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짓는 여성 안내원의 위태로움

2019-08-30     가브리엘 쉬츠 l 사회학교수

“똑바로 서!” “미소 지어!” “머리 좀 단정히 해!” “등은 보이지 말라고!” 이 말들은 엄마의 잔소리가 아니다. 투피스 정장을 입은 여직원에게 퍼붓는 직장 상사의 잔소리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는 여성 안내원들은 대부분 에이전시를 통해 고객사에 배정된다. 그녀들은 스포츠 경기장, 개막식, 학회, 파리모터쇼와 같은 국제박람회 등에서 관람객들을 안내하면서 “잘 빠졌네”, “자동차 값에 아가씨도 포함되냐”는 등 모욕적인 발언을 듣기도 한다. 기업체 내에서도 평균 근무시간 이상을 일한다.

사무실 건물의 1층 안내데스크에서 방문객과 직원을 맞고 전화교환수 역할을 하는 그녀들의 연령은 대개 30세 미만이다. 프랑스에서 기업소속으로 일하는 이들의 수는 대략 1만 3,000명인데, 이는 일회성 행사에 동원되는 수천 명은 제외된 숫자다.(1) 우리는 대개 그녀들을 미소로만 기억한다. 그 미소 이면에 감춰진 것, 즉 현대 자본주의가 여성성, 젊음, 아름다움을 착취하는 방법은 가늠하지 못한다.

안내원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가장 먼저 놀라게 되는 것은 신체적 기준이다. 용역업체의 역할은 단순히 ‘매력적인 용모와 체형’을 지닌 젊은 여성들을 선발해, 유니폼을 입혀 내보내는 것이 아니다. 자세와 목소리 톤을 지시하고 하이힐의 높이를 센티미터 단위로 관리하며, 립스틱 색조와 스타킹의 데니어, 머리를 묶는 방법까지 통제한다. 업체가 강제하는 ‘품질 규정’을 보면 어떤 유형의 여성성을 기대하는지 알 수 있다. “도발적인 화장 금지,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세심하게 단장한 것이 느껴져야 한다”라는 조항에는 “손을 곱게 가꾸고, 티가 나지 않게 정교하게 화장하며, 짙지 않고 고급스러운 향수를 쓰고 독특하거나 튀는 액세서리는 금물이며, 품행이 방정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미소 짓는 인형의 ‘멀티태스킹’

애초에 여성 승무원을 모델로 한 안내원은 1960년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는데, 좋은 가정 출신의 젊은 여성들이 주로 고용됐다. 기업 홍보팀의 대외관계업무가 늘어나는 흐름을 타고 ‘여성의 성공’을 위한 직업학교에서 관련 교육과정을 개발 및 확대했다. 이들 학교에서는 부르주아 가정의 어머니가 딸에게 가르치던 ‘기예수업’에서 영감을 얻어 ‘전문기술(속기 타자, 영어)’ 습득과 ‘예절수업’(2)을 통한 ‘여성성 발현’(3)을 목표로 삼았다. 

용돈을 벌 생각으로 일하던 중산층 이상 여성들부터 생활비를 벌려는 서민층 여성들, 가난한 예술가들, 구직 중인 졸업생들까지 여성 지원자들은 점차 다양해졌다. 그러나 이상적인 안내원 상은 변하지 않았다. 에이전시는 부티 나고 얌전한 여성상을 추구한다. 배우에 비유하자면 베아트리스 달보다 카롤 부케를 선호하는 셈이다. 게다가 고객사는 안내원들에게 손님을 맞이하는 ‘안주인’처럼 행동해달라고 주문한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업무의 내용과 범위가 가변적이라 답하기 어렵다. 안내원들은 안내업무 외에 차를 준비하거나 화분에 물을 주거나, 사무실을 정리정돈하는 등의 일도 한다. 행사가 열릴 때는 계산대나 휴대품 보관소에서도 만날 수 있고, 강당에서 토론이 진행되는 중에 마이크를 전달하기도 하고, 식장에서는 기념품을 나눠주기도 하며, 강연자들이 부탁한 발제물을 출력하기도 한다. 기업 내에서는 우편물을 분류해 전달하고 택배를 발송하며 퀵 서비스와 택시, 회의실을 예약한다. 또한 문서를 분류하고 사무용품을 보충하며 복사를 하고 자잘한 번역을 하는 등 만능 비서로 일한다. 박람회 부스에서 보조 영업원으로 일하기도 한다. 이렇듯, 온갖 일을 하다 보니 안내 업무는 부차적인 것이 되기도 한다.

전통적인 ‘여성의 일(보모, 가사도우미 등)’처럼, 안내원이라는 직업도 집안일처럼 헌신, 비가시성, 무상성을 요구받는다. 그녀들이 실제로 어떤 업무를 수행하든 그녀들은 안내원으로 계약된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급여를 받는다. 그렇다고 그녀들의 학력이 낮은 편도 아니다. 동 세대의 여성들 중에서는 학력이 높은 편인데, 대학입학자격시험을 통과한 비율은 월등히 높고 전문대 이상의 학위 소지자도 많다.(4)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고용주들은 그녀들에게 꽤 높은 수준의 모국어와 영어 구사를 요구한다. 일반상식 시험을 봐야 하거나, 지원동기서를 작성해야 하는 곳도 많다. 이렇게, 그녀들은 온갖 분야에서 능력을 요구받으면서도 환한 미소를 짓는 인형 취급을 받는다. 에이전시는 주저하지 않고 이런 이미지를 각인시키는데, 업계 최고인 페넬롭 그룹에서 2000년대에 사용했던 광고문구, ‘당신의 미소가 직업이 됩니다’를 봐도 알 수 있다.

 

‘영구 외주직’이라는 희한한 고용형태

안내원들은 일하게 되는 곳에 직접 고용되지 않고 용역업체를 통해 기간제 계약직(행사의 경우)이나 비상근 무기계약직으로 고용된다. 고객사의 사무실에서 고객사 직원들과 함께 일하지만, 기업운영위원회 참여나 구내식당 이용 등에서 동일한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녀들의 처지는 영구 외주직에 가깝다. 이 독특한 하도급 형태는 기업회계 급여항목에서 인건비를 일부 축소하고, 기업의 급여 총지출액을 조작해 주주들에게 기업의 뛰어난 성과를 과시할 수 있게 해준다.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이런 고용방식은 서비스의 연속성을 유지하기에도 좋다. 결근이 발생할 때 파견업체는 2시간 이내에 다른 안내원을 배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연성 또한 크게 확보할 수 있다. 다양한 업무에 적합한 사람을 쓰면서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연 2회 행사를 위해 상근 안내원을 고용하지는 않는다). 또한, 안내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교체할 수 있다(직원을 해고하는 것보다 파견업체와 계약을 파기하는 편이 수월하다). 이는 직원들을 향한 무언의 압력효과까지 있다. 외주직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손쉽게 교체함으로써, 직원들에게 ‘당신도 언제든 해고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른 협력업체 직원들처럼 안내원들에게도 불리한 단체협약이 적용돼, 일요일이나 대부분의 공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수당도 받지 못한다. 초기자본이 많이 필요하지 않아 경쟁이 치열한 만큼, 어떻게든 인건비를 줄이려고 하는 용역업체들 사이에서 그녀들은 희생양이 된다.

영구 외주직은 그녀들의 경력에 불리하다. 입사 후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다가 비서가 되고 점차 올라가려고 해도, 중간에 승진의 길이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 상황에는 여러 가지 함정이 숨어 있다. 직접고용주인 용역업체가 아닌 고객사가 안내원의 업무와 고용조건에 개입할 경우 노동법에서 금하고 있는 중간착취에 해당된다. 하지만 실제로, 고객사는 마치 고용주처럼 그녀들을 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고객사는 파견업체가 사전에 선발한 안내원들 중에서 자사에 맞는 인물을 선택한다. 따라서 안내원 고용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이렇게 선택한 안내원에게 지침을 주거나 공식적인 고용자인 파견업체의 승인 없이 추가근무를 요청하기도 한다. 안내원들은 책임자와 가끔 연락하는 게 전부인 고용사보다, 매일 직원들과 마주치는 고객사에 소속감을 느끼게 된다.

 

노동자에게는 혼란을, 기업에는 특권을

영구 외주직은 역할 측면에서도 혼선을 낳게 된다. 프랑스 최대 인력 파견 에이전시에서 40여 개 고객사와, 그곳에서 일하는 안내원 100여 명을 관리하는 한 담당자는 당연하다는 듯 “모두 어중간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다”라고 업계현황을 요약했다. 안내원 휴가를 신청할 때, 에이전시와 고객사 중 어디를 통해야 할까? 업무평가는 누구에게 받을까? 승진은 누가 결정할까?

셀레스트(5)가 겪은 일을 보면, 애매한 고용상황을 잘 알 수 있다. 파견업체 비즈니스 아쾨이의 직원인 그녀는 지난 3년간 파견 근무하던 대형 제약사 연구소의 ‘책임 안내원’ 자리에 지원했다. 그렇지만 이 회사에서 일한 적도 없는 말리카가 그 자리를 맡게 됐다. 셀레스트는 고객사가 (무척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기를 밀어줬지만, 비즈니스 아쾨이의 책임자가 반대해서 승진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리카의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말리카는 “고객사가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싶다”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잘 미소 짓지도 않고, 불평불만이 많아 보이는 셀레스트를 해고하고 싶다는 의도도 내비쳤다고 한다. 즉, 고객사는 겉으로는 그녀와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낮은 업무평가를 전달하는 부담은 에이전시에 전가한 셈이다. 에이전시는 에이전시대로 고객사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배정업무를 바꾸거나 사직을 요구할 수도 있다. 경력을 쌓으려면, 아니 그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에이전시와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면서 고객사의 규정에 철저히 따라야 한다. 항상 눈치를 보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피곤한 일이다.

이 직업이 각인시키는 고리타분한 여성성의 이미지가 직업의 성격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안내원들이 겪고 있는 이런 상황은 고용형태의 변화를 보여주는 생생한 예라고 할 수 있다. 파견업체의 직원으로서 고객사에서 영구 외주직으로 일하는 사람의 수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소매업 분야(농업과 금융업 제외) 일자리의 7개 중 1개에 해당되는 서비스업에서 영구외주직이 가장 많다.(6) 가령 보안요원(2016년 전일제 고용 환산 시 약 14만 명)이나 청소관리직(40만 4,000명, 2015년 전일제 고용 환산 시 약 29만 4,000명)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저숙련직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급변하는 디지털 기업의 엔지니어들이나 자문업체의 컨설턴트들도 동일한 변화를 겪는 실정이고, 일부는 사내채용 대신 무기한으로 외주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영구외주직은 기업에 특권을 준다. 인력관리 ‘리스크’는 파견업체에 떠넘겨 책임을 회피하는 한편, 관계 내에서 유리한 지위를 점하게 하는 것이다. 2017년 9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도입한 ‘프로젝트 계약직’(특정 프로젝트별로 공무원 채용 계약을 한 뒤 최대 6년까지 고용하고 프로젝트가 끝나면 고용 계약도 끝난다-역주)과 마찬가지로, 영구외주직도 무기계약직의 일종이다. 기업으로서는 실업급여 부담금을 납부할 의무는 피하고, 기간제 계약직보다 인력을 훨씬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유리한 제도다.

현실이 이런 만큼, ‘기간제 계약직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불이익(사회보장분담금 납부비율 상향 조정)을 주겠다’는 정부의 위협을 두려워할 경영자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글·가브리엘 쉬츠 Gabrielle Schütz
베르사유 생캉탱앙이블린 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 『Jeunes, jolies et sous-traitées: les hôtesses d’accueil 청년, 아름다운 파견직-여성 안내원들』(La Dispute, 파리, 2018)의 저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번역위원

 

(1) 저자가 2017년 경영자협회 측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한 수치다.

(2) 파리안내원학교에서 발간한 전문지에 의하면 정규과정에 속한다. <Hôtesses Magazine 안내원 잡지>(n° 1, 1966년 7월)

(3) 장크로드 튀농 국제안내원학교 설립자와의 인터뷰에서, <Hôtesses sans frontières 국경 없는 안내원>, 3호, 1970년 9월.

(4) 659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5) 등장인물의 이름과 회사명은 가명을 사용했다.

(6) 기업연감(Esane), 프랑스 통계청(Insee), 파리,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