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자기 자신이 되세요”

2019-08-30     모나 숄레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당신의 불꽃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불꽃을 밝혀 두세요”라는 문장으로 장식된 향초, “당신의 목소리를 찾으세요”라는 문장이 새겨진 머그컵, 2016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언급됐던 유명한 문장 “그들이 저급하게 가더라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간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가 쓰인 티셔츠, ‘내가 되다’ 공책, 같은 슬로건이 쓰인 분홍색과 하늘색 배내옷.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과 연결된 온라인 상점에서(1) 판매 중인 이 제품들은 전 미국 영부인이 자기계발의 여왕으로 변신했음을 보여준다. “무에서 시작해 세계 정상에 오른” 이 여성만큼 신뢰와 영감을 주는 인물이 있을까?

자서전의 제목 『비커밍(Becoming)』(2)은 우리가 모두 자기 자신을 찾도록 격려한다. 미셸 오바마는 2018년 11월 출간에 맞춰 세계적 록스타에 버금가는 월드투어를 계획했고, 프랑스에서는 지난 4월 15일 아코르호텔 아레나(구 팔레 옴니스포 드 파리-베르시)를 다녀갔다. 그녀가 무대에 오르자 대형 화면에는 진지하지만 유머러스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스토리텔링의 여왕, 회고록 판매 신기록

미셸 오바마는 말투를 재치 있게 바꿔가며 성공의 가능성과 불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스스로를 때로는 특별한 존재로, 때로는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 소개하며 존경과 공감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유머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을 위한 노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남편을 간신히 부부클리닉에 데려갔던 일화나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질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눠봅시다”, “당신 이야기의 가치를 높이세요”, 미셸 오바마의 연설과 책에 ‘이야기’라는 단어는 끊임없이 등장한다. 책에서는 “대학 진학을 쉽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제 나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신념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쓰기도 했다. 또 2008년 대선 운동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내 목소리는 스타일을 갖춰갔다. 나는 내 이야기가 좋았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편했다”고 적기도 했다. 

그녀는 버락 오바마가 공동체 조직가로 일하던 시절, 시카고의 한 빈민 지역에서 주민들과 진행했던 회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리 각자의 사연이 우리를 이어줄 수 있고, 그렇게 우리가 공동체로 연결되면 지역에 대한 불만을 생산적인 결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3) ‘스토리텔링’에 대한 그녀의 신뢰는 무한하다.(4) 그녀는 매혹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가치를 생산해내는 자산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비커밍(Becoming)』은 출간 6개월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부가 팔리며 자서전 분야 판매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이 책은 노예의 후손이자 시카고의 낙후된 지역 사우스사이드에 살던 서민층 가정의 딸로서, 프린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해 변호사가 됐으며, 전도유망한 동료를 만난 미셸 로빈슨 오바마의 이야기다. 1992년 그녀의 결혼식에서 그녀의 친구는 스티비 원더의 노래 ‘You and I We Can Conquer the World(당신과 나, 우리는 세상을 가질 수 있어요)’를 부르기도 했다.

백악관의 첫 흑인 안주인이 된 후 그녀의 이야기는 다시금 큰 화제를 모았다. 그녀가 프린스턴 대학교에 다닐 때, 백인 룸메이트의 어머니가 딸의 방을 바꾸게 한 일이 있었다. 자기 딸에게 흑인 룸메이트가 배정된 데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그 어머니가 자신의 딸이 미래의 영부인과 친해질 기회를 차버렸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할 것이다. 미셸 오바마는 인종차별적 사회 구조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증언한다. “네가 프린스턴에 갈 재목인지 잘 모르겠구나.” 거의 40년이 지난 일이지만, 고등학교 진학 상담사의 이 말은 그녀에게 상처로 남아있다. 

이런 모욕은 수많은 소수민족과 서민들이 흔히 겪는 일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5) 미셸 오바마는 이렇게 적었다. “패배감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엄습한다.” “원하면 할 수 있다?” 이것은 미셸 오바마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아니다. 그녀 역시, 가족이나 친척들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꿈을 이루지 못한 경우를 봐왔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녀의 오빠에게는 이 좌절된 야망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할 의무가 있었다. “두 분(부모님)은 해변에 놀러 가거나 외식을 하는 일도 없었다. 집도 사지 않았다. 나와 오빠에게 투자했다. 모든 돈이 우리에게 들어갔다.” 주변 사람들에게 닥친 비극 때문에 일찍이 미셸 오바마는 인생은 때때로 부당하고, 미덕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개인적인 경험들 덕분에 어려움을 잘 헤쳐나간 듯하다. 

 

개천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꾼다는 것

현재의 남편과 교제를 시작했을 무렵, 남편이 돈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했었다는 사실을 미셸 오바마는 책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마치 덕행의 끝에 진정한 보상이 온다는 점을 암시하고자 한 듯하다. 그녀는 “어쩌면 그가 돈을 한 푼도 못 벌지 모른다는 생각도 번쩍 들었다”고 썼다. 그녀는 버락 오바마를 만나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됐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개천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버락 오바마와 만난 후, 그녀는 그동안 일했던 변호사 사무실을 그만뒀다. 일하는 내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가끔 그녀의 연인은 밤에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곤 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 소득 불평등에 관해 생각하던 중이었어요.” 

어쨌든 이 ‘이상을 좇은 고행자’는 살아남았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제 월스트리트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 1회당 40만 달러를 받는다. 출판사 펭귄랜덤하우스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자서전(집필 중)과 영부인의 자서전에 6,500만 달러라는 선금을 지불했다. 2009년 백악관 입성 이후 이들 부부의 재산은 30배, 100배까지 늘어났다.(6) 미셸 오바마는 파리에 왔을 때 “큰 노력을 하고 좋은 교육을 받는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에서 ‘대통령’은 마치 유명 스타나 대기업 설립자보다 나은, 최고의 성공모델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연설에서, 이상적일지라도 국민의 상황을 나아지게 하겠다던 대통령 당선자의 사명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가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자(이 문구가 쓰인 스웨트셔츠가 온라인 상점에서 60달러에 팔리고 있다)”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대통령 임기에 대해서는 무대에서나 책에서도 단 몇 줄로만 평가했고, 실패는 모두 공화당원들의 방해 탓으로 돌렸다.(7) 미셸 오바마는 정치 세계에 속하기를 원한 적이 없었다고 변론했다.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간 그 세계를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녀에게 민주당원과 공화당원 사이의 대립은 불필요한 분열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녀는 상당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2020년 대통령 선거 입후보라는 제안을 거부했다. 또한, 보수적인 체제순응자들이 그녀를 ‘성난 흑인 여자’라고 깎아내리고 악마 취급을 했음에도, 그녀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놀라운 교감 능력을 발휘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했을 때, 부시는 뉴올리언스의 흑인 주민들과 가난한 주민들을 방치해 비난을 받은 바 있다.

미셸은 교육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있지만, 교육을 장려하기 위해 순수한 의지주의(“자기 자신을 믿기”, “열심히 공부하기”)에도 만족했다. 미셸 오바마가 백악관에 있을 때 출범시킨, 대학 입학 독려 프로그램 ‘리치 하이어(더 높은 곳에 도달하자)’는 학생들에게 부과되는 과도한 등록금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단순히 교육이라는 목표로 충분할까?(8)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기 이야기의 가치를 높이자”에 대해 말해보자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를 실현한 경우가 있다. 민주당 급진주의 진영의 떠오르는 별이자 민주당 뉴욕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의 이야기다. 바텐더로 일하다 연방 하원의원이 된 그녀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그녀의 이력 역시 다른 이들에게 미국 민주주의의 희망을 꿈꾸게 했다. 그리고 5월, ‘임금 인상법’(9) 지지를 위해 밤에는 다시 레스토랑의 카운터 앞에 서기도 했다. 지난 7월 18일 미 하원은 임금 인상법을 통과시켰고, 이에 따라 연방 최저임금은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들이 처음 요구했던 대로, 현재 시간당 7.25 달러에서 2024년까지 15달러로 인상될 예정이다.(10) 

미셸 오바마와 버락 오바마 부부만큼 매력적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사회주의 성향의 뉴욕 주 하원의원이자 미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원), 버니 샌더스 그리고 그들의 동맹들이 주도하는 이런 흐름이 더욱 강력해진다면, 민주당은 틀림없이 훨씬 유리한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샌더스는 자신들의 추종자들에게 승리자 집단에 들어오는 방법을 보여줬고,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더 이상 패자가 생기지 않도록 분투하고 있다. 이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그들 나름의 방식인 셈이다. 

 

“대학 진학을 쉽게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이제 나 자신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신념을 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를 반복할수록, 내 목소리는 스타일을 갖춰갔다. 나는 내 이야기가 좋았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편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우리 각자의 사연이 우리를 이어줄 수 있고, 그렇게 해서 우리가 공동체로 연결되면 지역에 대한 불만을 생산적인 결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네가 프린스턴에 갈 재목인지 잘 모르겠구나. 진학 상담사는 내게 형식적이고 훈계하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패배감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엄습한다.”

“두 분은 해변에 놀러 가거나 외식을 하는 일도 없었다. 집도 사지 않았다. 나와 오빠에게 투자했다. 모든 돈이 우리에게 들어갔다.” 

“어쩌면 그가 돈을 한 푼도 못 벌지 모른다는 생각도 번쩍 들었다.”

“개천에서 난 용이 되는 것은 물론 훌륭한 일이지만, 개천을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글·모나 숄레 Mona Chollet
기자

번역·김자연 jayoni.k@gmail.com
번역위원

 

(1) https://becomingmichelleobamashop.com

(2) Michelle Obama, 『Becoming』, Penguin Random House, New York, 2018(프랑스어판: 『Devenir』, Fayard, Paris, 2018).

(3) Michelle Obama, 『Becoming』, op. cit. 특별한 언급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인용은 해당 저서에서 발췌했음(한국어 인용 부분은 한국어판 『비커밍』 웅진지식하우스, 2018’에서 발췌함-역주).

(4) Christian Salmon, ‘Une machine à fabriquer des histoires 이야기 만드는 기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6년 11월호. 

(5) 마르세유의 한 직업고등학교에서 포착된 <사회폭력 3분>을 들어볼 것, Pascale Pascariello, <Voix de garage>, Arte Radio, 2013년 5월 28일, www.arteradio.com

(6) Stéphanie Le Bars, ‘Les très riches heures du couple Obama 오바마 부부의 아주 값비싼 시간들’, <M le Magazine du Monde>, 2019년 4월 13일.

(7) Benoît Bréville, Serge Halimi, ‘Les limites du symbolisme 상징주의의 한계’, ‘Affrontements américains 미국의 대립’, <Manière de voir>, n° 149, 2016년 10-11월호.

(8) John Marsh, ‘L’éducation suffira-t-elle 교육은 ‘점령’할 수 없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2년 1월호. 

(9) Fernanda Echavarri, ‘Alexandria Ocasio-Cortez walked into a bar and poured scorn on the minimum wage’, Mother Jones, San Francisco, 2019년 6월 1일.

(10) Thomas Frank, ‘Révolte américaine contre les ogres du fast-food 패스트푸드에 저항하는 미국인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4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