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수업은 시간 낭비일까?
철학은 학생들에게 비판 정신을 갖춰줄 수 있는 핵심 과목이다. 그러나 철학 교육을 무력화하는 특권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오랜 보수주의가 철학 교육을 위협하고 있다.
보통 철학은 전형적인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철학은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자유로운 것이며, ‘비판 정신의 제왕’이라고 자처한다. 1925년,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아나톨 드 몬지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학생들은 철학수업에서 성찰을 연습하고 자유를 깨우친다. 이것이 바로 철학교육 고유의, 본질적 목적이다.”(1) 이 선언의 정신은 폐기된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교육이 기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철학입문 수업의 대상은 프랑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의 절반에 이르며, 이는 어떤 단일 과목보다도 많은 수치다. 이는 바칼로레아를 통과한 대학 입학자격 취득자 중 28%를 차지하는 직업고등학교 학생들과,(2) 고등학교 3학년이 돼 철학수업을 듣기 전에 학교를 떠난 학생들이 제외되기 때문이다(프랑스 바칼로레아는 일반계열, 기술계열, 직업계열로 분류되는데, 바칼로레아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3학년 과정에서 직업계열 학생들은 철학을 배우지 않는다-역주).
물론 한 학년의 절반이라는 수치는 충분히 크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철학입문 수업을 통해 각자의 생각을 형성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이해력과 탐구심을 증진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이 철학을 접하는 시기는 대부분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철학수업은 시간 낭비다
철학수업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10여 년 전 작성된 최근의 철학과목 감사보고서의 여러 수치를 보면 놀랍게도, 철학교육은 지금까지 현상유지에 그쳤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3) 보고서는 유능하고 헌신적인 교사들이 철학교육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 “대다수 학생들은 철학이 지닌 해방적 측면에 무관심하며, 철학수업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특정계열에서 이 현상은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특정계열’은, 기술계열을 가리킨다. 현행 철학교육은 기술계열 학생에게도 (100년 이상 핵심적인 평가 기준이 돼 온) 논술문을 쓰게 한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이미 학습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제대로 지도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기술계열의 학생들은 이런 유형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특히 언어적인) 문화자본을 빼앗긴 상태이기도 하다.
교육계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오래전에 사라진 이 보고서의 결론은 이렇다. “이처럼 철학교육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철학’이 지닌 이미지에 사로잡힌 채 교육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철학교육은 내리막길을 계속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가 나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왜 우리는 이런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려면, 과거를 돌이켜 봐야 한다. 학생들이 만고불변의 철학적 소양과 성찰 방법을 단 1년 만에 습득하기를 기대하는 교육방식은 그간 어떤 변화의 시도도 용납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오늘날 교사와 학생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 것이다. 1988년 교육부 장관이었던 리오넬 조스팽은,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과학자 프랑수아 그로가 조직한 단체에 철학교과과정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자크 부브레스와 자크 데리다가 공동으로 주재한 ‘철학 및 인식론 위원회’가 1989년 6월 보고서를 제출했다.(4)
문제 제기 이후 30년,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보고서는 묻혀있다. 현실을 정확히 포착한 진단과, 그런 진단을 바탕으로 한 주장이 담겨있음에도, 이 보고서는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교육계에서 토론에 부쳐지지도 않았다. 장관은 교육계 일부의 압력 때문에 이 결정적인 보고서의 출판을 포기했다.(5)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 보고서의 존재를 알지도 못한다.
보고서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을까? 요지는 제단 위에서 신성시됐던 철학교육을 현실에 발붙이게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이 교실에서 이뤄진다는 점을 유념하고,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을 기울이며, 덜 엘리트주의적인 방식으로 철학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중에서도 두 가지 제안이 특기할 만했다.
첫 번째 제안은 고등학교 3학년 과정에 한정돼 있던 철학과목을 전 학년 필수교과로 만들자는 것이었다. 즉 1학년 때는 철학입문을, 3학년 때는 철학 분과교육을, 대학교 과정에서는 철학 심화학습을 하는 것이다. 또한 철학은 더 이상 만학의 여왕으로 간주돼서는 안 되며, 다른 과목과 연계되는 학문이 됨으로써 학생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학생들은 철학 공부를 통해 자신의 지적 소양에 조화로움과 비판적 차원을 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두 번째 제안은 학생들이 실제 수업에서 배운 것만으로 시험을 치르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커리큘럼의 범위를 명확히 정하자는 것이었다. 즉 공교육이 가르치지 않은 내용이 시험과 평가에 결정적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1973년 이후 철학교육 커리큘럼은 자유, 행복, 국가, 예술과 같은 개념들을 다뤄왔다. 문제는 이런 개념들이 모두 다각적인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론상 교사들은 다양한 주제와 저자들을 자유롭게 선택해 수업을 구성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개념에 대한 여러 관점을 깊이 있게 다룰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학생들은 바칼로레아에서 씨름하게 될 주제들을 1년 안에 충분히 배울 수 없다.
예컨대 ‘자유’는 ‘자유의지의 존재(결정론의 반대 의미로서의 자유)’에 대한 물음도, ‘정치적 자유’에 대한 물음도 될 수 있다. 또 다른 사례는 예술분야다. 예술분야에서 30년 동안 제시된 바칼로레아 주제들을 살펴보면, 수험생들이 15개 이상의 다양한 주제에 통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주제 중에는 ‘예술작품의 본질(예술작품과 일반적인 대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예술과 진리의 관계(예술작품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진리를 선사하는가?)’, ‘예술과 역사의 관계(예술작품은 시대에 의존하는가?)’ 같은 것들이 있다. 수험생들이 예술과 관련해 다양한 주제에 통달해야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행 커리큘럼은, 그나마 교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다. 이는 커리큘럼이 교사에게 자유를 더 주느냐 덜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커리큘럼을 학생들이 공부하고 시험을 볼 구체적인 문제 자체에 집중하도록 구성하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철학적 성찰을 심화하고 다양화할 시간과 자유를 확보할 수 있다.
철학교육이라는 ‘신화’, ‘철학적 엄밀함’이라는 명분
데리다-부브레스 보고서의 문제 제기는 이후 30년 동안 교육계에 영향을 미쳤다. 한쪽에서는 학생들의 학습 범위를 넓히고 평가 근거를 더 확실하게 명시함으로써 바칼로레아와 커리큘럼을 혁신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철학교육의 ‘신화’ 위에 보수주의 진영이 형성됐다. 커리큘럼 투쟁의 결과는 현상유지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와 직업고등학교, 고등교육 과정에서 이뤄지는 철학입문 과정은 진지하게 논의조차 되지 못했고, 바칼로레아는 현행 그대로 유지됐다.
‘철학적 엄밀함’이라는 명분 때문에 교사들은 진정성 있는 교육학적 성찰과 실천을 스스로 행하기 어려워한다. 철학적 엄밀함을 의심하지 않거나 경시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1983년 사회학자 루이 핀토가 이미 지적했듯, “학생들에게 어떻게 철학적 역량을 길러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작업은, 철학 전공자 및 교수들에게는 일종의 ‘학문적 공격’으로 느껴질 뿐이며 따라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철학’에 포함되지 않는데, 철학 전공자 및 교수는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지 ‘철학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교수법에 대한 문제 제기를 자신들에 대한 공격으로 느낀다는 것이다.-역주)(6)
때문에 ‘교수법’은 모든 교육의 핵심임에도,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박식하신’ 철학교사들에게는 예외사항이 된 지 오래다. 철학교육연구소 설립 협회(ACIREPh)는 이미 20년 전 창립 선언문인 ‘철학교육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규탄한 바 있다.
“특히 교수자격시험을 포함한 교사선발시험은 ‘철학적 탁월함의 증명서’이자 계속해서 ‘철학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즉 철학교사라는 ‘직업’으로의 진입로로 여겨지지는 않고 있다.”(전통적으로 유명 철학자를 비롯한 프랑스 철학자들은 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철학교사로 근무한다. 글에 등장하는 피에르 부르디외와 자크 데리다 역시 마찬가지다.-역주)
철학교육의 대중화는 가능할까?
물론 철학교육을 대중화하기 위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7) 우선 철학교육 대상을 고등학교 3학년생으로 한정하지 않고, 고등학교 3년 전체를 활용해 점진적이면서도 일관된 교과과정을 도입하는 것이다. 3년 과정에 맞춰 고안된 새로운 커리큘럼을 통해 교사들은 분석, 자료조사, 합리적 토론을 교육할 수 있을 것이다. 철학교육의 내용과 그 실천에서의 주안점은 다음의 내용을 획득하는 데 둬야 한다. 즉 논리와 논증(필요조건과 충분조건, 논증과 역설, 귀납추론과 연역추론 등)에 대한 학생들의 근본적 이해, 다양한 생각과 결합할 수 있는 개념 및 어휘, 인류에게 주어진 문제와 대결하는 철학적 주요 사조와 그에 관련된 문화적 조건, 현대 사회의 주요 문제들이 그것이다.
또한, 고등학교 1학년부터 바칼로레아까지 이뤄지는 공통교육을 위한 표준 수업시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일반계열 4시간, 기술계열 2시간, 직업계열 0시간이라는 현행 수업시수 분배는 실상 비상식적이다. 보편교육이라는 기준에서 볼 때 불리한 입장에 있으며, 따라서 더욱 치밀한 교육을 받아야 할 학생들에게 더 적은 시간을 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 중인 철학교육 개혁이 우선시하는 것은 예산이지 철학교육의 대중화가 아니다.
이렇게 수업시수와 교수법에 대한 문제는 그대로 둔 채, 긴축재정 상황에서 현 상태를 잘 유지하겠다는 의도 하에, 장-미셸 블랑케 교육부 장관은 고등교육 커리큘럼 위원회(CSP)의 위원장에 한 보수주의자(8)를 임명했다. 수아드 에이아다 신임 위원장은 커리큘럼 기획제작 담당국(GEPP)을 통제했고 교사협회, 노조 및 여러 교육 전문가와 협업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는 위원회 헌장과 모순되는 조치였다. 헌장은 “2013년 7월 24일 행정명령에 따라 GEPP는 검증된 전문가 및 파트너와 협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철학교육 커리큘럼이 개혁된다고 해도, 그것이 지금까지의 혼란을 내포할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해도 교과과정 변화에 따른 피해는 가장 불리한 상황에 있는 학생들의 학업 이수를 어렵게 한다.(9) 이런 교과과정에서 빚어지는 차이와 보수적인 반개혁 모두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철학교육 및 평가 방법을 혁신함으로써 학생들이 철학이라는 비판적 성찰도구를 제대로 학습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바칼로레아를 혁신하고, 교과과정을 구체화하고 명확히 하며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은 바칼로레아 응시자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면서도 모호한 평가 근거 때문에 홀대받아 온 기술계열에 특히 시급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한 숙고 없이 졸속추진되고 있다.
글·세르주 코스페렉 Serge Cospérec
크레테유 교육전문대학원(ESPE) 철학 교수. 저서로 『La Philosophie, la réforme impossible ? Un enseignement élitiste à l’épreuve de sa démocratisation(철학, 불가능한 개혁인가? 대중화에 맞서는 엘리트 교육)』이 있다. (가을 출판 예정)
프레데릭 르 플렌 Frédéric Le Plaine
철학 교수, 철학교육 연구소 설립 협회(ACIREPh) 회장.
번역·오규진 mrcrazyani@gmail.com
번역위원
(1) 1925년 지침은 브루노 푸세의 주요 저작 『Enseigner la philosophie. Histoire d’une discipline scolaire 철학 가르치기, 어떤 학교 교과목의 역사(1860~1990)』에서 재현됐다. CNRS Éditions, Paris, 1999년.
(2) Pierre Bourdieu et Patrick Champagne, ‘Les exclus de l’intérieur 내부로부터의 배제’,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n° 91-92, Paris, 1992년 3월.
(3) Jean-Louis Poirier, ‘État de l’enseignement de la philosophie en 2007-2008 철학교육 보고서, 2007-2008’, Inspection générale de l’éducation nationale (IGEN), ministère de l’éducation nationale, Paris, 2008년 9월. http://medias.lemonde.fr
(4) ‘Rapport de la commission de philosophie et d’épistémologie 철학 및 인식론 위원회 보고서’, Paris, 1989년 6월 15일. www.acireph.org
(5) 공교육 철학교사 협회(Appep) 기관지 <L’Enseignement philosophique>, 1989년 9~10월(부록).
(6) Louis Pinto, ‘L’école des philosophes. La dissertation de philosophie au baccalauréat 철학자의 학교, 바칼로레아에서 쓰는 철학 논술문’,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n° 47-48, 1983년 6월.
(7) Sébastien Charbonnier, 『Que peut la philosophie? Être le plus nombreux possible à penser le plus possible 철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이 존재하기』, Seuil, Paris, 2013년.
(8) ‘À la tête du Conseil des programmes, Souâd Ayada, une philosophe au conservatisme assumé 커리큘럼 위원회 위원장 수아드 에이아다, 보수주의 철학자’, <르몽드>, 2018년 2월 2일.
(9) Jean-Pierre Terrail, 『Pour une école de l’exigence intellectuelle 지성을 가르치는 학교를 위해』, La Dispute, <L’enjeu scolaire> 총서, Paris, 2016년. / Groupe de recherche sur la démocratisation scolaire (GRDS), 『L’École commune. Propositions pour une refondation du système éducatif 공공 학교, 교육 시스템 재정립을 위한 제안』, La Dispute, <L’enjeu scolaire> 총서,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