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유지’ 앞세운 공권력의 위선

2019-06-28     뱅상 시제르 l 파리 낭테르 대학교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폭력 시위대 방지법’을 헌법위원회에 회부했으며, 국회에서는 이미 찬성 표결이 완료됐다. 지난 3월 16일 샹젤리제에서의 폭력 사태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질서유지’라는 미명 하에 군대까지 동원했다. 이렇듯 극도로 강경한 진압조치는 공화주의와 권위주의가 맞물린 프랑스 공권력의 역사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인권선언의 국가’인 만큼, 프랑스에서 치안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2019년 2월 말 유럽회의에서는 “시위 진압 기동대원들은 공권력의 집행자로서 각별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들의 1차적 임무는 시민을 보호하고 인권을 수호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주지해달라”고 프랑스 정부에 촉구했다. 유럽회의는 또한, “노란조끼 시위대의 집회 때 시위대가 입은 부상의 강도와 부상자 수를 볼 때,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동원된 방식이 인권 수호와 부합한 것인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1)

 

‘상 퀼로트’에서 노란 조끼까지

지난 몇 달간 전국에서 들끓은 ‘노란 시위대’의 분노에 대응하는 정부의 진압방식이 그렇게 이례적인 건 아니었다. 약 3,000명이 체포된 2005년 파리 교외의 소요사태, 1968년 봄의 대규모 시위 등 정부가 강경 진압을 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는 강도가 한층 높았다. 2019년 2월 12일 국회에서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노란 조끼 시위대의 집회가 시작된 이래 총 1,796명이 법원 판결을 언도받았으며, 판결 대기 중인 사람의 수도 총 1,422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렇게 기를 쓰고 처벌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지가 그리 놀랍지는 않다. 정부가 바로잡으려는 ‘공화국의 질서’라는 것 또한, 엄밀히 말하면 허상에 불과하다.(2) 오늘날 프랑스의 제도적 장치들은 공화정의 법치 전통에 따른 산물이다. 그러나 공화주의 법치 전통은 그와 상반되는 억압적인 권위주의와 충돌해 생겨난 결과물에 가깝다. 프랑스 대혁명 초창기의 입법의회 의원들은 앙시앵 레짐(구체제 왕정)의 진압 방식과 상반되는 방식을 구축했으며, 이는 삼부회 진정서에서 가장 자주 제기되던 불만들, 즉 불평등하고 자의적이며 과도한 진압방식의 병폐를 없애려던 것이었다.(3)

따라서 1789년에 선포된 공화주의 형법에서는 자유를 제1원칙으로 하는 기본적 욕구를 구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를 위해 입법의회에서는 ‘안전(Sûreté)’이라는 개념을 구상해냈는데, 그 요지는 정부 당국이나 유력자의 모든 권력남용으로부터 시민의 권리 일체를 법적 보호 하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정부 외 권력자의 권력남용까지 제한했다는 점에서 혁명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오로지 법만이 개인의 자유 행사권을 제한할 수 있으며, 아울러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을 때에도 법이 나서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이는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과 (프랑스 최초의 근대 법전이었던) 1791년 형법에서 다양한 원칙으로 변형돼 나타났다. 그에 따라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제정·공포된 법에 의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처벌 받을 수 없다”는 인권선언 8조 적법성의 원칙에 두 가지 원칙이 더 더해졌다. 그것은 행위에 상응하는 수준의 진압을 요구하는 비례성의 원칙을 내포한 불가피성의 원칙과, 판사에 의한 통제 원칙이다.(4) 

계몽사상, 특히 이탈리아의 형법학자 체사레 베카리아의 사상을 직접 계승한 이 ‘자유주의’ 정신은 공포정치 시기 이미 극도로 훼손됐고, 나폴레옹의 황제 등극 이후 본격적으로 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비판적 경향이 생겨났다. 전제 정권이 수립된 만큼 정부의 자의적인 처벌권을 회복하고 다시금 과잉진압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죄형법정주의의 적법성에 관한 한, 나폴레옹은 전혀 그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프랑스 최고행정법원인 국참사원(Conseil d'État)에서 나폴레옹은 ‘해당 행위의 범죄성 여부를 엄격하게 정의하는 규정에 따르는 판사들의 엄정한 판결 방식’을 비판했는데, 이는 ‘법에 명시되지 않은 모든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5)

그렇다고 공화주의 원칙에 대한 반대 경향이 표면적으로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나폴레옹을 ‘혁명 계승자’로 보려는 (또 하나의 신화적) 담론이 공식화된 것에 더해, 공화주의 사법질서가 정착되면서 특히 자유주의 부르주아 계층이 일부 혜택을 누렸고, 이에 따라 1810년에는 1791년에 천명된 주요 원칙들을 그대로 채택한 새로운 형법이 선포된다. 하지만 제정 시대에 통합된 이 형법에서는 형사소송의 예심단계에 관한 내용을 필두로 다시금 자의적인 요소들이 도입됐다. 

 

형벌의 강화, 구체제의 부활?

“구체제의 모든 예심절차가 되살아난 것이다. 예심은 비밀리에 서명으로 진행됐고, 예심단계에서 피의자는 변호인을 곁에 둘 수도 없었다.”(6) 또한 죄의 수준에 맞는 형벌이 부과돼야 한다는 비례의 원칙도 파기됐고, 특히 몸에 쇠고리를 채우고 낙인을 찍거나 신체를 절단하는 등의 체형이 부활했다. 제정 형법안을 쓴 기-장-밥티스트 타르게의 설명에 의하면 이런 체형은 “완고하고 냉혹하며 야만적이고 잔인한 품성을 지녔으며, 도덕성이 결여된 채 오로지 본능에만 의존해 행동하는 이들”을 위협할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7)

그에 따라 혁명 정신에 입각한 공화주의 모델이 권위주의 전통의 반대에 가로막힌 형벌 체계가 수립됐다. 뿌리 깊은 전제주의의 변형인 것이다. 공화주의의 탈을 쓴 이 권위주의 형법의 지지자들은, 계몽주의 사상에 뿌리를 둔 기존의 형법안을 대놓고 반대하기보다는 우회적으로 제재의 불가피함을 내세웠다. 예를 들어 테러 등 중범죄의 심각성을 내세우거나, 무수한 경범죄들의 폐해를 앞세워 인권 침해를 정당화했다. 두 개의 상반된 진압 논리를 공존시킨 이 기이한 집합체가, 공화주의 형법의 근대적 가치를 계승한 것처럼 인식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구조적으로 보면, 프랑스 형벌 제도의 역사는 이런 대립의 결과물이다. 자유주의 공화정의 전통과 권위주의 전통이 끈끈하게 맞물려 대립하면서 나온 결과인 것이다. 물론 쉽게 단언할 문제는 아니다. 형벌 제도의 변천은 민주주의 발전 및 쇠퇴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가령 7월 왕정 때 1832년 4월 28일 수정 형법이 공포됨에 따라, 체형이 완전히 폐지되고 정상참작 조항이 신설됐다. 제3공화국(1875~1940)이 열리고 꽤 오래 건재함에 따라 형법 자유주의도 점차 힘을 얻었다. 

물론 재범자의 유배형에 관한 1885년 5월 27일 법에서 형벌의 권위주의적 측면이 보이긴 했다. 이 법에서는 식민지로 보내지는 종신형까지 규정해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점차 형사권이 제한되고 형사처벌이 완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에 제3공화국 하에서 1881년과 1884년, 1901년 제정된 주요 법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보장됐다. 그리고 1885년 8월 14일 법에서는 가석방 제도가 신설됐으며, 1891년 3월 26일 법에서는 집행유예의 가능성이 열렸다. 이어 1897년 12월 8일 법에서도 예심 시 변호인을 대동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공화주의의 원칙에 따른 자유주의 형법의 전통은 2차 세계대전 직후에 파시즘 정부의 만행과, 특히 나치 정권하에서 지속된 대량학살에 반대하며 태동한 유럽 인본주의 운동에서도 중요한 입지를 차지했다. 대량학살 같은 만행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1940년 11월 4일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를 위한 협약’ 제5조에서는 ‘자유와 안전에 관한 권리’가 엄숙히 천명됐다. 1945년 2월 2일에는 청소년 범죄 관련 명령이 채택됨에 따라, 미성년자의 형사 재판에서 범죄자의 계도가 우선시되는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20세기 후반에도 프랑스와 유럽에서는 공화주의 모델의 적용이 가속화된다. 그에 따라 변호권이 신장됐으며, 1975년에는 구금 대체 형벌이 확립됨으로써 처벌도 완화됐다. 아울러 ‘소소한 일탈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자제하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확산됐다. 이 같은 진보적 변화의 양상을 보면, 형법 자유주의가 제대로 확립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권위주의 전통은 늘 우리의 사법 질서에 영향을 끼치려 노력해왔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특히 1970년 6월 8일에 공포된 법에서는 ‘전문 폭력 시위대’의 근절을 추구할 만큼 권위적인 양상이 두드러졌다. 

게다가 불법 집회에서 저지른 파괴 및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주동자뿐 아니라 단순 참여자에게까지도 민형사상의 책임을 묻고 있다. 특히 노조 책임자를 신속히 체포함으로써 “지극히 평화로운, 나아가 평화주의적인 집회 주최자까지 처벌하도록” 했다.(8) 뿐만 아니라 1981년 1월 2일 채택된 ‘치안 및 자유’에 대한 법에서도 권위주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이 법은 사법경찰의 권한을 확대하고, 즉각 출두명령의 전신인 현행범 체포 절차를 보편화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일부 경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었다.

이 법은 집행 당시에 특히 많은 지탄을 받았고, 좌파 정권 집권 후 1983년 6월 10일 법에 의해 곧 폐지됐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부터는 치안 담론이 크게 대두됐고, 권위주의 전통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는 대대적인 경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가 활발히 전개된 데 따른 것이었다.(9) 따라서 이제는 ‘치안권’을 남용하며 ‘피해자’의 입장만을 강조하고,(10) 노골적으로 속내를 드러내는 권위주의 논리가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기세로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전례 없는 입법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

 

복면은 기소감, 집회 참여는 징역감
 
뿐만 아니라, ‘공권력의 행사를 제약하는 요소’를 없애라는 요구까지 나왔다. 이는 공권력을 방해하는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권리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소리다. 지난 20여 년간 경찰과 검찰에게 주어진 특권뿐만 아니라 행정당국의 진압권, 특히 시장과 경찰청장의 권한은 계속 강화됐다. 이런 치안 논리는 불가피하게 상위의 사법적 보호 조치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즉 헌법적 가치, 혹은 유럽 연합에서 내세우는 사법 정의와 일맥상통하는 형법 자유주의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입법 주체가 피의자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구금 범위를 확대하려는 경향은 2010년 6월 30일 헌법 위원회에 의해 저지됐다. 2008년과 2009년 유럽연합 인권 법원에서 다수의 법령이 발포된 뒤 취해진 조치였다. 법령에 따르면 구금 상태에 처한 모든 사람은 심문 중 변호사를 대동할 권리가 있다.(11)

오늘날 정부의 진압 방식에 대한 이해와 분석은 바로 이런 특수한 맥락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정부가 ‘노란조끼’ 집회의 폭력 사태에 대응하는 방식에서도 권위주의 전통이 두드러지는데, 권위주의적 성격은 ‘예방차원’을 앞세운 불심검문과 즉각 출두 명령의 남발 등 과잉진압 조치에서 잘 드러난다.(12) 공화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자유를 제한하는 이런 조치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으로, 이는 안전한 수사를 보장하거나 판사에게 무사히 피의자를 인도하기 위한 경우에 한해서만 정당화된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정부 입장에서 보다 쉽게 질서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실제로 정부는 복면을 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소할 방침이다. ‘집회 시 공공질서를 확보 및 강화하기 위한’ 법안(2019년 2월 5일 국회 수정안) 제4조의 내용에 의하면, “공공대로에서 열리는 집회 인근에서 공공질서를 흐렸거나, 혹은 그럴 위험이 있는 집회가 끝났을 때”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은 공공질서에 지장을 준 혐의로 기소될 수 있다. 이 모호한 문구를 보건대, 이는 형법의 적법성과 불가피성 원칙을 무시한 처사다. 게다가 설령 그 합헌성 검토가 끝나더라도 차후에 경찰이 더 많은 사람을 검문할 권한을 줄 수 있다.

경찰의 과도한 조치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공권력의 남용 행태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한동안 부인해왔으나 경찰에 의한 폭력사태가 적지 않았다. 내무부에서는 경찰에 대한 조사와 관련해 진행 중인 기소 건수가 133건임을 공식 발표했다(크리스토프 카스타네, France Inter, 2019년 2월 10일). 공공질서 측면에서 프랑스의 상황이 특수하다면, 프랑스 시위대가 유난히 폭력적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독일의 신나치주의자나 영국의 훌리건들과 비교하면, 프랑스의 시위대는 양호한 편에 속한다. 따라서 문제는 단계적 진압 방식보다 어떻게든 공공장소를 장악하겠다는 경찰의 권위주의적인 사고에 있다.(13)

권위주의 전통은 공권력이 판사의 통제권, 특히 형사 재판관의 통제권을 최대한 제한하려는 경향에서도 드러난다. 형사사건에 판사가 개입할 경우, 대개 절차가 느려지고 진압 당국의 활동이 마비되는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 ‘판사 따돌리기’ 행태는 ‘준 형사진압’, 즉 ‘강제조치’의 확대로 나타난다. 행정당국이 사법당국의 통제 권한 밖에서, 정부에 부여된 기존의 권한을 훨씬 넘어서서 각종 위반사례에 대해 경고 및 제재를 결정하고 시행하는 것이다. 형사소송권 및 그에 보장된 권리를 가로채는, 이런 정부의 진압 형태는 지난 10년간 눈에 띄게 늘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스포츠 경기에서 공공질서에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일부 응원단에게 장내 진입을 금지하기 위해 적용됐다.(14) 그러나 2015년 11월 긴급 사태가 선포된 이후에는 테러 조직과의 연관성이 미미한 사람들에게까지 폭넓게 확대 적용된다. (국내 치안을 강화하고 테러를 척결하기 위한) 2017년 10월 30일 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내무부 장관의 판단에 따라 그 행동이 “치안 및 공공질서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의심 인물에게 거주지를 지정하거나 (밤낮없이) 가택수색을 할 가능성까지 열렸다. 테러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나 집단, 혹은 단순한 ‘견해’와 연관성이 있다면 이런 조치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국내 치안법 L.228-1조 및 L.229-1조). 

“집회 시 공공질서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한” 국회 발의 법안에는 정부의 견해가 다분히 반영돼 있다. 소위 ‘전문 폭력 시위대 방지법’이라고 언론에서 선전을 해대는 이 법안 역시 동일한 논리를 따르고 있다. 대다수 상원의원들이 지지한 이 법안은 “사람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중대한 피해를 야기하고, 상당한 재산 피해를 불러오는 공공장소에서의 집회 참여 혹은 이런 집회에서의 폭력적 행위로 공공질서에 중대한 위협을 가하는 경우” 경찰이 특정인에게 시위 참여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15) 

물론 1970년대와 비교할 때, 이 정도의 규정은 관대한 것으로 비칠 수 있다. 1970년에는 폭력시위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금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전통의 특징인 자의적 해석은 여전하다. 지난 2월 26일 마크롱 대통령은 “폭력시위 현장에 갔다는 것만으로, 최악의 사태에 가담한 동조자나 다름없다”는 견해를 피력했기 때문이다. 

자고로 형사처벌의 맥락에서 자유를 제한하는 조치들을 시행할 때에는 범법행위의 증거가 제시돼야 함에도 지금의 정부는 위협적이라고 판단되는 누군가의 ‘행동’ 하나만으로도 시위나 집회 참여 자체를 금지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폭력사태나 시설물 파괴 행위를 일으킨 당사자가 아님에도, 그런 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모호한 규정 때문에 정부진압의 범위는 비단 집회에 끼어든 전문 폭력단이 아닌 일반인으로까지 대폭 확대될 수 있다. 

게다가 집회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6개월의 징역에 처할 수 있으며, 이런 조치가 악용될 위험도 있다. 2015년 11월과 2017년 10월 사이 테러척결을 위한 긴급사태 발효 시 집행된 거주지 지정 명령 및 가택수색 명령은 얼마 후 “과격한 반체제 운동권”에 속해있다던 생태운동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됐기 때문이다.(16) 

 

폭력적인 진압은 폭력을 악화시킨다

정부가 휘두르는 이런 금지 형태의 통제권은 사법적 조치보다 훨씬 자의적이고 포괄적이다. 형사 재판관은 자신의 관할 하에 있는 강제조치에 대해 무조건적인 통제권을 행사하지만 행정 재판관은 요청이 있을 때만 특정 조치의 적법성을 평가하고, 실질적으로 이런 판단은 해당 조치가 내려지고 수개월 후에 이뤄진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사람은 ‘급속 심리’ 절차를 통해 자신이 제출한 청원서가 시급히 검토되도록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따른 비용 문제, 또는 법적 지식 차원의 문제 외에도 ‘필요한 경우, 집회 중에도 집회 금지 명령이 고지될 수 있다’는 내용이 법적으로 명시돼 있다면, 청원을 해도 소용없게 된다. 게다가 국참사원에서도 ‘백지 의견서’, 즉 정보부가 작성한 문서 하나만으로도 (진술 내용에 대한 타당성 증명 없이) 이 같은 조치의 법적 근거가 마련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2015년 12월 11일 판결). 

이번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지난 3월 12일 상원에서 채택됐다. 따라서 우리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수호할 책임이 있는 상위의 사법당국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남아있다. 특히 헌법위원회와 유럽 인권재판소의 해석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권위적인 탄압 논리에 대한 이들 기관의 반대 입장은 양면성을 지닌다. 물론 이들 기관이 진압범위를 넓히려는 입법기관의 움직임에 맞서서 우리에게 필수적인 방어막 역할을 해주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기관이 새로운 법 규정의 우려스러운 부분들을 규제하거나 최소한 무력화시켜줄 것을 기대해볼 수 있다. 

한편, 이 상위 사법기관들이 정부의 진압논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결국, 상위 사법기관들은 시민권의 보장과 정부진압의 ‘필요성’ 사이에서 모호하게 ‘균형’을 유지하려고 한다.(17) 이에, 20여 년 전부터 이들 기관은 공권력의 지속적인 확대를 견제하고 일부 보장 권리를 지키려 하면서도 저들의 권위주의 원칙을 확립시켜주는 역설적인 행보를 보여 왔다.(18) 상위 사법기관이 이 같은 모호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권위주의 논리를 따르는 데 급급할 것이 아니라 초창기 공화정의 형법 자유주의 원칙을 되살려야 한다. 

오래전부터 범죄 사회학에서는 ‘폭력적인 진압은 서로의 폭력성을 낮추지 못하며,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라고 분석해왔다. 1789년 대혁명의 의의를 되살리려면, 경제적·사회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시민적 차원에서도 민주적인 발전의 행보가 이어져야 한다. 오늘날 광장으로 몰려나온 성난 노란 조끼 시위대가 보내는 메시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글·뱅상 시제르 Vincent Sizaire
파리 낭테르 대학 교수. 주요 저서로 『치안을 위시한 기만으로부터의 해방(Sortir de l'imposture sécuritaire』(La Dispute, Paris, 2016) 등이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Mémorandum de la commissaire au droits de l’homme sur le maintien de l’ordre et la liberté de réunion dans le contexte du mouvement des “gilets jaunes” en France’(프랑스 ‘노란조끼’ 사태에서 질서 유지 및 집회의 자유에 관한 인권위원의 제안서), 유럽의회 인권위원, 스트라스부르, 2019년 2월 26일.

(2) Roland Barthes, <Mythologies>, Seuil, Paris, 1957. 

(3) Pierre Lascoumes, Pierrette Poncela, Pierre Lenoël, <Au nom de l’ordre. Une histoire politique du code pénal(공공질서를 위해: 형법의 정치사)>, Hachette, Paris, 1989. 

(4) Cesare Beccaria, <Traité des délits et des peines(범죄 및 형벌 개론)>, Flammarion, coll. <GF>, Paris, 2006(초판: 1764).

(5) Jean-Marie Carbasse, <Histoire du droit pénal et de la justice criminelle(형법과 형사정의의 역사)>,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Droit fondamental’ 컬렉션, Paris, 2000.

(6) 위에서 언급한 책.

(7) Guy-Jean-Baptiste Target, ‘Exposé des motifs du code pénal(형법의 근거)’, Paris, 1810.

(8) Charles de Cuttoli, 법률위원회 보고서 제112호, 프랑스 상원, Paris, 1981년 12월 10일.

(9) Laurent Bonelli, 『La France a peur. Une histoire sociale de l’insécurité(불안한 프랑스: ‘치안’의 사회사)』, La Découverte, Paris, 2008, Loïc Wacquant, 『Les Prisons de la misère(고난의 감옥)』, Raisons d’agir, Paris, 2015.

(10) Denis Salas, 『La Volonté de punir. Essai sur le populisme pénal(처벌의 의지: 형사 포퓰리즘에 관한 논고)』, Fayard, Paris, 2005.

(11) 2011년 4월 14일 법에 의해 개혁안이 제정됐다.

(12) Raphaël Kempf, ‘De la violence policière à la violence judiciaire(경찰 폭력에서 사법 폭력으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2월호‧한국어판 2019년 4월호.

(13) Olivier Fillieule, Fabien Jobard, ‘Un splendide isolement. Les politiques françaises du maintien de l’ordre(질서 유지 위한 프랑스의 독주)’, <La Vie des idées>, 2016년 5월 24일, https://laviedesidees.fr

(14) 스포츠법 L. 332-16조.

(15) 국회 수정 법안 제286호 2조, 2019년 2월 5일.

(16) Stéphanie Hennette-Vauchez 외, ‘L’état d’urgence au prisme du contentieux: analyse transversale du corpus(긴급사태의 다양한 얼굴: 적용 법문 분석)’, 『Ce qui reste(ra) toujours de l’urgence(긴급사태 이후 무엇이 남았나)』, Institut universitaire Varenne, Coll. <Colloques et essais>, Paris, 2018.

(17) ‘Une question d’équilibre? À propos de la décision du Conseil constitutionnel n° 2017-695 QPC du 29 mars 2018(균형의 문제인가? 헌법위원회의 2018년 3월 29일 결정 제2017-695 QPC호에 관해)’, <La Revue des droits de l’homme>, 2018년 5월 23일, https://journals.openedition.org/revdh/

(18) Anne-Cécile Robert, ‘Conseil constitutionnel français Vous avez dit sages? 헌법재판소의 불편한 위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