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를 외치며 체제의 꿈 향해 각개약진

[Spécial] 하이브리드 유럽 극우파

2011-01-07     도미니크 비달

지난 2년간 유럽의 극우 정당들은 약진을 거듭해 유럽의 각국 선거에서 득표율 10%를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몇몇 국가에서는 심지어 15%를 넘어서기도 했다.

이탈리아의 국민연합은 과거와 단절하고 제도권 우파로 변신한 반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북부연합은 롬바르디아·베네토·피에몬테주를 장악했다. 스위스의 중도민주연합은 이슬람사원 첨탑 건설 금지 조치가 내려진 지 1년 뒤 ‘범법 행위’를 한- 혹은 ‘복지제도를 남용한’- 이민자들의 강제송환 제도 도입을 묻는 국민투표에서 53%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각각의 극우파들을 단일한 범주로 규정하기는 쉽지 않다.

동유럽의 극우파들이 고유한 역사적 과정 속에서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됐다면, 서유럽의 ‘전통적’ 네오파시스트들은 고립 속에서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나가고 있다. 반면 반체제적 성격을 띠던 몇몇 극우 세력은 제도권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UFO처럼 난데없이 등장해 발전 일로에 있는 극우 정당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네덜란드의 자유당이다.

이 정당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럼에도 현재의 사회적 위기를 이용한다는 점, 무슬림을 배척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서로 닮아 있다. 프랑스에서는 1월 초 아버지 르펜의 뒤를 이어 국민전선(FN) 당수 자리를 노리는 마린 르펜이 이 두 전략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현재의 극우파는 더 이상 예전의 극우파가 아니다. 프랑스 국민전선(FN) 창립자의 딸이 당수 자리를 물려받는다. 정말이다. 여성이 FN 당수직에 오르는 판에 ‘강한 남성’에 대한 마초적인 숭배를 말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기독교 윤리로 지탱되던 단체들이 동성애자의 권리 수호에 나서고 동성애자가 그 단체들의 대표가 되는 마당에, 베네딕토 16세가 교권 지상주의자들과 다시 화해하고 있다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서구 사회의 전위를 자임하는 이스라엘 현 정부에 조건 없는 지지를 보내는 현 극우파 단체들을 가스실의 존재조차 부정하던 과거의 반유대주의적 극우파들과 동일시할 수 있을까? <<원문 보기>>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민족국가·유럽·보호주의·복지국가·공공서비스·대미관계 등과 관련해 다양한 입장 차를 보이는 극우파 단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통분모가 있으니, ‘이슬람의 침입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다. 그렇다면 이제 ‘유럽의 신극우파’라는 명칭이 성립할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대답은, 예전의 예수회처럼(비유적으로 ‘음흉하다’는 뜻도 있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앞에 열거한 각각의 항목은 일종의 함정이 아닐까?”

‘새로운’ 극우파가 등장한 걸까? 볼로냐대학 정치학 교수 피에로 이그나치(1)는 “네덜란드의 헤르트 빌더스가 이끄는 자유당(PVV)을 제외한다면 다른 정당들은 모두 과거의 극우파에 가깝다”(2)고 설명한다. “규모가 커져서 제도정치에 편입한 조직들에 자신의 과거 네오파시스트적 행적은 부담으로 작용한다.” 변한 것이 있다면 현 시기를 지배하는 패러다임뿐이다. 공산주의라는 적이 붕괴된 자리를 9·11 이후 이슬람주의자 혹은 무슬림이 대신 차지한 것이다.

르펜의 딸은 어쨌든 ‘여성’ 당수?

마치 독일 철학자 오스발트 슈펭글러가 귀환한 듯하다. 1918년과 1922년에 출간된 그의 저서 <서구의 몰락>(3)은 바이마르공화국에 반대하고 독재를 추종하는 이들에게 지적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이들의 먼 후손인 현재의 극우파들은 선거에서 운 좋게 높은 득표율을 얻어 유럽 정치 무대 오른편의 한 자리를 차지했을 뿐이다. 이는 어떤 대안 세력도 세계화된 금융자본의 헤게모니 위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

국제외교전략연구소(IRIS)의 객원 연구원 장이브 카뮈(4)는 이들에게 ‘극우파’라는 딱지를 붙이는 게 적절치 않다고 본다. 대신 ‘급진주의자’, ‘외국인 혐오자’, ‘포퓰리스트’ 같은 명칭을 제안한다. 그러나 현재 ‘포퓰리즘’이라는 말은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그는 포퓰리즘이라는 말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타락할 수밖에 없는 엘리트들에 대해 언제나 ‘민중의 상식’이 승리한다는 믿음 아래 대의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로 대체하려는 경향”에 국한시킨다. 그러나 반대의 경향도 존재한다. 가령 에리크 뵈르트(프랑스 전 노동부 장관)는 연금개혁에 대해 “언젠가는 우리에게 고마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5) 그렇다면 연금개혁에 반대했던 70%의 프랑스인들은 모두 바보란 말인가? 장이브 카뮈는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은 쌍둥이 형제와 같다”고 결론짓는다.

장이브 카뮈는 어딘가에서 갑자기 등장한 이 극우파 지도자들을 ‘UFO’라고 부른다. 핌 포르투완(본명 Wilhelmus Simon Petrus Fortuijn)이 한 예다. 한때 사회주의자이자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그는 이슬람을 혐오했다. 그는 중동 국가들에 실제로 존재하던 억압 조치들을 언급하며 다른 이들처럼 여성 인권 침해를 비판했다. 핌 포르투완은 2002년 5월 6일 선거를 13일 앞두고 암살된다. 그의 당은 이 선거에서 17%의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스위스의 중도민주연합(UDC) 당수 크리스토프 블로허도 빼놓을 수 없다. 급진화한 이 농본(農本)주의 정당은 2007년 선거에서 29%의 지지를 얻었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핀란드당’이라는 특이한 정당이 있다. 이민을 반대하는 반체제적 정치세력이 새로운 얼굴로 거듭난 경우다. 당수 티모 소이니는 현재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네오파시스트인가 UFO인가

유럽의 극우파 세력을 묘사할 때 단수와 복수 중 어느 쪽을 사용해야 할까? 이그나치와 카뮈는 이들을 ‘하이브리드 운동세력’으로 봐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국가와 전통, 정치적 상황에 따라 각 정당들이 다른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유럽’이라는 공통분모로 묶는 것은 역설일 수도 있다. 더욱이 민족주의적 극우파들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로베르 쉬망과 장 모네가 추진한 유럽연합 건설에 항상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유럽 각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단편들을 조합해 유럽 극우파의 전체적인 윤곽을 그려보는 수밖에 없다. 이때 다음의 세 유형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유형은 ‘유대-볼셰비즘’과 맞서 싸운 검은(혹은 갈색) 셔츠단이나 나치 친위대(SS)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 네오파시스트 군소정당들이다. 독일 공화당(Republikaner), 스페인의 팔랑헤당(프랑코의 파시스트당역자), 이탈리아 사회운동-삼색의 불꽃(MS-FT), 대중 정교회 연대(그리스인의 98%가 정교회 신자다) 등이 그 예로, 현재는 거의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반이슬람’ 깃발 아래 모였지만

두 번째는 1990년대부터 기존 정치 질서에 반발해 이른바 공화주의 우파들이 쳐놓은 ‘방역선’(Cordon Sanitaire·연정을 통해 극우 혹은 극좌 정당의 정부 참여를 막는 방법)을 극복하고 양지에 입지를 구축하려 애쓰는 세력이다.

마지막으로는 두 번째 세력이 ‘기존 체제에 편입한’ 뒤 남겨진 빈 공간에 출몰한 ‘UFO’들이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정치 세계는 빈 공간을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첫 번째 유형의 정당들은 영향력이 미미한 편이다(득표율 0.1~7%). 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은 2009년 유럽의회 선거와 최근 그 밖의 선거에서 10% 넘는 지지를 획득했다(지도 참조). 이 목록에서 이탈리아 국민연합을 뺀 이유는 이 정당만이 유일하게 과거 극우파 전통과 과감히 단절했기 때문이다.

이그나치는 “극우파 정당이 제도정치 밖에 머물며 시스템의 전복을 도모하는지, 아니면 안으로부터의 개혁을 위해 제도 안에 진입하려 하는지가 중요한 변별점”이라고 말한다. 물론 후자는 “온건우파가 극우파 세력을 게토화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것이다. 이그나치는 프랑스 민주연합(UDF)과 공화국연합(RPR)이 FN과의 연합 가능성을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비켜갔는지를 상기한다.(6) “극우 정당이 ‘급진화’하는 것은 우파 정당들의 고립 전략에 대한 반발과 다름없다. 반대로 일부 극우파는 우파에 배척당하지 않으려 물타기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급진세력을 고립시킨다.”

프랑스에서 770km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오스트리아의 외르크 하이더가 있다. 그는 이탈리아 국민연합과 같은 전략을 구사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1986년부터 오스트리아 자유당(FPÖ) 당수를 맡고 있던 하이더는 정부의 고용정책이 (히틀러의) 제3제국 시절보다 못하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1999년 선거에서 자유당은 27%를 득표해 국민당을 제치고 사민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자유당-국민당의) 연립정부 총리직에 오른 국민당 당수 볼프강 쉬셀은 자유당에 몇 개의 장관 자리를 제공했다. 하이더는 자신의 지역구 케른텐의 주지사로 남았다. 그러나 ‘반골 기질’은 어쩔 수 없었던 걸까. 그는 2005년 자유당을 나와 네오파시스트 성향이 짙은 오스트리아 미래연합(BZÖ)을 창당했다. 이로써 오스트리아 극우세력은 고립을 택한 군소정당(BZÖ)과 국민당과 연합해 제도정치에 진입한 거대정당(FPÖ)으로 양분됐다. 하이더는 2008년 게이바에서 술을 마시고 BMW를 몰고 돌아오다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제도권 진입 시도가 대세

아버지 장마리 르펜의 후계자를 꿈꾸는 마린 르펜 역시 하이더처럼 정치적 성공을 거두길 원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려 애쓴다. 당명 개칭까지 가지 않고서도 FN에 찍힌 낙인을 제거할 수 있는지가 문제로 남는다. 또한 과거 비시 괴뢰정부와 ‘헐값에 넘어가버린’ 식민제국에 대한 향수에 젖은 이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할지도 과제로 남아 있다. 마린 르펜과 후계 자리를 다투는 브뤼노 골니시(가스실의 존재를 부정한 역사학자)는 유리한 고지에 몸을 숨긴 채 경쟁자를 비판한다. 그는 인위적으로 부풀려진 무슬림의 ‘침입’에 대한 우려가 “필요한 것이긴 해도 FN의 ‘낙인 지우기’ 전략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도 정치와 언론은 이 정도의 증거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더 확실한 증거를 원한다. (중략) 그들은 우리가 머리를 숙이고 다음은 허리를 굽히고 마지막으로 무릎까지 꿇기를 원한다.”(7)

옛 파시즘과 거리… 신자유주의 비판

마린 르펜은 오스트리아의 동료 하이더가 처한 운명에서 교훈을 얻었다. 그녀는 하이더처럼 나치 무장친위대(Waffen-SS)를 “우리가 경의를 표해야 하는 독일의 군대”라고 칭송하는 따위의 발언은 하지 않는다.(8) 마린 르펜은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을 ‘역사의 사소한 일화’쯤으로 취급하는 아버지 르펜의 태도에 거리를 유지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한 논쟁을 마감하고 싶어한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환심을 사는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망설임 없이 노동자 권익 보호를 외친다. 실제로 FN은 좌파와 사르코지 양쪽 모두에 실망한 노동자들의 표를 흡수하고 있다. 아버지 르펜은 2010년 5월 1일 노동절에 사회보장제도와 연금제도를 옹호하고 구매력 강화를 외쳤다. 한때 로널드 레이건을 신봉하는 급진적 자유주의자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였다. 그는 “소비 진작이 성장을 촉진할 것이며, 오직 소비만이 프랑스의 모든 남성과 여성에게 일자리를 가져다줄 것”(9)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경제적 국경 수호, 적절한 세제 개혁, 중소기업과 농업에 대한 지원 등도 주장했다. 아버지의 결론은 딸의 정책 프로그램이 됐다. 마린 르펜은 “10여 년 전부터 소득분배가 금융자본의 배를 불려주는 쪽으로 변화했다. (중략) 여기에 덧붙여, 의료보험 급여액 축소에 따른 환자부담금 인상과 연금제도 개혁은 프랑스인들의 전통과 희망에 반하는 극단적 자유주의”라고 주장한다.

이그나치는 “무책임한 정당들이 ‘내일부터는 모든 게 공짜다. 세금도 더 이상 낼 필요가 없다’는 식의 약속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약속은 사회보장이 자국민 중심으로 작동한다는 조건하에 이뤄진다. 갈수록 빈곤해지는 남유럽과 동유럽뿐 아니라 아직은 건재한 북유럽도 이에 속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만연한 혼동이 근본적 논점을 흐릴 때 이런 약속이 먹힐 수 있다. 가령 극우파는 주로 초국적 자본에 대항해 ‘국가의 수호자’임을 자처해왔지만, 이탈리아의 북부연합과 벨기에의 블람스 벨랑당이 각각 파다니아와 플레미시 분리독립을 외치는 상황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지역 정체성에 대한 추구 경향이 기존 국가 정체성을 대체하게 될까?

적의 적, 이스라엘 지지

프랑스를 제외한다면, 이들 사이에 공통분모가 없는 건 아니다. 공통분모 중 하나가 이스라엘이다. 지난해 12월 초, 30여 명의 극우파 지도자들- 네덜란드의 헤르트 빌더스(10), 벨기에의 필리프 드윈터, 외르크 하이더의 후계자 하인츠크리스티안 슈트라헤 포함- 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국빈에 준하는 예우를 받았다. 유유상종이라고나 할까. 이스라엘 부총리 겸 외무장관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모두 몰아내고 유대인만의 국가를 세우기 원하는 인물)은 코란 금지를 주장하는 헤르트 빌더스와 만나 환담을 나누었다.

이 방문단이 속한 유럽자유연맹(EFA)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미국 단체의 유럽 지부 같은 단체다. 이 단체의 후원자 오브리 체르닉은 로스앤젤레스에서 42위의 부자다(재산 7억5천만 달러).(11) 그는 ‘예루살렘 선언’에서 “이슬람주의라는 새로운 전체주의가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하며 이에 맞서 민주주의 세력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파리에 들러 이슬람주의에 대한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토론회는 급진적 시오니스트이자 범대서양주의 성향의 인터넷 사이트 ‘Drzz.fr’의 도움으로 ‘정교분리 반격’(Riposte Laïque)과 ‘정체성 연합’(Bloc Identitaire)이라는 단체가 조직했다. (무슬림을 자극하기 위해) ‘소시지와 포도주’, ‘돼지고기 수프’라는 이름의 아페로(거리에서의 번개 음주파티)를 연 것도 이들이다. 따라서 지금의 극우파들은 과거 극우파의 일부가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연합이 벌인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것처럼 ‘식민전쟁 패배에 대한 설욕’이라는 오래된 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게 아니다. 그들은 ‘서구의 이슬람화’에 대항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 2500만 명이 5억 인구의 유럽에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강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단지 어처구니없는 상상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명의 충돌’이라는 환상이 힘을 얻는 상황을 목도하는 지금, 대중의 의식 조작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주의자들이 아랍 세계가 겪는 모욕과 소외를 이용하고 있다면, 신보수파들은 이따금 폭력적 양상을 띠는- 그러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이미 약화된-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면서 이슬람 혐오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고 있다.(12)

그람시가 울고 갈 헤게모니 확장

지난해 12월 10일 리옹에서 마린 르펜은 무슬림들이 길에서 기도를 올리는 행위를 두고 그들이 “탱크와 군인 없이 프랑스를 점령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모스크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한 소릴까? 그녀의 발언을 단지 우연적인 것으로 봐야 할까? 결국 반유대주의와 상통하는 친이스라엘 입장과 이슬람에 대한 증오로 둔갑한 반이민 정서가 뒤섞인 이 새로운 혼합물은 우파 안에서 가장 오른쪽에 있다고 주장하는 모호한 세력들이 찾은 새로운 돌파구가 아닐까?

제2차 세계대전 뒤의 상황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상황과 확실히 많은 점에서 구별된다. 그러나 현재 다른 옷을 입고 등장하는 극우파의 행보가 예전에 비해 덜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 역사적 파시스트의 후계자들이 갑자기 정권을 잡을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들이 시민사회 속에서 점차 헤게모니를 확보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람시의 전략이 역이용당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사르디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그람시는 <옥중수고>(13)에 다음과 같이 썼다. “국가는 봉기 전략을 봉쇄하는 참호 체제(억압적 국가기구와 문화, 언론, 학교, 다양한 전통)에 의해 보호받는다. 이 기구들을 동시에 장악하지 않고는 혁명에 성공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지전이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다양한 각 층위를 차례로 장악하기 위한 전략이 요구된다.”

글•도미니크 비달 Dominique Vida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중동 전문기자 출신으로, 베르트랑 바디와 <2011년의 세계, 단일 세계의 종말>(La Découverte·파리·2010)을 공동 기획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주요 저서: <La Fattoria degli Italiani. I rischi della seduzione popolista artiti politici in Italia>, Rizzoli, 밀라노, 2009. <L’Estrema destra in Europe>, Il Mulino, 볼로냐, 2000.
(2)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인용문들은 모두 필자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따온 것이다.
(3) 1948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개역판(총 2권)이 나왔다.
(4) <극우파 사전>(파리·2007)의 공저자.
(5) 프랑스 상원, 2010년 10월 23일.
(6) 1986년 3월 16일, RPR과 UDF는 총선과 지방선거에서 수도권 22개 지역 중 20개 지역에서 승리하는 성공을 거뒀다. 그중 5곳의 승리는 FN과의 연합 덕분이었다. 그 대가로 FN은 6곳의 단체장 자리를 확보했다.
(7) 2010년 12월 12일 성명.
(8) <Le Point>, 2008년 8월 11일자.
(9) 르펜은 연설 중 자주 잔 다르크를 언급한다. www.frontnational.com.
(10) <AFP>에 따르면, 빌더스는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해 영토를 되돌려주는 데 반대하는 대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요르단에 정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한 그는 중동 분쟁을 영토나 국경 문제가 아닌 이슬람 지하드와 서구 자유사회의 대립으로 본다. 그는 동예루살렘과 유대사마리아(요르단강 서안)를 팔레스타인에 양보하면 이스라엘-아랍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요르단강 서안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자유 수호의 보루로 여긴다. 이곳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서구 사회가 평화와 존엄성, 자유 속에서 살 권리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그들에게 대항하는 기지라는 것이다.
(11) ‘The 50 Wealthiest Angelenos: Aubrey Chernick #42’, <Los Angeles Business Journal>, 2010년 5월 24일자.
(12) 프랑스 인권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해가 갈수록 이런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CNCDH, www.cncdh.fr).
(13) <Carnets de prison>, Gallimard, 파리, 1996. 이상훈 역, <그람시의 옥중수고 1·2>, 거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