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군보다 더 센 이슬람혁명수비대?
이란의 이원화된 군대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미국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이란 정규군(이슬람공화국군)은 해외에서의 전투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반면, 이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어떤 지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9년 5월 5일, 미국은 ‘아브라함 링컨’ 항공모함과 폭격기 부대를 페르시아만에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백악관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의 군사적 조치는 악화일로에 처한 이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 이후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만에서 긴장이 계속 고조됐다. 또한 미국의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에서는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여러 척의 유조선이 사보타주 공격을 받은 사건과, 예멘의 무장조직인 후티가 활동을 재개한 배후에는 이란이 있다고 확신했다. 볼턴 보좌관은 “미국은 이란 정권과 전쟁을 할 생각이 없다. 하지만 대리군의 공격이든,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공격이든, 이란 정규군의 공격이든, 그 어떤 공격에도 대응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미국의 걸프 동맹국, 이스라엘이 이란과 맞붙는 군사적 대립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볼턴 보좌관의 강경한 발언에서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란을 공격하는 모든 국가는 이란의 이원화된 군대와 맞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강조했다. 이란의 이원화된 군사체제 성격을 이해하고, 미국이 해당 지역 내에서 새롭게 군사 개입을 할 경우에 이란이 이에 대처할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40년 전 이란의 ‘샤(황제라는 뜻-역주)’가 퇴위한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 봐야 한다.
샤의 퇴위 이후, 왕실친위대는 자신들의 중립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이들은 1979년 2월 12일에 고위 장교를 중심으로 잔인한 숙청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여전히 왕실친위대가 샤의 퇴위 후 모로코에 망명 중이던 황제에게 충성하고 있다고 의심했다. 이후 왕실친위대는 ‘이슬람공화국군(Artesh)’으로 이름이 바뀐 뒤, ‘물라(이슬람 종교 지도자)’의 직속 군 조직인 ‘파사다란’의 직접적인 감독 하에 놓였다. ‘파사다란(Pasdaran)’은 이슬람혁명수비대를 말한다.
이슬람혁명수비대, 군대로 승격하다
파사다란은, 이란 혁명을 이끌었던 최고지도자, 아야툴라(시아파 회교의 지도자-역주) 루홀라 호메이니를 지지했던 민병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이슬람공화국군이 조직된 이후부터 정규군인 이슬람공화국군을 견제하는 기능을 하게 됐고, 쿠데타에 대한 모든 시도를 저지하는 역할을 맡았다. 사실 이란 혁명으로 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의 시기는 여러 번의 쿠데타 시도로 점철돼 있다. 그럴 때마다 이슬람혁명수비대가 그 시도를 저지했고, 그 후에는 피비린내 나는 숙청이 뒤따랐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이 수립된 지 채 1년 반도 되지 않았던 1980년 9월 22일,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자 이슬람공화국군은 신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할 기회를 얻었다. 은퇴했던 장교들이 다시 동원됐고, 수감 중이던 군인들은 석방돼 전투 부대에 배치됐다. 미국에서 훈련받았다는 이유로 의심을 샀던 파일럿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슬람공화국군은 1982년 5월에 이라크군이 점령했던 호람샤르 항을 수복했다. 이는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분수령이 됐고, 이란은 1982년 여름에 이라크가 점령했던 모든 곳을 탈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 ‘물라’ 정권은 곧바로 이슬람공화국군을 냉대했고, 이슬람혁명수비대는 군사적 정당성을 얻었다. 광신적인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전쟁을 계속하기를 원했다. 결국 이라크에 대한 총공세가 이어졌고 그 결과는 끔찍했다.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고 이란-이라크 전쟁은 승자 없이 1988년 8월 20일에 끝났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로 이란군의 체제는 이원화돼, 각기 다른 역할을 맡게 됐다. 1979년 헌법 제143조(1989년에 개정됨)에 의하면 이슬람공화국군은 “독립을 책임지며, 영토를 온전한 상태로 보존하고 이슬람공화국의 질서를 책임진다.” 헌법 제150조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는 “… (다른 군대 조직과) 우애를 가지고 협력해 혁명과 혁명의 성취를 수호하는 역할을 계속할 수 있도록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이슬람공화국군은 육군, 공군, 해군 및 방공군(2007년부터 운영)의 네 축으로 이뤄진 전통적인 방위군이다. 이슬람공화국군의 주요 임무는 국경 유지와 영토 수호다.
반면, 이슬람혁명수비대는 1985년에 민병대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군대로 승격됐으며, 이슬람공화국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관할 하에 있으며, 2019년 4월부터 후세인 살라미 사령관이 지휘하고 있다. 가장 뛰어난 신병을 모집하며, 영구 비대칭전(상대방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상대방과는 다른 수단과 방법으로 싸우는 전쟁 양상을 말하며,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 ‘게릴라전’이다-역주) 이론을 극단적으로 따르고 있다. 직속 특수부대인 알 쿠드스 부대(아랍어와 페르시아어로 ‘예루살렘’이라는 뜻)까지 포함하면 병력이 15만 명에 달하는 이슬람혁명수비대는 시리아(바샤르 알아사드 측), 리비아(헤즈볼라를 지지하는 측), 이라크(시아파 민병대 측) 등에서의 해외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구식 군 장비, 그러나 탁월한 시스템
이와 반대로, 이슬람공화국군에는 국경을 넘어선 곳에서 버틸 만한 물적 수단이 부족하다. 따라서 적군이 반격할 경우, 이슬람공화국 공군은 자군의 부대도 지킬 수 없고, 영공을 장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슬람공화국군은 18개월에서 24개월의 병역의무를 이행한 20만 명의 파견대원들을 포함해 약 35만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있어 육상에서의 기반이 탄탄하다. 이슬람공화국군의 군 신조를 요약해놓은 정식 문서는 없지만, 이란 지도자들이 이라크에 승리를 거둔 공적을 치하했던 발언을 보면, 이슬람공화국군의 ‘회복성’을 강조한 것을 알 수 있다. 1980년 이라크 침공이라는 충격을 이겨내고, 수개월 간의 끔찍한 전투 끝에 상황을 반전시켰던 것은 이슬람공화국군의 정체성을 이루는 근간이 됐다.
따라서 이란을 공격할 생각을 하는 국가는 명심해야 한다. 이란을 공격할 경우, 국가를 위해 동원된 이란 국민들, 승리를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이슬람공화국군과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해외에서 다수의 우수한 군대에 맞서 집요하게 공격하고, 상대편의 경제적 이익을 끊임없이 위협하도록 훈련받은 이슬람혁명수비대와도 싸워야 한다. 걸프만에는 유조선, 담수화 플랜트, 외국 군함 등 이들의 사냥감이 될 만한 것들이 많다.
이슬람공화국군과 이슬람혁명수비대가 각각 방어와 공격을 담당해 역할을 이원화된 것은 영공 수호에서도 드러난다. 이슬람공화국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는 65기에 불과하며, 그중에는 샤 통치 시절의 구식 전투기(F-5 전투기, F-4 전투 폭격기)도 있어 전력이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이슬람공화국군은 레이더 영공 수호에 있어서 러시아의 초지평선 레이더 레조난스(Rezonans), 패시브 센서 시스템 아브토바자(Avtobaza)와 다수의 러시아 및 중국제 레이더 등 전 세계적으로 탁월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란은 이론상으로 스텔스 항공기를 감지할 수 있으며, 2016년 러시아의 대공 미사일 시스템 S300을 도입해 사거리 200km 내의 전략적 요충지를 방어할 수 있다. 이슬람혁명수비대는 모든 공격을 와해시킬 수 있는 탄도 미사일 개발을 목표로 삼고 있다. 현재 이란이 보유한 미사일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이슬람혁명수비대가 최대 사거리가 500km에 달하는 샤하브 1(Shahab 1)과 샤하브 2(Shahab 2)를 300기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80년대에 고안돼 북한에서 제작된 일부 미사일은 현지에서 현대화됐으며, 사거리가 이란 주변의 미군기지(걸프만,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직접 닿을 정도로 위협적이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는 이란이 사거리 1,000km가 넘는 미사일(샤하브 3, 가드르(Ghadr))뿐만 아니라 2,500km가 넘는 미사일(수마르(Soumar), 사질(Sajjil))도 백여 기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즉, 사거리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중국 내륙, 러시아 및 동유럽까지 미친다는 뜻이다.
이란은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이라크로부터 400여 발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뒤 특히 도심 피해를 심하게 받았다. 이런 이란에서 보유한 미사일 잠재력은, 적의 반격수단을 무력화시키면서 선제공격을 가능하게 한다. 그 밖에도,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우주항공군은 영공과 적군의 레이더를 교란할 100여 기의 드론도 보유하고 있다. 미사일 운반기는 예멘에서 후티 반군들이 일제 사격 때 사용했다.(1)
해군에서는 적을 교란하기 위해 살상 무기를 대량으로 사용한다. 미 해군도 이란과 전투 시에 수시로 오가는 순시선과 현지에서 제작된 미니 잠수함, 수면 가까이 떠서 이동하는 지면효과익선(에크라노플랜)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2010년부터 2017년 사이에는 이란의 관측 드론이 걸프만에서 순항하는 미 해군 선박과 항공모함에 가까이 접근해 촬영하는 일이 여러 번 발생했다.(2) 5월 중순,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내 석유 유전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란의 군사 잠재력에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1991년 이라크군이 연합군의 폭격을 받아 패배하기 전까지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군대’라는 평가를 받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물론 이슬람혁명수비대와 이슬람공화국군은 상당한 재정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2016년 이란의 국방 예산은 159억 달러였으며, 그중 42%가 이슬람혁명수비대에 할당됐다. 이는 터키나 이스라엘의 국방예산에 맞먹지만, 해당 지역 내에서 적대관계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예산보다는 훨씬 낮은 수준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비 지출은 600억 달러에 달한다. 또한 미국과 유럽, 국제연합의 제재로 인해 이란은 세계 무기 시장에서 배척받고 있다. 이란의 주요 무기 공급국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다. 그러나 이들 국가 중에서 러시아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번복해왔다. 2016년에 러시아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압력 때문에 수호이 30(Su-30)이라는 다목적 중(重)전투기 200대를 인도하기를 거부했고, S300 미사일 공급을 연기했다.
이슬람공화국군의 만성적인 장비 부족은 이런 금지 조치 때문이다. 이슬람공화국군이 보유한 전차 중 가장 강력한 것은 1970년대 초에 사용됐던 러시아제 T72(현지에서 현대화됨) 정도다. 또한, 장갑차 중 대부분이 구식으로, 6·25전쟁(1950~1953)과 베트남전쟁(1955~1975) 때의 패튼(Patton) 전차나 치프턴(Chieftain) 전차다. 과거 샤가 야심 차게 추진했던 서구식 군-산업단지 계획이 무너진 후 이란의 군수산업은 국제 제재 효과를 간신히 상쇄할 정도다.
하지만 해외 작전 현장에 끊임없이 투입돼 활약하고 있는 이슬람혁명수비대는 군수산업의 혁신에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기술을 물려받은 이슬람혁명수비대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은 이를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글·아크람 카리에프 Akram Kharief
기자
번역·이연주
번역위원. 역서로 『마리 클레르』 등이 있다.
(1) ‘예멘: 후티파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미사일 공격을 퍼붓다(Yémen: les rebelles houthis lancent une salve de missiles sur l’Arabie saoudite)’, www.rfi.fr, 2018년 3월 26일.
(2) ‘Iranian drone approaches Navy aircraft carrier in second dangerous encounter in a week’, <워싱턴 포스트>, 2017년 8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