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빙(Irving) 가문, 캐나다의 현대판 왕조

2019-08-01     알랭 드노 l 철학자

어빙 사가 지은 집에 살며, 어빙 사에서 발행하는 신문을 읽고 어빙 사의 농장에서 재배된 농산물을 먹는다. 이 농산물은 어빙 사가 생산하는 석유로 굴러가는 어빙 사에서 제조한 트럭을 통해 유통된 것이다. 이것은 뉴브런즈윅 주민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이렇게, 어빙 사는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이 지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뉴브런즈윅에 본사를 둔 어빙 사는 이 주를 통치하는 하나의 왕조다. 지난 수십 년간 이 기업은 여타 다국적 기업들이 보통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독특한 경제적 모델을 기반으로 납품업체도, 하청업체도 필요 없는 수평적인 독점형태 구축에 성공했다. 세계 시장 진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뉴브런즈윅이라는 제한된 지역만을 타깃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독점하고 있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어빙 사의 세인트존 정유 공장은 뉴펀들랜드섬부터 뉴잉글랜드에 이르는 북아메리카 북동부 지역 전체를 아우르는 어빙 사의 유통망과 연결돼 있다. 어빙 사는 이 석유를 엄청난 수의 어빙 사 제조 트럭들에 공급하며, 이 트럭들은 어빙 사 소유의 농장에서 재배되는 식품, 어빙 사에서 발행하는 신문, 어빙 사의 배송서비스를 통해 처리되는 택배들의 운송을 책임진다. 이 트럭들이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은 어빙 사의 철도망이나 화물선을 통해 유통된다.

어빙 가문은 자사 소유의 방대한 삼림지에서 나무를 베어, 자사가 운영하는 제재공장과 제지공장에서 가공한다. 덕분에 자회사 ‘켄트 홈스(Kent Homes)’는 집짓는 데 필요한 목재, 철재, 콘크리트 등을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 어빙 사는 심지어 콘크리트까지 제조한다. 조선소, 포장 공장, 도시 간 연결 버스, 차량 판매업, 레스토랑 체인, 하키팀, 철물점과 약국 브랜드까지, 어빙 가문의 자산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뉴브런즈윅의 절대 권력기업

산업 및 상업 분야는 물론, 어빙 가문은 마치 비공식적인 군주처럼 정계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다. 앞에서는 인류애적인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뒤에서는 뉴브런즈윅 주를 비롯해 애틀랜틱 캐나다 일대와 관련된 문제들에 끊임없이 개입하면서 ‘유사 정부’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지역에서는 스포츠센터, 박물관, 연구소(에너지, 삼림관리, 지속가능한 개발 분야) 등 모든 분야에서 어빙 사와 무관한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눈만 돌리면 어빙 사의 간판이 들어오는 탓에, 지명이 헷갈릴 정도다. ‘어비니(Irvigni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빙 왕국은 이 지역에서 유통되는 모든 영어신문을 발행한다. 프랑스어로 된 일간지 <L'Acadie Nouvelle> 조차도 인쇄는 어빙 사를 거칠 정도다. 어빙 사는 지역 라디오와 TV 채널, 뉴브런즈윅 대학 출판부 다수를 인수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롯되는 이해관계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 언론사들은 어빙 사와 관련된 모든 사회 및 산업 분야에서 어빙 사의 입장을 대변한다.(1) 2018년 가을 세인트존 정유 공장의 폭발 사고 때도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는 4명이었지만 한 의사는 어빙 사가 발표한 내용의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언론사들이 불공정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했다.(2)

그러나 의혹을 드러내놓고 말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교수, 공무원, 의원들은 보복을 두려워하며, 일부는 실제로 협박을 당했다고 한다. 주도인 프레더릭턴에서는 브런즈윅 주의 보건 책임자 엘리쉬 클리어리의 해고 건이 한동안 화제였다. 그녀는 2015년 어빙 사 소속 삼림 관련 기업들의 글리포세이트 사용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던 중에 해고됐다. 과거 에너지 및 천연자원부에서 일했던 생물학자 로드 컴버랜드와 뉴브런즈윅 대학교의 삼림학과 교수 톰 베클리도 제초제로 사용되는 글리포세이트가 동물서식지에 미치는 영향과 입법부의 불투명한 숲 관리 행태를 조사하던 시기에 외부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았었다고 고백했다.(3)

어빙 사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창립자인 케네스 콜린 어빙은 1899년생으로 엄격한 금욕주의를 추구하던 신교도였다. 그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가면서 캐나다 동부에 식민주의가 끝나고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때 큰돈을 벌었고, 석유 분야에 투자해 석유유통 시장을 장악하는 록펠러의 방식을 좀 더 작은 규모로 적용했다. 이후 목재, 철강, 유통망 분야에까지 진출하면서 세 아들이 가업을 물려받기 전까지 냉혹한 사업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정계에도 은근슬쩍 발을 들여놓았다. 

사실상 캐나다 동부의 고용을 책임지고 산업을 견인하고 있는 어빙 가문은 이 지역 주민들을 포로로 만들어 버렸다. 이곳에서는 그 어떤 반트러스트법(시장을 지배하는 독점행위, 독점거래의 제한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의 총칭으로, 기업합동을 금지 및 제한한다-역주)도 어빙 사에 맞설 수 없다. 어빙 사는 북미에서 5번째로 넓은 삼림을 소유하고 있으며, 200여 개에 이르는 자회사를 통해 100억 캐나다 달러(66억 유로)를 벌어들인다. 상장되지 않은 탓에 기업지배 구조에 대한 정보는 외부에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고용창출’이라는 성스러운 명목하에 어빙 사는 셀 수 없을 만큼의 세제 혜택을 누리고 있다. 게다가 대기업들이 제재소를 운영하면서 나오는 에너지, 톱밥, 대팻밥을 공영전력 회사가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사들이도록 하는 ‘대기업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구매 계획’을 교묘하게 이용해 지원금까지 받고 있다.

또한 뉴브런즈윅 주는 공공재에 해당하는 삼림자원 관리를 어빙 사에 직간접적으로 넘겼으며, 요구 조건도 지속적으로 완화해 주고 있다. 주 정부에 의해 2014년에 개정된 최신 버전의 ‘삼림정비 매뉴얼’에 따라 숲과 거주지 사이의 완충지대 면적은 줄어들었다. 개벌(임목 벌채)은 광범위하게 허용됐으며,(4) 삼림구역에서의 생산 및 채취 허용량은 늘어났고, 보호구역의 비율은 31%에서 22%로 감소했다.(5) 보호구역 내에는 어빙 가문 전용 낚시터가 있을 정도다. 캐나다 천연자원부의 요구 조건은 어빙 사의 찬성 없이는 변경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은 전적으로 어빙 사의 편으로 보인다.(6)

어빙 사는 인근에 위치한 미국의 메인 주에서도 유사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캐나다 당국의 비호하에 어빙 사는 개벌금지에 관한 국민투표와 위임재산 공개에 관한 법안을 저지하려 전력을 쏟았다. 이제 어빙사가 새롭게 눈독을 들이는 것은 메인 주 아루스투크 카운티의 볼드 산에 매장된 금과 구리다. “메인 주가 이미 어빙 사의 새로운 식민지가 돼버린 것”이라는 이들도 있다.(7) 환경보호론자들은 볼드 산의 자원개발이 황산과 비소를 발생시킬 수 있다며 크게 우려한다. 그러나 어빙 가의 세 아들 중 한 명인 제임스는, 이에 대해 명확한 답변 대신, 어빙 사가 ‘최고의 기술’과 ‘엄격한 기준’에 따라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8)

어빙 사가 저지른 불법행위들은 이 왕국이 그동안 어떻게 탈세를 해왔는지 살펴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1960년대에 어빙 사는 조세회피처에서 자금을 관리하던 몇 안 되는 기업들 중 하나였으며, 오늘날에는 일반화된 탈세방식을 이미 그때부터 사용하고 있었다. 어빙 사의 자회사들은 서로 엄청난 양의 송장을 주고받았다. 예를 들어 버뮤다의 자회사가 원유를 구매한 뒤 이를 캐나다의 자회사에 높은 가격으로 판매함으로써 조세회피처인 버뮤다에 최대한 많은 자본을 유치할 수 있게 하는 원리였다. 60년 가까이 캐나다의 입법부와 법원이 이런 행태를 눈감아줬던 덕분에 어빙 가는 지속적으로 탈세를 해올 수 있었다.(9) 어빙 사의 창립자는 이 조세회피처를 너무나 사랑했던 나머지, 결국 버뮤다에 거처까지 마련해 살았다. 어빙 그룹의 유일한 주주였던 그는 캐나다에서 경영인으로 공식 등록돼 있던 세 아들을 통해 어빙 사를 원격 관리했다.

정치부패 분야의 국제 전문가인 돈 바우저는 천연자원 개발에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뉴브런즈윅의 투명성과 공공협의 수준이 쿠르디스탄, 과테말라, 시에라리온보다도 낮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10) 이들 국가의 경우 그나마 활동가들이 자원개발 기업과 정부 간의 부정부패 연결고리를 밝혀내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브런즈윅 주의 주민들은 어빙 사가 세금을 얼마나 납부했는지 또는 납부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어빙 사가 공공보조금을 얼마나 지급받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저는 정치와 비즈니스는 뒤섞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뉴브런즈윅은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작습니다.”(11) 1970년대에, “왜 정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케네스 콜린 어빙은 이렇게 뻔뻔한 대답을 했었다.

뉴브런즈윅 주의 역대 총리들 중 어빙 가문의 과도한 영향력을 우려한 인물은 1960~1970년 총리직을 지낸 루이 로비쇼가 유일하다. 그러나 로비쇼 역시 선임자들 및 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어빙 사의 지원 덕분에 총리직에 오를 수 있었다.(12) 로비쇼의 전기를 출간한 미쉘 코르미에 기자는 이렇게 썼다. “어빙 사로부터 암묵적인 지원을 받지 않아도 선거에서 승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어빙 사가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할 경우 선거에서의 승리는 불가능했다.”(13) 어빙 사의 창립자는 훗날 의원들 앞에서 “주 정부를 폐쇄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14) 마치 모든 주민을 휘두를 수 있다는 듯 말이다.

현재 뉴브런즈윅주의 총리는 소수 여당의 수장 블레인 힉스다. 그는 30년 이상 어빙 사의 석유 부문에서 일하면서 임원직까지 지낸 인물이다. 2010년 총리가 된 이후 힉스는 캐나다 동부와 미국 동북부의 목재시장 및 광물시장을 통합하는 문제와 캐나다에서 석유가 가장 많이 매장된 앨버타 주와 어빙 사의 정유 공장을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이는 캐나다 연안 주들에서 반복되는 고질적인 문제를 잘 보여준다. 의원들이 지역주민의 의견을 대변해야 하는 본분을 망각한 채, 사기업의 로비스트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글․알랭 드노 Alain Deneault
국제철학학교(College International de Philosophie)의 회원, 저서로 『토탈 사가 혼자가 아닌 이유 De quoi Total est-elle la somme?』(Rue de l’Échiquier-Écosociété, Paris-Montréal, 2017)과 『평범한 사람에 의한 통치 La Médiocratie』(Lux, Montréal, 2015)가 있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Julian H. Walker, ‘The once and future New Brunswick free press’, <Journal of New Brunswick Studies>, vol. 1, 2010년 1월 & Bruce Livesey, ‘The Irvings’ media monopoly and its consequences’, <National Observer>, 2016년 7월 6일, www.nationalobserver.com
(2) ‘Explosion à Saint-Jean: plus de blessés qu’annoncé(세인트존 정유공장 폭발사고: 공식집계보다 더 많은 사망자)’, <Radio-Canada Acadie>, 2018년 10월 11일, https://ici.radio-canada.ca
(3) ‘Congédiement d’Eilish Cleary: le Conseil des Canadiens porte plainte(엘리쉬 클리어리의 해고: 캐나다인 위원회(Council of Canadians)의 소송 제기)’, <Radio-Canada Acadie>, 2016년 5월 17일 & Bruce Livesey, ‘How the Irvings intimidate their critics’, <National Observer>, 2016년 6월 27일.
(4) 개벌(Clearcutting): 한 구역의 모든 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을 뜻한다.
(5) ‘Manuel d’aménagement forestier pour les terres de la Couronne du Nouveau-Brunswick(뉴브런즈윅 토지를 위한 삼림 정비 매뉴얼)’, 천연자원부, 뉴브런즈윅 주정부, <Fredericton>, 2014년 7월 31일.
(6) Charles Thériault, ‘Notre forêt est-elle vraiment la nôtre?(우리의 숲은 정말로 우리의 숲인가?)’, 자체 제작 다큐멘터리, http://notreforetest-ellelanotre.com
(7) Lance Tapley, ‘Maine: Irving’s new colony?’, Maine Center for Public Interest Reporting, Augusta, 2015년 9월 16일.
(8) Bruce Livesey, ‘The Irvings’ invasion of Maine‘, <National Observer>, 2016년 7월 21일.
(9) Alain Deneault, ‘Paradis fiscaux: la filière canadienne(조세 회피처가 된 캐나다의 자회사들)’. Barbade, Caïmans, Bahamas, Nouvelle-Écosse, Ontario…, Écosociété, Montréal, 2014 & Diane Francis, Who Owns Canada Now? Old Money, New Money and The Future of Canadian Business, <Harper Collins Canada>, Toronto, 2009년.
(10) Charles Thériault와의 대담, ‘Notre forêt est-elle vraiment la nôtre?(우리의 숲은 정말로 우리의 숲인가?)’, op.cit.
(11) Peter Newman, L’Establishment canadien. Ceux qui détiennent le pouvoir(캐나다의 기업, 권력을 손에 쥔 이들), Les Éditions de l’Homme, Montréal, 1979년.
(12) Herménégilde Chiasson, Robichaud, 캐나다국립영화위원회, Montréal, 1989년.
(13) Michel Cormier, Louis J. Robichaud. 『Une révolution si peu tranquille(조용하지 않은 혁명)』, Éditions de la Francophonie, Moncton, 2004년.
(14) Diane Francis, 『Le Monopole. 32 familles et conglomérats contrôlent le tiers des richesses canadiennes(독점. 32개 가문과 재벌 그룹이 캐나다 전체 부의 1/3을 소유하고 있다)』, Les Éditions de l’Homme, 198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