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국가 정체성 약화 틈타 우회전

[Spécial] 하이브리드 유럽 극우파

2011-01-07     세르주 고아베르

벨기에에서는 북부·중부·남부 세 지역에 따라 극우파의 모습(특히 극우파의 정체성)이 달라진다. 플랑드르 지역에서 극우파는 플랑드르 민족의 자주권을 추구한다. 지난 2세기 가까이 벨기에 정부는 플랑드르 민족의 특수성은 물론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극우파는 플랑드르 선거구에서 높은 지지도를 보인다. 2010년 6월 주요 극우 정당 블라암스 벨랑(Vlaams Belang)은 12%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전체 연방하원 의석 150석 가운데 12석을 차지했다. 2004년 플랑드르 지방선거에서는 ‘블라암스 블르크’(Vlaams Blck)란 이름으로 24% 이상의 표를 끌어 모으며 기록적인 성적을 거둔 적도 있다. 이처럼 플랑드르 지역에서 극우파가 높은 지지도를 보이는 것은 극우파가 벨기에의 역사만큼 유래가 깊은 정치해방운동, 즉 ‘플랑드르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도 브뤼셀(대다수 주민이 프랑스어 사용자이거나 최소한 프랑스어를 매개언어로 사용하고 있다)과 왈로니아 지역에서 극우파는 플랑드르 지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프랑스어는 오랫동안 벨기에 왕국의 주요 언어였고, 브뤼셀과 왈로니아는 경제적 번영의 (비록 상대적일지라도) 중심지였다. 그 결과 이 지역은 굳이 정치적 자주성을 요구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유권자 성격에 따라 벨기에가 두 지역(혹은 세 지역)으로 나뉘는 현상은 벨기에의 민중주의 우파나 극우파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브뤼셀을 포함한) 프랑스어권 지역의 경우, 극우파는 2009년 지방선거 때 브뤼셀과 왈로니아 지방의회에서 모조리 밀려난다. 2010년 6월 연방선거 때는 연방의회에서마저 자취를 감춘다. 반면 2009년 기업 변호사 미샤엘 모드리카멘이 창당한 민중당은 처음 참여한 2010년 6월 선거에서 비교적 만족할 만한 성적을 거둔다. 하지만 하원에 진출한 의원이 단 한 명뿐인데다, 벌써부터 ‘벨기에’냐 ‘프랑스어권 지역’이냐 하며 당의 정체성 문제로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편, 플랑드르 지역에서는 블라암스 벨링당이 정치적 고립(다른 정당들이 블라암스 벨링당을 상대로 친 ‘방역선’은 효과적이었다)과 신플랑드르연대(N-VA)와의 경쟁으로 상당 부분 영향력이 축소됐다. 플랑드르 지역의 이 신생 국수주의 정당은 우파 정당임에도 다른 정당과는 달리 외국인 혐오주의를 표방하지 않는다. 블라암스 벨링당처럼 반무슬림 사상에 집착하지 않고, 연방의회에 진출한 의원 중에는 유럽 출신이 아닌 의원도 섞여 있다.

결국 벨기에인과 플랑드르인, 이 두 민족을 (그것도 점차 더 큰 어려움에 부딪히며) 결집해야 하는 벨기에에서 극우파의 정체성은 당연히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플랑드르 정치의 구심점이 우파에 있다면, 왈로니아는 중도좌파에 있다. 브뤼셀은 유권자가 우파 반, 중도좌파 반으로 똑같이 나뉜다. 왈로니아 지역과 벨기에의 수도는 플랑드르 운동을 통해 여러 제도적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와 더불어 탄광 폐쇄, 제철소 파산 등 경제위기도 겪었다. 두 현상은 서로 연계성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지방선거에서 비유럽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문제나, 불법 이민자 추방을 중단하고 이들을 합법화하는 문제에 대해 지역별로 대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에 따라 공유하는 노선이 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프랑스어권 자유주의 우파는 무슬림의 부르카 착용 금지를 주장한다. 결국 벨기에 극우파의 영향력이 지역별로 다른 것은 타협점을 찾기 힘든 두 유권자의 정치 성향이 아닌, 경제위기라는 공통된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한다. 즉, 경제위기로 인해 벨기에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되는 것이 문제다.

글•세르주 고아베르 Serge Govaert
브뤼셀 사회정치정보연구소 소장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