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의 반(反)민주화를 조장할 블랑케 법

2019-08-30     로랑스 드 콕 l 교사 겸 작가

바칼로레아 및 고등학교 개혁, 신뢰의 학교를 위한 법안, 대입 선발원칙의 수립…. 2년 전부터 정부는 프랑스의 교육체제를 갈아엎기 시작했다. 어떤 목적에서일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가장 경쟁력을 갖춘 학생들에게 더욱 유리한 경쟁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국가교육이 사회적 상승의 사다리 역할은 할 수 없다고 해도, 장-미셸 블랑케 장관이 제안한 ‘신뢰의 학교’를 위한 법안은 사다리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 자체를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학업의 민주화’는 지역 간 문화적‧사회적 불평등을 의무교육과 무상교육, 종교색이 없는 교육을 통해 상쇄하고자 하는 의지로 정의된다. ‘학업의 민주화’는 교육대상에게 개별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사회결정론과 균형을 이뤄, 경쟁모델을 만들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교육부와 공조해 만든 이 법안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 체제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교육체제 개혁의 일환으로 2018년 대입서류 선별시스템 ‘Parcoursup’을 만들었으나, 기준이 모호해 학생선발을 공정하게 하지 못했다. 좋은 성적에도 낙방하고, 전산오류 등으로 좌절한 학생들 사이에서 불만이 폭주했다. 반면 파르쿠르스업의 복잡한 등록절차와 전산시스템에 몹시 당황한 학생들에게 편안하게 합격에 이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설업체들은 뿌듯해하고 있다. Tonavenir.com은 560유로에 간편 등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제원서의 경우 340유로를 추가로 지불하면 된다.(1)

Parcoursup은 대학 1학년의 높은 낙제율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제시됐다. 정부에 의하면 대학생 10명 중 4명이 낙제하며, 특히 직업 바칼로레아나 기술 바칼로레아를 치른 학생들의 낙제율이 높다고 한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정부는 학생선발을 대학에 맡기지 않고, Parcoursup를 통해 미리 선별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이번 개정의 큰 틀이다.

고등학교의 개정 방향 또한 대학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교육 전문가들은 문학, 과학, 경제, 사회와 같은 과목을 필수로 하는 것은 중지하고, 패스트푸드의 메뉴판처럼 상시 변화가 가능한 다양한 전문 과목을 고교 2학년을 마친 후 수강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러나 예산상의 제약 때문에 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과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고등학교는 의무적으로 12개의 전문과목을 갖추어야 하며, 그 중 7개는 필수과목으로 학생들이 수강해야만 한다.(2)

필수과목만 제시하는 학교가 있는 반면, ‘기술공학’, ‘디지털과 컴퓨터 공학’ 등 보다 다양한 전문과목을 제시하는 학교도 있다. 전국교원연합(SNES)이 고등학교 2학년 학생 4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학생들은 기존 과목들을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66%는 수학을 선택했고, 50%는 생명과 지구과학, 47%는 물리화학 또는 기존 과학 과목들을 택했다. 인기 과목의 경우 공간 부족으로 학교는 과목별로 제한을 두어 학생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3)

규모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일선 교사들은 정부의 법 개정에 반대해 시위, 성적평가 연기, 담임직 사임, 바칼로레아에 대한 파업(4)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 내부뿐 아니라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저항은 미약하다 못해 그다지 없어 보인다.

 

차별을 공식화하고 활성화하는 법안

개정안은 특히 서민층 학생들로 하여금 복잡하고 친숙하지 않은 전문 과목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가난한 동네, 농촌 지역, 작은 마을과 같은 취약계층 지역의 고등학교들이 이 조잡한 전문과목 때문에 가장 손해를 보게 될 우려가 있다. 그들은 바칼로레아 개정의 최전선에 있는 셈이다. 바칼로레아 개정계획은 수업 중의 수시평가와 ‘그랑 오랄(Grand oral)’이라는 구술시험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랑 오랄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그랑제콜 시험을 모방해 만들었다. 구술시험에 익숙한 부유층의 학생들에게만 유리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정책은 고등학교만의 개성을 없애고 범국가적인 바칼로레아가 사라지게 만들며, 사회적 분류라는 배경에서 학교 교육의 차별을 가속화한다.

이에 덧붙어 직업고등학교도 개정될 예정이다. 다음 입학 학기부터 국어, 지리역사, 윤리, 수학, 영어와 같은 일반과목들은 수업 시간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진로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며 균형 있는 문화교육과 직업교육을 제공해주던 전통적인 교육 방식과의 종식을 의미한다.

다른 학업 과정도 모두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초등학교 2학년 한 반의 학생 수를 24명으로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모든 전문가들이 알고 있듯이 예산은 그대로인 만큼 다른 학년의 반 학생 수가 증가할 것이다. 

블랑케 교육부장관이 주도한 교육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으나 지난 5월 21일, 상원에서 찬성 213, 반대 95, 기권 38로 통과됐다. 이 법이 내포하고 있는 ‘학업의 반민주화’ 프로세스는 여러 곳에서 읽힌다. 국제교육을 위한 지역 공립학교(EPLEI)의 경우 아직 몇 개를 설립할지는 모르나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학교장 한 명의 관리 하에 운영된다. 제3공화국의 고등학교를 본딴 EPLEI은 부르주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료 학교로, 학교간의 차별화를 공식화하는 셈이다. 

프랑스의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설립되는 EPLEI는 실상 외국인 학생들과 이중 언어 수업이 가능한 프랑스 학생들을 위한 것이다. 다른 예로, 학교 간 경쟁을 심화시키기 위해 학교가 원할 경우 교육적인 실험을 하도록 장려함으로써 프로젝트의 ‘혁신’ 정도에 따라 학교에 대한 지원을 해준다. 또한 해당 법안에 따라 6년의 의무 교육 기간이 3년으로 감축되는데, 이 과정에서 유치원이 가정과 초등학교 사이의 중간단계 역할을 하는 첫 기본 교육기관이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학업 규율을 익힌 아이들, 즉 문화자본력이 높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혜택을 볼 것이다.

블랑케 법은 빗장을 이중으로 걸어 잠그고 있다. 제1장에 나와있듯이 교사는 본보기가 돼야 하며, 교육기관의 원칙과 기능을 존중할 것을 강조한다. 또한 법 개정의 효율성을 평가하는 모든 독립적인 기관의 권한을 없앴다. 이는 국가학업시스템평가기관(CNECO)이 지금까지 해오던 임무였다.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고, 평가도 할 수 없다. 이것이 이 법이 추구하는 ‘신뢰의 학교’다. 

 

 

글·로랑스 드 콕 Laurence De Cock
교육학 및 교육사 연구자이자 교사 겸 작가. 주요 저서로 『해방의 역사』(마틸드 라레르, 기요 마조 공저, Agone, 마르세유, 2019년) 등이 있다.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Annabelle Allouch & Benoît Bréville, ‘Lycéens contre le tri sélectif 지방 고등학교들의 수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9년 1월호.

(2) 인문학, 문학, 철학 / 외국어, 외국문학, 외국문화 / 수학 / 물리화학 / 생명과학, 지구과학 / 역사, 지리학, 정치학 / 경제학, 사회학.

(3) 블랑케 법안에 대하선 다음을 참조. ‘Analyse statistique des choix d’orientation des élèves(2e trimestre) 학생 예비교육 선택 통계분석(2학기)(PDF)’, Syndicat national des enseignements de second degré(전국교원연합), 2019, www.snes.edu

(4) ‘佛 교사 파업에 수험생 3만명 바칼로레아 채점 결과 못 받아’ <연합뉴스>, 2019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