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경제 기적’, 신기루인가?
“우리가 바라는 것? 모든 이를 위한 집!” 포르투갈 주택부 회색 건물 앞에 모인 50여 명이 이구동성으로 구호를 외쳤다. 2019년 6월 4일 오전, ‘추방반대(Stop Despejos)’ 활동가들과 퇴거 위기에 처한 리스본 거주자들이 모여 항의시위를 벌였다.
그로부터 며칠 전, 경찰관 10명은 리스본 시내에 살던 83세의 마리아 나자레 조르주를 주거지에서 강제 퇴거시켰다. ‘추방반대’에서 활동하는 산드라 P.가 상황을 설명했다. “조르주 씨는 이 아파트에서 무려 40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임대차계약이 최근 사망한 이모 명의로 돼 있었답니다. 그동안 월 임대료가 200유로(약 26만 원)였는데, 리스본 중심가 부동산 가격이 계속 폭등하니까, 집주인이 조르주 씨를 내보낸 거랍니다.”
관광객들이 점령한 마을
주택부는 마침내 시위대 대표자 일부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전까지 이 단체 회원들은 ‘주택난 심화’, ‘부동산 투기 금지’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높이 휘두르며 약 1시간 항의 시위를 지속했다. 하지만 주택부 장관은 “최종 해결책을 마련하는 동안 마리아 나자레 조르주는 임시거처에 머물 예정”이라는 한 마디 설명을 내놓았을 뿐이다. 산드라 P.가 말했다. “조르주 씨는 퇴거 후 낙담한 채 완전히 넋을 잃으셨어요. 그런데 이 분의 임시거처인 카스텔은 완전히 고립된 산동네에요. 그나마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그 유명한 28번 트램은 관광객들이 점령하고 있고요.”
2012년 페드루 파수스 코엘류 전 총리(2011~2015년)의 중도우파 정부가 주택 소유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임대법을 개정하면서, 주택 소유자는 임대기간 만료시점에 월세를 인상하거나 주택 개보수를 명분으로 세입자를 강제 퇴거시키기 쉬워졌다. 2008년부터 국가채무로 경기부진을 면치 못하던 포르투갈은 결국 2011년 ‘트로이카’로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 유럽위원회의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트로이카’는 780억 유로(약 104조 1,276억 6,000만 원) 규모의 구제금융 지원을 조건으로 부동산 시장 규제 완화와 관광산업 개발을 요구했다.
이에 포르투갈 정부는 ‘세금감면 혜택’을 늘리는 방법으로 부동산시장 활성화를 모색했다. 2012년에는 50만 유로(약 6억 6,748만 원)를 초과하는 부동산을 매수하는 외국인에게 부여하는 체류 허가증, 이른바 ‘황금 비자’를 만들어 4년에 걸쳐 부동산 분야에 40억 유로(약 5조 3,398억 8,000만 원)에 달하는 자본을 투입했다. 더불어 이민거주자(RNH) 자격을 신설, 포르투갈로 이주해 주택을 매입하는 타 유럽국가의 퇴직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세제를 개편했다. 지리학자이자, 40여 개 주거권협회 총연합 ‘리스본에 거주하기(Morar em Lisboa)’ 회원인 루이스 멘데스는 다음과 같이 부연했다.
“2014년에는 에어비앤비(Airbnb)와 같은 주택 단기임대에 관한 또 다른 법률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이 법은 주택 소유자가 포르투갈 내국인에게 300유로(약 40만 원)에 임대할 주택을 관광객들에게 단기로 임대해 월 3,000유로(약 4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했습니다. 일부 중심지역은 두 집 중 한 집 이상이 에어비앤비를 통해 집을 임대하고 있을 정도죠. 주택 임대시장의 자유화 여파로 매일 1~3가구가 퇴거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산층마저 주택을 구하기 힘들 지경이니까요!”
10년 만에 관광객 대상 임대주택이 3,000%나 증가한 리스본은 2018년을 기점으로 바르셀로나, 파리를 넘어 인구 대비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시설비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도로 떠올랐다. 멘데스는 그 이유가 “지난 4년 동안 좌파 정부가 주택의 금융화를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정책에 거의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포르투갈 경제의 기적?
2015년 말 사회당 소속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가 집권하면서 포르투갈 정부는 ‘트로이카’가 제시해온 긴축기조를 완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의회에서 급진좌파 정당인 좌파연합(BE: Bloco de Esquerda), 그리고 포르투갈 공산당(PCP)과 녹색당의 정당연합의 지지를 등에 업은 포르투갈 정부(사회당 소수 정부의 좌파연대는 ‘복잡미묘한 장치’라는 의미의 포르투갈 정치용어인 ‘제링공사(geringonça)’로 불린다)는 구매력 증대 정책을 실시해 공공재정 회생을 도모했다. 정부는 연금 최저 수령액과 법정 최저임금을 인상(2014년까지 485유로(약 64만 원)로 동결됐으나 2019년에는 600유로(약 80만 원)로 상향조정)했으며 사회적 미니멈(Minima sociaux: 최저생활 보장 공공부조)도 확충했다.(1)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2017년 6월 포르투갈은 2009년 시작된 유럽연합의 초과재정적자 시정절차(ECP)를 마침내 졸업했다. 2015년 말 12%로 치솟던 실업률도 2019년 6.3%로 누그러졌다. 포르투갈 정부는 2015년만 해도 4.4%에 달하던 재정적자가 2019년이면 ‘0’이 돼 포르투갈이 1974년 민주주의로 이행한 이래 처음으로 균형재정을 달성할 것을 전망했다. 또한 2017년을 기점으로 17년 만에 성장률 최고치 2.7%를 경신했다.
<뉴욕 타임스>와 <르몽드>를 비롯해 <피가로 에코노미>, <파이낸셜 타임스> 등 각국 언론이 ‘포르투갈 경제의 기적’을 치하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유럽 좌파 진영은 유럽연합의 긴축정책 과제라는 자유주의 신념에 결별을 선언한 코스타 총리와 그가 주도하는 좌파연대에 찬사를 보냈다. 2017년 프랑스 대선기간 중, 프랑스 사회당 후보 브누아 아몽은 리스본을 방문해 코스타 총리를 만났다. 그리고 장뤼크 멜랑숑(불복하는 프랑스)은 ‘포르투갈식 모델’을 따른다는 내용을 공약에 포함시켰다.
이런 성공은 최근 유럽 선거에서도 좋은 결과를 낳았다. 정부와 극좌파 정당 연대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두아르트 코르데이로 사회당 정무차관은 사회당이 이룬 성과에 만족을 표했다. 포르투갈 공화국 의회 한복판에 있는 우아한 집무실에서 코르데이로 정무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10월 총선을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유럽의회 선거에서 포르투갈 사회당(PS)은 33.4% 득표로 9석을 얻어 승리했습니다. 따라서 사회당 유럽의회 의원 수는 8명에서 9명으로 늘어났죠. 이는 사회당과 좌파연합에 대한 국민의 높은 지지도를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포르투갈 사회당은 역대 정부가 남긴 신자유주의 정책을 큰 거리낌 없이 수용하는 듯하다. 내국인보다는 관광객들에게 주택을 임대하도록 독려하거나, 중국과 러시아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면세 조치가 이에 해당한다. 코르데이로 정무차관은 “황금 비자와 이민거주자(RNH) 혜택은 현 정부가 정책을 손보지 못한 두 가지 사안”이라는 점을 시인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다음 임기 중에 이 두 가지 문제를 바로잡을 만반의 준비가 돼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과연 그럴까? 2019년 1월 코스타 총리는 부동산투자 제도를 새로 도입했다. 부동산투자신탁(REITs, 리츠)에서 영감을 얻은 이 제도는 세제 혜택을 통해 부동산투자를 금융투자로 전환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민거주자(RNH) 혜택과 같은 맥락에서, 포르투갈 정부는 2019년 7월부터 긴축정책 시기인 2010~2015년 해외로 이주했다가 다시 귀향한 모든 포르투갈인에게 총 5년에 걸쳐 소득세 50%를 감면하는 혜택을 제공하기로 했다. 긴축정책 처방이 절정에 달했던 이 시기, 포르투갈 전체 인구의 5%에 해당하는 50만 명이 실제로 국가를 떠났다. 이 정책의 목적은 고소득 고학력층 젊은이들이 포르투갈에 되돌아오도록 장려하는 것이다. 수년에 걸친 재정위기 시기에 해외로 이주할 여력이 없던 사람들은 감히 누리지 못하는 혜택인 셈이다.
16세기 건축물 매각, 공공의 유산을 민영화
‘추방반대’ 운동가들의 항의 집회 이후, ‘리스본에 거주하기’ 운동 본부는 에어비앤비 임대에 대처하는 리스본시의 현행 관리방식을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알파마 지구 아래편 파도(Fado) 박물관을 접하고 있는 작고 아늑한 이 회의장에서 개최된 토론회는 밤이 늦도록 계속됐다. 알파마 지역 협의회의 루르데스 피네이루는 “알파마 지구가 놀이공원으로 변질하고 있습니다. 리스본시의 모든 도시계획이 리스본 시민이 아닌 관광객 위주로 펼쳐지고 있고요. 이는 건축이란 명분으로 리스본의 오랜 유산을 파괴하는 야만행위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당의 리스본시 정부는 최근 이 회의장에서 멀지 않은 산타 엘레나(Santa Helena) 궁을 리스본의 주요 부동산개발 회사 스톤캐피탈에 매각했다. 프랑스인 아르튀르와 조프루아 모레노 형제가 운영하는 민간기업 스톤캐피탈은 이 16세기 건축물을 고급 아파트로 변신시켰다. 건축가 겸 시의원(포르투갈 공산당)인 아나 자라는 “알파마 언덕 반대편 마르팀 모니즈 광장도 스톤캐피탈이 장악했다”라며, “그곳에 야외 쇼핑센터를 세우려는 스톤캐피탈의 구상은 공공의 광장을 민영화하는 처사”라고 덧붙였다.
2017년 페르난도 메디나 리스본 시장의 당선으로 사회당은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 지방선거 이후,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계획 검증은 시의회의 손을 떠났다. 지난 12년 동안 도시계획을 담당해온 마누엘 살가도 부시장이 직접 관련 계획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있다. 자라 의원에 의하면, 살가도 부시장은 “원활한 금융투자를 위해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는 신자유주의 도시계획 전략가”다. 루이 멘데스는 말했다.
“5년 전만 해도 리스본에 있는 건물 3개 중 1개는 폐허가 되거나, 노후돼 공실로 남아 있었다. 사회적·경제적으로 어떤 기능도 못 했던 것이다.” 수익성 높은 도시 재건사업 시장을 민간에 맡긴 이후, 리스본에는 살가도 부시장의 주도하에 대형 도시개발 사업이 넘쳐난다. 가령, 도시의 북쪽에 세워질 높이 60m의 건축물 토레 포르투갈리아(Torre Portugália)에는 호화주택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계획은 리스본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투자자들의 놀이터가 된 리스본
타구스강 건너편 도시 외곽의 서민 주거지역에는 1998년 세계박람회 이후 최대 규모의 도시 재개발사업인 리스본 사우스 베이(South Bay)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이 프로젝트는 컨벤션 센터와 마리나(해변의 종합 관광시설), 고급 호텔 개발계획도 포함하고 있다. 개발자들은 이 사업이 리스본의 관광투자지 위상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푸블리코(Público)> 2019년 5월 14일). 결국 리스본은 국제투자자들의 놀이터로 변질됐다. 2019년 봄에 열린 서구 정치 경제권력가들의 모임 ‘빌더버그 클럽’ 연례회의에 페르난도 메디나 시장이 초청된 사실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주택과 도시에 대한 포르투갈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공공의 자산을 착복하는 이런 정책은 결국 코스타 총리 정부의 큰 약점인 투자 유치를 만회하려는 장치다. 사회당은 집권과 함께 허리띠를 꽉 졸라매고 있다. 1974년 포르투갈이 민주주의를 채택한 이래 가장 강도 높은 긴축재정이다. 2018년, 공공투자 규모에서 포르투갈은 유로화 사용 국가 중 최저수준을 기록했을 정도다.(2)
포르투갈 정부가 이런 정책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당 정부는 유럽연합의 재정조약이 정한 예산 정책을 강박적으로 따르는 데 온 힘을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포르투갈의 경기회복은 포르투갈 GDP의 120%로 추산되는 재정적자와 정부 부채를 탕감하는 데 기여했을 뿐, 민생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사회당 대다수가 금융권 및 유럽 기구와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해 유럽연합의 모범생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라는 것이 좌파연합당 대표자 유럽의회 의원인 조제 구즈마오의 설명이다.
“궁극적으로 포르투갈 정부의 목표는 유럽연합이 정한 GDP의 60%라는 상한선을 넘지 않도록 부채를 상환하는 것이죠. 그러나 현재의 부채 축소 속도대로라면 향후 20년 동안 공공투자는 없다고 봐야 해요. 정부와 우리 좌파 정당과의 주요 차이는 부채를 축소해나가는 속도입니다. 정부는 우리가 세운 예산 목표에 동의하지 않지만, 우리는 정부 목표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지요.”
이런 엄격한 목표를 세운 이는 바로 마리우 센테노 재무장관이다. 센테노 장관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현재 유로화 사용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의장직을 맡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다.(3) 최근 센테노 장관은 16억 유로(약 2조 1,359억 5,200만 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공공부문에 투자하지 않고, 민간은행 ‘노보방코’의 자금지원에 투입했다.(4) 이 은행은 금융위기 당시 투기활동을 벌여 파산위기에 처한 바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좌파연합과 공산당은 분개했고, “장관이 국가보다 민간은행을 더 걱정한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경제는 고용불안을 먹고 자란다
포르투갈의 대학들은 파산 직전의 힘든 상황에 있고, 보건계는 물적·인적 자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공공철도 설비 관리자의 설명에 의하면 열차 노선의 60%가 ‘불량’ 또는 ‘열악’한 상태라고 한다. 사회주택은 전체 주택의 고작 2%에 머물러 있다. 주택 권리협회의 리타 실바는 “주택에 관한 기본법이 현재 국회 논의를 거치고 있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합니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부 조치는 긍정적이었지만, 정부는 주택에 공공자금을 투자하려는 정책적 의지가 전혀 없습니다. 코스타 총리는 이 법의 도입이 부동산시장 자유화에 제동을 걸지는 못한다고 이미 못 박은 바 있기도 하고요.”
이 같은 재정준칙과 사회정책 간의 고조된 긴장은 사회 곳곳에서 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있었던 교사파업이 그 예다. 경기 호전에 따른 혜택을 얻고자 교사들은 긴축정책으로 지난 9년간 동결됐던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5월 5일에 코스타 총리는 의회에서 승인한 임금인상분을 ‘균형재정’ 달성을 가로막고 ‘국제신뢰’를 훼손하는 ‘예산폭탄’이라고 헐뜯었다. 정부로부터 사직 협박을 받은 교사들은 결국 2년 9개월에 해당하는 급여 일부를 보상받는 데 그쳤다.
코임브라 대학교 경제 연구원이자 경제위기 및 대안 연구소에서 코디네이터로 있는 조제 레이스는 이렇게 설명한다. “유럽연합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려는 정부의 의지는 그 자신을 구속하는 족쇄가 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예산체계에 맞춰 소득수준을 상향시키고자 분투했지만, 전반적인 임금수준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왜일까요?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토대가, 다름 아닌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저임금 노동력이기 때문입니다.”
급격한 실업률 감소 추세는 저임금, 저숙련직에 의존하는 현실의 이면을 숨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오늘날 포르투갈 내 신규고용의 절반은 기간제 계약직에 해당한다. 트로이카의 제재 이후로 고용 불안정성이 지금보다 높았던 적이 없었을 정도다.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인 인구가 2011년 대비 7만 3,000명 늘었고, 2018년 초과근무시간에 대한 보상도 절반에 그쳤다. 무엇보다, 청년층의 65%가 임시직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이는 10년 전보다도 10%p 높은 수준이다.
조제 구즈마오 의원은 “노동법의 경우 그동안 거의 진전이 없었다. 어쩌면 퇴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우파와 고용주들의 협조를 등에 업은 정부가 과거 관광 분야에 국한됐던 단기 불안정 고용이 확산하는 현 상황에 물꼬를 터준 셈입니다. 좌파연대 즉 ‘제링공사’는 임금인상을 이뤄 고용 여건을 개선했지만, 정부가 고용 불안정을 키우면서 고용상황은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2009~2018년 포르투갈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에서 43%로 증가하는 등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렇듯 항만산업은 포르투갈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포르투갈 수출항의 경쟁력을 지탱하는 기반도 ‘고용 유연성’에 의한 노동력 착취와 임금 삭감이다. ‘부두 노동자 및 물류운송 노조(SEAL)’ 조합장을 맡고 있는 안토니오 마리아노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정부는 2013년 초 노동환경 악화를 겨냥한 항만활동 자유화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는데, 그 바람에 하도급 인력 비중이 크게 늘었습니다.”
2018년 8월 SEAL은 리스본에서 약 50km 떨어진 세투발 항구 노동자들과 연대해 파업을 개시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하역인부와 물류인력의 90%가 일용직 노동자다. 마리아노 조합장이 이들의 열악한 노동여건에 대해 지적했다. “불안정 고용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은 휴가도 쓰지 못하고, 질병이나 사고가 났을 때 적용되는 사회보장 혜택도 누리지 못합니다. 어떤 이들은 하루 16시간을 일하려고 매일 계약과 해고 절차를 두 번씩 반복하기도 합니다.”
세투발항은 연간 10만 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해내는 폭스바겐 그룹의 제조공장 오토유로파(AutoEuropa)와 세계 굴지의 포르투갈 제지업체 더내비게이터컴퍼니(The Navigator Company)가 수출품을 선적하는 전략항구다. 마리아노 조합장은 “극단적인 고용 불안정에 항의하는 우리의 움직임에 코스타 총리 정부는 해당 사안이 민간 부문의 문제라는 이유를 들며 책임을 모면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말에 의하면, 11월 22일 항구가 마비되자 정부는 화물선에 오토유로파 자동차를 선적하도록 경찰을 동원해 시위대의 피켓라인을 부수고 들어왔다. 사회당 소속 아나 파울라 비토리노 장관은 하역 인부들의 노동여건보다는 선적대기 중인 수출용 폭스바겐 자동차 처리 문제에 더 큰 우려를 표했다.
2018년 말, SEAL의 투쟁에 힘입어 세투발 노동자들이 단체협약 체결에 대한 합의를 얻어냈다. 이에, 마리아노 조합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해양부와 의회 노동 위원회에서 숱한 대정부 질의를 거쳤지만 2013년 만들어진 항만노동법은 변함없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포르투갈 전국의 항만 노동자 중 25~50%가 저임금 일용직 노동자들입니다. 게다가 날로 거세지는 고용 불안은, 하역 노동자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는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약화하는 방법으로 생산성 향상을 꾀하니까요.”
66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포르투갈의 심장부에는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시커먼 잿더미로 변해버린 페드로가오 그란드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이르려면 황량한 황무지 한복판을 지나는 굽이굽이 휘어진 도로를 달려야 한다. 2017년 6월, 화마가 마을을 덮쳐 3만 헥타르의 숲을 태우고 6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마을 사람 대다수가 불길을 피해 중심도로를 통해 이동하다 그만 목숨을 잃었다. 구조 당국이 제때 도로를 폐쇄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 참사는 온 국가를 슬픔에 빠트렸다.
많은 이들이 포르투갈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명 피해를 낸 이 화재의 원인으로 부족한 인적·물적 자원을 꼽는다. 포르투갈 소방관의 절대다수는 전문 소방관이 아니라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소방 자원봉사자이며, 민관 협력의 결실인 긴급보안 네트워크통합시스템(Siresp)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많은 결함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비난의 화살은 코스타 총리 정부를 향해 쏟아졌다. 사회당 정부는 긴축경제와 낮은 수준의 공공투자, 산림 관리조직 해체, 화재 대응 항공기기의 민영화, 산림정책 예산 삭감과 같은 조치를 주도했다. 2006~2016년 산림관리 인력 수는 약 1/3로 줄었다. 국토의 32%가 숲으로 뒤덮여 있고, 매년 평균 10만 헥타르의 숲이 산불로 쓰러지는 국가에서 내린, 비상식적인 결정이었다.
유칼립투스의 집약 재배법도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주변 토양과 생물다양성을 척박하게 만든다고 알려진 유칼립투스는, 본래 호주의 토착식물로 가연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도 영세한 산림업자들은 20년에 걸쳐 이 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해왔다. 재배가 쉽고 성장속도가 빠른 유칼립투스는 더내비게이터컴퍼니를 비롯한 제지업체에 원자재로 판매된다. 자연보호연맹(LPN)은 “오늘날 유칼립투스는 포르투갈 산림의 1/4을 차지하며, 전 국토에 걸쳐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수종이다. 포르투갈은 유칼립투스 밀도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높다. 포르투갈 정부는 한때 이 나무를 ‘녹색 석유’라고 부르며 국가경제의 원동력으로 간주하기도 했다”라고 지적한다.
더내비게이터컴퍼니는 포르투갈의 제3위 수출업체로, 국가 수출량의 3%를 차지한다. 2017년 6월 참변으로 5세 아들을 잃고 현재 페드로가오 그라드 화재희생자협회 의장을 맡은 나디아 피아자는 “2002~2004년 마누엘 바로소 정부는 경제발전을 모색하고자 이 회사와 협상을 벌였다”라고 말문을 열었다.(5) “그렇게 해서 지방 정부는 산림 소유자들에게 유칼립투스 재배 허가를 무분별하게 남발했습니다. 산림정책은 단기이익에 치중하기 때문에, 가장 소득이 낮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유칼립투스 재배가 우후죽순으로 퍼졌던 거죠.”
‘유칼립투갈(Eucaliptugal)’이 방치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파수스 코엘류 정부 시절에는 환경보호협회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체 삼림면적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2헥타르 미만 임야에까지 유칼립투스 재배를 자유화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생태론자들의 표현처럼 그야말로 ‘유칼립투갈(Eucaliptugal)’이 되고 말았다.
“페드로가오 그라드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가난한 지방에 속합니다. 이곳 주민 2,500명 중 1/3은 65세 이상이고, 300유로(약 40만 원) 미만의 연금을 받는 이들입니다. 작은 임야에 심은 유칼립투스는 생계에 필요한 적잖은 수입을 보장하는 수단이에요”라고 사회당 일원인 발데마르 알브스 시장이 밝혔다.(6) 이 마을은 지난 50년 동안 인구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그에 따른 여파를 설명했다. “안타깝게도 청년들은 대개 리스본에 가서 일자리를 찾습니다. 탈농촌 현상으로 밭과 숲은 그대로 방치되기 일쑤입니다. 제대로 산림 관리를 하지 않으면 화재가 쉽게 퍼지는 악순환이 거듭되는 거지요.” 피아자는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희망까지 잃었어요. 다들 공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페드로가오 그라드 주변에는 이제 회색빛 언덕만 한없이 길게 펼쳐져 있고, 언덕 위에는 유칼립투스가 도깨비 상자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양으로 높게 솟아있다. 자연보호연맹은 “화재는 종의 확산과 전파를 촉진한다”라고 설명했다. 2017년 6월의 참사에 이어 화재위험의 증가에 따라 정부는 지상군을 증원하고, 항공 설비를 보강했으며, 긴급보안 네트워크통합시스템(Siresp)을 700만 유로(약 93억 5,207만 원)에 사들였다.
그런데 코스타 총리가 ‘지역 화재 통합 관리청(AGIF)’ 수장 자리에 임명한 이는 다름 아닌 전 더내비게이터 임원 티아고 마르틴스 데 올리베이라였다. 올해부터 지역 산림 관리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지만, 국토 95%에서 이뤄지는 산림 재배나 재조림 사업에서 유칼립투스는 여전히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신규사업은 현재 관행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고, 현상 유지에 급급해한다”라는 것이 자연보호연맹의 간추린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포르투갈의 경기가 둔화할 조짐이 나타났다. 지난 7년 동안 성장일로였던 관광객 증가율은 2018년 3.8%에 머물며 2017년 9.1% 대비 큰 폭으로 감소했다. 지난 6월, 포르투갈 중앙은행은 “과열된 부동산 투기 시장이” 갑작스레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2017년에 포르투갈 성장률은 2.8%에 달했지만 2018년에는 2.1%로 감소했으며, 올해 2019년에는 1.7%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주의 정책과 긴축재정을 결합하려 한 코스타 총리 정부의 시도는 기적보다는 신기루에 더 가깝지 않을까? 조제 레이스는 “결국, 제링공사는 정치시험대이자 좌파의 새로운 경험이었다”라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10월 총선이 임박한 이 시점에, 현 구도를 과연 앞으로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나오기는 어려울 듯하다.
글·미카엘 코레이아 Mickaël Correia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Marie-Line Darcy, Gwanaëlle Lenoir, ‘Au Portugal, la gauche essaye 포르투갈 좌파의 시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0월호(한국어판 제목은 ‘포르투갈의 우울증’, 2017년 11월호).
(2) 유로지역 평균은 GDP의 2.67%이지만 포르투갈은 1.97%에 불과하다. 유럽연합 통계국(Eurostat), 2019년 4월 23일.
(3) 유로지역 재무장관 월례회의.
(4) 포르투갈에서 세 번째로 큰 은행인 노보 방코(Novo Banco)는 유동성 위기에 빠진 방코 에스피리토 산토(BES: Banco Espírito Santo)에 대한 구제금융을 실시하면서 탄생했다. 포르투갈 정부는 이미 44억 유로(약 5조 8,784억 4,400만 원)에 달하는 자금을 노보방코에 지원했다.
(5) 2018년 나디아 피아자는 CDS-국민당(보수우파)에 가입해 당의 선거 프로그램 기획을 담당했다.
(6) 현재 발데마르 알브스 시장은 2017년 6월 화재 사건에 대한 ‘과실치사’와 주택 재건축 자금유용 혐의로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