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속 과거에 갇힌 동유럽 극우
[Spécial] 하이브리드 유럽 극우파
동유럽의 극우파는 놀라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 극우파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동유럽 특유의 역사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동유럽의 극우파 단체는 과거의 국가사회주의 체제뿐 아니라 새로운 자유주의 질서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했다. 이 단체들의 존재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극우파의 등장을 근대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사회에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정상적 병리현상’으로 본다. 따라서 이 현상이 각 지역에서 어떻게 다른 양상을 띠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
동유럽의 극우파는 여러 면에서 서유럽의 극우파와 다르다. 체제 변화 이후 동유럽 극우파는 선거에서 자주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지만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큰 편차를 보여왔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들이 공개적으로 표방하는 전(前)민주주의 혹은 반(反)민주주의적 성향이다. 이들은 서구 극우파와 다르게 과거의 전제적 통치 체제를 그리워한다. 또 국가의 ‘정체성’을 이루는 민족과 영토 개념을 중요시한다. 이 광적인 민족주의는 몇 가지 다른 모습으로 현상한다. 한편에는,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 존재했던 독재 체제로부터 영감을 받아 전제정치를 추구하는 파시스트 우파가 있다. 특히 러시아와 루마니아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으로 최근 불가리아에서도 등장했으며, 소비에트 제국의 붕괴에서 비롯된 ‘민족주의적 공산주의’와도 관련 있다. 다른 한편에는, 헝가리와 체코에서 볼 수 있는 자민족중심주의와 인종주의에 경도된 경향이 존재한다. 이들 역시 과거 영토 회복에 관심이 많다.
전제 통치 향수… 반유대주의 여전
국경선을 새로 그리려는 욕망은 비단 인도양에 부동항을 확보하려 애쓰던 19세기 러시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체코의 ‘공화주의자’들은 과거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 안에 ‘단일한’ 자민족만 거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루마니아에서는 대루마니아당(PRM)이 몰다비아 병합을 위해 양차 세계대전 사이 시절의 영토를 주장한다. 영토 확장 요구가 가장 극렬한 곳은 헝가리다. 정의생활당(MIEP)과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Jobbik)은 트리아농 조약(1)을 재검토하고 헝가리의 국경선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당들은 모두 헝가리의 화살십자당(Arrow Cross)이나 루마니아의 철위단(Garda de Fier)과 같은 1930년대 파시스트 체제나 운동의 상징을 재활용한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극우파 단체의 차이점은 조직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자주 폭력적 성향을 띠는 동유럽의 단체들은 선거나 제도 정치에 대한 경멸, 인종주의, 강한 인물에 대한 숭배 면에서 서로 닮았다. 폴란드의 각 지역에서는 극우파 활동가들이 규칙적으로 회합을 하고, 건물 담벼락을 파시스트적이고 반유대적인 낙서로 도배해놓는다. 2006년까지 가족연합 소속이던 폴란드 청년단은 폭력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체코에서는 롬족(Roms·집시)이나 유대인을 겨냥한 분노 표출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헝가리에서는 1990년대 스킨헤드 조직원이 4천 명을 헤아렸다. 러시아 언론 보도에 따르면, 스킨헤드 운동에 열성적으로 가담하는 활동가가 5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덧붙여 알렉산더 두긴이 이끄는 극우 정교회 운동과 불법이민추방운동(MCII)의 외국인 혐오자들이 활동 중이다.
양파 속 같은 역사, 복잡성 키워
동유럽의 극우파 단체는 서유럽에 비해 덜 조직적이다. 정당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 정당들은 선거 득표율이 일정치 않다 보니 선거가 끝날 때마다 예기치 않은 행보를 보인다. 이 때문에 극우 정당과 단체들 사이, 극우파와 보수우파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우가 많다.
유럽연합(EU)의 새로운 회원국이 된 동유럽 국가들의 극우파가 서유럽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들이 겪은 체제 변화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동유럽의 역사적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양파 껍질처럼 켜켜이 싸인 동유럽의 역사적 유산이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 속에 온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동유럽 극우파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이 양파 껍질들을 차례로 벗겨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 과정이 야기한 즉각적인 결과가 첫 번째 껍질에 해당한다. 이 시기 동유럽 국가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이행하기 위한 제도를 급조해야 했다. 또한 옛 바르샤바조약기구 소속 국가들은 유럽연합 가입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급격한 사회적 변동은 각 사회 조직들에는 시련과 같았다. 또한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던 빈부격차가 발생하면서 인민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자본(‘신뢰 자본’을 포함해)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었다. 이때 극우파들은 외부로부터 강요된 사회변동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불만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 뒤로는 공산주의 체제의 유물이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새로운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관료주의, 톨레랑스가 결여된 정치문화, 새로운 시스템에 필요한 엘리트 부재, 시민사회와 유리된 정당들, 반세기 동안 중앙 집중적인 권위주의로 운영된 경제 체제가 문제가 됐다. 아직 충분히 골격을 갖추지 못한 새 정치 체제 안에서 이런 문제들이 급작스럽게 불거지면서 인민들의 불만이 폭발해 극우파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동유럽에는 서유럽과 달리 이민자들이 많지 않아, 화살이 지역 소수민족이나 이웃 국가로 향하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동유럽 국가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음으로는 소비에트연방에서 독립한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주의 운영 경험 부재가 문제다(체코슬로바키아 제외). 이 문제는 상당히 두꺼운 양파 껍질에 비유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독일과 오스트리아와 달리 동유럽의 엘리트들은 '근대화'라는 차로 갈아타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역사적으로, 특히 양차 세계대전 사이 시기에 참고할 만한 민주주의적 전통이 없었기에 그 과정은 더욱 험난할 수밖에 없었다. 이 맥락에서 보면 극우파에 대한 반격이 드물게 국가기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동유럽에서 극우파가 부상하는 현상을 이해하려면 좀더 심층적 역사적 배경, 즉 동유럽에서 국가가 형성돼온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19세기에 형성되기 시작했지만, 20세기 동안 여러 번 그 과정이 중단되었으며 현재까지 완전히 종결되지 못한 상태다.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동서 간 장벽이 무너진 뒤 독립한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오토만 등 초국적 제국에 편입되어 있었다. 따라서 19세기 이 지역들에서 형성되기 시작한 국민의식은 국가라는 구심점의 부재로 인해 민족을 중심으로 한 국가 개념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소련 해체 후 극단적 민족주의 부상
이 지역의 국가 정체성과 국경이 지금까지 불안한 이유는 이 때문이다. 1918년 이후 이 지역에서는 국가를 이루는 3대 구성원에 큰 변화가 없었다. 3대 구성원이란 민족국가와, 그 영토 내에 거주하는 외국 출신 소수자, 해외에 흩어져 살면서 조국에 돌아오기를 원하는 본국 출신 사람들을 말한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대에는 표면적으로나마 존재하던 국제주의가 민족 간 긴장을 억제할 수 있었지만, 1989년 이후부터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이 다시금 민족 간 반목을 부추기고 이용하기 시작했다.
1989년 소련 해체에서 비롯된 반공산주의 압력은 결국 동유럽에서 민족국가 개념을 복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동유럽에서는 민족주의적이고 자민족중심적인 정치적 수사(修辭)가 주변적 현상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삶을 규정하는 중심축으로 기능한다. 더욱이 공산주의 체제 붕괴 이후 시민사회의 입지가 협소한 상태에서 사회 엘리트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가 만연해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사회가 점점 우경화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글•미하엘 민켄베르크 Michael Minkenberg
비아드리나대학 교수
번역•정기헌 guyheony@gmail.com
<각주>
(1) 1920년 6월 4일 연합국이 제시한 트리아농 조약은 헝가리 제국의 해체를 명시하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슬로바키아와 루테니아는 체코슬로바키아에,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에, 트란실바니아는 루마니아에 양도됐다.
[박스 기사] 동유럽 극우정당 득표율
발트해 연안 국가에서 극우파가 득세한 것과 달리, 불가리아의 극우파는 오랫동안 기를 펴지 못하다가 2005년이 돼서야 아타카당(Ataka)이 국회 의석을 확보하면서 전면에 부상했다. 체코는 그 반대다. 시작부터 화려하게 등장한 ‘공화주의자’들은 1990년대 말 이후 거의 종적을 감췄다. 헝가리도 1998년 의석 확보에 성공한 정의생활당(MIEP)이 그 뒤 미미한 세력으로 전락했다. 대신 MIEP 못지않게 극우적 성향을 띠는 ‘더 나은 헝가리를 위한 운동’(Jobbik)이 2010년 4월 총선에서 17%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얀 슬로타의 슬로바키아민족당(SNS)은 2006년까지 약 10%의 지지율을 유지함으로써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를 확보해왔다. 그러나 2010년 선거 득표율은 5%에 그쳤다.
러시아와 루마니아는 극우파 운동이 좀더 자리를 잡은 경우다.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의 자유민주당이, 루마니아는 바딤 투도르의 대루마니아당(PRM)이 이 경향을 대표한다. 최근 몇 년간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 정당들의 득표율은 두 자릿수를 웃돌았다.
폴란드는 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유권자 표심의 변동이 심하기 때문이다. 폴란드 가족연합(LPR)은 2001년과 2005년 선거에서 8%를 득표했으며, 전통주의를 추구하는 농민당(Samoobrona)이 이끄는 연정에도 참여했다. 농민당은 2005년 11%를 얻었다. 그러나 LPR는 2007년 1.3%의 낮은 지지율로 정치무대에서 사라짐으로써 농민당과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폴란드 극우파 운동은 해체와 복구를 반복하며 새로운 형태, 새로운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