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혐오, 동성애 지지
빌더스에게 모순은 없다
[Spécial] 하이브리드 유럽 극우파
신랄한 독설을 서슴지 않는 선동가 헤르트 빌더스 덕분에 15년 전 네덜란드에선 존재하지 않았던 극우 정당이 지금은 날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1997년 12월 29일 극우파 국회의원 한스 얀마아트는 인종주의적 증오를 부츠긴 혐의로 구류 2주와 3400유로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3년전 집회에서 "되도록 빨리 다문화 사회를 끝장내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한 판결이었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2009년 6월 14일, 극우파 국회의원 헤르트 빌더스는 한 인터뷰에서 “수백만, 아니 수천만의 무슬림들의 여권을 압수하고 유럽 밖으로 추방해야 한다”(1)고 주장했다. 빌더스에 따르면, 이들은 유럽에 샤리아(이슬람 법률)를 도입하려는 ‘범죄자’다. 그의 발언에 대해 사법 당국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에라스뮈스와 스피노자의 나라이자 오랫동안 톨레랑스가 지배하던 네덜란드가 이런 정치적 구호에 익숙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네덜란드 극우파의 세력은 무시해도 좋은 수준이었다. 군소 정당에 유리한 비례대표제 덕에 몇 개 의석을 확보하는 정도였다. 가령 1994년 총선에서 극우 정당들은 총 2.4%를 득표해 세 명의 후보를 등원시켰을 뿐이다. 그러나 요즘은 이들이 아무리 과격한 발언을 해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길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다.
더는 무시 못할 네덜란드 극우파
2004년 9월 2일 빌더스는 소속당을 탈당해 오늘날 자유당(PVV)의 전신이 된 단체를 결성한다. 극우파로 전향한 자유주의자 빌더스는 국회의원직을 고수하면서 야만적인 무슬림의 침입에 대항한 서구 문명의 마지막 수호자를 자처했다. 그는 서구 사회의 이슬람화를 가장 우려한다. 이스라엘에 무조건 지지를 보내고 반(反)팔레스타인 정책에 찬성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결국 항상 원점으로 돌아온다. 무슬림의 자유를 제한하자고 주장할 때도, 동성애자의 권리 수호에 앞장설 때도 빌더스는 이슬람에 대한 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의 인권 같은 건 잊어버리고 동성애자의 권리만 생각하자는 것인가.
빌더스는 자신을 공격하는 좌파와 엘리트, 유럽 언론을 네덜란드를 파괴하려는 ‘음모자’라며 격렬하게 비난한다. 1990∼98년 자유주의 그룹의 국회 보좌관을 지낸 뒤, 1998년부터는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인 빌더스는 자신은 “엘리트가 아니며 ‘부패한’ 정치가 집단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발언은 점점 과격함을 더해가고 있다. 집주소를 비밀에 부친 채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고 다니는 것도 이해가 간다.
2006년 11월 총선에서 PVV는 5.9%를 득표하고 9개 의석을 얻었다. 빌더스는 자신의 오른팔인 기자 출신의 마르틴 보스마와 함께 직접 후보자를 선별했다. ‘지도자 원리’(Führerprinzip)에 의해 운영되는 PVV에 민주적인 공천제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원리에 따라 당 지도자는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유일한 당원처럼 행동한다.
탁월한 선동가의 인기 급상승
이들이 국회에 진출하면서 원내 분위기도 변했다. 이들은 국회의원이 지켜온 관례를 비웃으며 정치적 논쟁 중에 개인적 모욕도 서슴지 않는다. 자극적인 언사는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다. 누군가 빌더스에게 같은 식으로 응수하는 사람이라도 있을라치면 빌더스는 그가 자신을 악마화함으로써 또 한 번 정치적 암살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방식이다. 핌 포르투완은 적들이 자신을 외르크 하이더나 필리프 드윈터, 장마리 르펜 등과 동일시하면서 정치적 이미지에 흠집을 내려 한다고 비판했다. 빌더스는 `만약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당신들 책임'이라는 식의 암시를 던진다.
온갖 매력적인 단어와 슬로건을 동원하는 연설의 달인 빌더스는 그 재능 덕분에 인기가 급상승했고, 선거에서도 높은 득표율을 유지해왔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PVV가 17% 득표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자 정치학자들은 PVV의 인기가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2010년 총선에서 PVV는 15%를 득표해 하원 의석 150석 중 24석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정당엔 잡범들 우글
선거 결과에 고무된 빌더스는 가면을 벗어던졌다. 그는 주요 선거 공약 중 하나인 65살 정년 유지안을 철회했다. 그의 급변한 태도는 ‘덴마크 모델’에 가까워지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덕분에 PVV는 자민당(VVD)·기민당(CDA)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는 데 성공했다.
PVV는 자신의 큰형쯤에 해당하는 덴마크 국민당(DF)과 마찬가지로 새 정부가 과반수 의석을 확보할 수 있게 돕는 대가로 자신의 정책이 반영되게끔 노력할 것이다. 그 예로 빌더스는 크게 강화된 이민, 사회통합, 안보 관련 정책을 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과유불급이던가. PVV는 공공의료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에 제동을 걸었다.
빌더스는 북유럽 극우 정당들의 본을 따라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증오, 좌파 정치권에 대한 염증과 자신의 프로필을 교묘히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사회적 권리 수호를 외치며 노조와 좌파의 ‘정치적 좌표’를 이용하는데, 이런 행보는 1920~30년대 극우파들과 상당히 닮아 있다.
PVV의 다른 국회의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0년 11월에만 PVV 소속 국회의원 24명 중 7명이 경찰에 연행되거나 법정에 출두해야 했다. 그것도 대부분 최근에 있었던 일들 때문이다.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의 지도자에게 그런 일을 보고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았다. 이웃 협박, 성추행, 문서 위조, 음주 운전, 채무불이행 등 죄목이 다양했다. ‘법과 질서’ 원칙 구현을 내세우는 정당에서 이런 일들이 발생한 것은 결코 사소하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었다.
빌더스는 자신이 선별한 엘리트들이 연일 말썽을 피우자 처음엔 고개를 숙이는 듯했다. 그러나 곧 기운을 차린 그는 자신들이 ‘마녀사냥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이런 반응 역시 과거 극우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신극우파’들은 아직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지 못한 것 같다.
글•린케 반 덴 브린크 Rinke van den Brink
<NOS> 방송사 기자. 유럽 극우파에 대한 저서가 다수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덴마크 텔레비전 <DR2>와의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