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매스, 낯선 미디어 조합의 출현

2011-01-07     마뉴엘 카스텔

정치적 의미의 고전적 민주주의가 위기에 이르렀다면, 전자 네트워크의 발전은 사회가 전대미문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한 셈이다. 네트워크는 우리 모두에게 정보를 통제하는 시스템에 반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보를 왜곡하고 그들 자신이 정보를 산출해내는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다.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은 언제나 지배권력과 그 대체 권력, 그리고 저항과 사회적 변화를 추구하는 권력의 추진력으로 작용했다.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의 정신 속에 무엇인가를 각인시키는 중요하고도 기초적인 게임과 같다. 오직 국민의 정신 깊숙이 파고들 때, 권력은 사회 내에서 형성되며, 사회가 변화하고 발전해나가는 것이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억압 역시 지배권력에게는 분명 중요한 차원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만일 국민이 사물을 바라보는 각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거나, 국민 스스로 생각하고 또 달리 생각한다면 어떤 권력도 여기에 맞설 수 없다.

육체를 고문하는 것은 확실히 정신을 주무르는 것보다 덜 효과적이다. 이것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권력의 가치를 가늠하는 잣대로 인식되는 이유다. 여기에선 단순히 상호 교환이 가능한 개인적 사고의 총체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고를 사회 전체에 흡수하고 보급하는 집합적 사고가 중요하다. 집합적 사고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형성되고 유포된다. 실제로 이 영역에서 이미지와 의견, 정보들이 생겨나며,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구조적 메커니즘을 수단으로 경험이 유포되며 전체 차원으로 확대·각인되는 것이다.

미디어가 없으면 정치도 없다

이 모든 것은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가 세계 전체에서 각 지역으로, 각 지역에서 세계 도처로 모든 층위에서 투과되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그만큼 더 강력하게 적용된다. 결과적으로 모든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이자 동시에 그 변화를 결정하는 지배권력과의 관계는 점차 더 많이 커뮤니케이션의 전 영역에서 전개된다. 현대사회에서 정치는 즉각적으로 미디어적 차원을 지향한다. 정치 체제의 재료와 그 체제로부터 나오는 결정들까지 미디어에 하나의 무대를 제공하며, 미디어는 이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를 얻어내거나 최소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려 한다. 이 말은 권력이 미디어의 손에 무조건적으로 좌우되거나 여론이 미디어가 암시하는 대로 결정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중은 수동적이지 않고, 어느 정도까지 능동적인지는 이미 오래전 연구로 밝혀졌다.

전통 미디어의 타락, 민주주의 위기

게다가 미디어는 스스로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제하는 시스템이다. 무엇보다 수익성 원칙에 의존해야 하는 기업이기에 시청률이나 청취율을 높이고 배급을 늘려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매우 다양하며, 경쟁자가 있기에 그들보다 더 많은 신뢰성을 획득해야 한다. 대개 또 다른 제약이 더해지는데, 기자윤리나 직업윤리(윤리위원회 등)가 그것이다. 그러므로 미디어가 단순히 정보를 왜곡하거나 조작한다고만은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특별히 두 가지 경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로는 투쟁 내지 참여 저널리즘, 즉 이념적 도구로서의 저널리즘이 있다. 이런 경향은 오래전부터 미디어가 그 장점 중 하나인 ‘객관성’을 상실하게 해 결과적으로 구매자를 잃게 만들었다. 하나의 정당이나 단체의 ‘기관지’처럼 군림한 언론들은 실제로 소멸되거나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이념적 투쟁이나 참여주의가 수익성 좋은 모델이 될 수도 있다. 예컨대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뉴스 코퍼레이션의 자회사 중 하나인 <폭스뉴스>는 2003년 이라크 침공에 우호적인 네오콘들의 주장을 객관성에 대한 아무런 고려 없이 절대적으로 지지함으로써 미국 보수층 사이에서 상당한 시청률을 올렸다.

대중은 개입하고 싶어한다

두 번째 경향은 오늘날 목격할 수 있는 것으로, 직업적인 기자들이 고용주에 대해 자율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여기에 ‘미디어 조작’이라는 복잡한 게임의 상당 부분이 숨어 있다.

2004년 중반까지 미국인의 40%가 사담 후세인과 알카에다가 서로 협력하고 있으며,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믿었다.(1) 그런데 1년 뒤 반대 증거가 상세히 밝혀졌다. 그 결과, 부시 행정부의 선전과 미디어 시스템의 조작 사이의 연관성이 드러났다. 흥미로운 것은 일련의 조작들이 정부로부터 ‘왜곡하라’는 직접적인 명령이나 검열이 없었는데도 미디어들이 스스로 알아서 했다는 점이다. 미디어가 행사하는 가장 결정적 영향력은 미디어가 보도한 내용에서 나오는 것보다는 보도하지 않은 것에서 나온다. 즉, 진실은 종종 은폐돼 침묵 속에서 지나가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오직 미디어를 통해 존재하는 것만이 대중의 정신 속에 각인되는 법이다. 따라서 미디어가 가진 힘의 원천은 은폐하고 감춰서 대중에게 이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능력에 있다. 정치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먼저 미디어에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은 곧 미디어적 언어로 존재하는 하나의 관계, 즉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혹은 인터넷이나 신문상으로 대중이 접하는 유기적 관계가 설정돼야 함을 뜻한다. 미디어는 자기들만이 사용하는 요상한 언어를 사용하는데, 이 언어는 자생적으로 발생한 방언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종류에 속한다.

미디어를 통한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메시지는 이미지다. 이미지화된 가장 단순한 메시지는 얼굴로만 각인된다. 정치의 미디어화, 혹은 미디어의 정치화와 정치의 의인화 사이에는 유기적 관계가 있다. 대중이 종잡을 수 없는 정치적 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의 싸움이나 이미지의 난립이나 미디어를 통한 조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식으로만 전달된다면, 대중은 그 프로그램을 참조하지 않고 (필시 이성적으로) 전혀 주목도 하지 않을 것이다.

‘의인화된’ 정치가 언제나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컨대 사담 후세인처럼 한 인물이 정치적 이슈의 상징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하나의 이슈가 특정한 정치적 인물로 대변될 때 관련된 모든 이슈를 덮어버리는 것처럼, 가장 효과적인 이념적 투쟁의 하나는 메시지를 상징하는 인물을 공격하는 것임을 뜻한다. 정치의 경우 비방과 루머가 지배적인 기술이다. 부정적 이미지는 긍정적 이미지보다 5배는 더 효과적이다. 모든 정당이 이 방법을 선호해서 정보를 조작하거나 만들어낸다. 게다가 미디어의 주도적 역할 없이 이루어진다. 미디어가 하는 일은 유언비어가 생기는 ‘소굴’인 특별한 네모상자의 매개 역할에 가깝다.

이로부터 정치의 미디어화와 정치적 추문의 유포나 비방 사이에 직접적 연결고리가 형성되며, 이것이 지난 15년 동안 거의 일반화돼서 의원 암살이나 정부의 위기, 심지어 체제 위기를 불러오곤 했다.

현재 전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정치적 정당성의 심각한 위기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추문의 유포나 과도하게 미디어화된 정치와 시민이 그 시스템에 신뢰성을 갖지 않는 것 사이에는 명백한 상관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신뢰의 결핍은 유엔 산하기관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증명된다. 조사 결과, 세계 인구의 3분의 2는 그들 정부가 자신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적법성의 위기가 분명하다. 모두가 정부, 정치 지도자, 정당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들 중 대다수는 아직도 자신을 대변하는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의지와 고유한 수단을 통해 전세계에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보이는, 이른바 ‘매스 셀프 커뮤니케이션’(퍼스널 매스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을 도입하고 있는지 모른다.

‘퍼스널 매스 커뮤니케이션’ 통해

기술적으로 퍼스널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발달에 의존한다. 현재 10억 명 이상이 인터넷을 애용하며, 20억 명 이상이 휴대전화를 사용한다.(2) 지구상 주민 3분의 2 이상이 휴대전화 덕분에 전기나 고정된 전화선 없는 곳에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애기다.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새로운 유형의 커뮤니케이션이 폭발한 것이다. 사람들은 단문 메시지인 SMS, 블로그, 스카이프 등 자신의 독특한 시스템을 개발해냈다. P2P는 디지털화만 돼 있다면 어떤 데이터라도 전송할 수 있게 만들었다. 2006년 5월, 3700만 명이 블로그를 개설했다(1월에는 2600만 명이었다). 전세계적으로 평균 1초당 1개, 1년에 3천만 개 블로그가 개설된다. 블로그를 개설한 지 3개월 뒤에도 55%는 자신의 블로그를 관리하는 편이다. 블로거 수는 6년 전보다 60배 늘었다. 6개월마다 두 배로 늘어간다.

처음에는 영어가 인터넷의 지배적인 언어였다. 2006년에는 사이트의 3분의 1 이하만 영어로 돼 있었다. 중국어에 이어 일본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한국어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여기서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블로그가 존재한다는 것보다는 블로그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 유대관계다. RSS(Rich Site Summary) 기술로 모든 블로그가 상호 정보교환이 가능해졌다.

이 현상은 분명 대량매체이지만 동시에 개인적으로 제작·유통되는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새로운 유형을 만들어냈다. 세계 도처에서 사회운동단체들이 이 유형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사용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그들만이 유일한 사용자는 아니다. 전통적 미디어들도 이런 조류에 동참하려 한다. 애초부터 가지고 있던 상업적·미디어적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주변의 블로그들을 최대한 동원하고 있다. 그러나 거꾸로 반대 의견을 가진 개인이나 각종 사회운동 단위들이 퍼스널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거대 미디어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보를 통제하고, 필요하면 정보를 왜곡하고, 심지어 정보를 생산해내는 차원에 이르렀다.

SMS, 블로그… 개인이 만드는 대량 정보

전세계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대안 세계화운동은 몇 해 전부터 조직의 도구로서뿐 아니라 토론과 개입의 장으로서 인터넷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커뮤니케이션 자원을 이용하고 있다. 동시에 이 수단을 이용해 지배적 미디어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자발적인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형성은 좀더 전통적인 미디어들에도 영향을 미친다. 볼로냐의 <오르페오(Orfeo) TV>, 파리의 <잘레아>(Zalea), 바르셀로나의 <오쿠펜 라스 온다스>(Occupen las Ondas), 부에노스아이레스의 <TV 피케테라(Piquetera)> 같은 소규모 지역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이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대안미디어와 함께 또 하나의 정보 시스템을 형성한다.

전 미국 부통령인 앨버트 고어도 여기에 동참했다. 자신의 텔레비전 네트를 개설했는데, 시청자가 콘텐츠의 40%를 직접 제공한다. 대통령 선거 역시 새로운 미디어의 영향을 의식하고 있다. 하워드 딘 후보는 결국 민주당 후보 지명전에서 존 케리 후보에게 밀렸지만, 인터넷에 의한 동원 능력으로 발군의 역량을 과시했다.(3) 다음으로는 휴대전화에 의한 ‘자발적 정치 참여’가 2004년 이후 결정적인 현상이 되었다.(4) 휴대전화 간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동원 방법은 한국(5)과 필리핀, 우크라이나, 타이, 네팔, 푸에르토리코, 프랑스에서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2006년 4월 타이에서 탁신 치나왓 총리가 쿠데타로 축출됐을 때, 혹은 2004년 스페인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호세 마리아 아즈나르의 인민당이 패했을 때처럼, 즉각적인 결과를 야기했다. 바스크 분리주의 무장단체인 에타(ETA)가 마드리드에서 일으킨 테러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스페인 정부가 정보를 조작한다고 의심한,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엄청난 문자메시지를 돌려 그날 거대한 항의집회를 조직했다. 이런 날에는 충격과 애도의 영향력 때문에 어떤 정치적 메시지도 주목을 받지 못한다.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출현한다

이는 반드시 한편에 권력과 동류시되는 미디어가 있고, 반대편에 사회운동과 연합한 퍼스널 매스미디어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각자가 기술적으로 이중의 플랫폼 위에서 가동된다는 이야기다. 전자 네트워크의 발전은 사회가 주요 사건이나 이슈에 대해 통제하고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힘을 주었다. 이것은 전통적 시스템의 밖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훨씬 강력한 힘을 지닌다.

현재의 민주적 제도를 시민이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어색하게 된 전통적 의미의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위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 속에서 퍼스널 매스미디어가 확산됐으며, 이로써 새로운 형태의 정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 새로운 형태가 어디로 다다를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전쟁의 승부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에서 판가름되며, 승리를 위해선 다양한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이 (커뮤니케이션의) 전장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됐으며, 항상 그러하듯이 우리 정신의 자유를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는 2006년 6월 이탈리아의 산 세벨로에서 월드 폴리티칼 포럼과 베네치아주가 공동 개최한 ‘미디어, 시민과 권력의 사이에서’라는 주제의 세미나에서 저자가 패널로 인터뷰한 것을 직접 재독하고 편집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자매격 월간지 <마니에르 드 부아>(Manière de voir) 최근호에 게재한 것이다.

글•마뉴엘 카스텔 Manuel Castells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커뮤니케이션 학자이며, 다섯 번째로 많이 인용되는 사회과학자(사회과학자인용지수)다. 특히 정보사회와 커뮤니케이션 연구에 전념해왔다. 1942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대학에서 법률과 경제를 전공(1958~62, 프랑코 총통 반대 학생운동에 가담해 파리로 정치적 망명)한 뒤, 파리대학에서 공법 및 정치 경제 석사(1964), 사회학 박사 학위(1967)를 받았다. 현재 미국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 <정체성의 힘> <밀레니엄의 종언> 등 일련의 저서를 통해 근대사회를 지탱했던 정치·경제·문화의 원리가 총체적으로 붕괴하고 인터넷에 기반을 둔 네트워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로 이행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번역•이진홍 memosia@ilemonde.com
파리7대학 불문학 박사. 주요 저서로 <자살> <여행 이야기> 등이 있다.

<각주>
(1) 2003년 10월, 메릴랜드대학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60%, 그리고 <폭스뉴스>를 시청한 사람 중 80%는 다음 세 개의 허위 사실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첫째,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를 발견했다. 둘째, 이라크와 알카에다가 협력한 증거가 있다. 셋째, 세계 여론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다. Eric Klinenberg, ‘Contestation de l‘ordre mediatique amercain’,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4년 4월호 참조.
(2) Internet World Stats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전세계의 인터넷 사용자는 15억9천만 명이며, 휴대전화 사용자는 30억 명이 넘는다.
(3) 버락 오바마의 2008년 선거운동은 인터넷에 의한 공지와 페이스북 등을 이용한 모범 사례에 해당된다.
(4) Manuel Castells, Jack Linchuan Qui, Mireira Fernandez- Ardevol et Araba Sey, <Mobile Communication and Society: A Global Perspective>, MIT Press, Boston, 2006.
(5) Philippe Pons, ‘혼돈 속의 한국, 어디로 가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9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