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해협 주변의 기괴한 동맹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이란의 유동적 협약

2019-10-01     크리스토프 자프를로 l 국제문제전문가

 

지난 6개월 동안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인도와 이란 간에 체결된 협정은 두 양자 축이 점차 굳어지는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란과 파키스탄의 관계가 멀어진 것도 아니고, 인도와 사우디 역시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2015년 파키스탄은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받은 파병 요청을 끝내 거절했다. 이후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관계는 냉랭해졌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양국은 관계를 회복했다. 이는 양국 간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됐다. 우선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안보 면에서 파키스탄을 필요로 한다. 파키스탄군(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은 필요할 때마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돼주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파키스탄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많은 선의를 보여 왔다. 

가령 2017년 4월 예멘내전에 참전한 이슬람대테러군사동맹(IMCTC)(1)의 지휘관으로 전 파키스탄 참모총장인 라헬 샤리프 장군을 임명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이미 670명을 파병한(2) 사우디아라비아에 교육과 자문 명목으로(3) 1,000명 이상의 군사를 추가로 파병했다. 한편 파키스탄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에 재정적으로 의존하는 관계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는 8백만 명의 파키스탄인들이 자국에 송금하는 돈은 파키스탄의 중대한 자금줄이다.(4) 하지만 그 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만성적으로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이 ‘순수의 국가’(파키스탄이란 이름은 ‘순수의 땅’(5)이라는 의미를 지닌다-역주)에 공여와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깊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의존관계

파키스탄의 재정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임란 칸 총리는 2018년 8월 18일 집권 한 달 만에 첫 국빈 방문지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찾았다. 얼마 후 무함마드 빈 살만(일명 'MBS') 왕세자가 파키스탄에 30억 달러를 지원하는 한편, 같은 액수의 원유 수입대금을 연기해주겠다고 발표했다. UAE도 파키스탄에 30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칸 총리는 2018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재방문했다.(6) 몇 달 뒤인 2019년 2월 ‘MBS’가 아시아 순방 첫 행선지로 파키스탄을 찾았다. MBS는 파키스탄에 2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고, 그 가운데 80억 달러는 과다르 항구의 대형 정유시설 건설에 투자됐다. 과다르 항구는 중국이 신 ‘실크로드’(일명 일대일로) 전략의 일환으로 아라비아해에 개발 중인 심해 항구다. 

파키스탄을 방문한 MBS는 외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는 2,000명의 파키스탄 정치범을 석방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국제연합(UN)의 테러리스트 명단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비난하며 파키스탄 정부를 기쁘게 했다. 실상 이것은 파키스탄의 테러 단체 ‘자이쉬 에 무함마드’의 수장 마수드 아즈하르를 테러명단에 올리려는 인도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처사였다.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둔 이 무장단체는 지난 2월 잠무-카슈미르 지역에서 풀와마 테러 사건을 주동하며 인도군 41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1일 아즈하르는 국제 테러리스트 제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국제정세도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간의 관계를 더 가깝게 했다. 먼저,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은 인도와 이란이 미국의 철군을 틈타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을 막고자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공조하기를 원한다. 이 문제에 있어서 MBS는 칸 총리와, 지난 파키스탄 방문 때 만난 신임 참모총장 카마르 자베드 바즈와 장군의 역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은 미 정부와 악화된 관계를 풀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대화 채널로 이용하기를 원한다. 

 

이란: 인도와의 결속, 파키스탄과의 관계악화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의존관계가 심화되는 것과 맞물려, 인도와 이란 사이에도 비슷한 구도가 나타나고 있다. 물론 인도와 이란의 관계는 오랫동안 우호적이었지만, 최근 양국의 관계가 유난히 돈독해지는 분위기다. 2018년 12월, 양국은 이란 차바하르 항구 개발 관련 양자협정에 서명했다. 오랫동안 인도가 눈독을 들여온 차바하르 항구는 중국이 투자 중인 파키스탄 과다르 항구에서 서쪽으로 79km 가량 떨어져 있다. 인도에 있어 차바하르 항구는 아프가니스탄(나아가 중앙아시아)의 진입로다. 파키스탄을 통하지 않고도 아프가니스탄과의 관계를 다질 수 있는 길인 것이다. 민간사업자인 인도자와하랄네루포트트러스트(JNPT)와 공공사업자인 딘다얄포트트러스트(DPT)로 구성된 인도 합작투자회사가 이란 정부로부터 항만 개발 사업권을 얻어냈다. 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도 아프가니스탄 개발에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이 사업을 금수조처에서 제외해줬다.

특혜무역협정 체결을 추진할 정도로 이란과 인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동안, 이란과 파키스탄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불화의 씨앗 중 하나는 접경지대 테러였다. 이란 정부는 2019년 2월 이란 혁명수비대 대원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파키스탄 발루치스탄 주(시스탄-발루치스탄) 테러에 대해 파키스탄에 책임을 물었다. 사실상 수니파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지역에는 이란 정권(시아파)에 적대적인 이슬람 조직들이 은거하고 있다. 이란의 분노를 부추긴 것은 이 이슬람 무장단체만이 아니라, 해외 여러 정보국들의 지원을 받은 테러가 일어나 27명의 혁명수비대원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파키스탄정보국(ISI)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역내 정보국들’(7)의 역할에 대해 비판했다.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는 그보다 한층 더 강하게 나왔다. 

“이슬람을 위협하는 이 반혁명주의 세력을 보호하고 있는 파키스탄 정부는 그들의 은신처를 알고 있다. 반혁명주의 세력이 파키스탄의 국가안보군을 지원하고 있다. (…) 파키스탄 정부가 그들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이 반혁명주의 세력에 보복조치를 취할 것이다.”(8) 심지어 이란은 테러리스트 6명 중 3명이 파키스탄인이라는 사실까지 구체적으로 지적했다.(9) 이란 정부가 그동안 비슷한 테러 공격을 이란인의 책임으로 돌리던 관행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우디, 인도와의 관계개선에도 열심

이처럼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인도와 이란을 잇는 두 축이 형성됐지만, 이런 구도가 독점적인 양상을 띠는 것은 아니다. 첫째, 사우디아라비아는 파키스탄을 남아시아의 유일한 동맹으로 간주하기는커녕, 이 ‘순수의 국가’와 앙숙 관계에 있는 인도와도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2016년에 이어 2018년 또다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것을 기점으로 양국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기 시작했다. MBS는 2019년 파키스탄을 국빈 방문한 뒤에 인도에서도 이틀을 더 머물렀다. 

인도를 방문한 그는 대(對)테러 공조의지를 거듭 표명했을 뿐 아니라, 양국의 경제관계 역시 더욱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는 UAE, 이라크 등과 더불어 인도의 최대 원유 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이란산 원유의 수입량은 미국의 금수조처 이후로 무려 40%가 감소했다. 그 결과 2년 만에 인도-사우디아라비아의 무역액은 140억에서 2배인 280억 달러로 증가했다. MBS는 인도에 약 1,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약속했다. 그 중 44억 달러는 신규 정유시설 건설과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이 보유한 시설개발 등 석유개발 사업에 투자됐다.

이런 상황에서 두 국가는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위원회까지 창설했으며,(10)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 인도가 자국의 전략적 파트너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천명했다.(11) 지난 3월 1일 슈슈마 스와라지 인도 외무장관이 이슬람협력기구(OIC)에서 발언할 기회를 얻었던 것은, 이런 우호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그동안 인도는 파키스탄의 거부권 행사 때문에 OIC에 발을 디딜 수가 없었다. 물론 OIC의 회원국들은 인도의 보복 조치로 희생된 카슈미르인들에 대한 지지의사 표명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선언에서 이런 내용은 생략됐다(인도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둘째, 이란과 파키스탄 역시 수많은 공동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 바즈와 장군이 이란을 방문해 특히 탄도 미사일 개발과 관련한 양국의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했다. 이런 종류의 방문은 20여 년 만에 이뤄진 것이었다. 이듬해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카슈미르인들을 다루는 인도의 태도에 대해 분개했고(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란의 외무장관도 자국이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연결’ 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한다고, 특히 과다르와 차바하르를 잇는 사업에 중국과 파키스탄의 투자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란이 파키스탄까지 이어지는 가스관 건설에 착수했음에도, 모든 대형사업이 빠른 시일 내에 빛을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인도가 소외되는 상황을 원하지 않으며, 파키스탄 역시 사우디아라비아와 상당히 의존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파키스탄인은 자신들의 이슬람 문화가 사우디아라비아보다는 페르시아 문화에 가깝다고 느낀다. 두 민족은 언어·음악·회화·수피교의 다양한 측면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1월 이슬라마바드와 라호르에서 만난 (전직) 외교관들과 싱크탱크의 대표들은 양국이 동일한 정체성을 지녔음을 인정하며, 이란이 파키스탄에 등을 돌리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력과 정치무대에서 여러 사우디아라비아의 세력들이 미치는 영향력으로 인해서 말이다. 가령 살라피즘을 표방하는 마드라사, 라쉬카르 에 타이바 같은 이슬람조직, 빈 라덴 휘하에서 반소 지하드(성전) 투쟁을 펼칠 때부터 사우디아라비아와 재정적, 이념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하카니 네트워크 등이 대표적인 예다.(12)

 

“사자들 틈에서 살려면, 다른 사자를 이용하라”

사실 파키스탄의 엘리트들은 자국의 이슬람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아 ‘와하비즘’에 물드는 상황에 대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강화를 후회하고 있다. 지역 전문가 리파트 후세인 교수도, 2019년 1월 파키스탄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도전과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이 인도와 협력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인도와의 관계강화는 전략적 차원보다는 일시적 전술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다른 파키스탄 전문가들도 이란은 “미국의 제재 조치 때문에 앞으로 파키스탄을 더 필요로 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염려하는 인도가 이란에 큰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많은 파키스탄인들은 자국이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사이에 일정한 균형, 즉 대등한 거리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더욱이 파키스탄은 그동안 이슬람 세계의 두 패권 후보국 사이에서 수차례 중재 역할을 시도해왔다. 2015년에는 나와즈 샤리프 총리, 이후 2018년에는 후임자인 칸 총리가 중재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파키스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도 동시에 중요한 지역 파트너인 인도와의 관계강화에 나설 수 있는 것은, 파키스탄의 반발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MBS는 파키스탄이 재정적 이유 때문에 2015년처럼 사우디아라비아에 딴죽을 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반만 진실이다. 파키스탄은 이란이라는 견제 카드를 흔들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자국의 이익을 수호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일례로, 2009년 4월 이란을 방문한 칸 총리는 이란과 파키스탄의 시아파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성소 마슈하드를 방문했다. 

또한 두 국가는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로 양국의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언제든 이란-파키스탄 국경지대에 신속히 개입해 초국적 대테러 활동을 펼칠 공동군을 창설하기로 합의했다(물론 이 조처가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 과거 무함마드 아유브 칸 장군(13)은 중국, 소련, 미국에 대해, “사자들 틈에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한 사자에 맞설 또 다른 사자를 잘 이용해야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날의 파키스탄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인도, 그리고 이 ‘순수의 국가’가 함께하는 지역 사방게임에서 그 같은 전략을 구사할 수 있으리라. 

 

 

 

글·크리스토프 자프를로 Christophe Jaffrelot
시앙스포와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산하 기구인 국제연구센터(CERI)의 연구책임자. 주요 저서로는 2019년과 2013년 파야르 출판사에 출간한 『L'Inde de Modi. National-populisme et démocratie ethnique 모디의 인도. 민족주의-포퓰리즘과 인종민주주의』와 『Syndrome pakistanais 파키스탄 신드롬』이 있다.

번역·허보미 jinougy@naver.com
번역위원

 

(1) 사우디아라비아가 결성을 주도한 아랍판 나토.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외에도, 이집트, 카타르, 모로코, 쿠웨이트, 터키, 방글라데시 등이 이 동맹에 속한다.

(2) ‘As many as 1671 Pakistani soldiers deployed in Saudi Arabia, NA told’, <Pakistan Today>, 이슬라마바드, 2018년 3월 13일.

(3) Dania Akkad, ‘파키스탄은 왜 사우디아라비아에 천여 명의 군사를 파병하려 하는가?(Pourquoi le Pakistan s'apprête-t-il à envoyer un milier de soldats en Arabie saoudite?)’, <Middle East Eye>, 2018년 2월 21일.

(4) 2018~2019년 송금액은 2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정된다.

(5) 우르드어를 사용하는 파키스탄을 의미.

(6) Asif Shahzad, ‘Imran Khan leaves for Saudi conference saying Pakistan desperate for loans’, <Reuter>, 2018년 10월 22일.

(7) ‘Thousands attend funeral of Iranian guards killed in blast’, <Dawn>, 카라치, 2019년 2월 17일.

(8) Iran general claims Pakistan backs Jaish al-Adl, 『Newsweek Pakistan』, 2019년 2월 16일.

(9) Rick Gladstone, ‘Iran says suicide bomber who hit revolutionary guards was Pakistani’, <The New York Times>, 2019년 2월 19일.

(10) ‘India-Saudi Arabia joint statement during the state visit of His Royal Highness the Crown Prince of Saudi Arabia to India’, 외무부, 뉴델리, 2019년 2월 20일.

(11) ‘Crown Prince's visit to India: focus on strategic alliance’, <Saudi Gazette>, Islamabad, 2019년 2월 19일.

(12) ‘“South Asian Muslims” interactions with Arabian Islam until the 1990s. Pan-Islamism before and after Pakistan’, Christophe Jaffrelet, Laurence Louër, 『Pan-Islamic Connections. Transnational Networks between South Asia and the Gulf』, Hurst and Random House-Penguin India, 런던, 뉴델리, 2017년.

(13) 1958~1969년 파키스탄에 독재정권 수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