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좌파는 종말을 자초했나?

원주민 중산층 ‘촐로’의 등장

2019-10-01     마엘 마리에트 l 언론인

 

2006년 당선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은 이번 10월 대선에서 4선 연임을 노리고 있다. 그가 시행한 재분배 정책으로 다양한 중산층이 등장했다. 이들 중에는 상당한 호황을 누리는 도시 원주민 ‘촐로’들도 있다. 과거의 정치투쟁과는 거리가 먼 그들은 현 정권에 의해 중산층으로 진입했지만, 정부가 추구하는 정치적 지향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미국식 레스토랑 카운터에서 후안 파블로 레이예스 아길라씨와 디에고 리오넬 로다스 주리타씨는 오늘의 메뉴를 츄뇨(건조감자) 스프와 샤르키(소금 쳐서 말린 라마 고기) 튀김으로 정했다. 이 두 가지는 안데스 고원 지대의 일상식으로, 잉카인이 사용한 주재료로 만든다. 두 셰프는 퀴노아와 허브를 듬뿍 뿌려 요리를 멋스럽게 연출하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맛을 되살렸다. 

 

좌파 덕택에 부유해진 이들은 좌파를 원치 않는다

볼리비아 라파스의 시장으로 이어지는 번잡한 무리요 도로에 위치한 ‘포풀라르(서민)’ 식당은 마당이 있는 주택의 2층에 있다. 예전에는 서민들이 살던 이곳에는 볼리비아 커피전문점과 수공예 의류점이 들어섰다. 2018년 문을 연 이 식당은 퓨전 요리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안데스 전통 직물인 아구아요 스카프와 검은 티셔츠 차림의 직원이 오늘의 메뉴(채식 옵션 가능)를 내놓았다. 식당엔 항상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일찍 예약해두지 않으면 운이 좋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한 끼에 65볼리비아노(약 10유로, 월평균 임금 450유로)를 지불하는 고객들은 식당 이름과 달리 서민적이지는 않다. 주로 넥타이 차림의 전문직 종사자들, 젊은 변호사들, 주변 관공서 직원들이며, 인터넷 검색을 통해 방문한 관광객들도 있다. 

포풀라르 식당의 인기는 남미에서 최빈곤국인 볼리비아를 포함해, 15년 전부터 근방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 현상을 보여준다. 주목할 점은 신흥 중산층의 등장으로 선거 구도가 뒤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중산층 진입은 진보주의 정권의 사회적 재분배 정책 덕분이었지만, 이 정책에 환호한 쪽은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주의 논객들이었다. 2010년,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중남미 담당 칼럼니스트는 “신흥 중산층은 국가가 통제하는 보호주의 정책들보다 시장경제를 선호하게 됐다”라며 열을 올렸다.(1)

이와 관련, 라울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 고문(알바로 부통령의 형제)은 “생활수준이 향상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변화를 원치 않게 되는, 즉 ‘보수주의의 사회적 충동’을 동반한다”라고 언급했다. 그는 “개혁과정에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결국은 패배를 향해 질주하는 셈”이라고 인정했다. 좌파 정책으로 이득을 본 이들 때문에 좌파는 권력에서 내몰리고, 결국 종말을 자초하게 될 것인가? 2006년부터 대통령직을 수행해온 에보 모랄레스가 10월에 4선 연임을 열망하는 만큼, 이는 볼리비아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다.

 

재분배, 내수경기 활성화의 원동력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입니다. ‘생산성’이라는 단어의 중요성 때문에, 새로운 교육법안에서도 교육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견해를 포함시켰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루이스 알베르토 아르세 카타코라 경제부 장관은 그의 경제정책의 부정적 결과에 관한 질문을 받자 힘줘 대답했다. 아르세 카타코라 장관과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에 의하면, 재분배를 위해서는 생산이 선행돼야 한다. 생산은 최소한의 사회적 안정과 역동적인 내수 시장을 필요로 한다. 

사회적 안정을 구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당선된 지 2년 후, 산타크루즈 지역의 부동산 지주세력이 쿠데타 시도를 모의했다.(2) 이에 따라 집권층은 민주주의 원칙을 무시하는 반대파와 타협해야 했고, 그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목적을 달성하는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일례로 정부는 소규모 생산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막강한 농업관련 기업들과 직접 대치하는 대신, 2007년 식품생산지원기업(Emapa)을 설립했다. 이 기관은 쌀, 밀, 콩, 옥수수 등의 가격이 심각하게 하락했을 때, 영세농민들로부터 시장보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였다. 농업관련 기업 측에서는 어쩔 수 없이 Emapa가 정한 가격에 맞추거나 심지어 더 높은 가격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산타크루즈 지역의 Emapa 책임자인 호르헤 기옌은 말했다. “시장은 투기를 위한 곳이 아닙니다. 전체 농산물의 15%밖에 구입할 수 없지만, Emapa는 그렇게 해서라도 시장을 규제해야 합니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이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Emapa의 역할은 농업관련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가격을 정하는 것을 막아서 영세농민들의 입지를 다지는 것입니다.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불균등한 양쪽의 불평등한 싸움을 중재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입니다.” 

내수 시장을 활성화하고자 정부가 취한 방안은 상생 논리다. 시내 중심가 거리에서 ‘볼리비아를 위한 노력’이라 쓰인 작은 표지판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는 지역의 생산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2018년 개설한 프로그램(2013년의 법 조항에 근거)에 참여하는 소규모 영세 상인들을 위한 것이었다.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4.5%를 넘어서자, 고용주는 법정 금액(2018년 기준 월 소득 1만 5,000볼리비아노, 약 2,000유로로 최저임금의 약 7배) 미만의 소득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연말 보너스(1개월분 월급에 해당)의 2배를 지불헤야 했다. 올해 처음으로 공무원들은 모바일 앱을 통해 급여의 15%를 수령하는데, 볼리비아에서 생산된 물품과 사전 등록된 지역 수공업 매장에서 계산할 때만 이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정책으로 직원들에게 1개월분 급여를 추가로 지급해야 하는 것에 대해 영세상인들은 처음에는 분노했으나, 이제는 납득하고 있다. 라파스 지역의 상업 요충지 중 하나인 막스 파레데스 거리의 노점상에서 한 고객이 설명한다. “신발 가게, 판초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 할 것 없이 모두 사전등록을 마쳤습니다. 모바일앱이 잘 돼 있어서 찾는 물건을 입력하면 구글맵이 장소를 알려줍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모바일앱으로 판매자에게 코드를 제시해 구매합니다. 덕분에 영세상인들이 장사가 이례적으로 호황이라고 말합니다.” 

“재분배는 사회정의를 위한 것입니다. 동시에 내수경기 활성화를 위한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의 주장이다. 재분배, 소비, 생산, 성장이라는 볼리비아의 정책은 경제적 측면에서 선순환을 보여준다. 그러나 소비촉진은 대개의 경우 소비만능주의를 부추기게 되고, 이는 정치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미국식 쇼핑몰의 대성공

2010년에 오픈한 메가센터 쇼핑몰(이르파비의 고급 주택가에 위치)은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녁 시간과 주말에 사람들이 몰려오는 장소가 됐다. 쇼핑몰에는 18개의 상영관(3D 상영관들을 포함해 할리우드 대형 기획사의 최신 영화들을 상영함), 버거킹이나 하드락 카페 등과 같은 수많은 프랜차이즈 지점들, 아일랜드 펍들, 상점들, 볼링점, 스포츠센터, VIP룸, 페인트볼장, 스케이트장과 3층에 걸친 주차장이 있다. 다른 쇼핑몰들도 대도시 이곳저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즐기는 사람이 없었던 미국식 쇼핑몰 문화가 이제 볼리비아에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모든 일은 마찰을 동반한다. 2014년 엘알토의 서민주거지역과 이르파비를 연결하는 공중 케이블카가 개통되면서 서민 가족들도 쇼핑몰에 오게 됐다. 이들 중 여성들은 원주민 전통의상인 포예라를 입고 있어서 쉽게 눈에 띄었다. 쇼핑몰이라는 장소가 낯선 이들은 바닥에 앉아 함께 음료수를 마시고 과자를 먹었다. 혹은 쇼핑몰을 둘러싼 공원 풀밭에 눕기도 했다. 주변에는 저렴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노점상들이 자연스레 몰려들었다. 

SNS 상에서는 “인디언들이 메가센터의 주변 환경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그들이 온 이후 여기저기에 쓰레기들이 널려 있습니다”라며 주민들과 고객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다음과 같은 말로 이들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건 그들의 문화입니다. 그들은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기 위해 땅바닥에 앉는 겁니다.”(3) 결국 ‘피크닉 금지’ 게시문과 더불어 소비의 전당은 다시금 ‘쾌적한’ 장소가 됐다. 이제 사람들은 팝콘을 먹으며 미국 영화를 관람하고, 웨딩사진을 촬영하거나 블랙 프라이데이에 ‘파격 할인’, ‘미친 가격’의 쇼핑을 즐겼다. 미국의 최대 쇼핑 대목인 11월의 블랙 프라이데이는 연말 쇼핑의 시작점이다.

“이곳에 자주 오는 이들이 공산주의자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10월 대선 이전에 중산층 표심 회복을 목표로 일하는 통신부 장관 마누엘 카넬라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는 개혁 정책이 사라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현 정권이 소비 자체를 선(善)으로 격상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본다. “최근 몇 년간 볼리비아에서, 특히 라파스 지역을 중심으로 스포츠센터와 헬스클럽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는 사회가 변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삶의 조건이 향상되자 사람들은 자신의 육체와 외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게 됐습니다.”

 

청년들에게, 정치란 어떤 존재인가

카넬라스 장관은 ‘25세의 한 볼리비아 청년’의 전형적인 삶의 행로를 그려 보였다. 도시 주변부의 서민층 주거지역에서 성장한 부모들과 달리, 이 청년은 ‘집단주의 경향이 약한 곳’에서 정체성을 형성하며 부모들과는 ‘다른 장소들’에서 사회화과정을 지나왔다. 이기주의자는 아니지만, 노동조합을 위해 평생 투쟁하지는 않을 것이다. “공익에 대한 그의 관심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겁니다.” 그의 정치적 선호도 또한 다를 것이다. 그에 대한 해결책을 묻자 카넬라스 장관은 답변했다.

“안락한 삶이 사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도록 공공 서비스 제공과 서비스 품질을 향상해야만 합니다. 이것만이 이 청년 세대들이 우리의 혁명적 사고에 부합하는 정치의식을 발전시킬 유일한 방안입니다.” 카넬라스 장관은 다음과 같은 방법을 추천했다. “공원과 공공시설을 설치해 스포츠를 하고, 가족과 이웃과 어울리고, 상호소통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헬스클럽에서 외모를 가꾸는 대신 이런 공적 공간에서 또 다른 형태의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외교부 공무원인 라켈 라라씨는 또 다른 고민을 털어놓았다. “24세인 제 딸은 ‘가스 전쟁’ 같은 과거의 투쟁과 쟁취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4) 요즘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요. 정치에 대해 아는 것도, 교육받은 것도 없습니다. 더 이상 투쟁해야 할 대상, 즉 독재 정권이 없기 때문인지 다들 정치적 투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반면, 20대의 자스민 발디비에소 씨는 이런 주장을 납득할 수 없다. “청년들에게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합니다. ‘독재 시절보다 살기 좋아졌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녀는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게 아니라, 참여하는 방식이 과거와 다른 것이라고 본다. 그녀가 보기에 오늘날의 투쟁은 인구변화에 따른 ‘중산층 출신인 도시 청년들’의 몫이다. 

“농촌에는 청년들이 줄어들었습니다. 14~15세까지 농촌에서 살다가 이후 학업이나 취업을 위해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삽니다.” 그들을 움직이는 투쟁에 대해 그녀는 설명했다. “그들은 동물, 여성, LGBT들의 권리를 위해 투쟁합니다. 운동가라기보다는 활동가에 가까운 청년들이 정당정치 밖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정치가 부정부패에 물들어있다고 봅니다. 이런 견해는 중산층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습니다.”

 

성공을 과시하는 ‘촐로’들

볼리비아에서 중산층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그들은 라파스의 산미겔과 소포카치 등 고급 주택가에 살며, 교육수준이 높고, 국영기업 등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혹은 서민층 출신으로 대부분이 혼혈이나 원주민에 속하는 상업 종사자들, 자영업자들, 소규모 기업인들로, 삶의 수준이 현격하게 향상된 이들이다. ‘촐로(Cholos)’라고 불리는 이들은 도시화된 원주민들이다. 농촌에서 이들은 지배적인 전통적 가치들을 추구하기보다 자격을 그리 요하지 않는 경제 및 상업 활동에 종사하기도 한다.(5) 

그러나 카넬라스 장관(그리고 정부가 소비만능주의 경향을 부추겼을지도 모르는 신흥 중산층의 정치의식을 강화하기를 원했던 이들)의 중산층 확대 전략이 이들 촐로에게 통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에 이들은 원주민 출신인 모랄레스 대통령을 지지했다. 무엇보다 민족 정체성 때문이었다. 2014년 엘알토의 한 주민이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기자에게 선언했다. “이곳 상황은 변했고, 우리는 변혁을 경험했습니다.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당선과 더불어 우리 문화는 이제 전면에 등장했습니다.”(6) 정부 정책에 그들은 한층 더 열광했다. 국가는 이들이 국가 규모의 유통업 대부분을 장악하는 데 큰 도움을 줬고, 이들은 경제세력의 중심이 됐다. 

<파이낸셜 타임스(Financial Times)> 기자와 인터뷰한 주민의 ‘변혁’이라는 단어는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이제 저는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런 변화는 스위스 산장을 가리키는 단어 ‘샬레(Chalet)’와 ‘촐로’가 결합한, ‘숄레(Cholet)’라는 주택 용어까지 만들어냈다. 이는 성공의 상징을 뜻한다. 엘알토 거리엔 이 기묘한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촐로들 중에서 특히 부유한 이들은 ‘숄레’를 통해 경제적 성공을 과시했다. 5층, 6층, 심지어 7층에 이르는 이 주택들의 벽은 강렬한 색으로 칠이 돼 있고, 키치 건축양식의 거대한 창문은 자기과시에 여념이 없었다. 면적이 500㎡(151.5평)를 넘는 주택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후 촐로와 정부의 관계는 단절됐다. 서민경제 전문가인 인류학자 니코 타시의 설명이다. “정부와의 첫 번째 갈등은 정부가 비공식 경제에 맞선 투쟁에 뛰어들면서 시작됐습니다.” 2010년대의 대 전환기에 비공식 경제는 볼리비아 국내총생산(GDP)의 60%에 해당했고, 경제활동인구의 70%가 관련됐다.(7) 정부가 통제를 강화하자, 촐로들은 이런 정부의 행보를 자신들에 대한 불신으로 받아들였다. 모랄레스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도래한 공공서비스의 향상 역시, 현 상태에 만족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다. 

촐로에게 우선순위는 지역 공동체에 있었다. 그들이 강한 민족 정체성과 더불어 집단적 성공을 거둔 만큼, 지역 공동체는 그들에게 중요한 당면과제였다. 인류학자 타시에 의하면 촐로들은 국가, 자산, 학교, 비정부기구(NGO)와 같은 문명화의 선도체제에 종속되지 않은 서민층이었던 이들로 구성된다.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자는 모랄레스 대통령의 연설에서, ‘다민족적 변혁’은 과거에 냉대받았던 원주민들이 고유한 관습과 문화를 강화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이 드러내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 진입은 그들을 과거의 생활방식과 단절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생활방식을 더욱 굳히게 했다. 그들은 소비를 통해 유럽식 삶을 추구하되, 부를 과시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촐로들의 방식이었다. 

 

‘갑자기 출세한 인디언’ 중산층

일례로, 아이마라족 출신의 신흥 중산층이 주관하는 ‘프레스테스’라는 축제는 촐로 공동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이 축제에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축제를 위해 필요한 고가의 의복과 보석은 이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성공을 나타낸다. 평소에는 입지 않는 값비싼 의복과 보석 때문에 경비원까지 고용할 정도다. 한편, ‘갑자기 출세한 인디언’들로 인해 지금껏 누려온 특권을 빼앗길까 우려하는 백인 중산층과 기존 지배층의 민족적 증오가 다시금 살아나고 있다.

원주민 공동체가 정착하고 기능한다고 해서, 그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60년 이상 농사를 지으며 얼굴에는 주름이 성성하고, 치아도 빠진 돈 팔리노 산토스씨는 돈을 많이 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농사일 이외에도 그는 딸과 함께 작업장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판로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촐로 상인들과 중국 간의 관계는 돈독하다. 모랄레스 대통령이 중국에 첫 대사를 파견했을 때, 중국이 자연스럽게 촐로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을 정도다. 다국적 기업들과 협상할 때, 라파스의 촐로 상인들은 정부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들은 거대기업 삼성과의 협상에서도 삼성매장이 아닌 독립매장에만 제품을 들여놓도록 했다. 한국 기업이 엘로이 살몬 거리에 공식매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곳에서는 자사 제품을 마음대로 판매할 수 없었다.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은 2006년부터 그가 시행한 정책들의 전망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렇게 단언했다. “촐로라는 원주민 중산층이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결합해 공동체로 기능하는 것은 볼리비아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비록 이들 중산층이 과거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소비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이지만,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의 당선과 더불어 시작된 사회적 변화과정의 지속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은 국내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신흥 중산층 촐로가 국가 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더구나 이들은 공동체 윤리와 효율성을 접목해 ‘변화과정에 필요한 새로운 성찰’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모랄레스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그리고 그들의 ‘민주적이고 문화적인 변혁’의 미래에 촐로라는 사회집단을 정착시키려면, 유연한 전략과 기밀한 책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집단의 형성이 그들의 변혁과정 주변부에서 이뤄졌지만 말이다. 

 

 

 

글·마엘 마리에트 Maëlle Mariett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번역·권정아
번역위원 

 

(1) ‘Democracy, Latino-style’, <The Economist>, Londres, 2010년 9월 11일.

(2) Hernando Calvo Ospina, ‘Petit précis de déstabilisation en Bolivie 볼리비아의 불안정한 정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0년 5월호. 

(3) Maëlle Mariette, ‘À la recherche de la Pachamama ‘생태의 여신’ 파차마마가 지키는 에콰도르인들의 삶’,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3월호·한국어판 2018년 5월호. 

(4) 2003년 10월,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 집권 시에 발생한 대규모 사회적 갈등으로 에보 모랄레스 현 대통령이 명성을 얻게 됐다.

(5) 농촌경제와 도시경제 사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서 이 용어는 혼혈인구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확장됐다. 이들은 식민지화 과정에서 시작된 백인 중산층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들은 가까운 인맥을 활용하는 비공식적 성격을 지닌 지역경제를 발전시켰다.

(6) Andres Schipani, ‘Bolivia’s indigenous people flaunt their new-found wealth’, <Financial Times>, Londres, 2014년 12월 4일.

(7) ‘Mujeres y hombres en la economia informal: un panorama estadistico’, 국제노동기구(ILO), Genève, 2016년. Leandro Medina et Friedrich Schneider, ‘Shadow economies around the world: What did we learn over the last 20 years?’, 국제통화기금(IMF), Washington, DC,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