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는 어떻게 가공되는가?

2019-10-01     피에르 페앙 l 기자

 

정부 권력자의 부패를 취재하는 기자들은 권력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존재다. 이런 탐사보도 기자들은 재임 장관을 경질시키고 보좌관을 떨게 하며, 드물게는 기업 대표들까지 무너뜨린다. 하지만 투명성을 표방하는 이들의 취재과정은 언제나 베일에 싸여 있다. 탐사보도 분야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보여준 피에르 페앙 기자가 이 흑막의 세계를 환하게 밝혀준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 사회에선 모순된 측면이 두드러졌다. 일단 실업이 증가했고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이 심화하는 가운데,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되고 복지 국가는 전후 수준에서 점점 멀어졌으며 경제는 민간 기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됐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언론에서는 이 왜곡된 사회구조를 알리기 위한 사회·경제 분야의 탐사보도를 내보내지 않는다. 그 대신, 모든 게 엉망일 때 더욱 부각되는 사건이나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다. 정치 비자금 스캔들을 내보내고, 이를 밝히는 ‘탐사보도’ 기자들을 앞세우는 것이다. 


특권층으로 부상한 ‘민주주의의 파수꾼’들

이에 언론에서는 무슨 유행가 가사라도 흥얼거리듯 각종 비자금 스캔들을 읊어댄다. 공금 횡령죄로 90년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피에르 보통 게이트, 공공 임대 주택 사업과 연관된 쉴러-마레샬 스캔들, 사회당 비자금 관련 위르바 스캔들, 사회당의 부정 축재가 밝혀진 MNEF 스캔들, 파리 공공임대주택 게이트, 오드센 공공임대주택 게이트, 전 국영 석유 기업 엘프 사의 대규모 비자금 사건인 엘프 게이트, 미테랑의 측근이었던 백만장자 기업인 플라가 연루돼 내부 정보가 유출됐던 플라 스캔들, 비디오테이프로 집권 RPR당의 비자금이 폭로된 메리 비디오 게이트, 90년대 사상 최대의 금융 사건인 크레디 리요네 스캔들, 90년대 초반의 비자금 스캔들인 뒤마 게이트, 르발루아 페레 시장의 비자금 스캔들인 발카니 게이트, 사르코지 대통령의 비자금에 관한 타키에딘 스캔들, 로레알 상속녀 베탕쿠르와 노동부 장관 뵈르트에 관련된 정치 자금 게이트인 뵈르트-베탕쿠르 스캔들, 예산부 장관이었던 제롬 카위작의 카위작 스캔들 등 수많은 정치 비자금 스캔들이 차례로 신문 1면을 장식하며 정치인들의 생명줄을 끊어놓았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우리 머릿속에는 사회·정치 세력의 대결 국면보다는 선악의 싸움으로 이뤄진 한 사회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몇몇 ‘민주주의의 파수꾼’들이 사회의 물을 흐리는 자들, 즉 부패한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을 물리치는 모습만이 뇌리에 각인된 것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이 ‘천사’들은 언론계 내에서 소수의 특권층으로 부상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언론과 정부의 알력 관계에서 그 추는 정부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적어도 <워싱턴 포스트>지의 콤비 기자 둘이 미국의 대통령을 저격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탐사보도(Investigation)’라는 미국식 표현이 들어와 자리를 잡을 만큼 언론계의 전설이자 귀감이 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이후 탐사보도의 모든 규칙을 확정했다.(1) 탐사보도 기자는 모든 권력의 중심이자 모든 해악의 원흉인 정부를 적으로 상정하고, 적절한 때, 즉 정부가 민간 기업을 살리기 위해 한발 물러설 때 칼을 겨누는 것이다.

 

‘탐사보도’라는 활극은 어떻게 연출되는가?

1970년대 말만 해도 정치금융 스캔들에 특화된 탐사보도 언론은 과감한 정치 풍자로 유명한 신문 <카나르 앙셰네>의 지면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중엽에는 유력지인 <르몽드>에서도 이런 기사를 비중 있게 다루면서 민주주의의 무대를 완전히 뒤바꿨다. 세상의 관찰자였던 기자들은 무대 위의 주체가 됐고, 때로 무대를 연출하는 감독이 돼 정당과 정치인, 유권자를 움직였다. 기자들의 폭로는 2017년 프랑스 대선에서도 판세를 뒤집으며 프랑수아 피용 후보를 떨어뜨리는 데 일조했다. 2019년에는 오스트리아 부총리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또한 사임하는 신세가 됐으니, 권력을 견제하던 언론이 도리어 권력을 쥐게 된 셈이다. 

하지만 이런 탐사보도의 메커니즘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어떤 식으로 폭로가 이뤄지며, 또 보도일정과 그 표적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지 모든 게 불투명한 것이다. 도덕성과 투명성을 내세우는 탐사보도의 특징은 바로 이 같은 ‘불투명성’에 있다. 언론사에서는 진중한 눈매에 비범한 능력을 지닌 듯한 취재원들의 프로필을 내세우고, 심지어 첩보영화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기자들 사진을 내보내지만,(2) 사실 이런 이미지와 탐사보도의 실제 메커니즘 사이에는 상당한 격차가 있다. 

기자의 취재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기자들이 선호하는 첫 번째 방식은 느리고 평범한 보도 형태다(참고로 데스크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방식이다). 먼저 주제를 선정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관련 주제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한다. 이후 기자는 암중모색으로 대중없이 취재를 진행하는데,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취재기사는 1면을 장식하는 정치 비자금 사건과 달리, 법정 게이트로 이어질 가능성이 별로 없다. 

그래서 기자는 취재내용을 엮어 책으로 출간한다. 출판계약으로 받은 선금은 대부분 취재비로 충당하고, 판매대금은 다음 번 취재자금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그리 성공적인 방식은 아니다. 출간서와 관련해 명예훼손 소송이 걸리는 등 쓴맛을 몇 번 보고 나면, 기자들은 대개 이 방식을 포기한다. 방송국을 포함한 일부 언론사에서는 경제·사회·분야의 취재기사가 들어갈 자리를 마련해 언론사의 무너진 신뢰 회복을 꾀하기도 하지만, 그나마도 소수에 불과하다(대표적인 예로 <France2> 채널에서 엘리즈 뤼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 ‘Cash Investigation’을 들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을 들여 탐사보도를 하는 척하는 보도국 뒤에서 활동하는 탐사보도 스타들은 대부분 이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실상 하는 일은 취재가 아니라 정보의 유출을 기다리는 것이다. 판사나 경찰, 변호사가 유출하는 조사 자료나 조서 기록의 입수만을 기다린다. 이 자료는 예전에는 팩스로 송부됐고, 이제는 암호화된 메시지로 도착한다. 냄새를 맡은 기자들은 자료를 기사형식으로 풀어낸다. 구체적인 사건과 정확한 날짜, 알려진 (혹은 곧 알려질)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 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들이 반박하는 모습이나 당황하는 모습을 포착하기도 한다. 특종 기사의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에릭 알펜 판사의 저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공공 임대 주택 금융 스캔들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언론계에 독특한 범주의 집단이 존재한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정치금융 스캔들만 전문으로 캐는 탐사보도 기자들이었다. 나도 순진했던 시절에는 기자들이 다 탐사보도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카나르 앙셰네>와 같은) 극소수의 일부만 제외하면, 정치금융 스캔들을 캐내는 탐사보도 기자들은 직접 취재를 하지 않는다.”(3) 그는 당대의 유명한 탐사보도 기자 두 명으로부터 “함께 가자”는 제의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이를 거절했다고 오프 더 레코드로 털어놓았다. 

 

“우리는 먼저 나서서 취재하지 않는다”

이런 언론 취재방식이 부상한 이유는 일부 법조계 인사와 언론계 거물들이 기회주의적인 결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4) 소수의 힘으로 굉장한 파급 효과를 미치는 이들의 관계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탐사보도 기자들이 대개 자기가 먼저 취재거리를 찾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경이나 판사 측에서, 혹은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변호사가 통째로 먹잇감을 물어다 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요 인사의 법정 조사와 관련한 정치적 자물쇠를 해제함으로써 해당 인물에 대한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한다. <르몽드>의 아리안 슈맹 기자 또한 “우리의 원칙은 예심자료를 기초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나서서 취재하지 않는다”라고 밝힌 바 있다.(5)

탐사보도 매체 <메디아파르> 사이트에 보도된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2007년 대선 비자금 의혹 사건은 탐사보도 기사가 가공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 무대에 선 주역들은 부패 및 탈세, 금융사기 방지를 위한 중앙사무국(OCLCIFF, Office central de lutte contre la corruption et les infractions financières et fiscales) 책임자들이다. 낭테르 소재의 이 사법 경찰 사무국은 수사 자료에서 언급된 프랑스와 리비아의 당사자들을 취조했다. 사건 담당자는 새로운 조사기록을 주기적으로 뿌렸고, 예심 원고인 셰르파 협회 측 변호인은 서류가 담긴 CD 자료를 확보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메디아파르>의 파브리스 아르피 기자는 상세한 자료와 함께 ‘새로운 취재’ 내용을 보도했다. 모든 영장 자료를 손에 넣은 이 기자는 이 건에 관해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1인으로서 인명과 지명, 당사자 및 측근의 주소지 자료가 담긴 조서 내용을 토대로 중앙 사무국(OCLCIFF) 측의 업무를 완벽하게 보조했다. 따라서 탐사보도란 결국 독자들의 구미가 당길만한 예심자료를 선별해 작성, 보완한 것에 불과했고, 취재기자가 한 일도 유출된 정보를 운용한 것에 불과했다.

두 번째 특징은 정보의 출처와 그 이용방식에 있다. 탐사보도에서 정보를 활용하는 방식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하에 무죄추정의 원칙과 소송자료 기밀유지의 원칙을 위반한다. 기자의 이름으로 발언권을 가진 탐사보도 기자들은 이렇게 법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권한을 부여받는다. 아무런 사법적 행정적 규제를 받지 않은 채 사법권과 체포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르몽드>에서 활동한 후 <주르날 뒤 디망슈> 편집국장이 된 에르베 가테뇨는 2000년대 초 자신이 예심판사 역할을 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전화 연락이 닿지 않는 사건 당사자의 우편함에 ‘연락 바람-에르베 가테뇨’라는 메모와 함께 자신의 명함을 넣어두곤 했다.

카위작 스캔들의 경우, 사실 기자 측에서 먼저 취재를 시작한 탐사보도이긴 했다. 그러나 <메디아파르>의 에드위 플레넬 국장은 보충 논고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검사에게 편지를 쓰는 대담함까지 보였다. 언론사에서 밝힌 새로운 혐의에 대해 판사가 심리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탐사보도 기자들은 진실을 밝히고 독자들의 명확한 판단을 꾀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일부 쟁점에 관해서는 사법기관, 나아가 경찰기관의 조력자 역할까지 감행한다. 

물론 조세포탈 혐의를 받은 카위작 예산부 장관을 검찰에 고발했을 때처럼 이런 역할이 대중에게는 정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 기자가 누군가의 정적이나 경쟁 상대를 사법부에 고발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언론권력이 견제되지 않는 한 일부 여론은 몇몇 기자들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유출된 정보를 손에 넣은 소수의 기자들이 특정 문제에 대한 자의적 판단으로 기삿거리를 선택해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6) 

 

‘훔친 말들’은 어떻게 정당화되는가

뒤에서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일 수 있는 경찰과 판사들을 필두로 각자가 이 정의와 부당함의 대결 국면에서 이득을 본다면, 그 누구도 허튼 생각을 품지 않는다. 취재기자는 자신의 기준과 정치적 선호도, 자신이 계획한(혹은 정보 제공자가 주도한) 일정에 따라 보도기사를 준비하고, 경찰이 서둘러 넘겨준 자료(유명 인사의 가택 조사에서 얻은 자료 등)의 공표 시기를 결정한다. 장 뤽 멜랑숑의 사생활이 유포된 경로도 이와 비슷했다. 멜랑숑의 컴퓨터와 개인적인 서신교환 기록들은 2018년 10월에 모두 압수된 뒤, 적절한 때에 인터넷에 유포돼 그를 정치적 파국으로 몰고 갔다. 프랑수아 뤼팽 의원의 사생활 및 그가 좌파 독립언론 <파키르>와 맺고 있는 관계와 관련해 베르나르 아르노의 사설탐정들이 수집한 정보 역시 비슷하게 활용됐다. 

이를 보면, 언론계의 몇몇 인사들은 1789년 인권선언 조항의 순서를 몰래 바꾼 듯 싶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담은 9조의 내용을 사상·언론의 자유에 관한 11조 다음으로 미룬 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심지어 알 권리에 대한 내용은 인권선언에 나와 있지도 않다. 국민 전체와 관련된 사안이기에 표면적으로는 국민들이 탐사보도의 수혜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언론계 기자들이 자신들의 내부 규약(기자들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1971년 뮌헨 선언)에서 정의한 내용이다. 비자금 문제나 사생활 보호 문제를 일단락 짓는 것은 오직 언론만의 몫일까? 

스타 기자들이 전화녹취 내용을 이용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에서도 이런 문제가 잘 드러난다. <르몽드> 기자였던 플레넬 기자도 한때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얘기했다. “전화 통화는 나 자신과의 대화와 비슷하다. 전화상대와 절친한 사이일 때는 모든 것을 다 털어놓는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말도 빨라지며, 진심이 아닌 것들까지도 쉽게 지껄여버린다.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되는 대로 지껄이는 것이다. 내심 의심하고 있는 부분도 사실인 양 확신하기도 한다. (…) 내 집에 있는 것처럼 편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해도 별 탈 없는 안전한 곳에서 말이다.”(『훔친 말들 Les Mots volés』, Stock, 1997)

이 충격 고백을 한 지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로레알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나 알렉상드르 베날라의 하수인을 통해 자신이 ‘훔친 말들’을 <메디아파르>에 내보낸 것을 ‘공익’을 앞세워 정당화했다. 기자들의 이런 폭로가 공익에 부합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이 늘 그들의 주장처럼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 부패 정치인이 낙마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통쾌하지만, 그 통쾌함이 부패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부패 구조는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에, 통쾌함만 얻을 뿐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7) 

 

‘공익’을 앞세운 언론사의 수익 창출

해당 게이트의 시발점이 은행 계좌이거나 언론 사회면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게 자주 언급되는 공익이라는 건 개인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대중을 위한 일인 듯 보이는 특종 기사들은 사실 언론사의 굉장한 수익원이 된다.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수차례 TV와 라디오 전파를 타며, SNS도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렇게 얻은 유명세와 신뢰는 판매량과 구독자를 늘려주고 광고 단가를 높여준다. 언론 매체에서 정보를 의도적으로 찔끔찔끔 흘리며 감질나게 하는 수법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사 기록의 발표를 중간 중간 나눠 내보냄으로써 폭로의 여파를 더욱 길고 강하게 증폭시키는 것이다. 광대놀음에 맞먹는 이 상술은 마치 새로운 취재 기사가 나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켜 극적인 효과를 낳는다. 이 같은 전개가 때로 정치권에 혼란을 주기도 하는데, 선거 기간에 후보의 공약보다 관련 혐의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특종의 생산도 경제 논리에 따른다. 사법 수사 관련 문건을 손에 넣으면 시간을, 그리고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을 넘겨받아 정의의 사도가 된 기자들은 취재도 쉽게 마무리하고 경비도 아낄 수 있다. 기사의 출처가 된 법률문건들은 경찰과 검찰의 조사 기록이 종합된 완결판으로, 전부 나랏돈으로 만들어진 자료이기 때문이다. 사법기록의 유출로 비자금 게이트를 ‘창출’해내는 일부 기자들은 이렇게 보조금 지원까지 받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보조금 지급 여부는 기자들의 인맥에 따라 달라지며,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도 아니다. 정의를 지키고 정부의 부패를 감시하는 길이 너무 왜곡된 건 아닐까?

이런 탐사보도의 경제 논리에는 두 가지 폐단이 있다. 일단 사법기관과 손을 잡은 기자들은 이 귀한 자료를 입수한 대가로 거액을 지불한다. 소송 중인 변호사의 손에서 나온 조사 문건일 경우, 기사내용은 보통 정보를 제공해준 이 변호사의 소송에 유리한 방향으로 작성된다. 예심자료에 대한 기밀유지 원칙을 저버리는 검경 인사와 판사, 변호사의 수가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에 프랑스 내에서 법조계 관련 게이트를 전담하는 ‘탐사보도 대기자’의 수는 지금까지 열두 명 정도로 제한돼 있다. 게다가 이런 구조 하에서 정보 접근의 기회가 공평하지 않은 만큼, 보도에 따른 경제적 불평등도 발생한다. 민감한 사안에 대한 예심자료는 극소수 취재기자들만이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기자들은 이들이 먼저 기사를 내보낸 후 받아쓰기를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사를 쓸 때 먼저 기사를 내보낸 기자들의 이름을 인용해야 하고, 이는 결국 해당 기자의 승진에 기여하는 셈이다.

 

돌이킬 수 없는 언론의 ‘판결’

프랑스에서 이런 탐사보도가 고개를 든 건 30년쯤 전의 일이다. 일부 정치 비자금 예심 사건을 대대적인 ‘스캔들’ 수준으로 부풀린 이 특이한 언론보도 방식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질서를 교란한 데만 있지 않다. 정당 간의 이념적 대립보다 법정 공방이 볼거리가 되는 것도 문제지만, 오늘날 탐사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피의자에 대한 심판에 대중의 판단을 끌어들여 사법질서의 균형을 흔들어놓았다는 점이다. 사법기관이야 법의 적용에 근거해 판단을 내리지만, 언론계는 이들의 수단을 활용하되 윤리적 판단에 기댄다. 도덕적 기준에 근거한 기자가 예심판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판사 행세를 하는 기자들은 정작 소송이 시작되기도 전에 자기만의 판결을 내놓는다. 

물론 그에 따른 전개 양상이 어떻게 될지 본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언론에서 한 번 내린 판결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후로 그 어떤 법적 판결이 나오고 그 어떤 반론권이 행사되더라도, 이미 대중에게 확산된 언론의 판결을 없애기는 역부족이다. 1990년대 후반의 엘프 게이트 때도 롤랑 뒤마 전 외무부 장관은 무려 52개 매체의 1면 기사를 장식했지만 항소 기사는 <르몽드> 1면에만 나갔다. 또한 항소심에서 모든 혐의를 벗었음에도 롤랑 뒤마의 이름은 여전히 이 불명예스러운 스캔들과 엮이고 있다. 

물론 카위작 스캔들(올랑드 정부에서 예산장관으로 임명된 제롬 카위작이 탈세를 위해 스위스와 싱가포르에 마련한 불법 비밀계좌가 밝혀진 사건-역주)의 경우는 좀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대중의 도덕적 가치관도 중요하지 않으냐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폭로의 미묘한 경계를 볼 수 있다. 지엽적인 사건이라도 자세히 파헤쳐서 보게 되면, 8시 뉴스의 문을 여는 주요 사건보다 더 묵직한 의미를 가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기관에서 기자들에게 넘기는 정보를 어느 날 갑자기 중단해 기자들이 아무런 증거자료도 손에 넣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상황은 언제쯤 가능해질까? 답은 간단하다. 수사를 진행해봤자 부패한 그 누군가를 제물로 삼아 밀어내지 못하고, 부패의 구조 그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될 때다.  

 

 

글·피에르 페앙 Pierre Péan
탐사보도 전문 기자. 이 기사는 지난 5월에 작성됐으며, 몇 주 후인 7월 25일 세상을 떠난 피에르 페앙은 1975년부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함께 일해왔다. 그가 쓴 기사 중 가장 읽어볼 만한 것은 ‘Sabra et Chatila, retor sur un massacre 사브라와 샤틸라, 학살로의 회귀’(2002년)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사이트에서 무료 열람이 가능하다.

번역·배영란
번역위원

 

(1) Serge Halimi, ‘Une icône du journalisme 돈에 집착하는 저널리즘의 아이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6월호·한국어판 2019년 7월호.

(2) 대표적인 예로, <텔레라마>의 2012년 3월 3일자 특집 기사 ‘Le retour des chasseurs de unes 헤드라인 킬러의 귀환’을 들 수 있다.

(3) Éric Halphen, 『Sept Ans de solitude 7년간의 고독한 취재』, Denoël, Paris, 2002. 

(4) Dominique Marchetti, ‘Les révélations du journalisme d’investigation 탐사보도의 폭로’, <Actes de la recherche en sciences sociales>, 제131~132호, Paris, 2000년 봄.

(5) Jean-Marie Charon 및 Claude Furet, 『Un secret si bien violé. La loi, le juge et le journaliste 비밀은 없다 –법조계와 언론계의 은밀한 동거』(Seuil, Paris, 2000)

(6) Edwy Plenel, 『Le Journaliste et le Président 기자와 대통령 』, Stock, Paris, 2006.

(7) Pierre Rimbert & Razmig Keucheyan, ‘Le carnaval de l’investigation 탐사저널리즘과 정파투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5월호. Denis Robert, 『Pendant les affaires, les affaires continuent』, Stock, Pari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