 사전에 기대했던 이익의 수준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공공서비스의 해체에 따른 공동체의 손실은 회계장부에 반영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과거 경쟁이 허용되지 않던 분야에 신규 사업자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경쟁체제 도입 후 발생하기 시작한 이 비용은 대개 서비스 가격에 그 여파가 반영되곤 한다. 이를테면 (때로는 연구개발비보다 높은) 마케팅·홍보비와 로비활동비가 대표적이다. 2017년 미디어 광고비 지출은 오랑주가 3억 290만 유로, EDF가 1억 260만 유로, 앙지가 990만 유로, SNCF가 720만 유로였다. 또한 EDF는 유럽의회에 대한 로비 인력 10명을 종일제로 고용하기 위해 무려 2백만 유로를 쏟아부었다.(8) 공공서비스 개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었던 재원이 고스란히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만 셈이다.  

 

자살하는 노동자, 미로 속을 헤매는 소비자

한편 과거 공기업이 올린 수익은 어떤 형태로든 고스란히 공공부문의 소유로 남았다. 하지만 민간사업자가 바통을 이어받은 뒤로, 모든 수익은 오로지 주주의 배당금으로만 흘러 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경쟁력 강화를 위한 비용절감은 노동자와 경영자에게 짐이 될 뿐이다. 프랑스텔레콤(2013년 오랑주로 변모)에서부터, 라포스트(우체국서비스), SNCF 등에 이르기까지, (이미 민영화가 됐든, 그렇지 않든) 모든 기업에서는 인력 수가 현저히 감소하고(1985년 이후 SNCF 일자리 10만 개 감소), 노동조건도 열악해지면서(2000~2001년 프랑스텔레콤 노동자 연쇄자살사태가 여실히 증명), 서비스의 질이 형편없는 수준으로 낮아졌다. 

결국 이런 상황이 또다시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빌미가 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또한, 소비자는 카프카식 미로 속에서 헤매는 신세가 됐다. 예를 들어 디렉트에너지의 전력은 EDF나 앙지가 생산하고, RTE가 송전하고, 에네디스가 배전한다. 하나의 서비스를 활용하기 위해 여러 기업을 상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소비자가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화와 민영화는 결국 시민들에게는 혼란을, 신흥재벌과 꼭두각시들에게는 탐욕을 더해주는 역할을 하게 됐다. 

국가는 더 이상 경제학자 제임스 갈브레이스의 말처럼 이념적 계획만 추구하지 않는다. 국가는 이제, “개인에게든, 집단에든, 가장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동시에, 그들의 권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며, 문제가 일어났을 때도 가장 손쉽게 재정을 충당할 가능성이 높은 방식으로 운영”(9)되는 것을 목표로 삼기에 이르렀다. 

 

 

 

글·마티아스 레이몽 Mathias Reymond
몽펠리에 대학 경제학 부교수. 주요 저서로는 프랑수아 미라벨과 공저한 『도시교통경제학(Economie des transports urgbain)』(La Découverte·파리·2013)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투표하라!(Au nom de la démocratie, votez bien!)』(Agone·마르세유·2019)가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Serge Halimi, ‘La flambée des privatisations(민영화의 바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1994년 2월호. 

(2) Julian Mischi & Valérie Solano, ‘Trente-six compagnies pour une ligne de chemin de fer 부유층 위한 TGV 탓에 사라지는 작은 역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6년 6월호.

(3) Marc Landré, Gilles Tanguy, ‘Les onze réformes qui mettent notre Etat sous pression(우리의 국가에 압박을 가하는 11개 개혁)’, <렉스팡시옹(L'Expansion)>, 파리, 2004년 4월 1일.

(4) Grégoire Allix, ‘La privatisation des autoroutes, un traumatisme originel(고속도로 민영화, 본원적 트라우마)’, <르몽드>, 2019년 4월 8일.

(5) Philippe Descamps, ‘De l'autoroute publique aux péages privés(공공 고속도로에서 민영 톨게이트로)’, <르몽드>, 2012년 7월. 경쟁체제/ Martine Orange, ‘Autoroutes: les dessous des relations entre l'Etat et les concessionnaires(고속도로: 국가와 사업자 관계의 이면)’, <Mediapart>, 2019년 1월 13일, www.mediapart.fr.

(6) Yves Salesse, ‘Service public et marché(공공서비스와 시장)’, <Regards croisés sur l'économie(경제를 보는 교차시선)>, 제2호, La Découverte, 파리, 2007년 9월.

(7) Aurélien Bernier, ‘Electricité, le prix de la concurrence(전기, 경쟁 가격)’,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5월호.

(8)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www.integritywatch.eu.

(9) James K. Galbraith, 『약탈국가. 어떻게 우파가 자유시장을 포기했는지, 그리고 왜 좌파도 그렇게 해야 하는지(L'Etat prédateur. Comment la droite a renoncé au marché libre et pourquoi la gauche devrait en faire autant)』, Seuil, 파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