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나치’ 키우는 독일 경찰의 무능
네오나치, 연쇄살인, 갈팡질팡하는 경찰. 이는 다름 아닌 2000년대 초부터 독일 사회를 수렁에 빠뜨린 한 사건의 얼개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뮌헨에서 진행된 재판은 극우단체 범죄를 다루는 정보기관과 사법부의 무능함, 그리고 양면성까지 드러낸 계기가 됐다.
2018년 7월 11일, 털썩 주저앉고 만 이스마일 요즈가트는 메마른 음성으로 중얼거리더니 머리에 물을 뿌렸다. 요즈카트는 12년 전 독일 국가사회주의 지하단체(NSU)에 의해 살해된 할리트 요즈가트의 아버지다. 그는 방금 뮌헨 고등법원에서 맨프레드 괴츠 판사가 피고인 5명에게 내린 판결을 듣고 망연자실했다. 사건 주범에게는 중형이 선고됐지만, 공범 4명에게는 가벼운 형량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가장 떠들썩하게 한 네오나치 범죄 재판이 일단락됐다. 2000년 9월에 시작해 2007년 4월까지, 독일의 여러 도시에서 터키인 이민자 대다수와 여성 경찰관을 포함해 총 9명이 같은 권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 경찰은 이민자 집단 사이에 벌어진 단순 보복살인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수사는 주로 희생자의 가족, 이웃 등 주변인물에 초점이 맞춰졌다. 게다가 경찰은 거짓주장을 제기함으로써 고인에 대한 신뢰를 손상시키기까지 했다.(1)
두 사건의 경우, 수사단 명칭마저 ‘보스포루스 초승달(터키 국기 문양을 암시)’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언론은 터키 마약단과 강도단 사이에서 벌어진 ‘되너(Döner; 터키에서 건너온 독일식 케밥) 살인’(2)이라며 서슴없이 터키 이민자 사회를 ‘암흑의 평행세계’에 빗대 살인의 책임을 지우기도 했다. 독일에서 발생한 최악의 범죄 사건에는 경찰이 160여 명이나 투입됐지만, 수사 당국은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오리무중에 빠졌다.
박수갈채를 받은 살인사건 공범들
그러던 가운데, 2007년 순찰차 안에서 여성 경찰관이 총에 맞아 숨지고, 함께 있던 동료는 머리에 총을 맞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자 수사단은 심리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라 “거짓말을 사회화 과정의 하나로 생각하는” 집시 집단을 대상으로 수사를 벌였고 사건이 발생한 도시 이름을 딴 소위 ‘하일브론의 유령’을 하염없이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3) 이후 이민자들을 겨냥한 폭탄 테러가 3건 발생해 24명이 부상당했을 때도 수사당국은 네오나치 단체 쪽으로 의혹의 화살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희생자 유가족과 측근, 일부 언론이 극우집단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고, 점차 의혹이 짙어졌다.
2011년 11월 초, 베아테 체페가 경찰에 자수하면서 사태가 급변했다. 수사관들은 그동안 애써 무시해온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나섰다. 몇 차례의 소규모 테러를 저지른 우베 문틀로스, 우베 뵌하르트, 베아테 체페 3인조는 1998년에 NSU(히틀러가 이끌었던 나치의 명칭을 차용한 ‘국가사회주의자 지하조직’이라는 뜻-역주)를 창설했다.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이들은 마트와 은행을 습격해 약 60만 유로를 갈취했으며, 그 과정에서 (정확한 수는 집계되지 않은) 다수의 부상자를 냈다. NSU를 창설한 이들 3인조는 14년 가깝게 작센 자유주에 은거하면서 대규모 조직망의 조력과 비호를 받으며 활동을 이어갔다. 2011년 11월 4일, 최후의 은행강도 시도에 실패한 두 남성은 사망했고, 일당들과 함께 거주하던 주택에 불을 지른 체페는 여러 언론에 범죄를 시인하는 동영상을 배포한 후 경찰에 자수했다.
2011년까지 네오나치 범죄행위에 대한 면죄 논리는 뮌헨 법정 판결을 거치는 과정에서도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았다. 2013년 5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이어진 재판은 증인 540명, 전문가 56명을 동원했다. 그리고 60만 쪽 이상의 서류와 총 3천7백만 유로에 달하는 비용을 소모했다. 재판 결과 체페에게는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그러나 범죄에 가담한 공범 4명은 재판에 참석한 네오나치 활동가 10여 명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기까지 했으며, 고작 2년 반에서 10년 형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게다가 그마저도 구금기간을 반영해 4명 모두 석방됐다.
2017년 7월 함부르크에서 열린 G20시위대에 39개월의 징역형이 내려졌던 것에 비해 4명의 공범에게는 무거운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량이 내려졌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한층 깊이 숨어 있다. 독일 저술가 랄프 지오다노는 “이 재판은 시민을 보호하고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공조직이 네오나치 단체와 결탁해 죄를 눈감아줬다는 인상을 씻어내지 못했다”라고 평가했다.(4) NSU 사건의 결과를 요약한 튀링겐 의회 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인종범죄가 너무 만연해 고의적인 사보타주였다는 의혹마저 부르는 상황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5) 2018년에는 독일 내 인종차별과 반유대주의 범죄율은 과거 수년간의 최고치를 경신했던 2017년 대비 약 20%까지 증가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내용은 마치 그동안 극우단체 범죄에 제도적 관용이 존재해왔다는 인상을 남긴다.(6)
공권력 내부로 침투한 ‘네오나치’
재판 내내, 판사들은 문제의 핵심을 고려하지 않고 5명의 피고 개개인에게만 초점을 맞췄다. 이 사건들이 지니는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도외시한 것이다. 그러나 NSU의 창립자 3인조와 공범 4명이 독일 전역을 활개치며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게다가 최근 약 14년 동안 숨어 지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떤 수사도 없었다.(7) 재판에서 체페는 대체로 침묵을 지켰고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다른 2명의 공범은 자신들의 행동을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을 ‘민족-사회주의자’라고 칭하면서 네오나치주의자들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 밖에도 조사과정을 살펴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대목이 적지 않다. 2006년 4월 6일 헤센주 카셀에서 할리트 요즈가트는 가족이 운영하는 인터넷카페에서 총격을 당했다. 사건 현장에서 안드레아스 테메라는 인물이 데이팅 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그의 이력은 꽤 흥미롭다. 요즈가트는 유년기에 ‘작은 아돌프’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청소년기에는 히틀러의 자서전 『나의 투쟁』을 필사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8) 그의 직업은 헤셀주 연방헌법수호청의 감독관으로, 네오나치주의자들을 감시하는 정보원들을 관리해왔다. 2006년 4월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테메는 검찰의 증언요청에 불응했으며, 첫 심문에서는 범죄현장에 있었던 사실을 부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사건현장에 있던 다른 손님의 목격담과 테메의 인터넷 접속기록이 일치해, 그의 진술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다. 그는 총기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밝혔지만, 현장에서 소음기를 장착한 두 발의 총성도 듣지 못했고 탄약냄새도 맡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카페를 나서면서 리셉션 뒤쪽에서 출구로 이어지는 곳에 희생자가 피를 흥건히 흘린 채 쓰러져 있는 모습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9) 판사들은 테메의 진술과 증언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요즈가트 가족과 후원자들의 요청으로 영국의 저명한 건축과학수사 연구단체 포렌식 아키텍처(Forensic Architecture)가 당시 정황을 재감정한 결과, 테메가 청각·후각·시각적으로 살인을 충분히 인지했을 상황이었음이 드러났다.
이 사건은 연방헌법수호청 및 연방 사무소의 역할과 30명 여의 요원과 NSU 3인조를 감시하던 정보원들의 활동에 ‘회색지대’가 있음을 보여준다.(10) 일부 양심적인 경찰들은 불만을 제기했다. 일례로 연방헌법수호청의 제재 때문에 도주 중인 3인조에 좀처럼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파악한 경찰관 스벤 웬더리히는 2001년 내내 구두와 서면으로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11) 그러나 뮌헨에서 열린 재판에서 판사들은 NSU가 저지른 범죄에 다수의 연방헌법수호청 요원이 연루됐다는 의혹에 관한 정황이나 증거를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2011년 11월 체페가 범행을 자백한 후, 연방헌법수호청은 NSU에 관한 보고서 대부분을 파기하거나 보호기간 120년을 적용해 기밀문서로 분류했다. 따라서 테메에 관한 기록은 향후 2137년까지 국회질의나 범죄수사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연방헌법수호청 일부 직원은 가짜 명의로 청문회에 나와 고의로 허위진술을 하기도 했다. 클라우스 디에테르 프리체 정무차관은 2012년 10월 19일 제1차 의회 조사위원회 회의에 앞서 “정부 활동을 저해하는 국가기밀을 결코 누설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연방헌법수호청을 두둔했다.(12)
NSU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한스조아힘 푼케 베를린 자유대학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의회 조사위원들에게 자문을 제공한 바 있다. 그는 연구를 통해 과거 독일민주공화국(구동독) 정부가 공식 해체된 이후 연방헌법수호청은 통일독일에 ‘네오나치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밝혔다. 이 기관으로부터 돈을 받고 정보원으로 활동한 다수의 네오나치 지도부 구성원들은 범죄수사 대상에서 배제되곤 했다.(13) 최근 좌파의 쿠데타 시도나 반대파의 숙청 등 터무니없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일부 경찰관, 정보요원, 판사, 기타 정부관료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부조직 내부에까지 네오나치 세력이 깊이 침투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14)
‘고발한다. NSU 해산’
경찰과 언론의 거짓비방과 공식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부정행위와 장벽을 경험한 유가족과 지지자들은 힘을 합쳤다. 도르트문트에서 메흐메트 쿠바식이, 카셀에서는 할리트 요즈가트가 NSU에 의해 살해된 직후인 2006년 4월, 두 도시에 수천 명이 집결해 거리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2013년 NSU에 대한 형사재판이 시작된 이후 감시단, 평가단, 문화예술운동, 정치·법률 그룹 등 시민단체가 속속들이 조직됐다. 지역·분야별로 7개 지부로 나뉜 NSU감시단은 의회 13개 조사위원회의 활동과 438일에 걸쳐 열린 뮌헨 재판과정을 면밀히 검토·모니터링했다.(15)
시민들의 참여는 2017년 5월 쾰른에서 3,000명이 모인 가운데 절정에 달했다. ‘고발한다. NSU 해산’(16)이라는 이름의 배심원단은 5일에 걸쳐 여러 민간변호사의 참관 하에 사건 조사과정에 비판적인 견해를 가진 여러 개인과 단체와 면담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판사나 뮌헨 의회가 진실을 백일하에 드러내거나 정의를 실현하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네오나치주의자와 조직에 연루된 개인은 물론, 1999~2011년에 희생자의 주변사람을 가해자로 몰거나 극우세력의 무죄선고를 위해 협조한 준 경찰, 검찰, 언론인, 정치인 100여 명에 대한 공동고발장을 제출했다.
평결 당일 뮌헨에는 5,000여 명이, 다른 12개 도시에는 7,000여 명이 모여 인종차별적 범죄를 제도적으로 결탁한 행위를 공식조사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리고 “우리는 평결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한 이스마일 요즈가트 씨와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선, 체페와 공범들, 연방검사는 각기 다른 이유로 카를스루에 연방법원에 불복 상고할 예정이다. 법원의 판결까지는 여러 해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희생자 유가족 중 3명이 허위사실 유포 및 비방, 부실수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어 뉘른베르크 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극적인 측면이 강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는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뮌헨 법원의 재판에 대해 ‘예외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재판부는 ‘개인의 일탈, 범죄, 전과에 초점을 맞춰 사회문제를 탈정치화하는 방식으로 형사사건을 판결했을 뿐’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마시모 페리넬리 Massimo Perinelli
현대사 전공 박사, 로자 룩셈부르크 재단 연구원
크리스토퍼 폴만 Christopher Pollmann
로렌대학교 공법학과 교수, 파리 세계학 연구소 부연구원
번역·이푸로라
번역위원
(1) ‘Spuren der Reid-Methode: Erzwungene Geständnisse und institutioneller Rassismus’, <Bürgerrechte & Polizei-CILIP>, 115호, 베를린, 2018년 4월, www.cilip.de
(2) <Der Spiegel>, 함부르크. 2011년 2월 21일자, 2012년 7월 4일자 기사에서 ‘되너 살인’에 대한 표현을 참조.
(3) <Zeit> 온라인 기사, 2014년 2월 4일, www.zeit.de
(4) 베르티니(Bertini)상 수상 소감, 2014년 1월 27일 함부르크에서, https://bertini-preis.hamburg.de
(5),(11),(13) ‘우익테러와 정부활동’ 2014년 7월 16일자 튀링겐 의회 조사위원회 보고서(독일어로 작성됐음), www.thueringer-landtag.de
(6) ‘Politisch motivierte Kriminalität im Jahr 2018’, ministère fédéral de l’intérieur, 베를린, 2019년 5월 14일, www.bmi.bund.de
(7) Stefan Aust et Dirk Laabs, 『Heimatschutz. Der Staat und die Mordserie des NSU』, Pantheon, 뮌헨, 2014년.
(8) <Die Welt>, 베를린, 2016년 6월 6일, www.welt.de
(9) Lutz Bucklitsch, ‘Kassel: Der Mord an Halit Yozgat – die Lügenwelt des Andreas Temme’, 2014년 6월 22일, https://hajofunke.wordpress.com; <Die Welt> 2015년 3월 1일자 기사, www.welt.de
(10),(13) Hans-Joachim Funke, 『Sicherheitsrisiko Verfassungsschutz. Staatsaffäre NSU: das V-Mann-Desaster und was daraus gelernt werden muss』, VSA, 함부르크, 2017년.
(12) Hans-Joachim Funke, https://hajofunke. wordpress.com
(14) <Die Tageszeitung>, 베를린, 2018년 11월 16일.
(15) www.nsu-watch.info (독일어, 영어, 터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