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하위 80%의 추락

[Corée]

2011-01-07     최예륜/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출입을 거부합니다.”

때아닌 날치기로 국회 문이 닫힌 다음날인 2010년 12월 9일, 농성 해단식을 하고 나서던 조계사 정문에 현수막이 내걸렸다. 생활이 어려운 국민에게 필요한 급여를 행해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기초법) 시행 10년을 맞아 전개했던 법 개정을 위한 농성은 한나라당의 기습 날치기 예산안 통과로 그렇게 끝이 났다. 10년 동안 가난한 이들을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아온 부양 의무자 기준, 생계를 보장하지 못하는 절망적 빈곤선 최저생계비…, 이제 제발 바꿔보자는 열망은 또다시 물거품이 돼버렸다. 2002년 죽음으로 기초법의 실상을 알린 최옥란의 명동성당 농성, 2005년 기초법 전면 개정을 위한 국회 앞 농성에 이어, 2010년 기초법 개정을 위한 조계사 천막농성을 11월 15일부터 25일간 전개했지만 그 노력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마무리된 것이다. 이번 농성은 가장 기초적인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410만 가난한 이들에 대해 ‘친서민 복지’ 운운하는 이명박 정부와 국회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가늠하는 하나의 계기였다. 결과는 “생계급여 축소, 사각지대 해소 계획 없음. 최저생계비 이만하면 살 만하다”, 아니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날치기 난리통에 ‘형님 예산’, ‘사모님 예산’ 챙길 정신은 있어도 복지예산 챙길 정신은 없었다. 오죽 정신이 없었으면 조계종 총무원장과 약속했다던 템플스테이 예산도 못 챙겨 빈축을 샀겠는가?

지난해 12월 8일 국회에서 벌어진 한나라당의 날치기 난장판을 바라보며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전 국민이 반대하는 4대강 예산은 조금 깎았다고는 하나, 총예산 약 309조 원 중 9조 원에 달한다. 36조 원 남짓한 복지예산을 두고 재정위기 운운하는 이야기도 솔솔 들린다. 하지만 실상은 끔찍하다. 영유아 예방접종 지원비, 결식아동 급식 지원금,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 사회적 일자리 창출 지원금,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비 삭감 등을 줄였다. 정부가 공익광고까지 하며 부르짖은 저출산 해소, 한나라당이 보편적 복지 이전에 저소득층 지원을 먼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말들은 철저한 기만으로 드러났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확대지원을 공약한 양육수당 논의는 실종된 가운데, 고령화와 실업에 따른 의무지출 비용 증가 상황을 복지예산 확대로 포장하고 있는 형국이다. 아랍에미리트 파병 결정, 서울대 법인화 등 논의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통과된 법안이 수두룩하다. 그중 정부 입법 발의 20일 만에 논의 없이 통과된 장애인활동지원법도 포함됐다. 기존 활동보조서비스보다 적은 보장 시간, 등급 재심사를 통한 서비스 이용 제한, 한 달 20만 원에 육박하는 본인부담금을 도입하는 문제투성이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목숨 건 투쟁으로 활동보조 권리를 쟁취한 장애인들의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만행이었다.

장애인들, 이제 서서 걸으라!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복지 지출이 사상 최대”이며 이쯤 되면 “복지국가에 거의 가깝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이 대통령은 전체 예산 중 복지예산 비중이 올해 27.7%에서 27.9%로 높아졌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러나 복지예산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 올해 대비 내년도 복지예산 증가율은 6.3%로, 금액으로 따지면 5조1천억 원이 늘어난다. 2011년 복지예산의 총규모는 86조3천억 원이다. 정부 총지출 중 복지 지출 규모는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해왔다. 2005년 24.2%에서 2006년 25%, 2007년 25.9%, 2008년 25.7%, 2009년 26.2%, 2010년 27.7%, 2011년 27.9%로 매년 늘어난 것이다.

눈속임 셈법과 삭감·낙인·차별…

하지만 복지예산 증가는 모호한 점이 많다. 늘어난 복지예산 중 공적연금 대상자 확대에 따른 자연 증가분이 2조2천억 원, 법적 의무지출 증가분이 6848억 원, 보금자리주택 등 주택 관련 예산이 1조3천억 원이다. 이를 제외하면 사실상 늘어난 복지예산은 8049억 원밖에 안 된다. 게다가 복지예산으로 보기 어려운 항목도 포함됐다. 국토해양부 소관 주택 부문이다. 국민임대주택 건설 융자, 주택구입 자금 및 전세 자금 융자 등 국민주택기금의 융자사업이 대부분인데 주택 구매자나 건설 사업자에게 빌려줬다 환수하는 돈을 복지예산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런 융자성 복지 지출이 전체 복지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2009년 추경예산을 기준으로 하면 16조8천억 원으로, 당시 전체 복지 지출 80조4천억 원의 21%나 차지했다. 결국 정부 재량권이 개입되는 다른 복지예산들은 동결되거나 삭감됐다는 얘기다. 복지예산이 역대 최고라고 하지만 국민이 전혀 체감할 수 없는 이유다. 2011년 복지예산 규모는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6.9%에 불과한데, 이를 두고 복지국가 운운한다면 20%를 웃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코웃음칠 일이다. 고령화와 더불어 실업 등 삶의 위기로 복지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에서 해법을 찾아야지, 복지예산을 옥죄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상은 줄줄이 삭감이다. 삭감된 예산 중 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저소득층 지원과 보육·저출산 관련 예산이다. 국민의 최저 생활을 보장한다던 기초생활 생계급여 예산은 대상을 2만7천 명 줄여 32억 원이 삭감됐다. 당초 보건복지부가 제출해 빈축을 샀던 원안이 그대로 통과된 것이다.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지급되던 에너지 지원도 903억 원 전액 삭감됐다. 기초생활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빈곤층에게 지원하던 한시 생계구호 예산 4181억 원도 전액 삭감됐다. 충격적인 것은 결식아동 급식지원 432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것이다. 최근 들어 사각지대 해소는커녕 근로능력 판정기준 도입 등으로 기초생활 수급자를 걸러내기 위한 시도가 강화돼왔다. 줄어든 예산에 따라 일선에서 복지 수급자에 대한 낙인과 차별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차상위계층 대학생 장학금 예산은 2010년 805억 원에서 287억 원으로 대폭 삭감됐고, 2학기부터는 폐지할 방침이다. 저소득층 장학금을 대폭 삭감하면서 시중금리와 다를 바 없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를 복지정책으로 포장했던 기조가 더욱 강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8∼2010년 기초생활수급권·차상위 계층 대학생 장학금 신청은 총 27만7290건에 달했고, 그중 총 5만7601건이 탈락해 5분의 1이 넘는 빈곤층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지 못한 상황이 드러났다.

공부? 관둬! 보육? 안 돼! 출산? 참아!

삭감된 보육·교육 분야 관련 예산은 보육시설 미이용 아동 양육지원, 보육 돌봄 서비스, 국가예방접종 실시 지자체 보조, A형 간염 필수예방접종 백신 지원,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공동형 보육시설, 보육시설 지원, 보육시설 기능 보강, 결식아동 급식 지원 등 말 그대로 줄줄이다. 12살 이하 영·유아가 민간 병원에서 8종의 필수예방접종을 받을 때 국가가 일부를 보조하도록 편성한 ‘필수예방접종 국가부담사업’ 예산 338억8400만 원이 사라졌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사항으로, 저출산 대책의 핵심사업 중 하나로 평가돼왔다. 저소득층 청소년의 공부방 예산마저 전액 삭감됐다. 전국의 350여 개 청소년 공부방 중 최소 56곳은 문을 닫아야 하는 실정이다. 7곳 중 1곳이다. 25만 명 이상의 결식아동은 당장 끼니를 거르게 돼버렸다.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원 예산은 국회 보건복지위 심사에서 수혜 대상을 확대하고 인건비를 상향 조정해 310억원을 증액했지만,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소득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노동자의 임금이 하락하는 현 추세에서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이제 돈 없으면 아이를 낳지도 키우지도 말라는 협박으로 들린다. 출산과 양육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면서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공익광고를 내보내는 이중성이 놀랍다.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는 내년 아동급식사업 예산을 분권교부세 및 지자체 예산으로 편성해 지원할 예정이므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한 차례 감행된 부자감세로 지방복지재정이 날로 열악해지고 있다. 각급 지자체에서는 앞다퉈 복지대상을 축소하는 형국에 복지재정의 책임을 지방정부에 더 떠넘기는 것은 복지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절실히 복지를 필요로 하고 긴급한 지원을 필요한 빈곤층·빈곤아동·청소년을 위한 복지예산을 삭감하면서 ‘친서민 복지’를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인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의 책임을 지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존재 이유다. 사회 빈곤화의 피해자인 가난한 이들의 생계급여는 삭감하고, 공동체의 미래인 아이와 학생을 위한 지원을 회피하는 사회는 ‘공정한 사회’일 리 없다.

복지는 미래에 대한 대비이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즉, 다른 제반 권리가 해체돼도 복지만 잘되면 된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복지의 외피를 쓴 노동 유연화, 복지와 나란히 세워진 사회서비스 시장화, 복지를 핑계로 한 투기성 개발을 경험해왔다. 무상급식을 화두로 여야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복지를 내걸고 싸우는 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사실 복지가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복지를 내걸고 벌이는 파업 투쟁의 핵심 이슈가 실은 복지가 아니듯 말이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도 복지만은 아니다. 우리의 삶이며 노동이다.

빈곤사회연대는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을 구성하는 등 제도 개선을 위한 활동에 주력해왔다. 기초법 관련 활동이 많아지면서 사무실로 걸려오는 상담전화가 잦다.

“대학생 아들이 휴학하고 알바를 몇 달 했는데, 아들이 휴학했으니 부양 의무가 있다며 그 때문에 수급권이 박탈될 상황에 놓였다.”(인천에 사는 중증장애인 여성)

“허리디스크로 동사무소에 한 번 가기 어려운데 근로능력평가 결과 근로 능력자로 분류돼 다음달부터 추정소득을 매기겠다는 공무원의 전화를 받았다.”(서울에 사는 61살 여성)

“60만원을 받는 인구주택총조사 알바를 했는데 수급비에서 근로소득을 깎아서 지급하겠다고 한다.”(학교에 다니는 아이 한 명과 함께 사는 수급자 여성 세대주)

빈곤 현실 바꿀 제도 개선을

이런 사례들은 복지제도, 예산의 한계를 넘어선 공동체의 가치관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태도의 문제를 보여준다. 복지제도 개선을 초과하는 우리 삶과 노동의 문제다. ‘복지’를 몰라선 안 된다. 하지만 ‘복지’만 얘기해서도 안 된다. 평범한 이웃들을 빈곤의 나락으로 내몬 것이 누구이며, 국민의 삶을 외면한 채 정치놀음과 투기 행위를 일삼는 자들이 누구인지 다시 한번 봐야 한다. 연평도 사태로 어수선한 시국에 ‘청목회’니 ‘대포폰’이니 하는 갈등과 파행 국면 속에서도 의원 연봉을 5% 올리는 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의원 299명이 올 한 해 쓸 돈이 총액 373억4천만 원으로, 이번에 전액 삭감돼 지원이 끊길 판인 결식아동 30만 명이 받던 급식비 규모와 맞먹는다. 민생이니, 친서민이니, 복지니 하는 구호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빈곤의 현실을 바꾸기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온 국민의 비정규직화, 온 국토의 투기화로 민중이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빈곤에 대한 책임을 개인과 가족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한다는 지극히 온당한 요구에 귀기울이지 않는 보수 정치에 더 이상 희망은 있는가?

글•최예륜
반빈곤연대운동조직인 빈곤사회연대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기초법 개정 공동행동’ 등 빈곤층 복지제도 개선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