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원전 악몽에서 벗어나려면
내년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사회에서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올림픽 기간 현지에서 제공되는 식품들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 때문에 참가국들은 선수단 자체 식당을 운영해야 한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8년 전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011년 3월 동일본을 뒤흔든 대지진, 해일,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이어 일주일간 벌어졌던 긴급 상황은 8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하다. 재난 상황에서 꼭 입어야 하는 방호복 차림으로 혼자 거실 소파에서 얕은 잠을 잤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사실 누운 채로 눈만 감고 있었을 뿐,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끝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원자력 분야에서 일해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대학 시절 배운 응용물리학 기초지식이 전부였다. 체르노빌 사태에 관한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어서 원자력 사고가 나면 어떤 피해가 발생하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체르노빌 원전사고보다 훨씬 심각한 원전사고가 일본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다이이치 원자력발전소)에는 원자로 6기와 폐연료봉 냉각보관 수조 7기가 있었다. 여기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제2원자력발전소(다이니 원자력발전소)에는 원자로 4기와 냉각보관 수조 4기가 있었다. 제1원전과 제2원전의 열출력을 합치면 체르노빌 원전의 열출력보다 두 배가 많은 약 9MW(메가와트)다.
악몽, 그리고 최악의 시나리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동일본에서 진도 9의 강진이 발생했다. 나는 즉각 총리관저의 지하에 위치한 위기관리센터로 이동했다. 첫 번째 보고서에 의하면, 피해지역에 위치한 모든 원자력발전소가 긴급조치에 따라 가동을 멈췄다. 잠시 안도의 순간이 왔다. 그러나 잠시 후, 해일로 제1원자력발전소뿐만 아니라 디젤 연료 비상용 디젤 발전기들마저 물에 잠겼다는 보고가 들려왔다. 원전 1~4호는 전기의 공급로가 완전히 차단됐다. 핵분열이 멈췄는데도 핵연료의 에너지가 계속 방출하는 원자력발전소도 있었다. 냉각시스템에 필요한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면 온도가 올라가 노심용융(멜트다운)이 일어난다는 보고를 들으니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원전사고 후 일주일은 악몽 그 자체였다. 3월 12일 오후에 원자로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고 13일에는 원자로 3호기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나 또 한 번의 수소폭발이 있었다. 15일 이른 오전에는 원자로 2호기의 차폐벽이 손상돼 상당량의 방사능 물질이 대기 중에 배출됐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원자로 4호기의 윗부분에도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후의 조사에 의하면 사고발생일 오후 6시경 원자로 1호기의 노심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철제원자로 압력용기에 구멍이 뚫렸다. 핵융합 노심용융물(1)이 콘크리트 구조물까지 덮치면서 마지막 남은 차폐벽을 위협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사고에서도 노심이 일부 녹아내리기는 했지만 압력용기까지 구멍이 뚫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후쿠시마에서 세계 최초로 세 대의 원자로에서 노심이 녹아내리고 압력용기까지 구멍이 뚫리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2)
얼마 후 미국은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최소 반경 80km 이내의 거주 교민들에게 대피권고를 내렸다. 나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야 했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후쿠시마의 모든 원자로가 녹아내리면, 상당량의 방사능 물질이 몇 주에서 몇 개월 동안 배출돼 퍼져나갈 수 있었다. 결국 나는 일본 원자력위원회 곤도 슌스케 위원장에게 상황 평가를 요청했다. 곤도 위원장의 3월 25일 자 보고서 ‘최악의 시나리오’에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최소 반경 250km 이내 주민들을 대피시키게 될 상황도 감안하고 있었다. 문제는 반경 250km 이내에 도쿄의 주거지역이 밀집돼 있으며, 일본 인구의 40%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킨다면, 일본이라는 국가의 존재 자체가 흔들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14~15일 밤에 도쿄전력(TEPCO)(3)의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이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에게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인력을 대피시켜야 한다고 거듭 요청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부터 나는 이미 이런 요청이 오면 어떤 답변을 해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당시 화재 진압을 위해 투입된 소방관 20여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석관공사를 하던 많은 인부들이 피폭된 적이 있다.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체르노빌 사고의 피해 규모는 훨씬 컸을 것이다. 그러면 훨씬 더 큰 영토가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됐을지도 모른다.
도쿄전력의 대피요청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총리 입장에서는 도쿄전력 직원들의 안전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대피로 인해 일어날 일도 생각해야 했다. 만일 화재가 일어나 불길이 화력발전소 한 곳을 덮치거나 연료탱크까지 번질 때 연료가 전부 타들어 가면, 화재는 막바지에 이르게 된다. 위험한 상황이 되면 직원들을 대피시켜야 한다. 소방관들도 대피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전사고는 화재사고와는 완전히 다르다. 원자력발전소의 엔지니어들이 대피해 발전소를 아무런 통제 없이 둔다면 결국 원자로 6기의 노심이 차례로 녹을 것이고 차폐벽이 손상돼 상당량의 방사능 물질이 배출될 것이다. 냉각보관 수조에 보관된 연료도 안전하지 않다. 여기서 12km 떨어진 제2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4기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도 대피시켜야 한다면 일본은 어떻게 될까? 아무런 통제도 없는 상황에서 핵폐기물에 들어 있는 플루토늄에서 반감기 2만 4,000년의 강력한 방사능 물질이 배출될 것이다. 결국 일본은 국가 마비 상태가 되고 방사능 물질이 주변 국가에까지 퍼질 수 있다. 이 같은 위험한 사태 앞에서 주변 국가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헌신과 축복으로 참사를 막다
원자력발전소의 직원들을 모두 대피시킨다는 결정은 최종적으로 총리인 내가 내려야 할 것이다. 나는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원전과 사고 여파를 기술적으로 관리하려면, 현장에 최소한의 도쿄전력 인원이 있어야 했다. 나는 시미즈 마사타카 사장을 총리실로 불러 원자력발전소의 직원들을 대피시킬 수 없다고 했다. 시미즈 사장은 나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우리는 위기대책반을 꾸렸다. 나의 지시에 따라 정부와 도쿄전력의 책임자들이 도쿄전력 본사에 모였다. 3월 15일 새벽 5시에 나는 위기대책반을 찾아 다음과 같이 발표한다.
“우리의 목숨을 걸고라도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현장을 비울 수도, 맥없이 손 놓고 있을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와 관계된 일입니다.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떤 노력도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필요한 정보는 무엇이든 전달해주십시오. 비용은 얼마가 들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일본의 존재 자체가 위기를 겪는다면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60세 이상 되신 분들은 현장으로 가 주십시오. 저도 각오를 단단히 하겠습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소방차들이 원자로를 냉각시키고자 잇달아 원자로에 물을 쏟아부었다. 3월 15일부터 상황이 차차 나아졌다. 도쿄전력의 직원, 소방관, 경찰관, 자위대 군 인력 등 현장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노력한 모든 사람들 덕분에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이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여러 가지 행운도 함께 했다. 가히 축복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원자로 4호기의 냉각보관 수조에서 방사성 폐기물은 다행히 녹아내리지 않았다.
수소폭발로 원자로 건물이 손상되자, 그레고리 야스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장은 차폐벽 밖에 위치한 원자로 시설의 냉각기능이 손실될까 우려했다. 다행히 물이 남아있었다. 뿐만 아니라 3월 15일 이른 오전에 원자로 2호기에서 압력이 높아져 차폐벽이 손상은 됐으나 파괴되지는 않았다.
왜 탈원전이 답인가
왜 요즘은 탈원전을 목표로 할까? 첫 번째 이유는 그 어느 곳이든 원전사고의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해일을 동반한 대지진으로 발생했다. 그렇다면 지진이나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프랑스와 다른 국가들도 원전사고에서 안전할까? 1979년 스리마일섬 원전사고나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지진이나 해일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로 발생했다. 인간의 실수를 100% 막기는 어렵다.
두 번째 이유는 원전사고가 크게 터지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대피시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 기능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행기사고나 선박사고도 희생자를 많이 낼 수 있지만 원전사고가 일으킬 수 있는 피해의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원전에서 반경 250km가 수십 년간 사람이 살 수 없는 폐허가 된다고 상상해 보자. 대규모 전쟁에 버금가는, 아니 대규모 전쟁보다 더욱 막대한 피해와 손실이 발생할 것이다. 내가 참석한 어느 회의에서 그레고리 야스코 전 미국 원자력규제위원장은 원전사고 발생 시 인명피해가 일어날 수 있는 지역에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원전에서 반경 250km 이내에 아무도 살지 않는 국가는 없다.(4)
세 번째 이유는 조만간 자연에너지로 전기를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원자력이나 화석연료가 자연에너지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18년 전 세계에 설치된 443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전기생산의 약 10%를 담당한다. 그런데 이 같은 비율은 최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5)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중국과 인도를 제외하고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제동이 걸렸다.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에서는 가동 원자력발전소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반면, 풍력이나 태양에너지 같은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기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수력 전기까지 더하면 전 세계에서 재생에너지로 생산되는 전기는 이미 26%에 달한다.(6) 2050년쯤에는 원자력이나 화석연료 없이도 전기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구 전체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양은, 전 인류가 현재 소비하는 에너지 양의 약 1만 배에 달한다.(7)
즉, 태양에너지는 조금만 있어도 현재 필요한 전기를 충분히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재생에너지는 기후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공급안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여러 국가에서 일기예보, 정보기술, 에너지수요 조절 기술을 능숙하게 활용해 재생에너지로부터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을 둘러싸고 세계적으로 분쟁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일 뿐만 아니라 에너지 자급자족에도 도움을 준다. 훗날 전 세계 국가의 대부분이 필요한 에너지를 자체 생산하는 날이 올 것이다.
글·간 나오토 Kan Naoto
2010년 6월 8일부터 2011년 9월 2일까지 재임한 일본의 제94대 총리, 전 민주당 대표
번역·이주영 ombre2@ilemonde.com
번역위원
(1) 핵연료와 구조재로 구성된 방사성 응집체. 원자로 용융(코어 멜트) 때 형성된다.
(2)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에서 원자로 4호기가 폭발하자, 뚜껑이 통째로 날아가면서 노심이 노출돼 흑연 화재가 발생했다. 노심용융물은 원자로 용기 내부에 위치한다.
(3) 민간 전력회사 도쿄덴료쿠(東京電力)는 일본에서는 ‘도덴(東電)’이라는 약자로, 해외에서는 ‘Tepco’라는 약자로 통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12년에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을 받았다.
(4) 반경 250km는 일본의 1/2, 프랑스 본토의 1/3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5) ‘World Nuclear Power Plants 2018’, 일본 원자력 산업회의.
(6) 2018년 수치, ‘Renewables 2019. Global Status Report’, www.ren21.net
(7) 가야 요이치, 『Encyclopédie de l’énergie 에너지 백과사전』(일본어), Editions Maruzen, Tokyo 2001. 『Manuel de statistiques énergétique et économique 2019 에너지와 경제 매뉴얼 2019』(일본어), 일본 에너지경제 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