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종은 무엇입니까?”

2019-08-01     브누아 브레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흑인’, ‘백인’, ‘인디언’, ‘동양인’…. 미국 정부가 200여 년 전부터 국내 거주자를 대상으로 실시해온 인구조사(센서스)에서는 응답자가 자신의 ‘인종’을 의무적으로 선택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차별방지 정책을 위한 도구가 돼야 할 인종조사가, 오히려 각 국민을 특정 정체성에 국한하거나, 인종구별을 정당화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오는 2020년, 미국 역사상 23번째로 국내 거주자에 대한 대규모 인구조사(센서스)가 실시될 예정이다. 10년 만에 치러질 이번 조사를 위해 미 정부도 각종 연구와 실험, 심사, 보고 등을 확대하고 있다. 미국 내 거주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조사에 참여할 수 있으며, 온라인 신고에 참여하지 않은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수백 명의 조사원들이 직접 전국 각지를 돌며 조사를 할 예정이다. 조사에 불응할 경우 5천 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지는데, 그나마 1976년까지는 징역형이었던 것에 비하면 나아진 것이다.(1)

국내 거주자들에 대한 인구조사는 미국 헌법 1조에 명시돼 있는 사항으로, 10년에 1회 실시가 의무화돼 있다.(2) 특히 인구조사는 연방제의 주춧돌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데, 각 주의 인구 총계에 따라 하원 의석수와 대선 선거인단 규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조사 결과는 연방기금(2018년 기준 총 8천억 달러)의 분배기준이 되며, 1960년대 이후로는 ‘적극적 인종 우대(긍정적 차별)’ 정책에 활용되고 있다. 인구조사 과정은 실로 따분하지만(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 제작자인 아론 소킨은 “인구조사라는 단어만 들어도 모두 잠들고 말 것”이라고 말한 바 있음), 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3) 모든 거주자에 대한 정확한 집계는 대단히 중요하다.

하지만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결과의 정확도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문항을 추가하거나, 선택지를 삭제하거나, 표현을 조금만 수정해도 잘못된 집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오는 2020년 치러질 인구조사에 ‘당신은 미국의 시민권자입니까?’라는 질문을 다시 추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70년 만에 시민권 여부에 대한 문항을 포함하겠다는 것인데, 하버드 대학 쇼렌스타인 센터는 이 단 하나의 문항이 추가되는 것만으로도 6백만 명 이상의 히스패닉계 이민자들을 조사에 불응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민주당 지지 지역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자 사냥’을 이어가고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할 때, 일부 주민들이 시민권 문항에 대한 응답이 경찰이나 이민국 등으로 전달돼 악용될 것을 염려하는 것도 당연하다. 특히 미국 인구조사국(USCB)이 과거에도 비밀유지의 원칙을 어겼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우려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인구조사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들을 구금한 정보기관들과 내통하기도 했고, 최근에는 9·11 테러 이후 이라크 및 이집트 출신 거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들에 대한 자료를 각종 정보기관에 넘긴 바 있다.(4)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새 문항을 둘러싸고 18개 주와 여러 지역 단체 및 기관 등이 소송전쟁에 나섰다. 소송 결과는 연방대법원의 손에 달려있으며, 근시일 내에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지난 6월 말, 연방대법원은 시민권 보유 여부 문항의 포함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역주). 이처럼 인구조사 과정이 언제나 지루한 것은 아니다. 역사학자 폴 쇼어는 인구조사에 대해 “국가를 비추는 거울”이라면서 “특권층이 다른 인구계층들을 대상화하는 과정”이라고 일컫기도 했다.(5) 미국의 경우 인구조사를 둘러싼 첨예한 논쟁이 200년 넘도록 되풀이되고 있는데, 특히 1790년 첫 인구조사 이후로 어떤 형태로든 항상 존속돼온 ‘인종 관련 질문’에 대한 논쟁은 빠진 적이 없을 정도다.

앞서 시행된 두 번의 인구조사와 마찬가지로 2020년 인구조사에서도 응답자의 인종은 크게 ‘백인’, ‘흑인 및 아프리카계 미국인’, ‘동양인(세부분류로 ‘중국인’, ‘일본인’, ‘필리핀인’, ‘기타 동양인’)’, ‘아메리카 및 알래스카 원주민’, ‘하와이 및 태평양 제도 원주민’까지 5개(여기에 ‘기타 인종’까지 더하면 총 6개) 대분류로 나뉠 예정이다. 응답자는 1970년부터 시작된 자진신고 원칙(그전까지는 조사원이 직접 응답자의 인종을 분류해야 했다)에 따라 본인이 해당하는 인종 대분류를 선택하고 정부가 제시한 예시에 따라 세부분류를 명시해야 한다. 

이 분류법에 의하면 독일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는 물론 이집트계, 레바논계 출신도 ‘백인’을 선택해야 하며, 아메리카 원주민의 경우 부족까지 명시해야 한다. 히스패닉계는 ‘인종’이 아닌 ‘혈통’으로 분류되므로 별도의 문항인 ‘당신은 히스패닉계, 라틴계, 에스파뇰계 출신입니까?’에 답해야 한다. 또한 1980년부터는 모든 응답자에게 ‘당신의 선조 혹은 민족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 추가됐는데, 자메이카계, 우크라이나계, 나이지리아계, 퀘벡계, 아프리카계 등은 이 문항을 통해 자신의 출신을 명시해야 한다.

결국 미국 거주자들은 피부색, 지리적·민족적 혈통, 소속 부족, 언어 집단 등 여러 요인을 전부 고려해야만 하는 이 복잡한 분류 기준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인구조사국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 ‘민족’, ‘인종’, ‘혈통’, ‘선조’ 등의 용어 간 차이를 불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일부는 정부가 제시한 분류법을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6) 

특히 히스패닉계의 경우 약 절반에 해당하는 1,700만 명이 자신의 인종이 ‘백인’보다는 ‘기타 인종’에 가깝다고 봤으며, 그중 97%는 실제로도 인구조사에서 ‘기타 인종’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 및 이란계의 경우 자신들이 겪는 차별을 감안할 때 스스로를 ‘백인’으로 볼 수 없다고 하며 라틴계처럼 자신들에게도 별도의 선택지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아랍계 미국인 차별방지위원회(ADC)는 “인구조사에서 정확한 집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국가가 ‘집계한 집단’에 제공하는 자원과 서비스를 우리 집단에는 제공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고 비판했다.(7)

 

노예 5명=자유민 3명, 인디언은 ‘0’명

그러나 과거 미국 내 소수 인종은 지금처럼 다수 인종의 범주에서 벗어나려고 하기보다는 도리어 다수 내에 통합되기 위해 오랫동안 애써왔다. 20세기에 들어서 중동 지역 이주민들이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이들은 ‘동양인’으로 분류돼 미국 시민권 취득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중동계 미국인은 1915년에야 ‘백인’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자신들이 코카서스(유럽계) 혈통이라는 ‘과학적 증거’들을 앞세운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낸 결과물이었다.(8) 히스패닉계 역시 미 정부가 1930년 인구조사의 인종항목에 ‘멕시코계’를 추가하자 종전대로 다수 인종 즉 ‘백인’으로 분류될 것을 주장하며 반대했고, 결국 1940년 인구조사에서 해당 항목이 삭제되기도 했다. 이처럼 과거 소수인종들이 지금과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던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국 내 인종통계의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 인구조사가 이뤄졌던 1790년 당시, 조사원들은 응답자를 피부색에 따라 ‘백인 자유민’, ‘기타 자유민’, ‘노예’의 3가지 선택지 중 하나로 분류해야 했다. 이 분류법은 1787년 열린 헌법제정회의에서 결정된 이른바 ‘3/5 타협’이라고 불리는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 사용됐다.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제임스 매디슨은 이 회의에서 “각 주가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나뉜 것은 크기에 따른 것이 아니라 (…) 주로 노예의 소유 여부에 따른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노예제 폐지를 지지했던 북부연합 대표들은 하원의원의 수를 결정할 때 노예 수를 포함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펜실베이니아 연방의 고베뉴 모리스 대표는 “(남부 주들이) 흑인 노예에 대한 대표권을 가지고 (…) 도리어 노예무역을 더욱 조장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9) 결국 남부연합 대표단은 연방 가입을 수락하는 대신 노예 5명을 자유민 3명으로 계산해 인구에 포함시키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다만 인디언은 배제돼 0명으로 계산됐다.

이후 19세기 동안 이뤄진 각종 민족 통계는 인종에 대한 미국 사회 내 고정관념을 악화시켰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흑인 사망률이 높은 것은, 의료적 대처가 열악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퇴화한 인종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신규 유입된 이주민들의 융화문제, ‘앵글로 색슨족의 자살’, 혼혈의 단점, 흑인의 자유화에 따른 폐해 등 다양한 주장을 인구조사의 결과를 들어 억지스럽게 증명해 보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1840년 인구조사 결과를 통해 “흑인 자유민 중 광인이나 백치가 많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식이었다.(10) 

결국 3/5 타협 조항은 1865년 노예제 폐지와 함께 사라졌지만, 그 이후로도 인종통계는 지속되고 있으며 시민권을 취득하려는 수많은 사람을 규정하는 잣대로 사용되고 있다. 1870년부터는 당대의 분류법에 따라 황인종과 ‘홍인종’을 구분할 수 있도록 선택지에 ‘중국계’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의 의미에서)’이 추가됐으며, 1890년에는 조사원이 응답자의 피부색을 보고 백인인지 흑인인지, 혹은 ‘뮬라토(백인과 흑인의 혼혈 1세대)’인지 ‘쿼드룬(혼혈 2세대)’인지 ‘옥토룬(혼혈 3세대)’인지를 구분해야 하기도 했다. 이어 20세기 중반까지 새로운 선택지(멕시코계, 인도계 등)들이 등장했다가 정책적 우선순위, 다양한 이주민의 유입, 공격적 저항 등의 이유로 사라지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변화가 있어왔지만 그 목적은 늘 동일했다. 바로 미국 내 인구의 인종구별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시민권 운동으로 ‘인종 우대(긍정적 차별)’ 정책들이 세워지면서 인구조사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뒤집혔다. 인종통계가 차별유지 수단에서 한순간에 차별방지 수단으로 돌변한 것이다. 어느 지역 내 인구 중 흑인의 비율이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야 인종 쿼터제(대학 입학전형, 정부관료 채용 등)를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케니스 프리위트는 속담을 인용해 “망치를 든 사람의 눈에는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이기 마련”이라고 빈정대기도 했다.(11) 법학 교수이자 1988~2011년 인구조사구 국장을 지냈던 그는 특히 ‘긍정적 차별’ 정책의 과정이 거꾸로 진행됐다고 비판했다. 불평등을 막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정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이를 위해 적절한 도구를 마련하기보다는, 본래 다른 정책을 위해 존재했던 도구를 활용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차별을 방지한다고 하는 일이 오히려 각 개인을 특정한 정체성에 소속시키거나, 인종구별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인종 우대’ 정책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통계적 측면에서는 흑인 중산층 및 상류층이 일부 등장하기는 했지만 실업률, 수감률, 빈부격차, 지역차별, 경찰에 의한 폭력, 의료혜택 등 흑인과 관련된 전반적 요소들은 여전히 빨간불이다. 반면, 인종 우대 정책이 부당하다고 여기는 백인 빈곤층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 백인 빈곤층은 자신들이 특혜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대학진학 등에서도 흑인에게 밀리고 있으며 결국 사회적 하위계층에 갇혀버렸다고 주장한다.  소수인종에 대한 각계각층의 관심은 커져가는 반면, 자신들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12)

공화당은 바로 이런 불만을 이용해 50여 년까지는 민주당을 지지했던 백인 빈곤층의 표심을 유인했다. 실제로 공화당은 1990년 총선을 앞두고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벌인 선거 유세에서 “당신은 일자리가 필요하고, 일할 자격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인종쿼터제로 일자리는 유색인종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이 정녕 정당하단 말인가?”라는 노골적인 발언도 아끼지 않았다. 

인종통계는 점차 차별의 문제를 넘어서서, 정체성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대니얼 아카카 하와이 상원의원은 1997년 당시 “연방제에서 실시하고 있는 인종분류법은 우리 원주민들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처사”라고 비판하며 인구조사의 인종문항 선택지에 ‘태평양 제도 원주민’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13) 1990년대 ‘복합인종운동’의 지지자들이 인종관련 문항에 복수응답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인종의 복수응답은 2000년이 돼서야 가능해졌다.

그 자신도 혼혈 자녀를 두고 있으며 ‘모든 아동에 대한 동등한 재분류 프로젝트’(RACE Project)의 공동 창립자이기도 한 수잔 그레이엄은 1996년 의회에서 이런 발언을 남겼다. “나는 대학교수도, 변호사도, 입법자도 아니다. 그저 한 아이의 엄마일 뿐이다. (…) 나 자신의 만족과는 상관없이, 나는 인종적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는 혼혈 자녀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부모가 점점 늘고 있다.”(14) 민주당 소속의 윌리엄 키팅 메사추세츠 주 상원의원은 인구조사 선택지로 ‘복합인종’을 추가하면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에게 화합과 사회로부터 인정받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인구조사에 항목을 추가해 사회적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요구는 이제 소수 인종을 넘어서서 성적 소수자들과도 연관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다수의 단체와 정계인사들이 차별반대와 정체성 인식의 문제를 고려할 때 각 개인의 성적 방향성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문항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미국 성 소수자 대책위원회의 메건 머리는 “정부가 어떤 지역에 LGBTQ(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퀴어)가 얼마나 거주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주며 우리가 필요로 하는 보호와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또한 스콧 위너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은 “우리는 지난 수십 년간 투명인간과도 같은 취급에 맞서 투쟁해왔다. 어떤 집단에 대한 데이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집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 마련”이라고 주장하며 인구조사의 성적 소수자 문항 추가안에 대한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이렇게 집단별 요구사항이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앞으로는 인구조사 문항지가 엄청나게 길어질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소소한 성과, 거대한 논쟁

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미국 내 비판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는 반면, 인종통계 자체에 대한 반론은 미미하다. 오늘날 미국의 인종구별은 병원, 학교, 교도소, 공공주택, 채용기관, 언론매체, 정치지도층, 대학 등에서 사용되며 일상생활 속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다. 이 인종구별 원칙은 다른 나라에서도 쉽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적용된 이후에 되돌리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프랑스의 경우 인종조사 자체가 금지사항이다(일부 예외의 경우는 있지만). 이를 위반할 경우 징역 5년 또는 벌금 30만 유로에 처할 수 있다. 

프랑스 내에서도 미국의 인종분류 모델을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실제로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인종분류를 허용하려 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물론 그 후로도 비슷한 주장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 흑인대표위원회(CRAN) 등의 각종 단체나 몽테뉴 연구소와 같은 싱크탱크를 비롯해 다수의 지식인, 사회운동가 등은 인종분류가 불평등 방지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 국립인구연구소(INED)가 실시한 연구를 비롯해 주택, 경찰, 사법, 고용, 교육 등의 여러 분야에서의 불평등에 대한 각종 연구결과들을 보면, 굳이 인종분류를 제도화하지 않고도 차별방지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인종분류를 제도화한 결과, 인구조사를 정체성에 대한 주장과 집단 간의 경쟁이 뒤섞인 거대한 논란의 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소소한 성과를 위해 거대한 논쟁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글·브누아 브레빌 Benoît Bréville
파리1대학 20세기사회사연구소 연구원, 몬트리올 퀘벡대 교수 역임.

번역·김보희 sltkimbh@gmail.com
번역위원. 역서로 『자신감: 단 한 걸음의 차이』 등이 있다.

 

(1) 프랑스에서는 조사에 불응 시 38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2) “인구수의 산정은 제1회 연방의회 개최 후 3년 이내에 행하며, 그 후는 10년마다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한다.”

(3) Christopher Bigsby, Viewing America. 『Twenty-First-Century Television Dram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년.

(4) Katy Steinmentz, ‘The debate over a new citizenship question isn't the first census fight’, <Time>, 2018년 3월 27일.

(5) Paul Schor, 『Compter et classer. Histoire des recensements américains(집계와 분류. 미국 인구조사의 역사)』, Editions de l'Ehess, coll. ‘En Temps et lieux’, Paris, 2009년.

(6) Nicholas A. Jones, ‘Update on the US Census Bureau's race and ethnic research for the 2020 Census’, United States Census Bureau, 2015년 4월.

(7) ‘Census and Identity’, American-Arab Anti-Discrimination Committee, www.adc.org.

(8) Elena Filippova&France Guérin-Pace, ‘Les statistiques raciales aux USA: un legs empoisonné(미국 내 인종통계: 오염된 유산)', 『Diviser pour unir? France, Russie, Brésil, Etats-Unis face aux comptages ethniques』, Editions de la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 Paris, 2018년.

(9) Paul Finkelman, 『Slavery and the Founders. Race and Liberty in the Age of Jefferson』, Routledge, 1999년.
(10) Pau Schor, Op. Cit.

(11) Kenneth Prewitt, 『What Is Your Race? The Census and Our Flawed Efforts to Classify Americans』,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년.

(12) Arlie Hochschild, ‘Anatomie d'une colère de droite(아메리칸 드림? 자기 땅의 이방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8월호.

(13) Kenneth Prewitt, Op. Cit.

(14) Jon M. Spencer, 『The New Colored People: The Mixed-Race Movement in America』, New York University Press, 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