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옥죄는 이유

워싱턴 컨센서스 VS. 베이징 컨센서스

2019-10-01     필립 S. 골뤼브 l 국제관계학 교수

 

중국은 시장경제로 전환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의 생산 사슬을 이루는 하나의 고리에 그쳐야만 했다. 그러나 중국은 눈부신 속도로 성장해, 미국의 지도층을 불안에 떨게 했다. 이제 미국의 지도층은 예상보다 빨리 경쟁국으로 우뚝 선, 미국의 패권을 넘보는 중국을 저지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다.

 

2016년 6월 26일,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추진할 경제 정책과 국제통상 정책이 담긴 중대 연설을 했다. 전체적인 요지는 미국 정치인을 향한 신랄한 비판이었다. 그는 “정치인들이 우리의 일자리, 우리의 부(富), 우리의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키는 공격적인 세계화 정책을 이끌며 미국의 탈산업화를 가중하고 중산층을 파괴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아메리카니즘보다 글로벌리즘을 더 추앙하는 지배계급”을 비판하고, 자국산업 몰락의 원흉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세계무역기구(WTO), 중국과의 불공정한 무역관행,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을 지목했다. 

그는 나아가 “미국이 TPP에서 탈퇴하고, NAFTA를 재협상하며, 환율시장을 ‘조작’한다고 판단되는 중국에 제재를 가하고,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법의 심판대에 올릴 것이다. 중국산 수입품에 무거운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과의 무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이 지닌 모든 합법적 권한을 활용할 것이다”(1)라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세계화와 세계무역의 제도적 틀을 겨눈 트럼프의 거친 발언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이 희박해 보였기 때문이다. 설령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미 재무부와 그리고 언제나 ‘세계 자유시장’을 통해 많은 이익을 누리는 수많은 경제주체들이 그를 이성의 길로 인도하지 않겠는가. 또한, 미국이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 이후 자국의 패권을 영속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경제·안보 관리체제 역시 그가 내릴 의사결정에 깊은 영향을 미치리라. 마지막으로 미국 자본주의에서 가장 세계화된 경제 부분이 내는 막강한 발언권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구조적 상황을 보면 그 어떤 대통령도, 제아무리 트럼프라 할지라도 오랫동안 미국의 패권을 지켜온 정책과 제도를 철저히 외면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자본이 세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데 미치는 영향력은 과대평가하고, 중국이 경제적으로 부상하며 쥐게 될 막강한 정치적 잠재력은 과소평가한 추정이었다. 현재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어떻게든 저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은가. 카이론 스키너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이 말했듯 “중국이 장기적으로 중대한 위협이 될 것”(2)이라는 견해는, 결국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또다시 국제관계를 변질시키고, 세계화의 흐름을 뒤엎는 결과로 이어졌다.

 

소련의 붕괴, 자본주의의 황금기

1991년 이후 미국 대외정책의 핵심은 미국식 시장 자본주의 모델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었다. 미국 재무부와 국제통화기금(IMF)이 ‘워싱턴 컨센서스’로 통칭되는 정책을 표방하며, 전 세계적으로 자유화·탈규제·민영화 프로그램을 추진했다. 특히 이 정책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무거운 부채를 짊어진 국가들, 한마디로 취약하기 그지없는 ‘개도국’들을 상대로 강요됐다. 한편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여러 신흥산업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시스템 역시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됐다. 강력한 외부의 압박 속에서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과 내수보호정책이 막을 내리고, 국가개입의 축소, 해외투자 개방 등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지금까지 굳게 닫혔던 신흥시장에 진출하기를 희망하는 다국적 기업과 초국적 기업들이, 강압적으로 추진된 이 신자유주의 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소련 붕괴야말로 세계 자본주의에 제2의 황금기를 선사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상 세계 자본주의는 19세기 말 전성기를 거친 이후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집단폭력(세계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기세가 약화된 터였다. 미국은 바야흐로 세계 유일의 강대국으로 자리매김했고, 1990년대 국가와 자본의 목표는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다. 이런 상황은 영국의 국제화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제국주의 국가와 자본 사이에 형성된 공생구조와도 비슷했다. 각기 권력과 부를 극대화하려는 국가와 자본의 목표가 서로 긴밀하게 얽혔고, 그처럼 서로의 이익이 일치한 덕분에 영국 정부는 자본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라틴아메리카·중국·이집트 등의 경우처럼, 필요한 경우 무력을 사용하거나 혹은 무력을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며). 

민간 투자자들은 제국주의 국가의 전략적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가령 유럽 내 세력균형이 이윤추구보다 중요하다고 투자자들을 설득한 러시아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미 정부도 20세기 말 다국적 기업과 은행의 편에 서서 세계 자유화의 전파와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가 기술했듯, 미국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막강한 패권이 새로운 국제환경을 조성하며, 자국의 지위를 한층 드높이고 미래에 더 많은 이익을 생산할 토양을 다져줄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제시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입각한 세계질서관에 더 많은 국가가 동참”하도록 이끌어야 했다.(3) 

당시 미국의 정치·경제 엘리트층은 중국을 경쟁국이 아닌 동맹국으로 인식했다. 당연히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중국과 미국은 소련을 봉쇄해야 한다는 공동의 목표로 의기투합했다. 1979년 1월 1일 양국은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1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덩샤오핑이 국교수립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9일간 미국을 방문했다. 조나단 스틸 <가디언>지 기자에 따르면, 덩샤오핑은 당시 중국과 미국이 “북극곰(소련을 의미-역주)을 견제하기 위해 일심단결해야 하고 (…) 함께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 행사장에는 중국의 오성홍기가 붉은빛을 뽐내며 나부꼈다. 전통적인 예식에 따라 19발의 예포가 발사되는 동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선명한 빨간색을 띤 코카콜라 배달 차량이 지나갔다. (…) 때마침 그것은 미국의 교역과 기술, 자금에 목말라하는 중국인들의 새로운 욕구에 힘입어, 부디 미국의 기업들이 하루빨리 벌어들이고자 하는 (…) 수백만 달러의 돈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4)

1980년대 중국은 내수시장을 제한적으로 개방하는 한편, 외국인 투자도 점진적으로 허용했다. 1986년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가입할 의향을 밝혔다. 이어 소련붕괴와 유혈폭풍이 휘몰아친 천안문 사태(1989) 이후 3년의 휴지기를 거친 뒤 1990년대 초에 이르러, 덩샤오핑은 가속페달을 한껏 더 밟았다. 그는 국내경제를 재편하는 한편, 국제화와 중국의 세계 경제통합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경제통합을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는 지정학적인 측면에서 미국과 적절히 타협하며 경제체제 전환에 해가 될 만한 충돌은 피해갈 필요가 있었다. 이런 중국의 행보는 UN 안전보장이사회 내에서도 여실히 확인됐다. 중국은 최대한 미국의 외교 정책에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주의했다.(5)

한편 미국은 자신들이 정한(미국은 중국에 엄격한 WTO 가입조건을 강요했고, 사실상 중국은 2001년 12월 11일이 돼서야 WTO에 가입할 수 있었다) 서구식 글로벌경제 체제의 규범 속에 중국을 편입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았다. 사실상 경제의 자유와 정치의 자유는 필연적으로 긴밀히 얽혀있기에, 미국의 엘리트층은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미국이 충분히 중국을 이 두 ‘자유의 길’로 잘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점차 시장개방이 진척됨에 따라, 중국은 외국인직접투자의 중요한 투자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 순유입액은 1984~1989년 연평균 220억 달러(현재 국제 달러 기준)를 기록한 데 이어, 1992~2000년 308억 달러, 2000~2013년 1,70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중국은 외국인 투자를 통해 기술과 노하우를 확보하려 했지만, 초기 외국인 투자의 대부분은 섬유산업을 비롯한 저부가가치 산업, 혹은 지적재산권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을 위해 해외에서 생산된 전기 및 전자 설비의 부품을 중국에서 조립하는 가공산업에 주로 투입됐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 경영대학원의 황야셍 국제경영학과 교수를 비롯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당시 “중국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가 수많은 하드·소프트 테크놀로지를 구현했다고 볼 만한 증거는 거의 없다. (…) 중국과 투자국 사이의 기술격차는 평균 20년에 달하는 것으로 간주됐다”(6)고 지적했다. 전체 가치사슬에서 중국에 돌아가는 이익은 미미한 반면, 초국적 기업들이 차지하는 파이는 어마어마했다(박스기사 참조). 한 마디로 중국은 의존적인 구조 속에 갇힌 듯했다.

 

중국의 급부상, 깊어지는 서구의 시름

그러나 2000년대 말 이후 점차 상황이 달라지더니, 지금은 완전히 바뀌었다.(7)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강제 기술이전 요구에 따른 첨단기술 확보, 정부 주도의 산업현대화 정책 추진에 힘입어, 중국은 더 많은 몫의 부가가치를 차지하는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꾸준한 발전을 이룩했다. 중국이 이처럼 발전을 거듭하고 동아시아에서 차지하는 경제적, 정치적 무게감이 높아지자, 미국을 비롯한 다른 서구 정부들의 시름은 깊어지기 시작했다.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축’을 아시아로 이동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2015년 연두교서에서는 이렇게 선언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 중인 지역에서 자신들이 규칙을 정하려 한다. 어찌하여 우리는 수수방관하는가? 우리가 나서서 규칙을 정해야 한다.” 

현재 미국 행정부는 모든 규칙을 외면하면서까지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실상 미 정부는 의회와 국가안보기구의 지원사격 하에 중국을 ‘중대 위협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이제 미국은 중국을 너무 빨리, 너무 부유해진 거대한 국가(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80년 194달러에서 2015년 9,174달러로 급격히 증가함)로 인식한다. 또한, 통신·해운·고속철 등의 분야에서 자국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고 주도하며, GDP의 상당액을 과학과 기술 연구에 할애하는, 국가개입이 과도하게 많은 국가라고 본다. 가령 중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비는 1996년 0.6%에서 2016년 2%까지 치솟았다. 참고로 미국은 2.74%, 프랑스는 2.25%를 기록 중이다. 

한편 미국은 중국이 해양 부문을 현대화하는 등 ‘신실크로드’(일대일로) 건설을 통해 전 세계로 경제적 팽창을 도모하고 있다고 인식하기도 한다. 가령 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까지 중국은 34개 국가의 42개 항만시설을 인수·건설·운영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대부분의 민감한 기술 분야에서는 중국이 아직 뒤처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1970년대와 1980년대 초 일본의 사례처럼, 중국이 빠른 속도로 미국을 추격해올 것을 불안해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보도처럼, 미 정부는 중국의 현대화 사업이 완전히 결실을 보기 전에 “중국의 부상을 억제할 목적으로 현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8) 있다. 

매우 현실적인 국제정치학자이자, 대(對)중국 봉쇄를 열렬히 옹호하는 존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이 모든 수단을 강구해, 중국의 재부상을 막고, “중국이 ‘거대한 홍콩’으로 변모하기 전 사전에 “중국 경제를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9) 그런 맥락에서 현재 미국은 중국산 제품의 미국 시장 유입을 제한하고(무역전쟁), 기술력이 향상된 중국 첨단기업을 배제하며, “세계 경제에 위협이 된다”라는 명분 하에(10) 중국의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반기를 들고, 모든 중국인 유학생에 대해 비자 발급을 엄격히 규제하거나 보안 감독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중국 견제 1탄, 화웨이 공격

미국의 이런 행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적 첫걸음이 바로 세계 최대 무선장비 제조업체인 통신업계의 거물 화웨이를 상대로 강도 높은 규제와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었다. 미 행정부는 전 세계적으로 화웨이를 5G 인프라 건설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 큰 소득을 거두지는 못했다. 2018년 12월 1일 캐나다는 미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를 체포했다. 그녀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하고 기업의 기밀을 절취하는 등 각종 사기행위 공모와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멍완저우는 미국 송환에 반대하며 법정 투쟁에 돌입했다. 

<파이낸셜 타임스>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지적한 것처럼(2019년 5월 20일), “미국이 ‘중국 통신업계의 꽃’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거래를 할 수 있는 거래제한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은 세계기술산업의 지형을 바꿀 중대한 사건이었다. 이 결정은 미중 간 냉전에 불을 지폈다. (…) 미국의 최근 조처는 세계무대에서 어느새 경쟁자로 성장해버린 중국의 초기 기술기업 중 하나를 마비 또는 압살시키려는 계획으로 보인다. (…) 미국과 중국의 기술 분야를 서로 분리(디커플링·탈동조화)해, 세계기술산업의 구조를 두 개로 쪼개려는 노력인 것이다.”

사실상 미국은 현재 글로벌 생산·가치 사슬을 와해시키려고 한다. 어느새 20세기 말 세계화의 중요한 특징이 돼버린 현 글로벌 생산·가치 사슬은 점차 중국에 이익이 편중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워싱턴발 무역전쟁의 표적은 비단 중국 정부만이 아니다. 중국을 세계적인 조립·생산 기지로 우뚝 설 수 있게 일조한 초국적 기업들도 함께 겨냥하고 있다. 미 당국은 “공급망의 너무 많은 부분이 중국으로 이전”(11)됐다며, 직접적으로나 혹은 다층적인 하청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국에 투자한 다국적기업들도 문제의 원흉이라고 평가한다. 미국은 이 기업들이 벌이는 범세계적인 활동을 반애국적이라고 인식한다. 

이런 견해는 오랜 민족주의 사상에도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문명의 충돌’ 이론으로 명성이 높은 정치학 교수 새뮤얼 헌팅턴은 이미 1999년에 이를 간략하게 정리한 바 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과 대학교수”, 더 나아가 “경제 엘리트들”이 “반민족주의 감정”을 조장하며, “민족의 단합에 해가 되는 범세계주의”를 전방위로 옹호한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른바 “신·국가·군대라는 민족주의 삼위일체에 기초한 견고한 민족주의”를 실현하기를 염원했다.(12) 

미 행정부와 그리고 민주당·국가안보기구의 고위 책임자들은 국가 안보 정책과 연계된 이런 지속적인 무역전쟁이 초국적 기업들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초국적 기업이 종국엔 중국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고, 기술이전이나 기타 다양한 제휴사업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도록 말이다. 가령 오늘날 화웨이에 반도체 칩을 공급하는 인텔이나 마이크론과 같은 미국 기업이 대표적인 예다. 미국의 조처는 미국 외 기업에도 타격을 준다. 왜냐하면 미국의 법률과 규제는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사실상 미국의 법률과 규제는 미국에서 제조된 부품과 미국이 지적재산권을 보유한 기술을 사용해 생산된 제품 혹은 공정과정에 전부 적용된다. 더욱이 앞으로는 달러로 거래를 진행한 모든 기업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가령 현재 미국이 실시하는 전 세계적 차원의 대이란 봉쇄조치의 경우처럼 말이다.

 

‘중국 죽이기’ 본격화, 25% 관세 부과?

약발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애플을 비롯한 각종 대형 전자기업의 부품을 중국에 설치된 생산시설에서 조립 중인 대만 굴지의 기업 폭스콘(홍하이 정밀)이 2019년 4월, 향후 아시아 공급망이 불안해지는 사태에 대비해, 인도나 베트남(중국의 대표적인 두 경쟁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다변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뿐만 아니라 2월 이후 무려 66개의 대만 기업이 대만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받아 중국 본토에 설치된 생산시설을 자국으로 재이전했다.(13) 

수십 개의 미국 및 일본 기업들 역시 중국 투자를 철회하고, 멕시코·인도·베트남 등으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중국에서 활동 중인 미국의 200개 주요 기업 중 무려 120개 기업이 현재 중국에서 공급망을 철수하거나, 수개월 이내에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14) 만일 무역전쟁이 더욱 가열된다면, 이런 현상은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모건 스탠리 은행에 의하면, 미국이 ‘중국산’ 수입품 전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는 경우 아이폰 XS의 가격은 무려 160달러 이상 인상될 것으로 예상된다.(15)

미국의 신중상주의 세력들은 기업들이 생산기지 일부를 자국의 영토로 되돌리기를 원한다. 미 행정부도 기업의 재이전을 끈질기게 종용하고 있지만, 아직 큰 성과는 없다. 사실 재이전을 위해서 초국적 기업들(애플이나 나이키 등 자체적인 생산시설이 전혀 없는 수많은 기업들)에는 강력한 유인책이 필요하다. 중국 생산망 해체는 막대한 노력과 비용이 드는 험난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재이전하는 경우, 기업의 마진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그럼에도 미 정부의 정치적 의지는 사뭇 단호해 보인다. 

2019년 6월 10일, 미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교역을 유지할 수 있게 미 상공회의소가 공공연히 지원금을 제공하는 데 대해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면서 만일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귀담아듣지 않는다면 (현재 절반가량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 데만 그치지 않고) 중국산 수입품 전 품목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런 조치가 미국의 기업들이 다른 곳으로 생산지를 이전하도록 유인할 것이다. (…) 미국의 기업들은 베트남 등 많은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생산설비를 이전하거나, 혹은 내가 가장 원하는 시나리오에 따라, 미국 땅에서 자사 제품을 생산하는 날이 올 것이다.”(16) 이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상원 내 민주당 지도자들로부터도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특히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중국에 대해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17)

 

중국, 미국의 공격에 굴복할 것인가

가장 세계화된 자본 부문과 국가 사이에는 어느새 팽팽한 긴장감이 싹트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테두리 밖에 존재한 소련과 달리, 중국은 자본주의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 페르낭 브로델이 아주 유익하게도 경제활동의 ‘상층’이라고 새롭게 정의 내린, 원거리 무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이 발생하는 자본주의는 사실상 국가별로 구획된 시장이 아니라, 통합된 글로벌 공간을 무대로 더욱 화려한 꽃을 피웠다. 브로델이 ‘1층’ 내수시장과 구분 짓기도 한 이 ‘상층’은 자본이 아무런 걸림돌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개방된 세계경제를 필요로 한다. 

국가와 긴밀히 연계된 방위산업이나 석유산업과 같은 몇몇 예를 제외한다면, 자본의 핵심부는 대개 세계적인 차원의 이권과 영향력을 누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상황은 20세기 말 절정에 달한 세계 각국의 의존관계가 이제 되돌리기 힘든 단계로 진입했다는 자유주의의 가설을 뒤흔들고, 최종적으로 정치와 국가를 초월한 ‘초국적 지배계급’이 출현할 것이라던 신(新)마르크스주의적 예언 또한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18)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압력에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다. 지난 5월 30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 타임스>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중국은 미국과 장기적인 무역전쟁에 돌입할 준비가 됐다. 미국이 무역전쟁을 개시한 지난해에 비해, 중국 정부가 엄격한 보복 조처에 나서는 것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많아졌다. 이제는 더 많은 중국인이 미국 일부 엘리트들의 진정한 목적은 중국의 발전 역량을 뒤흔드는 것이라고, 그들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볼모로 삼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미국과 중국 모두에서, 권력 추구가 이윤 추구를 앞서는 시대가 됐다. 미국의 민족주의와 중국의 민족주의가 만나, 어쩌면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의 세계화에 애도의 종을 울릴 수도 있으리라.  

 

 

글·필립 S. 골뤼브 Philip S. Golub
파리아메리칸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주요 저서로는 『동아시아의 재부상(East Asia’s Reemergence)』(Polity Press·Cambridge·2016)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Donald Trump, ‘Declaring America’s economic independence’, 모네센 연설, 펜실베이니아, 2016년 6월 26일.

(2) 신 미국재단 주최 심포지엄 스키너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의 연설, 워싱턴 DC, 2019년 4월 29일.

(3) Stephen Walt, 『Taming American Power: The Global Response to US Primacy』, W. W. Norton & Company, 뉴욕, 2006년. 

(4) Jonathan Steele, ‘America puts the flag out for Deng’, <The Guardian>, 런던, 1979년 1월 30일.

(5) 1971~2006년, 중화인민공화국은 단 2회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반면 미국의 거부권 행사는 무려 76회, 영국은 24회, 프랑스는 14회, 소련(그리고 러시아연방)은 13회에 달했다.

(6) Yasheng Huang, ‘The roles of foreign-invested enterprises in the Chinese economy: An institutional foundation approach’, Shuxun Chen, Charles Wolf, <China, the Unites States and the Global Economy>, Rand, 산타모니카, 2001년.

(7) ‘Comment l'Etat chinois a su exploiter la mondialisation 중국은 어떻게 세계화를 낚아챘는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12월, 한국어판 2018년 1월.

(8) ‘The US is seeking to constrain China’s rise’, <Financial Times>, 런던, 2019년 5월 20일.

(9) Zachary Keck, ‘US-China rivalry more dangerous than Cold War?’, <The Diplomat>, 워싱턴 DC, 2014년 1월 28일.

(10) 렉스 틸러슨(2017년 2월~2018년 3월 미 국무장관)의 상원 인사청문회 증언, 2017년 1월 11일.

(11)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 국장 대행 나작 니카타. James Politi, ‘US trade hawk circles prey in China conflict’, <Financial Times>, 런던, 2019년 5월 27일에서 인용.

(12) Philip S. Golub, ‘Dieu, la nation et l'armée, une sainte trinite 신, 국가 그리고 군, 성 삼위일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5년 7월호.

(13) Lawrence Chung, ‘Taiwanese companies hit by US-China trade war lured back home by Taipei’, <South China Morning Post>, 홍콩, 2019년 6월 15일.

(14) Taisei Hoyama, ‘US and Japan rethink supplu chains as trade war widens’, <Nikkei Asian Reveiw>, 도쿄, 2019년 5월 20일.

(15) Takeshi Kawanami, Takeshi Shiraishi, ‘Trump’s latest China tariffs to shock global supply chains’, <Nikkei Asian Reveiw>, 도쿄, 2019년 5월 12일.

(16) 트럼프의 조 커넌과의 인터뷰, CNBC, 2019년 6월 10일.

(17) Keith Bradsher, ‘A China-US trade truce could enshrine a global economic shift’, <The New York Times>, 2019년 6월 29일.

(18) William I. Robinson, Jerry Harris, ‘Towards a global ruling class? Globalization and the transnational capitalist class’, <Science & Society>, 제64권, 제1호, 뉴욕, 2000년 봄.

 

 

글로벌 가치사슬 


게리 제레피와 미구엘 코르체니비츠의 선구적 연구 이후, ‘글로벌가치사슬’(GVC) 분석은 세계화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1) 글로벌가치사슬 분석은 점차 복잡다단해지는 초국적 생산망의 구조를 밝혀주고 생산지의 지리적 변화, 각 기업이 전체 사슬 안에서(제품의 설계와 원자재 추출에서 부품의 생산, 조립, 완성품의 유통에 이르기까지) 차지하는 부가가치의 차이 등을 보여준다. 이론과 경험을 집대성한 발전된 연구는 ‘세계경제의 새로운 기능적 통합’의 양태를 잘 보여준다. 또한, 초국적기업이 공급처, 현지 하청업체들과 위계질서에 따라 상호작용하며 각국 경제구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잘 보여준다. 

이 접근법은 금세 세계무역기구(WT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의 인정을 받았다. 이 접근법에 따른 분석은 한 국가의 수출품에서 국내기업이 생산한 부분과 실제 국외에서 수입한 부분을 구분하며, 더욱 상세하게 국제무역수지를 평가하는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순무역수지 통계는 현실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중국산 최종 수출품의 총 가치에서 상품 제조에 사용된 지적재산권의 가치를 포함해, 수입된 부분의 가치를 제외하면,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는 상당 부분(어떤 해에는 40%까지) 줄어든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사례가 애플 제품이다. 애플은 수십 국가의 무려 200개 기업으로부터 부품(원자재 포함)을 공급받는다. 제품의 설계자이자 지적재산권 보유자인 애플이 최종제품의 총 가치에서 차지하는 가치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반면 중국에서 조립된 부분이 차지하는 가치는 2%에 불과하다. 

애플의 경우를 비롯해 많은 사례를 보면, 미국의 ‘무역전쟁’은 수많은 국가(한국, 대만, 말레이시아, 일본 등)의 모든 중간 기업들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이 기업들이 중국에 설치한 생산시설을 재이전하도록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글·필립 S. 골뤼브 Philip S. Golub
파리아메리칸대학 국제관계학 교수. 주요 저서로 『East Asia’s Reemergence 동아시아의 재부상』(Polity Press·Cambridge·2016)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Gary Gereffi, Miguel Korzeniewicz, ‘Commodity Chains and Global Capitalism’, Praeger, 웨스트포트-런던, 199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