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욕망, 시장 포퓰리즘

2019-08-01     토마스 프랭크 l 작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서민계층은 시장을 민주주의의 적으로 여겼다. 시장은 가진 자들의 도구였다. 그러나 소비사회 및 자유주의 사상이 점차 득세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업과 브랜드, 광고는 선거보다 확실하게 우리의 욕망을 이해하고 충족시켜준다.

 

보스턴 시립도서관을 마주보고 있는 더 웨스틴 코플리 플레이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깨달았다. 회색 플란넬 차림을 한 광고 전략가들이 모여 있는 사교장에 내가 오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1950년대 미국 광고 전문가의 모습을 하고선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물론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광고 전문가의 대부분은 영국 여성이었다. 부유하고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로 가득 찬 홀에서 나만 유일하게 시대에 뒤떨어진 남자였다. 검은 브래지어가 비치는, 몸에 딱 달라붙는 흰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 광고전문가들은 당시 유행하던 기묘하게 생긴 안경을 쓰고 있었다. 탈색한 머리는 라이엇 걸(1)처럼 짧은 컷 스타일이었다. 스포츠웨어를 걸친 남성 광고전문가들은 얼굴은 염소수염에, 코에는 피어싱을 한 모습이었다.
 

 시장 포퓰리즘, 선거보다 더 명확하게 민심을 대변  

나는 1998년도 광고전문가 회의 분위기가 이전에 비해 ‘급진적’이지 않다는 점을 금방 알아차렸다. 1998년 참가자는 약 750명이었다. 1997년에는 약 500명이 참석했으며, 1996년에는 약 300명이 참가해 훨씬 친밀한 분위기에서 회의가 진행됐었다. 그렇지만 1998년의 광고전략기획은 이제 막 자리 잡으려고 하는 젊은 문화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1960년대 1차 기업가 혁명 시기에 영국에서 탄생한 광고전략기획에는 최근까지 소수의 미국 전문가들만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미국의 모든 회사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면서 광고회사에도 ‘전략기획’ 부서가 신설됐다. 

 그 후 10년간 서구 지도자들은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선출된 정부보다 시장경제가 훨씬 민주적인 조직형태이자 대중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가 ‘시장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의 기본 원칙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은 상업적 교역을 구현하는 장일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교류의 장이었던 것이다. 시장은 선거보다 더 명확하고 유익하게 민심을 대변해왔다. 시장은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서민들의 친구였으며, 잘난 체하는 사람들의 콧대를 꺾었다. 시장은 또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주면서 우리의 이익을 보호해왔다.

 수많은 경영 이론가들과 논평가들이 아주 작은 욕망에도 시장이 반응한다고 주장했다면, 광고 전략가들은 비즈니스업계가 우리의 필요와 욕구를 실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이 단계에서 시장 포퓰리즘이 실제적으로 구현됐다.

 테일러리즘(2)이 주도하던 시기에는, 한 브랜드를 만든 디자이너들이 이 브랜드가 뜻하는 바라고 얘기하던 것들이 그 브랜드의 실제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냉소주의가 일반화되고 광고가 퍼뜨리는 교묘한 거짓말들에 우리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지금의 상황에서 듣기 좋은 CM송이나 보기 좋은 로고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충분치 않다. 브랜드의 의미는 그 종류만큼이나 복잡하고 논의의 여지가 많으며 사회적으로 구축된 것이다. 

 이와 함께 광고 전략가는 우리가 브랜드와 맺고 있는 관계를 아주 세세하게 살피고 분석한다. 어떤 일을 하건 모든 기업의 주체들은 시장에서 민주주의를 궁극적으로 구현하는, 사람들(소비자들)과 기업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도록 배우기 때문에 광고전략가는 소비자들을 대변하고 옹호했다(혹은 그렇게 했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전략기획’은 원래 그 의미와는 거의 반대되는 모습과 방향으로 발전했고, 전략기획자들은 경제 민주주의의 선봉에 나섰다. 기업가적 합리성에서 나오는 냉정한 판단에 반발한 소비자의 목소리를 낸 셈이다.

 

 타깃 시청자가 유권자인 시장 포퓰리즘 

 이번 회의 기간, 나는 광고전문가들이 시장 민주주의에 부응하기 위해 취하는 방식들을 어떻게 바꿔야하는지에 대해 참가자들이 반복해서 설명하는 것을 들었다. 어떻게 겸손함을 배우고 브랜드의 권위적이고 오만한 발상을 버릴 것인가, 어떻게 ‘소비자에게 다가가고’, ‘공개토론을 기획하고’, ‘소비자가 프로그램을 결정하게 할 것인가’ 등이다. 소비자에게 다가서려는 광고전문가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이들은 활용가능한 모든 기술을 동원한다. 나는 ‘시청률 측정기’, ‘관찰 동영상’, ‘잠재 이미지’, 유명인들과 함께 하는 브레인스토밍 세션, 그리고 일부 광고 전략들이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 포커스 그룹(3) 같은 도구를 이용해 ‘브랜드의 정수’에 도달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배웠다.

 ‘광고 전략기획’은 젊은이들의 하위문화보다는, 한때 광고계를 휩쓸었던 포스트 모던적 문화 급진주의를 떠올리게 했다. 기성교육과 위계적 권위에 대항하는 태도,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 서민층의 문화적 소양에 대한 존중, 대중문화 뒤 하류층의 혁명적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칭 ‘소비자의 대변자’인 이 열정적인 광고인들이 대부분 부자들의 돈을 받아 일을 했다는 점이었다.

 콘퍼런스 첫날 광고전략가들이 ‘무엇보다도 소비자에게 집중하면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브랜드를 만들어 유명해졌다’고 알려진 제럴딘 레이번(4)의 강연을 들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레이번은 니켈로디언(5)의 성장을 이끈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레이번은 포커스 그룹 세션을 통해 ‘통찰력’을 얻게 됐다고 인정하면서, 타깃 시청자층을 ‘유권자’라 칭하고 이들에게 ‘최고의 삶을 제공’하려 했다. 그는 매우 집중된 기업권력과 서민들을 향한 철학적이지만 과시적인 애정을 결합한 시장 포퓰리즘을 구현한 듯하다. 

 레이번은 자신이 니켈로디언에서 일하기 전의 TV 프로그램 편성 환경에 관해 이야기했다. 레이번의 권위주의적인 옛 상사 이야기에 광고전략가들은 기업의 오만함을 비웃었다. 이들은 모든 것의 열쇠는 경청과 존중, 대화와 교감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발생할 상황도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번은 이제 곧 시청자들이 반발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면서, 포커스 그룹 세션을 통해 이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가벼운 질문을 던졌어요. 어린이라서 좋은 점이 뭐냐고. 그랬더니 10세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있던 4개의 방에서 대답이 쏟아졌어요. ‘청소년 자살 때문에 겁이 난다’, ‘만취상태로 운전한 청소년들과 임신한 청소년 얘기를 들었다’, ‘성장하는 게 두렵다’, ‘부모님이 마음대로 나를 프로그래밍한다’, ‘어디에서나 압박을 받는다’, ‘우리에게 어린 시절이란 없다’고 했어요.” 

 레이번은 테일러의 과학적 조직관리기법을 부정하고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부각시킨 호손 실험(6) 때처럼 즉각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저는 세션을 중지하고 아이들에게 니켈로디언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어보라고 했어요. 4개의 각기 다른 그룹의 답은 똑같았어요. ‘어린 시절을 돌려달라’는 것이었죠. (…) 그래서 우리는 이 말을 슬로건 삼아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이제 유년기를 정당하게 누릴 권리를 가진 어린이들은 동심을 담은 인형극 ‘머팻쇼’(7)를 보게 됐다. 또한 마녀 주부의 이야기를 담은 ‘아내는 요술쟁이’(8)도 계속 방영됐다. 주 시청 타깃을 어린이들로 재정비하고 강화했다. 

 “우리는 분명하게 아이들 편에 섰어요. 우리는 아이들을 지지했고 다시는 저버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실제든 가상이든 혁명이 완수되려면 반동분자가 필요하다. 레이번은 새로운 브랜드가 최근 여성들의 예속을 근본 교리로 삼은 남침례회연맹(9)의 반시대 정신을 간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가 “우리 브랜드가 남침례회 신도들의 마음을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빈정거리며 말하자 광고 전략가들은 크게 웃으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대중 마케팅 논리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독자들은 레이번이 남침례회를 적대적으로 대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남침례회는 미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단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회사 대표는 남침례회의 수많은 신도들(소비를 장려하는 이들의 성향과 더불어)을 고객리스트에서 영구 삭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브랜드 부각을 위해 정치적 급진성이 필요   

 그러나 세상물정을 모르는 침례교인들을 비웃으면서 레이번은 프랑스 출신 광고전문가 장-마리 드뤼가 수년전 『성공하는 브랜드의 마케팅 혁명(Disruption)』(1997)에서 설명했던 이미 잘 알려진 브랜드 전략만을 내세웠다. 드뤼에 따르면, 인류는 물질적 요인보다 브랜드 이미지가 더 중요한 시대로 들어섰다. 따라서 그는 대형 브랜드들이 해방의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브랜드들은 사회적 관습(현상을 유지시키는 일체의 선입견이나 편견)에 저항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에 대한 보다 광대한 비전을 담아야 했다. 드뤼는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세계는 ‘사회 정의’의 개념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브랜드 이미지가 기능하려면 좌파를 대표하는 여러 역사적 인물들의 최고 미덕인 대담성과 꿈을 브랜드에 담아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이렇게 해서 1990년대 좌파의 결정적 퇴보가 ‘기업가 혁명’이라는 반항적 환상의 발판이 됐던 것처럼, 패주하는 좌파 역시 개인적 이익을 옹호하는 자들이 차지하게 될, 문화적으로 매력적인 보루 전체를 남겨놓았다. 드뤼는 브랜드가 부각되기 위해서는 한때 시대를 풍미한 정치적 급진성의 어떤 측면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1990년대에는 사회운동보다는 오히려 브랜드가 ‘사회 정의’를 옹호하기도 했다.

 드뤼의 역할은 이 같은 전략 수립이 아니라, 1990년대에 시간이 흐르면서 광고계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베네통은 고집스럽게 자사 브랜드를 반인종차별 투쟁, 매킨토시는 반관료주의 투쟁과 동일시했다. 펩시콜라는 젊은이들의 반항, 나이키는 일반화된 ‘혁명’을 표방해왔다. ‘요요’로 유명한 ‘던컨(Duncan)’같은 브랜드조차 1999년 광고를 통해 ‘관습’에 도전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광고에서 다양한 상황에 놓인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공격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낭독이 흘러나온다. 

“우리한테 손가락질을 해봐. 그럼 우린 너희한테 권력을 줄게.” 

당연하게도 기독교 우파가 발칵 뒤집혔다.

 

 

 

글·토마스 프랭크 Thomas Frank 
미국 정치분석가, 역사가, 저널리스트. 잡지 <The Baffler> 공동 창간자 겸 편집자. 
저서에 『Listen, Liberal』(2016), 『The Wrecking Crew: How Conservatives Rule』(2008) 등. 

번역·조승아
번역위원

 

(1) Riot grrrl,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시작된 지하 페미니스트 펑크 록.

(2) Taylorism. 미국 경영학자인 테일러(1856~1915)가 창시한 과학적 생산관리 기법. 노동자의 움직임, 동선, 작업 범위 등 노동 표준화를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려던 시스템.

(3) focus group. 시장 조사나 여론 조사를 위해 각 계층을 대표하여 뽑은 소수의 사람들로 이뤄진 그룹.

(4) 1947~. 옥시전미디어 공동 설립자로 CEO 역임.

(5) 바이컴의 자회사인 바이컴 미디어 네트웍스에서 운영하는 미국의 케이블 위성 텔레비전 채널. 1979년 개국. 

(6) Hawthorne experiment. 메이요 등 하버드 대학의 경영학과 교수들이 미국의 웨스턴 일렉트릭 회사의 호손 공장에서 1927년부터 1932년까지 4차에 걸쳐 수행한 일련의 실험. 이 실험에 의해 인간관계론의 이론적 틀이 마련됨.

(7) The Muppet Show.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방영된 버라이어티·인형극·코미디 프로그램.

(8) Bewitched. 1964년부터 1972년까지 미국 ABC 방송에서 방영된 시트콤. 인간과 결혼하여 전형적인 변두리 지역에 사는 주부로 생활하려는 마녀의 이야기.

(9) Southern Baptist Convention. 미국에서 가장 큰 개신교 교단. 신도는 약 1,600만 명으로 세계 최대의 침례교 교단.

 


*이 글은 ‘One Market Under God: Extreme Capitalism, Market Populism, and the End of Economic Democracy(Anchor Books, New York, 2000. 불어판은 Le Marché de droit divin. Capitalisme sauvage et populisme de marché, Agone, Marseille, 2003)’에서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