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카 섬의 보물, 농업과 목축업

2019-08-30     도미니크 프랑스쉐티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친구들’ 회장 역임

높은 지대에 위치한 마을, 유쾌한 향기를 풍기는 빽빽한 잡목숲, 산꼭대기의 만년설, 방대한 삼림…. 코르시카섬의 ‘야생미’를 예찬하는 르포르타주, 서적, 영화 등을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실 이런 목가적인 풍경 뒤에는 코르시카인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편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우선, 녹지의 무분별한 개발로 화재의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니올로 계곡과 아스코 계곡 사이에 위치한 인구 48명의 작은 마을 포폴라스카에서 양떼 목장을 운영 중인 젊은 목축업자 미카엘 바테스티니가 지적했듯, “최근 들어 마을을 둘러싸고 있던 떡갈나무 서식지가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는 각종 농작물 재배지들로 채워지고 있다.” 오늘날 코르시카섬의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3%로 건설업 9.2%, 숙박 및 요식업 7.2%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1)

코르시카섬 풍경의 변화는 1960년대에 들어서서 지난 수 세기 동안 섬의 경제를 지탱해온 농축산업 모델이 붕괴한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인류학자 제라르 랑클뤼의 설명에 의하면 과거 “코르시카섬에 사는 주민들은 주변 환경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생활했다. 고지대의 하계 방목지부터 연안 지역의 목초지까지, 산 주변의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해 살았다.”(2) 생산 활동은 당연히 가족 중심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아버지는 결혼한 아들들과 사위들까지 가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애썼다. 

코르시카섬에서는 대대로 어머니와 아버지, 결혼한 형제들, 매형과 처남, 삼촌, 고모부와 이모부가 모두 함께 노동력을 쏟아붓고 그 결과물을 가족 안에서 공유했기 때문에, 가족의 재산은 분배되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이런 재산공유는 코르시카섬에서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인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토지자원의 특성상 정확한 분배가 어렵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제자르 랑클뤼는 부연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와 같은 시스템이 재산의 소유주 확인을 어렵게 하며, 재산을 분할하고 매매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토지 소유주 협회들이 해결하려고 노력 중인 주된 문제들 중 하나다.

제국주의적인 무분별한 개발은 녹지 면적을 줄이고 국토의 일관된 정비를 어렵게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유효농지면적(SAU)에 따라 EU 보조금이 지급된다는 점을 악용한 ‘보조금 사기’까지 횡행하고 있는데, 수확량이 터무니없이 적은 토지도 SAU로 신고해 막대한 지원금을 챙기는 것이다. 이로 인해 해당 토지의 가치를 실제로 높일 기회는 사라지는 셈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바테스티니는 “신념과 열정으로” 양떼 목장을 만들었다. “코르시카섬의 풍부한 자원을 활용해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코르시카섬에서 동물을 키우고 식물을 재배하는 수많은 농업 종사자들도 아마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코르시카 공동체의 집행부 위원, 벨고데르 시장(코르시카 자유당 소속), 코르시카 농업 및 지방 개발청(Odarc) 대표인 동시에 목장도 운영하고 있는 리오넬 모르티니도 이 같은 상황을 잘 알고 있다. “제가 몇 가지 부정행위를 근절하려 노력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종종 제가 내수를 죽이려 한다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내수는 이미 죽었는걸요. 최선을 다해 일해도 간신히 먹고 살 정도지만 그럼에도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뚜렷한 인생철학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요. 그들은 조국, 가족, 사회적 문화적 공동체를 위해 일을 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소비지상주의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직 한 가지, 돈과 수익만을 좇도록 만듭니다.”

 

포도와 감귤이 열어줄 새로운 가능성

이런 뼈아픈 현실 속에서도 코르시카의 포도와 감귤류 재배 분야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파트리모니오 포도 농장은 코르시카섬에서 AOP(원산지보호명칭) 인증을 받은 9개 상표들 중 하나로, 화학 제초제와 기타 비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유일한 프랑스 와인 상표다. “우리는 겨울 내내 지인이 키우는 양들을 포도 농장에서 방목시킵니다.” 파트리모니오 AOP의 젊은 대표인 마티유 마르피시가 설명했다. 

1960년대에 정부가 섬 동부의 포도농장에 대해 생산제일주의 모델을 도입했다가 실패한 이후, 코르시카섬의 포도재배 면적은 3만ha에서 7,000ha로 쪼그라들었다(AOP 재배면적 3,000ha). “결국 산업적 농업의 경제논리는 코르시카섬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제라르 랑클뤼가 덧붙였다. 이는 와인의 품질에도 영향을 미쳐, 코르시카산 와인은 한동안 프랑스 국내와 해외의 와인 애호가, 전문가, 요식업자, 수입업자들로부터 외면당하기도 했다.

코르시카의 오레자 생수, 피에트라 맥주와 같이 기타 식품들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진한 녹색 잎들에 싸여 유통되는 코르시카 산 귤(클레멘타인) 역시 유럽 소비자들의 식탁에서 사랑받는 과일이다. 특히 코르시카 섬에서 생산되는 왕귤, 자몽, 오렌지, 레몬, 시트런, 키위, 헤이즐넛은 고품질로 유명하다. “프랑스국립농업연구소(INRA)와의 협력 덕분에 우리는 코르시카섬의 토양과 기후에 완벽하게 적합한 귤 품종을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70명의 감귤류 재배업자들로 구성된 영리단체 ‘코르시카 콩투아(Corsica comptoir)’ 대표 프랑수아-자비에 세콜리가 말했다. “우리는 ha당 무려 1,200그루의 귤나무를 재배하고 제초제를 다량 사용하는 스페인의 경쟁업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ha당 귤나무의 수를 450그루로 제한하는 유기농업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렇게, 일부 농업 분야는 조직화돼 장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반면, 동물 사육 등의 분야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르시카섬의 경우, 양과 염소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서 암소 사육이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동시에 버려진 동물들의 수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더 많아졌다.(3) 넓은 공간에 가축을 방목하는 코르시카섬 고유의 사육방식은 생계를 위해 가축을 길렀던 과거로부터의 유산이다. 한 공간에서 가축 사육과 농업을 동시에 하는 이런 방식이 고품질을 보장하는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일례로, 코르시카섬에서 생산되는 돼지고기 제품과 치즈는 이미 높은 명성을 자랑하고 있다.

 

유명 셰프들과 파티셰들까지 참석한 행사

코르시카섬은 지형적으로 고립돼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각종 보건위생 관련 문제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최근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벌목과(Micro hymenoptera)의 밤나무 혹벌로 밤나무 숲이 큰 피해를 보았다가 이제 회복기에 들어섰다. “밤나무 혹벌이 싹에 알을 낳는 것을 막는 기생벌, 즉 꼬리좀벌(Torymus sinensis)을 방생하는 친환경적인 해결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퀴톨리-코르티치아토에서 가축과 밤나무를 기르는 제롬 피에르로비시가 설명했다. “밤가루에는 글루텐 성분이 없어서 영양학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밤가루에는 단백질, 당의 소화 및 흡수가 느린 당분, 필수 아미노산, 섬유질이 풍부하며 지방 성분이 거의 없습니다. 우리의 과제는 이 같은 밤가루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입니다.”

“정부 관료들은 자신들의 농업정책 지침을 따르지 않은 소규모 농가들을 탓하지 않습니다. 자칫 정치적인 반발을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니파시오 인근에서 올리브를 재배하는 파비엔 마에스트라치는 단언했다. 이탈리아의 올리브 농장 전체를 휩쓸었던 포도피어슨병균(Xylella fastidiosa)이 최근 코르시카섬에서도 발견됐다. 이탈리아의 경우 아마도 단일 재배 모델을 선호하는 특성 때문에 피해가 더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수다스러운 60대 여성은 농민중심 농업(Peasant farming) 모델의 신봉자로서, 농산물 직거래, 소규모 생산자 등에 관한 최근 담론에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현재 그녀는 약 100년 된 올리브 나무 550그루로 과일 향을 머금은 올리브 오일을 문제없이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지만, 박테리아의 증가추세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코르시카섬 내에 식물수입을 전면 금지한다든지 하는 획기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당분간 두 다리 뻗고 편안하게 잠들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코르시카섬의 주요 자원인 아로마 허브는 품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해 프랑스국립농업연구소(INRA)와 코르시카 대학교의 합동 연구 대상이다. 알레리아에서 열린, 코르시카섬의 식도락과 특산품을 소개하는 축제인 아르테 구스투(Artè Gustu)의 주제이기도 했다. “올해 축제에는 각 분야 생산자들뿐만 아니라 티에리 막스, 파비오 브라가뇰로 등의 유명 셰프와 피에르 에르메, 세트릭 그롤레 등 유명 파티셰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번 축제를 통해 코르시카섬이 지닌 잠재력과 풍요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축제를 기획한 프랑스쉬-에르메가 설명했다. 코르시카섬의 거주민들은 자연환경과 동물에 대한 존중을 실생활에서도 실천하고 소규모로 생산되는 제품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다른 형태의 소비, 나아가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같은 미래 전망에 모든 이들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아작시오 북부에 위치한 메자비아 상업지구에는 대형 마트들이 넘쳐난다. 2017년 이후 수리, 인테리어, 가전, 섬유, 가구, 스포츠 등의 다양한 코너들을 갖춘 대형 유통업체 4곳이 이곳에 들어섰다. 수많은 차들로 붐비는 원형 교차로를 지나 카트를 몰면서 쇼핑을 하는 소비자의 모습은, 국제사회와 발맞춰 가기를 원하는 코르시카섬 거주민들의 미래의 모습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기자인 상피에로 상기네티에 의하면, 코르시카섬 출신의 경영인들로 구성된 한 그룹이 “마트와 도매업체 30여 개, 부동산회사 58개, 건설회사 34개, 컨설팅 회사 31개, 도로교통 회사 10여 개, 그리고 코르시카 리네아(Corsica Linea)의 지주 회사인 CM홀딩스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4) 이 컨소시엄은 우선, 최근 전원생활을 꿈꾸며 도심을 떠나 코르시카섬에 정착하는 유럽인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또한 산지가 대부분인 코르시카섬의 지형적 특성상 도시 개발이 가능한 토지 자원이 한정적인 만큼, 단체관광 산업의 잠재력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모르티니는 말했다. 

“이 컨소시엄은 코르시카섬 경제의 모든 요소를 장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을 초래하는 소비지상주의가 아닌 도덕적 기준에 입각한 경제 및 정치 프로젝트가 정착되기를 원하며, 코르시카섬이 지중해 섬들뿐만 아니라 유럽 대륙을 위한 실험 공간이자 모범 사례가 되기를 바랍니다.” 공동 농업 정책의 개정안(2021~2027)에 관한 논의가 이미 시작된 현시점에서, 코르시카 정부는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코르시카의 주민들과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주민 대표들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글·도미니크 프랑스쉐티 Dominique Franceschett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친구들’ 회장 역임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Laurent Vachey, Rémi Tardivo, Ombeline Gras et Camille Freppel, <Pour une économie corse du XXIe siècle: propositions et orientations 21세기 코르시카 섬의 경제를 위해: 제안과 방향>, Inspection générale des finances, 2018년 10월.

(2) Gérard Lenclud, 『En Corse. Une société en mosaïque 코르시카 섬, 모자이크 사회』, Éditions de la Maison des sciences de l’homme, Paris, 2012. 

(3) François Casabianca, ‘L’élevage pastoral en Corse. Les enseignements à tirer d’une trajectoire d’évolution 코르시카 섬의 목축업. 그 변화의 과정을 통해 얻는 교훈’, <revue Pour> n° 231, Paris, 2016.

(4) Sampiero Sanguinetti, 『Corse, l’option démocratique 코르시카 섬, 민주적 선택』, Albiana, Ajaccio, 2018.

 

 

코르시카 섬 사람들이 일하고 살아가는 모습


장-샤를은 가업을 이어 포도를 재배한다. “코르시카섬에서만 자라는 18개 품종의 포도를 멸종 위기로부터 지켜낸 아버지” 덕분이다. 앙리는 식당을 운영한다. 자크는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아바투치 집안의 셋째 아들인 자크는 이 주제를 어렵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안의 모든 차들은 식용유를 재활용해 만든 바이오디젤로 움직인다는 등의 실례를 들어가며 이야기한다. “저는 나뭇가지의 줄기와 잔가지에 질소, 인, 칼륨, 칼슘이 풍부한 계분을 넣어 직접 거름을 제조합니다.” 골짜기 위쪽으로는 검은 반점이 있는 젖소 한 무리가 보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겨주신 코르시카섬 고유 품종의 젖소 몇 마리를 자크가 번식시킨 것이다. 

타라보 유역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란 이 젖소들의 품질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아바투치 집안은 또한 태양 에너지로 운영되는 최초의 도축장을 프랑스에 세웠다. 소독과 살균은 화학제품 없이 오직 스팀 청소를 통해서만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나온 오수는 회수된 후 퇴비에 투입돼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데 쓰인다. 

“완벽한 도축이란, 소가 태어나고 자라는 과정에서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죽는 순간까지도 소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가능한 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고, 소의 머리, 창자, 발, 뼈와 같이 도축장에서 가져가지 않는 부위들까지 최대한 활용합니다.” 소의 가죽도 가죽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