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의 불평등한 유산 분배
1년 전 언론에 대서특필된 튀니지의 상속관련 양성평등 법안은 사장될 위험에 처해있다. 중요한 총선과 대선을 앞둔 시점인 만큼, 국회의원들은 이 법안에 회의적인 일부 국민들의 의견을 의식해 연기하는 편을 택했다.
튀니지에서 지난 8월 13일은 ‘여성의 날’이자, 타계한 하비브 부르기바 전임 대통령(1957~1987년)이 제정한 개인지위법(CSP) 공포 63주년 기념일이다. CSP는 일련의 진보적 법안으로, 강제결혼과 일부다처제를 금지했으며, 여성이 이혼을 좀 더 쉽게 청구할 수 있게 하는 등 양성평등의 기틀을 마련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개선된 CSP 덕분에 현재 튀니지 여성들은 아랍권 국가 중에서 가장 향상된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상속문제에서 있어서는, 이웃한 마그레브(아프리카 북서부 일대)와 마쉬렉(Machrek, 마그레브에 대응되는 용어로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쿠웨이트 등을 포함한 지역) 지역 여성들과 별로 나을 게 없는, 불리한 처지다.
일부다처제보다 어려운 상속문제
튀니지에서 법 원리의 기준이 되는 이슬람법에 의하면, 여성의 유산은 동일한 항렬의 남성에게 주어지는 몫의 절반에 불과하다. 부르기바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통령이었지만, 그 역시 이 조항에 이의를 제기하진 못했다. 튀니지의 독립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그는 종교개혁을 추구하는 신학자 타하르 하다드(1899~1935년)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신학적 근거를 들어 일부다처제를 금지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진보적인 ‘이즈티하드(상황에 따른 독자적인 법 해석)’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정통교리파와 이슬람주의자들로부터 큰 비난을 사고 있는데, 이 역시 상속문제에는 적용할 수 없었다. 이 사안에 관한 쿠란의 구절 때문에 새로운 해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신은 당신의 아들과 딸에게 동일한 몫을 물려주는 것을 금지한다”라고 명시된 구절(1) 때문이다. 부르기바는 “인간이 신의 의지와 겨룰 수 없기 때문에 현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불리한 여건에 놓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1987년부터 2011년까지 집권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도 이 문제에 대해, 1997년 10월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뛰어난 전임자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베지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은 작년 ‘여성의 날’을 맞이해, 이 문제를 다시 끄집어냈다. 2017년 8월에 설치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위한 위원회(Colibe: Commission des libertés individuelles et de l'égalité)’가 2018년 봄에 제출한 권고사항을 검토한 참이었다.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은 동성애 처벌 금지나 사형제 폐지 등 민감한 사안은 피하면서도, “유산 배분에 관한 양성평등 법안”(2)을 약속하며 Colibe의 주요 건의사항에 호의적으로 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남녀 시민의 권리와 의무에 있어서 평등을 앞세운 2014년 헌법을 원용해 관련 입법 추진을 정당화했다. 에셉시 대통령의 이런 선택에, “쿠란에 반하는 문서 일체를 거부하겠다”라고 선포한 엔나흐다 정당의 이슬람주의자들은 큰 비난을 쏟았다. 그럼에도 이 법안은 2018년 11월 국무회의에서 채택됐고, 검토를 위해 국회에 제출됐다. 아랍권에서 이런 법안이 제출된 것은 처음이지만, 무슬림 문화권에서는 처음이 아니다. 유산분배에 관해 터키는 사실상 1923년부터 샤리아(이슬람 율법 체계)를 적용하지 않고 있고, 이란 의회도 2004년에 튀니지 법안과 유사한 조치를 채택했다. 이란의 조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사문화됐지만 말이다.
“여자는 남자의 절반, 이는 신의 뜻”
큰 환영을 받으며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던 카이드 에셉시 대통령의 야심 찬 시도는 현재 국회 내 논의의 장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여러 국회의원의 의견에 의하면, 2019년 말에 있을 대통령선거와 총선 이전에 이 법안이 표결에 부쳐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경제위기가 심각하고, 테러행위가 다시 빈발하고, 올해 92세로 지난 6월 27일에는 ‘건강 적신호’를 보이기도 한 현직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궁금증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남녀에게 공평한 유산분배’ 문제는 뒤로 밀려났다.
스팍스에 사는 31세의 독신 공무원 이브티셈 N은 이 소식에 놀라지 않았다. 그녀는 “튀니지의 유산분배 관련 법안에 대한 관심을 1년 전에 끊었다. 해당 법안에는 쿠란에 쓰인 대로 유산을 배분하도록 유언할 여지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몬세프 마르주키(2011~2014년) 전임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브티셈은, “에셉시 대통령의 시도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녀는 “에셉시 대통령이 부르기바 전 대통령이 시작한 여성해방 운동을 완성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현 대통령의 목표는 국무총리와 이슬람주의자들 사이의 연합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8월 27일 임명된 유세프 샤헤드 국무총리는 점점 대통령의 수하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아들인 하페드의 대권 도전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타히야 툰즈(튀니지여 영원하기를)’ 정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다.
이브티셈은 “여하튼 그 법안은 채택될 확률이 거의 없다. 튀니지 사회는 전반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감당하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이 그 증거라고 했다. 2015년 홀로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이브티셈의 두 형제들은 그녀보다 많은 몫을 상속받았다. 그녀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법적으로 제게서 빼앗아 간 것은 없어요. 그저 율법에 따라 저보다 두 배를 받은 거지요. 가족이 살던 집과 아버지 소유의 땅을 판 돈도 포함해서요. 둘 다 배울 만큼 배웠고 좌파 성향에, 이슬람주의자들의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유산문제만큼은 ‘전통’을 운운하며 공평하게 나눌 수 없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그들과 인연을 끊었어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아들(들)이 힘을 합쳐 딸(들)보다 많은 유산을 가져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 “여성의 몫은 남성의 절반”이라는 샤리아의 규칙을 주장하면 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산이 남녀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일은 드물다. 역사학자이자 기자인 소피 베시스는 “남녀에게 평등한 유산분배는, 돈과 가부장적 질서의 존속이라는 두 가지 예민한 부분을 건드린다”라고 말했다. 베시스의 지적 그대로다. 페미니즘 운동은 꾸준히 두 가지 장애물에 부딪친다.
수 세기 전, 북아프리카에 이슬람교가 도입되기 전부터 상속방식은 남성을 우선시했다. 가족에서 나아가 씨족이나 종족의 소유물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튀니지계 프랑스인으로, 정신과 의사 겸 에세이스트인 파티마 부베 드 라 메종뇌브는 “유산문제가 금기의 집성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금기들 중 하나는 종교적 금기지요. 성직자들과 편협한 관점의 신도들은 무조건 쿠란 문구를 내세웁니다. 쿠란은 공개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성역이니까요. 그리고는 권리의 중요성이나 양성평등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말고 쿠란의 ‘진보’를 꾀하자는 핑계를 대지요.”
여성의 상속권을 여성이 막기도 해
메종뇌브는 여성들이 상속 시점에 손해를 보지 않도록 예비책과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게 하는, 또 하나의 금기사항에 대해 설명했다. 실제로 이슬람교에서는 유언이나 증여는 물론 심지어 부부의 재산공유제 선택도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튀니지 국가공증인협회 관계자는 “여성들의 상속권을 보호해주려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라고 지적했다. 부베 드 라 메종뇌브는 그 말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여성들이 상속권을 보호받으려면 부모나 배우자가 살아 있을 때 이뤄지는 ‘생존 상속’에 대한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튀니지인들은 이를 대부분 거부한다. 그래서 부모가 딸에게 공평하게 유산을 물려주기 위해 생존 시에 (아들 몰래) 증여하거나, 동등하게 유산을 분배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써서 공증받아두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 튀니지 남성들에게 의견을 물으니, 상당수가 “종교에 반하는 행위”라고 응답했다. 이런 현실이니, 딸을 배려하려는 부모의 노력마저 결국 끝없는 소송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남녀의 평등한 상속권’에 대해, 여성이 거부감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익명을 요청한 한 튀니지 엘리트는, “아들과 두 딸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증여하려 했더니, 아내가 막더군요”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아내는 ‘자기’ 아들의 몫이 줄어들게 된다고 하면서 딸들은 자기 남편들에게 의지하면 된다고 하더군요”라고 덧붙였다. 2017년 9월, Colibe 회장이자 여성 문제에 적극적인 국회의원인 보슈라 벨하즈 흐미다와 폭넓은 대화를 가졌다. 흐미다 의원은 상속권 개혁이 “사회 전체의 안녕을 위해, 또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큰 타격이 될 빈곤을 퇴치하는 데 필요하다는 사실을, 교육수준이 높은 튀니지 여성들에게 이해시키기 어려울 때가 있다”라고 털어놓았다.
다수의 튀니지인은 평등한 상속을 지지한다고 하는 한편, 상속권 개혁이 미칠 파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라마(이슬람 사회의 율법학자)들에게 상속액에 차이가 있는 이유를 묻자, 그들은 우선 이슬람의 등장으로 여성의 지위가 개선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당시 아라비아반도에서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던 여성의 유산상속이 가능해진 것이 하나의 사례라고 했다. 그리고는 여성이 남성 몫의 절반을 받는 것은 남성이 사회적 지위로 지게 되는 부담, 특히 금전적 책임 때문이라고 두둔했다. 다시 말하자면 상속에 관한 법을 제정하려면 법적으로 가족 전체를 부양할 의무가 있는 ‘가장’의 지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튀니지 남성들이 금전적 부담이 크다고 할지라도 가족의 중추적 역할을 내려놓을 준비가 됐는지 의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도 오랜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뿌리 깊이 남아 있다. 이는 이슬람주의자들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여성의 상속권 자체를 금하는 지역들
이슬람주의자들은 오늘날에도 샤리아를 적용해야 여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약탈, 또는 ‘상속권 박탈’이라는 전통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방에서는 여성들이 토지를 물려받지 못하거나 소유권을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논밭은 사실상 남성이 운용하는 불가분의 재산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권리를 빼앗긴 여성들이,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아직 어려운 일이다. 소송자금이 없다는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여성의 유산상속을 금지하는 전통적 관습이 잔존하는 상이집트(일반적인 지도로 봤을 때 이집트 남부지역)나 알제리의 카빌리 지역에는 여성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사례가 아직 남아 있다.(3) 모로코 여성들은 형제가 없으면 남성 친척과 유산을 나눠야 하는데, 튀니지에서는 1956년 이 같은 상속법 타십(Ta’sib)을 폐지했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친척들에게 아무런 권리를 부여하지 않지만, 이런 관행은 널리 퍼져 있다. 요르단에서는 기독교인 여성들까지 형제들의 몫을 위해 유산을 포기하라는 엄청난 사회적 압력을 받는다.(4)
2018년 8월, 튀니지 상속법안이 발표되자 북아프리카 전역에 큰 파문이 일었다.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학교에서는 이 개혁안이 “이슬람 계율을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견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신학자 아스마 람라베트는 쿠란의 관련 구절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모로코에서 논쟁을 촉발했다.(5)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부푼 기대는 꺼졌고 차기 튀니지 대통령은 이 문제에 힘쓸 것 같지 않다. 설혹 차기 대통령이 힘을 쓴다고 해도 최종결정은 새롭게 구성된 국회에서 내려질 것이다.
튀니지는 이 혁신적인 법안을 미루면서, 아랍권 내 양성평등 운동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역사적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서희정 mysthj@gmail.com
번역위원
(1) 쿠란, 제4장 ‘여성’, 11절.
(2) Kmar Bendana, ‘Le défi tunisien 튀니지의 도전’ 중 ‘La liberté, malgré tout…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 <마니에르 드 부아>(160호, 2018년 8~9월)를 참고.
(3) Oulhadj Nait Djoudi, ‘L’exhérédation des femmes en Kabylie: le fait de l’histoire et de la géographie 카빌리 지역에서 벌어지는 여성의 상속권 박탈, 역사와 지리의 이야기’, <Insaniyat>, n° 13, 알제, 2001, https://journals.openedition.org
(4) Myriam Ababsa, ‘L’exclusion des femmes de l’héritage et de la propriété foncière en Jordanie: droit et normes sociales 상속권과 부동산 재산권을 갖지 못하는 요르단 여성들, 권리와 사회규범’, <프랑스 근동연구소 학술지>, 2017년 9월 13일, https://ifpo.hypotheses.org
(5) Asma Lamrabet, ‘L’héritage: relecture des versets 유산, 쿠란 구절의 재해석’, 날짜 미상, www.asma-lamrab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