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새로 쓰는 ‘비판경제 교과서’(7)-세계화, 국민 간의 경쟁

『비판경제 교과서』 연재순서 (1) 경제학은 과학인가? (2) 생산 증대, 무조건 더 많이! (3) 노사관계(다리와 버팀목의 관계) (4) 부의 분배 희망과 난관 (5) 고용,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나? (6) 시장을 따를 것인가 명증된 법칙을 세울 것인가? (7) 세계화, 국민 간의 경쟁 (8) 화폐, 금전과 현찰의 불가사의 (9) 부채 협박 (10) 금융,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약속

2019-06-28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세계화’라는 단어는 연대, 교역, 여행을 연상하게 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면 ‘세계화’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전 세계 시장의 규제 완화를 의미한다. 국가 간 이동은 기업들의 쉬운 해외이전을 도모한다. 교류는 투자가들이 투기할 수 있도록 하는 선에서 활성화된다. 그리고 연대는 ‘화합’을 내세운 국민 간의 경쟁에 자리를 양보한다. 세계화의 이런 이중성은 과연 우연의 결과일까? 시장의 지속적인 팽창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세계화의 이중적 속성을 빌미로 반대 진영의 사람들에게 편협하고 아둔하기 그지없는 민족주의자라는 비난을 가한다.

 

편견: “모든 사람이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린다”

수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은 세계화는 ‘이로운’ 것이기에 인류에게 유익한 이점을 가져다준다고 단언했다. 한 가지 대책으로 빈곤, 실업, 부패와 같은 온갖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 해법은 바로 개방 확대다. 하지만 불평등은 날로 커져만 가기에 자유 무역의 혜택을 과연 모든 사람이 똑같이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난다.

때는 바야흐로 1993년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가 이제 막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비준했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가 사라졌다. 모든 국경이 없어진 것은 물론 아니지만 적어도 관세선은 사라졌다. 

1년 후, 대서양 반대편에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3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해 자유무역권을 형성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따라 농업도 더는 자유무역의 질서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이 모든 조치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은행으로부터 두둑한 보수를 받는 상당수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한목소리로 “자유무역의 혜택을 모두에게”라고 노래를 불러댔다.

하지만, 자유무역을 통한 상호 경제 ‘개방’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근거를 제시한다. 예를 들어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하는 스웨덴 중앙은행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권위 있는 경제학자 게리 베커(Gary Becker)는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노동법과 환경 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됐다. 자유무역에 따라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나친 규제를 일정 부분 완화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비즈니스위크〉 1993년 8월 9일). 세계은행 수석 경제학자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는 ‘모범적 환경 관리’라는 제목의 세계은행 내부용 문건에서 “비공식적으로 말하자면, 세계은행이 공해산업을 개도국으로 이전하는 것을 장려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언급하기도 했다(1991년 12월 12일).

 

노동자들의 경쟁력과는 무관한 일련의 국제 규제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 출신인 앤 크루거(Anne Krueger)도 일맥상통한 견해를 취한다. 그는 “경제 개방은 이르면 이를수록 더 좋습니다. 개방 경제일수록 개혁 이전 단계로 역행할 가능성이 낮아집니다”라고 말했다(2004년 9월에 영국 노팅엄 대학교에서 열린 강연). 

프랑스 최고 재벌이자 LVMH사의 소유주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t)의 입장은 자명했다. “우리는 과거 15년 전보다 훨씬 더 유동적인 체계 안에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한 정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럽 전역에서 확산하는 모바일 비즈니스 환경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불가역적 변화를 가져왔다.” 덧붙여 다음과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폐쇄적 자국주의는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 기업 분담금을 과도하게 인상하고 여력이 없는 기업에 35시간 근무제를 강요하는 정부의 정책은 많은 생산공장의 해외이전을 가속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창조적 열정(La Passion créative)』, 2000). 

자유무역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소수의 다국적 기업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대형시장으로 변모했다. 한편에서는 느슨한 환경법 악용이나 노동자 임금 쥐어짜기를 서슴지 않고, 국경을 초월해 기업의 본사를 이전하거나, 어딘가에서 조세회피처를 이용한다. 반면 유동성이 낮은 노동자들은 실업과 낮은 임금, 불공정한 세제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자유무역론자들은 대외무역 개방의 효과로 국가 내 불평등 감소를 언급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화는 소득 사다리의 양극화를 심화한다. 사다리의 상층부가 치솟아 오르는 사이 하층부는 점점 더 아래로 내려앉고 있다.

물론 자유무역이 제3세계에도 득이 된다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연 정말 그럴까? 2003년 세계무역기구(WTO)는 세계무역의 자유화에 따른 경제적 이득이 8,320억 달러이며, 이 중 가장 빈곤한 최저개발국이 차지하는 몫이 5,390억 달러라고 추산했다. 상당한 액수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 후에 세계무역기구가 발표한 전체 이익은 2,000억 달러로 줄었고, 최저개발국이 누리는 이익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어떤 국가가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리고, 또 어떤 국가가 피해를 보는 것일까? 이 논의는 더욱 답이 명확한 다음과 같은 또 다른 논의의 초점을 흐리는 경향이 있다. 한 국가 내에서는 어떤 사회계층이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리고, 또 어떤 계층이 고통을 감수하는 것일까?

 

아편과 대포에 굴복한 중국

영국의 정치인 리처드 코브던(Richard Cobden, 1804~1865)은 “인류를 결집하고, 인종, 신념, 언어에서 비롯한 적대함을 해소하는 자유무역은 영원한 인류 평화로 나아가는 전제조건이다”라고 열변했다. 무역이 대포 소리를 잠재우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역사의 풍랑에서 힘을 잃었다. 시장 개방의 과정에는 무력시위를 통해 군사적인 압력을 가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중국 (청나라)의 시장 개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포와 군함을 앞세워 경쟁국이 시장을 개방하도록 하고, 관세의 힘을 빌려 자국의 시장을 보호하던 시절도 있었다. 1842년, 대영제국은 3년간의 전쟁 끝에 홍콩과 청나라의 주요 다섯 항구인 광저우, 상하이, 아모이(오늘날의 샤먼), 닝보, 푸저우를 같은 방식으로 점령했다. 이렇게 서구 열강은 침략을 통해 청나라를 강제로 개항시켰다.

영국의 목표는 차(茶)를 주력 상품으로 수출하는 청에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수출함으로써(청나라는 1세기 전부터 강력한 아편 단속 정책을 펼침)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자국 상품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발발한 전쟁을 ‘제1차 아편전쟁’이라 부른다.

1856년 발발한 제2차 아편전쟁은 독일, 프랑스, 미국이 가세한 군사 개입으로 일어났다. 난징 조약(1842년, 제1차 아편 전쟁 직후), 톈진 조약(1858년, 제2차 아편 전쟁 직후), 베이징 조약(‘이화원 약탈’이라고 명명한 방화 사건 후)을 체결함으로써 청나라 경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고 청나라는 열강의 이권 침탈로 인해 반식민지 상태로 전락했다. 물론 청나라는 외세의 강요로 체결한 조약들이 불평등 조약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16세기부터 1830년대 초반까지, 중국은 세계 1위의 제조업 국가였다. 1776년,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중국은 유럽의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부유한 나라다”라고 썼다. 스위스 경제학자 폴 베어록(Paul Bairoch)에 의하면, 당시 중국은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약 1/3을 차지했다(유럽의 생산 점유율은 1/4 미만). 과학 역사가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은 철강, 기계식 시계 제작, 공학(특히 현수교 건설), 심부 굴착 장비 등의 분야에 있어서 중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이었음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런 혁신 중 일부(특히 화력 무기)는 쇠퇴를 거듭해, 무기와 군대 체계는 형편없이 약화했다. 결국, 청나라는 유럽의 신식 무기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청의 전 세계 제조업 생산 점유율, 1800년 33%에서 100년 후 6.6%로 추락 

이른바 ‘불평등 조약’은 영국이 수년 전에 획득한 항구 5곳 외에 6개의 항구를 추가로 전면 개방하도록 했다. 서구는 각각 주요 개항 도시에 외국인 통치 특별구역인 조계(租界)를 설정했고(상하이 프랑스 조계가 유명함), 조계 내의 행정권은 외국에 속했으며 조약에 의해 치외법권이 인정됐다.

관세 주권을 상실한 청은 관세를 품목에 따라 높게는 5%에서 최저 2~3% 수준으로 낮추어야 했다. 반면 자유무역을 내세운 서구 국가들은 정작 그런 원칙을 비껴갔다. 내수시장을 보호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1875년, 프랑스는 12~15%, 포르투갈은 20~25%, 미국은 40~50%, 일본은 25~30%의 관세를 적용하고 있었다(1913년 집계). 일시적으로 기술 영역에서 독점적 지위를 지닌 영국만이 자국의 관세를 0%까지 낮췄지만, 자국의 패권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면서 다시 보호무역으로 회귀한다.

서구 열강들의 이권 침탈로 청나라의 경제는 활력을 상실한다. 1800년, 청은 전 세계 제조업 생산의 33%를 차지했지만, 그로부터 100년 후에는 6.6%로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시기 영국의 점유율은 4.3%에서 18.5%로, 미국은 0.8%에서 23.6%로 껑충 뛰어올랐다.

1945년 일본제국의 패전으로 중국은 영토를 회복했지만, 아편전쟁 후 영국에 할양된 홍콩은 150년이 지난 1997년에야 중국에 반환됐다. 그렇게 해서 영토주권의 상실과 경제적 쇠퇴는 서로 맞물려 집단의 뇌리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게 됐다. 많은 중국인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분리 독립에 관한 주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속사정이다. 2차 세계대전의 후유증과 마오쩌둥 집권(1949~1976) 시기의 고립에서 벗어난 오늘날의 중국은 과거 외세의 압제로 포기해야 했던 위치를 회복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과거의 수모를 설욕하는 성과인 셈이다.

 

이민·선진국을 부양하는 개발도상국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우파 진영에 의해 재점화된 선동적 발언의 주요한 특징은 ‘통제 불가’의 수준으로 늘어난 이민을 지적하며 사회보장제도를 좀먹고 경제 발전까지 저해한다고 비난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과는 반대로 멕시코 출신 미국 이민자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은 많은 경우 이민 수용국에 호재로 작용한다.

2016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는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을 따라 장벽을 세워 멕시코 이민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이민자의 유입이 미국 경제에 문제만 초래한다고 여긴 것이다.

 

막대한 재정 지원

미국의 학자 제임스 사이퍼(James M. Cyper)와 라울 델가도 와이즈(Raúl Delgado Wise)는 2010년 공동 저술한 『멕시코의 경제적 딜레마(Mexico's Economic Dilemma)』라는 책에서 멕시코인들의 미국 이민이 유발하는 실제 ‘비용’을 산정했다. 그들의 결론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연구를 통해 1994년부터 2008년 기간에 멕시코인들의 이민은 미국에 부담을 키우기는커녕 약 3,400억 달러 상당의 이익을 가져다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난한 이웃 나라인 멕시코가 가장 부유한 나라인 미국에 이른바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셈이다.

이 책의 두 저자는 노동 생산의 측면에서 멕시코 노동자들의 미국 진출을 인적 자원의 이전으로 설명한다. 멕시코는 인적 자원을 양성하는 데 투입된 보건, 교육, 그리고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값을 치른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미국은 이민자 수용으로 상당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이민자의 평균연령은 일반적으로 경제 활동에 왕성하게 참여해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핵심 생산인구의 연령대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미국 땅을 밟는 멕시코 이민자들의 교육 수준과 멕시코에서 교육에 투입한 비용(2008년 불변가격으로 환산)을 고려할 때 1994~2008년 기간에 송출국인 멕시코가 수용국인 미국에 830억 달러를 전도한 셈이라고 밝혔다. 같은 기간 (멕시코보다 더 많은 돈이 드는) 미국의 교육비를 기준으로 환산한다면 이 금액은 6,130억 달러로 치솟는다.

 

미국은 멕시코인들이 고향에 송금하는 금액의 1.8배를 절감

하지만 이민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재생산과 관련된 자원의 이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전히 같은 기간인 1994~2008년, 멕시코 출신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지출한 평균 식료품비는 2,57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이들이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송금한 총금액의 약 1.4배에 달하는 비용이다. 여기에 교육비와 이민 노동자들의 사회적 재생산 가치를 더하면, 그 액수는 3천4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멕시코 이민자들이 고향의 가족들에게 전달하는 총액의 약 1.8배에 해당한다.

 

과거 70년간 세계무역을 지배해온 고정 관념

수백여 건에 달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오늘날의 국가 및 지역 간의 통상관계를 규정한다.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자유무역협정은 원론적으로는 각종 교역 목표와 국제 무역 기준을 관련국끼리 상호 협의해 결정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각종 자유무역협정은 일관된 의지를 담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선진국이 정하는 조건에 따라 전 세계 무역 시장을 예외 없이 개방하는 것이다.

1846년, 영국의 정치인 리처드 코브던(Richard Cobden)은 “도덕적 세계질서 속에서의 자유무역은 우주의 중력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수입 곡물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곡물법에 반대해 반곡물법동맹(Anti-Corn Law League)을 창설한 인물이다. 코브덴은 상품의 자유로운 이동은 마치 행성들 사이에 작용하는 중력과도 같아서 “인종적, 종교적, 언어적 적개심으로부터 인류를 자유롭게 함으로써 영원한 평화를 가져온다”고 했다.

 

전쟁을 근절하는 방법

하지만 그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파라과이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무역과 평화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당시에 파라과이는 자국의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보호무역을 실시해 급속한 발전을 구가하고 있었다. 이때 자유무역을 명분으로 내세운 영국은 그 주변의 동맹국들(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이 파라과이를 침공하도록 종용했다. ‘삼국동맹 전쟁(Guerra de la Triple Alianza)’으로 불리는 이 전쟁으로 파라과이는 남성 인구의 90%가 목숨을 잃는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1840년대 초 중국에서 벌어진 아편전쟁과 같은 상황이 중남미에서 되풀이된 것이다.

이런 병폐에도 불구하고, ‘달콤한 교역’이 인류의 평화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선동하는 이들은 자취를 감추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913~1921)이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실현하고자 발표한 ‘14개 조 평화 원칙(Fourteen Points)’에서도 자유무역이 한 부분을 차지한다.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행정부의 국무장관을 역임(1933-1945)하고 1945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코델 헐(Cordell Hull)은 1948년에 “국가들 사이의 교역량 증가는 전쟁을 근절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서구의 정치 지도자들은 평화를 명분으로 하여 1930년대의 경제위기와 2차 세계대전으로 둔화한 자유무역을 되살려야 한다는 데 일치된 의견을 표했다. 그렇게 해서 1947년 10월 30일에 더욱 폭넓은 경제 개방을 목표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을 체결했다.

이와 유사한 논리는 유럽 건설의 역사에도 적용된다. 1957년,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 경제 공동체(ECC) 설립을 위해 체결된 로마 조약은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그 목표로 규정했다. 전후 사회 재건 시기의 자유주의는 이합집산보다는 ‘통합’의 역할을 수행했다. 정치학자 존 러기(John Ruggie)의 표현에 의하면 당시의 자유주의는 실업률의 감소와 내부적인 성장을 포함하는 사회복지 정책을 포용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브라질, 중국, 인도를 앞세워 자유주의의 이중적 접근을 비난하는 개발도상국

1995년 1월 1일에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의 마지막 협상인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한다. 그러나 WTO 체제는 회원국들의 잦은 반대에 부딪혀 무역시장 자유화로의 전환은 답보상태에 머물게 됐다. 선진국들은 서비스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S: General Agreement on Trade in Services)을 통해 지역이나 국가의 특수성을 단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공공부문과 민간 분야를 막론한 서비스 분야 전체를 국제 시장에 개방하고자 했다. 이에 브라질, 중국, 인도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은 자유무역의 이중적 접근을 비난했다. (선진국 기업에 유리한) 서비스 분야의 강력한 개방 요구와 달리 농산물 분야에서 미국과 유럽이 보호주의 조처를 취하는 사이,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은 도외시 됐다. 최근 들어 강화된 양자주의나 지역주의 체제는 전체 회원국에 협정 의무가 적용되는 WTO(그리고 그 전신인 GATT)의 다자통상체제를 위협할 만큼 위력을 확보하게 됐다. 2016년 2월 4일 미국과 11개국이 체결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 TPP)과 범 대서양 자유무역 지대(Transatlantic Free Trade Area · TAFTA) 계획, 복수국 간 서비스협정(Trade In Services Agreement)이 여기에 해당한다.

 

경제외교

빈에서 은행가로 활동하다 1998~2000년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를 지낸 비토미르 마일스 라게즈는 발칸 반도를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 방법이란 “코소보를 매각하는 것”이다(〈월스트리트저널(WSJ)〉 유럽판 2003년 10월 15일 자 기사).

라게즈는 미국이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1916년에는 덴마크로부터 버진아일랜드를 사들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러시아와 덴마크가 이 영토를 내놓은 이유로는 과도한 유지비와 보잘것없는 경제적 가치를 들 수 있다. 더욱이 세르비아마저도 경제나 안보적으로 코소보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코소보인들은 그들이 사는 영토를 돈으로 사면 된다는 것이다. “영토의 가격은 생각만큼 높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5,000만 유로에서 10억 유로 사이가 될 것 같다. 하한가는 영토의 가격만을 추산한 것이고, 상한가에는 주민들이 그들의 나라를 사기 위해 부담해야 할 최대 채무 규모(1인당 500유로)를 반영했다.” 글의 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경제외교를 정리했다. “이것이야말로 복잡하게 얽힌 코소보의 문제를 해결하는 현대적이고 시장 원리를 따르는 해법이며, 서방국가가 지지해야 할 대응 방안이다.”


전 세계의 영화 스크린

항공산업의 발달은 판구조론으로 설명되는 지각변동보다 대륙 간의 거리를 훨씬 더 가까이 좁혔다. 하지만 세상이 서로 가까워진 만큼 세상이 균질하게 변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서든 사람들은 똑같은 식당에서 식사할 수 있고, 똑같은 상표의 옷을 사 입을 수 있다. 같은 영화를 어느 나라에서건 관람할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정말 하나의 지구촌으로 융화된 것일까?

2005년,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 유네스코)는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문화적 다양성에 관한 관심은 1990년대에 가속화된 세계화의 과정에서 촉발했다. 세계화는 문화 상품의 유통을 통해 타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기회’로, 문화의 획일화라는 측면에서 위협으로 받아들여져왔다.

 

전 세계적으로 1억5,000만 장이 판매된 비디오 게임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사실상 세계화가 위협이라는 인식에는 이견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판매된 팝 음반의 80%는 영미권 음악이다. 총 6억 장의 판매기록을 세운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Thriller)〉가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뒤를 잇는 것은 총 5억 장이 판매된 호주 록 밴드 AC/DC의 음반 〈백 인 블랙(Back In Black)〉이다. 비디오 게임 시장의 선두에는 1억 5,000만 장의 판매기록을 세운 〈그랜드 테프트 오토(Grand Theft Auto)〉 시리즈가 있다. 미국의 대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이 게임은 스코틀랜드에서 개발됐고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시장의 모든 기록을 경신했다. 

미국 영화의 상영 비율은 2008년 기준으로 유럽 평균 50%, 독일 57%, 스페인 70%, 프랑스 45%를 기록했다. 반면 2005년을 기준으로 프랑스 내 미국과 유럽 이외 지역 영화의 상영 비율은 2%에 불과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언어는 영어이며, 중국어는 16번째 위치를 차지한다(덴마크어보다는 높고, 아랍어보다는 다소 적은 수준). 세상에 존재하는 전체 언어의 90%는 인터넷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결국, 문화적 세계화는 엄연한 현실이며 미국이 이 현상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서두에 언급한 유네스코의 문화 다양성 협약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는 오직 둘뿐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스라엘과 미국이다.

유네스코가 제안하는 문화 다양성 보호는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다양성을 증진하고, 문화의 융합과 창조가 적극적으로 이뤄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문화 다양성 보호는 ‘문화유산’을 보존해 기록으로서 미래 세대에게 전달하고, ‘소수’의 문화를 보호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아울러 “한 사회의 문화는 정적인 것, 혹은 고정된 것이 아닌 국가와 국가 간의 지속적인 교류이자, 가치관과 표현의 한 형태로, 서로 다른 지역이 영향을 주고받는 과정이다(유네스코 ‘문화와 발전에 관한 세계위원회 보고서’)”.

사실상 문화의 획일화 위협은 나라마다 다른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예컨대 폴란드에서는 자국 영화가 영화시장의 상위 10위를 독점하고 있다. 2015년 핀란드에서는 자국 제작 영화가 최다 관람 영화의 10편 중 5편을 차지했다. 나이지리아 국민은 자국의 문화 상품을 주로 듣거나 시청한다. 중국에서도 영화 흥행 수익의 55%는 자국 영화가 차지한다. 중국 정부는 연간 외국 영화 상영 숫자를 제한하며(2012년까지 연간 20편, 2017년까지 34편 상영), 할리우드와 중국 기업의 합작 영화 제작을 장려하기도 한다. 인도는 영화 제작 편수나 관객 수에서 단연 세계 선두를 유지하고 있다. 

 

세계 시민?

이런 현상은 주어진 현실의 굴레를 뛰어넘은 예술인들의 노력으로 얻어낸 결실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들은 정체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현상을 타개하는 돌파구를 마련한 셈이다. 최근 헝가리는 ‘아틸라(Attila ) 왕조의 후예’라는 문화적 공통성을 강조하며 문화적 뿌리에 기반해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부분 문화 상품이 세계적으로 유통되고 확산되는 과정은 자국주의나 민족주의적인 환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세계화가 가져오는 상업적 이윤추구와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악순환을 초래한다. 타 문화에 대한 ‘개방’과 수용의 힘이 시장의 논리만을 따르는 경우보다도 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자국주의나 민족주의적인 환상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에 관한 고민뿐 아니라, 보편적인 양 제시되고 있는 영미식 언어나 문화양식, 자유주의에 관한 의구심마저 접어두도록 한다.

 

각개전투식 범 대서양 무역 투자 협정

2008년의 금융위기는 그 원인이 된 신자유주의 이념을 궁지로 내모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자유주의자들이 더욱 분발하는 계기가 됐다. 언론을 통해 새어 나온 정보를 통해 대망의 다자 자유무역 협약이 치열한 물밑 작업으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범 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 TTIP)과 다자간 서비스 협정(Trade in Services Agreement · TiSA)도 이에 포함된다.

1994년까지만 해도 자유무역의 활성화란 국경 너머에서의 재화의 상거래를 더 용이하게 함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관세를 줄이고 행정절차를 간소화하는 차원으로 여겨졌다. 1948년 이후 자유무역에 관한 협의는 GATT라는 약어로 더 잘 알려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

이런 배경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자국의 수출을 늘리는 한편 수출이 가장 잘되는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경쟁국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면 수출 판매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수출 증대를 위해 임금과 환경 보호 비용을 절감하는 일이 흔히 발생했다(실로 오랫동안 운송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해왔다). 그러나 세계화 과정에 동참할지 여부는 각 국가의 선택에 맡겨진 문제였다.

1994년, 국제적 논의로 결의된 구속력 있는 협정을 통해 전 세계의 모든 무역 장벽을 철폐한다는 목표를 내건 세계무역기구(WTO)가 탄생했다. 세계무역기구는 각 국가가 관세를 높게 부과하는 ‘관세 장벽’과 국가의 개입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비관세장벽’을 모두 자유무역을 방해하는 장애 요인으로 간주한다. 이런 요인을 제거하는 과정을 가리켜 소위 ‘규제 완화’라고 부른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는 복잡한 노동법 규제나 과도한 조세, 환경 보호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규범과 기준의 적용

대다수의 선진국은 무역 장벽을 철폐하는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판단했다. 자유무역을 촉진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다른 국가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자, 이들 국가는 회원국 전체가 참여하는 다자간 무역 협정 체제에서 탈피해 양자 또는 복수국 간의 무역 협정을 채택하고 나섰다. 협정국 간의 경제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자신들이 정한 자유무역의 기준을 교역에 그대로 적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2009년에 미국은 아시아 · 태평양 지역 11개국과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 TPP)을 논의했고, 유럽연합의 28개국과는 범 대서양 무역 투자 동반자 협정(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 · TTIP 또는 The Trans-Atlantic Free Trade Agreement · TAFTA로도 불림)을 협의했으며, 50여 개국이 자국의 서비스 시장을 자유화하는 내용을 담은 다자간 서비스 협정(Trade in Services Agreement · TiSA)의 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택의 기회가 없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있나?

각국 정부가 극비리에 협상한 협정들(외에도 수많은 협정)은 모두 일관된 목표를 추구한다.

1. 상대 국가의 민주주의, 사회, 보건, 식품, 환경 및 기술에 관한 각종 기준을 최대한 완화하기에 앞서, 상호 표준이 되는 기준 설정

2. 공공시장 분야 진출을 포함, 자국 및 지역 투자자와 같은 혜택을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여

3. 외국 민간기업과 국가 기관 간의 분쟁 발생 시 공법(公法)이 아닌 사법 (私法)에 따라 해결

4. 서비스 시장에 경쟁 논리 도입 및 공공 서비스 시장 철폐

5. 위의 모든 조치에 비가역적 성격을 부여

만일 이런 협상이 성사된다면 민간기업은 제어 불가능한 힘을 갖게 된다. 반면 법률이나 규정을 채택하거나 삭제, 또는 개정할 권한이 없는 국가는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미국과 유럽 시민들의 결집으로 인해 무역 협상의 타결이 요원해 보인다. 2015년 5월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현 단계에서 “프랑스는 반대를 선언한다”라고 말했다. 한 국가의 거부권만으로도 협상을 결렬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노예제

1993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학교의 경제학자 더글러스 노스(Douglass North)와 시카고 대학교의 로버트 포겔(Robert Fogel)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수여했다. 이 수상을 통해 포겔은 ‘역사에 경제학 이론과 양적 연구방법을 적용(일명 계량경제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포겔은 19세기 미국 목화 산업에 관한 유명한 연구에서 “노예의 경제적 합리성”을 옹호했고 노예제가 “효율적인 생산 체계”라고 결론지었다. “규모의 경제와 체계적인 경영, 그리고 노동과 자본을 집약적인 활용으로 미국 남부 노예 농장이 북부 농장보다 노동 단위당 생산성이 35% 더 높았다” (『시간의 횡단: 미국 흑인 노예의 경제학』 1974). 포겔은 계량 연구를 통해 노예제 문제 해석에 있어 획기적인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 그는 전통적 역사학자들이 노예 착취 문제를 너무 과장해 설명하는 경향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일반적일 때 노예들은 자신이 생산해 얻은 이익의 90%를 돌려받았다.” 이에 덧붙여 노예주가 노예를 “가축과 같이” “생산을 위한 경제재”로 여겼기 때문에, 당시 노예들은 비교적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93년 10월 13일 자 〈뉴욕타임스〉).

 

보호무역은 자급자족 경제가 아니다

경제를 뒤흔들고 점점 더 많은 국민을 불안정 속으로 떠미는 위기의 원흉 중 하나가 자유무역이라면, 정반대의 전략을 취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반대의 전략이란 바로 보호무역주의이다.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경제발전 단계로 도약하는 밑거름이 됐던 보호무역주의야말로 국가의 경제 발전을 보장하는 결정적 요인이지 않았을까?

1980년대에 중남미의 경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추월을 허용했다. 설상가상으로 중남미는 고립을 자초하기도 했다. 이후 약 십 년간(1990~2000) 중남미 경제는 성장세로 돌아섰지만, 그나마도 미약한 수준에 그쳤다. 2012년 중남미 주요국(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콜롬비아 등)의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25%를 다소 웃도는 수준에 그쳤지만, 같은 시기 한국과 대만은 각각 70%와 80%에 이르렀다. 아주 낮은 수준에서부터 반등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브라질(2014년 구매력평가 환율 기준, 중국 1만3,200달러 대비 브라질 1만5,500달러)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한편에서의 상대적인 성장 둔화와 다른 한편에서의 급속한 성장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설명 방법은 중남미인들에 비교하면 아시아인들이 더 ‘일을 잘하며’ 보다 ‘효율적’이라는 문화적 접근법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접근은 1980년대 일본의 빠른 성장을 설명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지만, 이후 일본에 불어닥친 장기적 경기침체로 신빙성이 약해졌다. 그렇다면 또 다른 설명 방법인 제도와 공공 정책의 역할이 답이 될 수 있을까? 아시아 국가들이 (특히 관세 장벽을 통해) 유치산업을 보호하는 데 힘을 쏟는 사이, 중남미는 관세를 완화했다. 이런 차이로 아시아의 높은 성장과 중남미 국가의 미약한 성장을 설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용의주도한 국가 전략이 필수

물론 이 주장은 일견 그럴듯하지만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보호무역이 실효를 거두려면 선택적이고 일시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일련의 경제정책(환율과 금리, 보조금, 규제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결국, 국가의 전략적인 역할이 긴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의 빠른 성장이나, 한국과는 아주 다른 맥락에서 최근 몇 년간 성장을 거듭한 중국의 사례에서 이 같은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여러 국제기구는 오랫동안 큰 정부와 소극적 시장 개방은 경제성장을 억제하거나 둔화하고, 보조금에 대한 의존도를 키울 뿐 아니라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한다고 여겨왔다. 일부 기업가들은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시도하기보다는 고위 권력자들에게 로비를 벌여 보호주의의 울타리 안에서(수입 장벽을 통해) 손쉽게 이익을 취하려는 경향(이른바 지대추구 현상)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국제기구는 아시아의 발전 사례에서 정부의 정책이나 역할은 차치한 채 국제 무역에 대한 개방 사례만을 취사 선택했고, 중남미 국가들이 이 방법을 답습해 무역 시장 개방에 편승하도록 부추겼다.

 

정부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긴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경제개발 목표

이런 이념적인 접근은 아시아 나라들의 경제개발을 가져온 정부의 역할을 과소평가한 결과이다. 경제 개방이 반드시 시장의 힘의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개방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이 더 결정적일 수 있고, 일련의 과정을 통제하는 정부의 역할이 필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70~1990년, 한국은 산업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몇 가지 산업 분야를 육성 대상으로 선정해 지원했다. 이에 따라 정부의 육성 기준에 부합하는 기업들은 기간별로 비율이 차차 감소하는 조세 및 관세의 감면 혜택을 받았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민간기업이 은행에서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 자금을 확보함으로써 설비투자를 늘려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저마다 비교우위를 가지는 분야를 특화해야 한다고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어떤 산업 분야가 다른 생산요소와 비교해 노동력만 풍부하다면, 이는 낮은 기회비용을 떠나 해당 분야의 생산 효율성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따라서 희소자원인 자본의 투입을 통해 자본 생산성 증대를 촉진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이 모든 것을 시장에 내맡긴다면 유치산업의 생산성 향상은 매우 요원해진다.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더 많은 자본을 필요로 하는) 유치산업을 보호해야 마땅하다. 지대추구 현상이 발생하지 않는 방향으로 산업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것과도 같은 이치다.   

 

 

 

글·<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

번역‧이푸로라 poorora@daum.net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