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연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새로 쓰는 ‘비판경제 교과서’ (10) - 금융,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약속

『비판경제 교과서』 연재순서 (1) 경제학은 과학인가? (2) 생산 증대, 무조건 더 많이! (3) 노사관계(다리와 버팀목의 관계) (4) 부의 분배 희망과 난관 (5) 고용, 어떠한 대가를 치러야 하나? (6) 시장을 따를 것인가 명증된 법칙을 세울 것인가? (7) 세계화, 국민 간의 경쟁 (8) 화폐, 금전과 현찰의 불가사의 (9) 부채 협박 (10) 금융, 지속 가능하지 않은 약속

2019-10-01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지금껏 키메라가 불사조의 형상으로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몹시 드물었다. 반면 우리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나무는 결코 하늘을 찌를 만큼 줄기를 뻗어 올리지 않으며, 거품은 결국 꺼지기 마련이라는 세상의 순리를 몸소 깨우쳐왔다. 그러나 순리를 거슬러 역리를 염원하는 이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한다. 특히 지난 40년간, 그 염원은 경제 금융화라는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서 급기야 우리 사회를 견인하는 원칙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금융의 부상은 모든 나라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전 세계 억만장자 숫자의 증가라는 금융의 주요한 업적은 두 가지 결실을 거뒀다. 다름 아닌 불평등의 확산과 거듭되는 경제위기다.

 

 

편견: “브릭스(BRICS)는 국제질서를 재편할 것이다.”

2007~2008년의 경제위기가 선진국을 강타했을 당시, 브릭스(BRICS)를 구성하는 다섯 국가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머지않아 그들이 경제력으로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특히 경제적, 지정학적 질서에 새로운 힘의 균형을 가져온 것처럼 보였던 브릭스 국가들의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 움직임은 오랜 기간 미국 주도로 일관해온 세계 흐름을 재편할 듯했다.

이들 신흥경제국이 세계 경제의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빠른 경제성장을 기록하자 일부에서는 해당 국가들의 경제가 선진국으로부터 디커플링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신흥국의 경제는 세계 경제에 편승한 대가로 한 바탕 몸살을 앓았다. 디커플링 현상도 없었다. 그 대신 경제의 거품이 서서히 걷히면서 각 국가는 저마다 각종 변수와 전망을 다시 손보아야 했다. 

2008년 9월에 금융 시스템의 붕괴 위협에 직면한 미국의 금융당국은 사상 초유의 양적 완화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는 최저 금리로 시중에 통화를 대량 공급해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정책이다. 그 결과 위축됐던 경제 심리가 개선되면서 투자도 재개됐다. 한편 양적완화로 돈이 풀리면서 늘어난 유동성은 신흥국으로 유입되면서 환율 하락과 신흥국의 통화가치 상승을 불렀고, 고정환율제의 경우처럼 외국인 투자자에게 유리한 투자 환경을 조성했다.

이에 따라 (채권 매입 위주의) 글로벌 포트폴리오 투자의 흐름이 신흥국을 향하게 되면서 과도한 채무와 물가 상승이 일어났다. 대다수의 브릭스 국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에 따라 각종 형태의 금융 자유화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현재 다섯 국가 가운데 내국인과 외국인의 금융거래를 엄격히 구분해 통제하는 국가는 중국뿐이다. 신흥국의 금융 시장은 선진국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아, 불안요인이 발생하면 상대적으로 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으려면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자의 심리에 맞춰 높은 금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 결과, 신흥국 시장은 국가 간의 금리 차로 수익을 내는 캐리 트레이드를 노리고 유입되는 초국적 자본의 흐름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또다른 불안요인으로는 원자재 가격의 변동을 들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신흥국 경제는 금융화되었다. 그 영향으로 지난 20년간 원자재 가격의 급등락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특히 러시아나 브라질과 같은 원자재 수출국의 경우 국제 원자재가는 대외수지와 공공예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원자재의 물가가 오르면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고 외화 유입이 증가하는 한편 정부 수입도 늘어난다. 그러나 2014년 7월 이후로 계속해서 원자재가가 내림세를 나타내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그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나기 때문에 국가가 환율 안정성을 담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러시아, 브라질,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통화가 이같은 상황에 노출됐고, 2014~2015년 기간에는 통화 가치가 급락하는 위기를 맞았다.

 

금융 불안정은 중국을 필두로 한 신흥국 미래의 불확실성을 가중한다

금융 불확실성의 세 번째 요소는 중국과 깊은 연관이 있다. 각국의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회 기반시설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이 정책은 전국에 걸쳐 건설과 부동산 사업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공급 못지않은 수요가 발생하면서 도시마다 집값이 치솟았고, 상하이, 선전, 베이징과 같은 일부 도시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2배~3배씩 급등하면서 부동산 거품 현상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다 2015년에 들어서면서 부동산 가격은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앞으로 투자자 대출 규제와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가 가격 하락에 따른 충격을 제대로 흡수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중국의 주식시장 상황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금융 자유화는 개인 위주의 새로운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으며, 2014년부터 2015년 6월에 걸친 기간 동안 증시는 상승세를 이어갔다. 많은 투자자가 대출에 의존하고 있어, 만일 상황이 역전되어 증권 가치가 떨어지면 레버리지 투자는 양날의 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실제로 2015년 6월부터 중국 증시는 내림세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같은 해 8월 24일과 25일에 상해 종합지수가 첫 폭락을 기록했고, 2016년 1월에 다시 한번 주식 시장이 크게 무너졌다. 2015년 6월부터 2016년 2월 사이의 하락 폭은 45%에 달했다. 중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하면 손실액이 상대적으로 미미해 보일 수 있으나, 중국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시경제 둔화와 함께 중국 금융 시장의 불안이 확대되면서 신흥국 미래의 불확실성도 확대되고 있다.

 

금융위기란 무엇인가?

‘위기’라는 단어는 지난 40여 년간 뉴스, 정치 평론, 경제 보고서를 통해 끊임없이 언급되어왔다. 일부 사람들은 위기를 통해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가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던 ‘창조적 파괴’를 떠올린다. 또 다른 이들에게 위기란 실업이 초래하는 불안이나 불안정, 그리고 불행을 의미한다. 이렇게 많은 해석을 불러오는 위기의 참모습은 대체 무엇일까?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각종 경기 지표에 집착하는 경제학자들과 정치인들은 늘 노심초사 경기 회복의 조짐을 엿보느라 여념이 없다. 그들에게 경제는 호황(성장 속도의 가속화), 수축, 침체(성장 속도의 둔화) 그리고 회복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이다. 이 네 가지 국면을 통틀어 흔히 경기순환 또는 경기변동이라고 부른다.

경기후퇴는 종종 불황(경기가 크게 하락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곤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호황 시기에 누적된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려면 앞으로의 상황을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불황보다 더 극단적인 상황이 펼쳐지기도 한다. 자동차에 관한 한가지 은유를 빌리자면, 연료만 넣는다고 무조건 시동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엔진으로 교체해야 하는 때도 있다. 단순 ‘경기순환’ 주기에 따라 반복되는 문제를 넘어서면, 더는 성장기로 진입할 수조차 없는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미국을 휩쓴 격심한 경제 불황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19세기부터 누적된 부적절한 경기 대응의 여파였다.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당시 산업은 활로를 찾지 못한 채 표류중이었다. 이후 과학적 관리법에 기초한 테일러주의(Taylorism)는 획기적인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기업은 점점 더 내수, 특히 인구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임금노동자의 수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들은 하나같이 충분한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지만, 임금노동자의 급여 인상이나 노동조합의 조직과 같은 문제에는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정부의 중추적 역할

이런 배경에서 발생한 미국의 대공황은 뉴딜(New Deal) 정책,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함께 제시된 다양한 처방에 힘입어 비로소 극복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포드주의(Fordism)가 등장해 효율적이고 일관된 작업방식을 통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노동 생산성의 증대와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집약적인 축적 체제는 프랑스의 ‘영광의 30년’ 시기를 특징 짓는 요소이기도 한 고용주와 노동자 간의 이윤 공유를 용이하게 했고 ‘임금-물가 연동제’를 가능하게 했다. 이 당시 정부는 경제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정부는 설비에 대한 투자를 확충하고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를 조절했다. 아울러, 이 당시의 경제는 지금보다 훨씬 낮은 대외개방도를 띠었다는 특징이 있다.

오늘날 포드주의 생산방식은 그 가치가 차츰 퇴색해간다. 일부는 이런 쇠퇴의 원인을 오히려 해당 방식이 거둔 성과에서 찾기도 한다. 최고점에 오른 포드주의 경제체제는 결국 잉여생산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저개발국으로 방향을 돌려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순진하고 극단적인 오판에서 비롯된 낙관론

이런 변화는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촉진하며 그 결과, 국가 간의 새로운 상호의존성이 발생한다. 포드주의의 기반이 약화한 두 번째 이유는 국제화의 진행에 있다. 새로운 수요에 대응해 수출을 늘리는 과정에서 국가 간 가격 경쟁이 심화되는데, 이는 결국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과 사회보장혜택이 축소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나 대량실업 사태에 따라 노동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진 노동자들은 열악해진 노동 조건을 그대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 

포드주의를 대체하는 성장 모델이 무엇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1990년대에 우리는 금융 혁신에 기반한 성장 모델에 기대를 걸기도 했다. 이론상으로 해당 성장 모델이 창출하는 부의 효과는 줄어든 임금을 보상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요컨대 임금 인상은 없지만, 노동자들은 금융 저축 상품이나 보유하고 있는 주식에서 이윤을 취함으로써 소비를 늘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 노동 임금이 소비를 진작하는 주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대된 2007~2008년 금융위기는 이 같은 이치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다.

금융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유효하지 않은 수익성에 기반한 원칙을 기업에 제시함으로써 그 어떠한 뚜렷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포드주의를 비롯해) 여태껏 유지해온 경제체제의 근간을 뒤흔드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금융과 기업들의 생산방식이 세계화됨에 따라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에 대응할 능력을 상실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순진무구한 전제는 완전한 오류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투기성 거품이 성장을 멈추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포괄적인 녹색 경제에 기반한 전례 없는 국제 협력을 끌어낼 것인가? 여러모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금융가

“시장에 희열을 가져온 주가 상승” “공포에 출렁이는 증권가” 희비가 엇갈리는 금융 시장의 모습은 마치 조울증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사람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나 투자자들의 합리성에 지나치게 높은 신뢰를 부여한 금융 경제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 금융위기가 절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역사적 근거는 넘쳐날 지경이다.

1636~1637년 겨울에 네덜란드의 튤립 구근 시장에 뜻밖의 호재가 터졌다. 유럽에 처음 소개된 튤립은 큰 인기를 끌었고 턱없이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튤립은 현물이 아닌 약속어음(향후 특정 시점에 금액을 치르기로 약속하는 유가 증권)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거래되었고, 이 혁신적인 거래 방식은 단순히 예쁜 꽃다발로 저택을 장식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오로지 환매를 통한 수익에만 열을 올리는 투기꾼들의 탐욕을 크게 자극했다. 하지만 일순간 거래가 얼어붙기 시작하자 곧이어 가격이 급락하는 바람에 어음이 부도나고 투자자들은 파산을 맞았다. 훗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위기는 빈번하게 발생하게 됐지만, 이 ‘튤립 파동’은 사실상 최초의 금융위기로 기록되고 있다. 

 

구근과 거품

금융 불안정이 반복되는 이유에 관해 경제학계의 두 진영에서는 각기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한편에서는 경제주체의 합리적인 기대 때문이라는 낙관론을 펼친다. 이들은 거품 경제가 외생적 요인(유행, 흉작, 정부의 섣부르고 일관성 없는 정책 결정)으로 촉발된 예외적인 사건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 주장에 의하면 정상적인 조건에서 금융 시장은 항상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서로 대칭된 정보를 공유하는 경제주체들이 종종 부정확한 예측으로 판단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반드시 위기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쪽에서의 과소평가는 다른 한쪽의 과대평가로 상쇄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최선책은 무엇보다도 정부가 신뢰받는 일관된 통화정책을 펼침으로써 금융 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극단적 낙관) 이론을 처음 제기한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는 금융 시장의 규제 완화를 촉구한 바 있다. 그리고 2003년에 자신의 주장이 실현됐다고 생각한 그는 전미경제학회(American Economic Association)에서 “불황을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향후 몇 년간은 안심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그로부터 4년 후, 1929년 이래 가장 심각한 금융위기가 세계 곳곳에 불어닥쳤다.

다른 한 편에서 경제사에 더욱 통달한 회의주의자들은 경제위기가 시장에 내재한 비합리적 요소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개인 수준의 합리적인 행동이 경제 전체적으로는 해악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일례로 극장에서 몇몇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하면 시야가 가려져 다른 관객들도 부득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상연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금융시장의 ‘희열’과 ‘공포’와 같은 표현은 다수의 경제주체가 군중심리에 의한 집단행동을 취함으로써 펀더멘털(자산에 내재한 기초가치, fundamental)과 무관한 가격이 형성되는 현상을 지칭한다. 금융 불안정성은 투자자들의 예측에 금융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 그리고 급격한 신뢰 상실과 같은 요인에 따라 경제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금융 불안정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 미래 상황에 관한 예측이라면, 금융가나 투자자들의 추론방식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다수가 경제학자들의 저서를 통해 정보를 얻기 때문에, 결국 금융 불안정은 악순환을 반복한다. 1973년, 금융 파생상품의 가격 결정 원리의 획기적 발견이라 여겨졌던 블랙숄즈(Black-Scholes) 모델의 예를 들어보자. 이 모델을 고안한 이들도 자신들의 공식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런데도 금융가는 블랙숄즈 모델을 채택했는데, 해당 방정식으로 도출되는 결과는 현실의 가격 변동을 상당히 잘 반영하고 있었다. 사회학자 미셸 칼롱(Michel Callon)은 “넓은 의미로, 경제학은 경제의 작용을 관찰해 설명하기보다 경제를 작동하게 하고, 틀을 짜고, 규범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소문을 통해 바람의 방향을 예측하며 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들 

공학적 지식으로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수학자’들이 금융 시장을 홀로 장악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금융 시장의 흐름을 형성하는 주요 투자자들의 행동에 따라 시장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그 기점에는 기회에 촉각을 세우고 어느 방향으로 바람이 불지 시시각각 관측을 전달하는 무성한 소문이 자리하고 있다. 

일부는 역사에 대한 일가견을 피력하면서 미래의 성장 엔진이 될 분야에 투자하려 한다. 따라서 앞으로의 금융 시장은 타산적이고 공리적인 호모에코노미쿠스가 군림하는 시대를 넘어, 사회학자 올리비에 고데쇼(Olivier Godechot)가 말하는 ‘각종 합리성을 거래하는 시장’의 성격을 띠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의제자본: 취기와 현기증

단순함과 정교함이라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사기극은 천편일률적으로 오늘의 투자금이 내일(혹은 모레)이 되면 산더미처럼 불어난다고 장담하는 사탕발림에서부터 시작한다. 금융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00년대 말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거품이 붕괴하며 빚어진 금융위기 사태는 기존 사기극의 수준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그 피해자들은 대체 어떤 고초를 겪어야 했을까?

역대 최악의 세계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커다란 환멸을 맛보고 있다. 달콤한 사탕발림도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런 세상이다. 1980년대 초 이래로 가속화된 금융화는 시간벌기 전략으로 위기를 지연시켜왔다. 이는 곧 독일의 사회학자 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이 지칭하는 ‘민주적 자본주의’ 체제에 해당한다.

경기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이윤추구에 대한 욕망과 대다수 사람의 소비와 복지에 대한 열망은 서로 모순되어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명제였다. ‘어떻게 하면 자본가들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면서도 대다수 사람들의 열망을 채울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에 해답이 된 열쇠는 바로 부채, 소비자 신용, 그리고 투기적 주식거래였다.

2007~2008년, 전 세계를 거칠게 휩쓸고 한 차례 금융위기에서도 드러났듯, 오늘날 그 누구도 의제자본(擬制資本, 가상자본)의 영향에서 예외일 수 없다. 의제자본은 장래 수익을 낳는 원천이 되지만 현실의 가치를 가지지 않는 가공적인 자본의 한 형태이다(국채, 주식, 채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의미에서 의제자본을 경제적 수입에 대한 일종의 기대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에 따르면, 의제자본의 부상은 양날의 칼과 같다. 한편으로는, 저축만으로는 자금을 조달할 수 없는 일들을 실현가능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하는 면이 있다. 예컨대, 1990년대 후반의 닷컴 버블은 엄청난 창업 열풍을 몰고왔다. 일부 수익성이 떨어지는 기업들은 얼마 안 있어 자취를 감추었지만, 일부는 구글이나 아마존과 같은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반면, 미래에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라는 면에서 이 자본은 가공의 환상으로 귀결되는 위험을 내포하기도 한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부동산의 가치가 끝없는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 여겼던 환상은 금융위기가 도래함과 동시에 산산조각이 났다. ‘약속된’ 부와 실제 생산되는 부(실질 경제)의 차이는 가차 없이 위기로 이어진다.

 

30년간 130% 증가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의제자본의 총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주요 선진국 경제에서 1980년 국내총생산의 약 150%를 차지했던 기본적인 형태의 의제자본(공공 부채, 민간 부문 부채, 주식시가총액)의 비중은 현재 350%에 이른다. 여기에 파생상품과 같이 정교하게 짜인 금융형태를 고려한다면 그 비중은 훨씬 커진다. 간단히 말해서, 미래 어느 시점에 상환을 약속한 채무가 실제로는 상환할 수 없는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다. 이는 결국 2007~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의 핵심 요인으로 작용했다.

 

인건비를 절감하고 채무상환을 보장하는 복합처방법

각국 정부는 금융 시장의 기대이익에 부합해 양립할 수 있는 실물경제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해두고 있다. 예를 들면, 노동 조건 변화(노동법 단순화, 단체교섭 방식 조정, 임금 감축 등)나 정부 지출 축소(긴축 재정, 건강보험 적용 범위 제한, 사회분담금 납부 기간 연장)와 같은 조치를 동원한다. 일례로 정부가 채무를 계속해서 감당할 수 있도록 하는 복합처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상 인건비를 끌어내리고, 사회보장 혜택을 줄여나가는 조치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차입매매, 돈 한 푼(혹은 거의) 안 내고 기업을 인수하는 방법

2012년 4월, 프랑스 북부 우아즈의 한 공장의 직원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당시 대선 후보는 “오늘날의 금융가들은 기업의 단물을 빼먹고 팔아버리는 데만 열을 올린다”며 쓴소리를 냈다. 해당 공장을 소유한 키온그룹은 정리해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는데, 이는 미국 자본인 골드만삭스와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차입매수 방식으로 키온그룹을 매입한 데 따른 후속 조치였었다. 여기서 말하는 차입매수란 대체 무엇일까?

차입매수는 레버리지 바이아웃(Leveraged Buyout·LBO)이라고도 불린다. 이는 투자 기업이 아주 적은 자기자본(매입가의 1/3 비율만 차지하기도 함)만을 가진 상태에서, 부족한 나머지 대금을 외부 차입금으로 조달해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기법을 의미한다. 이 기법은 2007~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차입매수 바람’이 불 정도로 크게 성행했다. 수년간의 침체기를 거친 후 2015년에는 차입매수 거래가 2007년 이래 가장 활발해져, 그 규모가 유럽 시장에서만 총 800억 유로에 달했다. 투자자본이 이 운영 방식에 쏠리는 현상은 매우 높은 수익성을 방증한다.

인수 대상 기업의 수익성이 차입 비용보다 높을 경우, 지렛대(레버리지)효과가 발생한다. 차입금으로 기업을 인수한 투자자는 기업의 금융수익을 부풀려 높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우선  3~8년에 걸쳐 기업이 지급하는 이익배당금은 부채를 변제하는 데 쓰인다. 그 이후 투자자는 구조조정으로 금융 가치를 극대화한 기업을 (때에 따라 빚을 그대로 떠안은 상태에서) 되팔거나 주식 시장에 재상장시킨다. 이 방식으로 출자한 자본의 50%에 이르는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다.

차입매수를 통해 얻는 절세 혜택은 더 높은 수익성을 보장한다. 예컨대, 인수차입금의 상환 시 발생하는 이자는 법인세에서 공제된다. 인수기업의 매각 시 발생하는 이윤(자본 이득)에 대한 세율도 (다른 세율에 비해) 낮게 책정된다. 프랑수아 올랑드는 대선 후보 시절에 이 같은 세금구멍 문제를 철저히 시정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발표된 정부안은 당시 공약보다 축소된 조치만을 반영함으로써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경영자와 직원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엄격하고 유익한 경영관리 기법

차입매수는 투자 재원을 공급하는 은행에도 더 많은 수익을 얻도록 한다. 금융 기관으로서 은행은 대출 관련 각종 수수료를 취하고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들어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다.

반면, 인수 대상 기업이 얻는 혜택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하다. 회사에서 나오는 이익배당금은 기업을 매수하는 과정에서 투자사가 차입한 부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된다. 이렇게 경영 이익을 차입금 변제에 우선적으로 할애하면 장기적 안목의 기업 투자는 저해되고, 단기적인 이익만 좇다보니 마케팅 같은 기업 활동이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들의 두 번째 목표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는 당초 인수한 가격보다 더 비싼 값에 기업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차입매수에 따른 실적의 영향을 받는 간부직 직원이나 경영진은 생산성 향상을 달성하고자 각종 극단적인 조치를 단행한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임금 감축, 사내복지 축소가 가져오는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의 앞으로 전가된다.

프랑스 내 사모펀드의 이익을 대변하는 프랑스 투자발전협회(AFIC)에 의하면, 차입매수는 엄격한 기업 경영을 유도하며 경영자와 직원에게 성과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에 유익한 관리방식에 해당한다. 그러나 부채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그에 따라 가중되는 재무압박은 건실한 기업을 망가뜨린다. 2014년 4월,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차입매수가 미국 역사상 8번째로 큰 규모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2007년 450억 달러에 인수된 후 과다한 채무에 시달리던 텍사스 전력배급업체 에너지퓨처홀딩스(Energy Future Holdings· EFH)가 빚을 갚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한 것이다.

여기서 역설이 등장한다. 경영권을 인수한 금융가들의 영향 아래에서 경영의 위험과 비용은 대부분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는데, 경영 이익은 최소한의 ‘자본금’만 들인 투자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큰 실수

프랑스 경제학자 파스칼 살린은 2000년 그의 저서 『Libéralisme(자유주의)』에서 “세계 곳곳을 돌며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를 양심의 위안으로 삼는 정부 관료와 생태환경 보호론자들이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 종을 ‘세계자연유산’의 지위로 끌어올리는 실수를 저질렀다”라고 평했다. 이렇게 지정된 멸종위기종은 그 누구도 ‘유산’ 보존에 힘쓰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어떻게 하면 코끼리를 비롯한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 종을 보호할 수 있나? 방법은 간단하다. 생명 종을 사유화하면 된다.”

특정 개인이나 개인 집단이 코끼리들을 소유하는 순간, 이들은 코끼리를 이용할 뿐 아니라 생산해낼 수 있다. 코끼리에 대한 재산권을 소유하면 타인이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배제할 수 있으므로, 코끼리를 보호하고 개체 수를 늘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주만이 도살이나 상아와 고기 판매에 대한 결정권을 지닌다. 더 나아가 “이 공식은 코뿔소, 물고기 떼, 그리고 식물 종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럼 남는 것은 인류인데, 과연 살린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의문이다.

 

금융과 이슬람의 결합

2007~2008년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한바탕 휩쓸고간 가운데서도, 금융투기와 함께 금융업계를 크게 뒤흔든 복잡한 금융상품의 진입을 금함으로써 그 여파에서 휩쓸리지 않고 무탈했던 금융 분야가 하나 있었다. 이는 바로 보수적이면서도 윤리를 중시하는 이슬람 금융이다.

1970년 창설된 이슬람협력기구(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OIC)는 이슬람 경제 율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이슬람 국가들을 결집했다. 현대 경제에 부합하는 새로운 이즈티하드(ijtihad;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이해하고 독자적 해법을 찾기 위한 노력과 판단)를 시도한 끝에, 이슬람 국가들은 경제 활동이 엄격한 윤리적 종교적 틀 안에서 이뤄지는 한 유익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1974년, 국제 유가가 4배로 뛰어오르자 이슬람협력기구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이슬람개발은행(Islamic Development Bank· IDB)을 창설해 이슬람 원칙에 입각한 경제협조의 토대를 마련한다. 이후 1975년에는 이슬람 최초의 민간 은행인 두바이 이슬람 은행(Dubai Islamic Bank)이 설립됐다.

 

이슬람 초기, 자본에 노동의 대가를 결부해 자금을 조달한 카라반

이슬람 종교는 상업활동에는 관대하지만(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네 명의 후계자 모두 상업에 종사함), 실물거래를 수반하지 않고 단지 금전을 대여해 얻는 이자수익은 엄격히 금한다. 예를 들어 이슬람 경전 쿠란에는 상업 거래로 창출되는 이익과 돈을 빌려준 대가로 받는 이자가 비록 겉으로는 유사해 보일지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명시되어 있다(쿠란 2:275). 전자는 합법한 것으로 인정하지만 리바(Riba; 고리대금이나 불법적인 이자)는 엄격히 금한다. 요컨대, 돈만으로는 새로운 돈을 창조할 수 없으며, 모든 거래는 실물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돼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슬람 초기에, 상업용 카라반(대상인)의 경우, 자본에 노동의 대가를 결부하는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했다. 당시 부유한 상인이 주를 이룬 대금업자들은 오늘날 기업에 해당하는 상업활동에 자금을 공급했으며, 채권자와 채무자 양측은 사전 약속된 일정 비율에 기반해 손익을 분담했다.

 

미래를 낙관하는 이슬람 은행

이슬람 금융은 협력과 참여를 추구한다. 벤처 캐피털과 유사한 논리에 기반한 무다라바(mudaraba; 금전신탁)나 무샤라카(musharaka; 공동출자금융) 같은 금융 개념이 바로 이에 해당한다. 무다라바나 무샤라카와 같은 금융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매우 기발하고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시행된 사례는 일부분에 그치고 있다. 특히 이슬람식 예금 금리는 ‘투자계좌(예금계좌와 동일)’를 통해 위탁한 자금을 운용해 발생한 이익을 반영하기 때문에, 기업 실적에 따라 금리가 달라진다.

이슬람 은행들의 주된 활동은 이슬람 율법으로 허용된 범위 내에서 실물 경제에 필요한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예로 은행이 매도인과 매수인 중간에서 실물자산을 구매하고 이를 다시 전매해 원금과 비용을 상환받는 무라바하(murabaha; 비용추가거래 금융)나, 일반 은행의 리스에 해당하는 이자라(ijara; 임차구매)를 들 수 있다. 이런 금융 방식은 하나 같이 이슬람의 금기사항과 투명성의 원칙을 지키고 투기와 가라르(gharar; 불확실성에 대한 투자)를 모두 피해야 할 의무를 진다.

새로운 금융상품들도 모두 같은 이슬람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겨났다. 술이나 무기 같은 불법 부문, 금융업, 혹은 과다한 채무를 안고 있는 기업, 보험상품(타카풀, takaful), 이슬람 부동산 금융 등에는 일절 투자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는 이슬람 가변자본투자회사(Sicav)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이슬람 금융에서 가장 주목받는 자금조달 방식은 부동산이나 원자재 같은 실물자산에 투자하는 이슬람 채권(수쿠크, sukuk)이다. 이 방식은 이미 2000년대 초부터 비이슬람 국가의 투자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영국(6개의 이슬람 은행이 영업 중)과 룩셈부르크, 홍콩은 이미 수쿠크를 발행하고 있다.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국가도 과세기준과 관련법 개편을 통해 이슬람 금융 도입을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추세다.

오늘날 이슬람 금융기관은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그 규모는 약 2조5,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란이나 수단과 같은 국가는 이슬람 금융체계만을 합법적 은행의 형태로 인정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금융자산의 70%가 이슬람 금융자산에 해당한다. 2014년 이후 유가 하락이 이어져 성장률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이슬람 은행들이 그리는 미래는 여전히 낙관적이다.

 

나는 너의 이름을 쓴다, 자유여.

1996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하원의장인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온 세상을 줄곧 사로잡아온 고귀한 정신인 ‘자유’의 참모습을 잘 나타내는 사례를 찾기 위해 고심했다. “시작에 앞서 여러분께 켄트 스테피스를 소개하겠습다. 켄트 스테피스(Kent Steffes)는 비치발리볼 종목에서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거머쥔 인물입니다. 캘리포니아 출신인 스테피스는 자유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불과 40년 전에 생겨난 비치발리볼이 현재 정식 올림픽 종목으로 인정받을 만큼 중요한 스포츠가 됐으니까요. 단언컨대 그 어떤 정부 관료도 비치발리볼을 고안해내지는 못했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새겨야 할 자유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주식시장을 폐쇄한다면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 기업의 숨통을 틔워야 하는 투자자들의 책임은 그야말로 천근만근일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경제의 허파를 자청하는 주식시장은 거대한 빨대처럼 기업의 자본을 한껏 빨아들여 주주들의 주머니 속으로 쏟아붓고 있다. 이에,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10년 2월호에 다음과 같은 혁신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주식시장 폐쇄를 고민해봅시다.”

실행계획의 면면을 살펴보면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이 그저 완벽해 보인다. 우선, 시장에는 여유자금을 어디에 투자할지 고민하는 경제 주체인 예금자와, 사업자금이 필요한 경제주체인 기업이 있다. 이때 주식시장이 나서서 이해관계가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서로 만나 상호 이익을 얻도록 돕는다. 주식시장은 지속적인 수익원을 보장(주식은 차입자본, 즉 부채와 달리 원금 상환 의무가 없는 자기자본에 해당)하기 때문에, 비용 지출을 최소화하면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하도록 하는 제반 여건을 조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 계획이 현실에서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데 있다.

주식시장이 기업의 산업자금 조달원 역할을 한다고 했던가? 오늘날의 경제 구조에서는 오히려 기업이 주식시장에 자금을 공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뒤바뀐 흐름을 제대로 읽으려면, 우선 ‘기업’과 ‘투자자’의 양면적 재무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기업의 주식을 보유하는 투자자는 주기적으로 이익배당금을 받는다. 또한, 이른바 주주자본주의를 특징 짓는 ‘혁신’ 기술인 자사주매입(buy-back)을 통해 기업은 자사 주식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주당이익을 높이고, 그 결과 기업의 주가가 상승한다(그 결과, 주주는 더 큰 이익을 얻는다). 

 

고맙게도, 주식시장은 무탈합니다!

이런 배경에서, 기업은 투자자에게 더 많은 이익을 제공하려 하고, 급기야는 재무 흐름이 반전돼 기업이 주식시장에 자금을 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 와중에 주식시장은 자신의 필연성과 당위성을 더욱 공고히 다진다. 오늘날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금융자본의 규모는 놀라움을 넘어 의구심마저 자아낸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은 단순한 설명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주 발행이 없는 상황에서 시장에 새로 유입되는 자본은 이미 발행된 주식이 다시 거래되는 ‘유통시장’에 흘러들어 투기를 부추긴다. 결국, 주식시장에 몰린 자본은 신생 사업을 육성하는 데 쓰이지 않고 이미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금융자산의 가치를 부풀리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주가는 오르고 주식시장은 활황을 이어가지만, 실물경제에는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부를 창출하는 장치, 부를 늘리는 사람들에게는 부의 가치가 관건

그렇다면, 증권시장의 규제 완화로 자본이 대거 유입된 덕에 기업들은 자본비용을 절감하게 됐을까? 우선, 부채의 자본비용은 연간 지불하는 이자를 합산하는 방법으로 비교적 정확히 산정할 수 있다. 반면, 부채와 달리 ‘자기자본의 자본비용(즉, 기업이 조달하는 자금의 사용에 대한 대가)’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주식을 발행해 생겨나는 자기자본은 부채와 달리 배당액의 비율이 미리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자본 안에서도 분명 비용이 발생한다.

기업이 부담하는 자기자본의 자본비용은 총 세 가지다. 우선 이익배당금과 자사주매입 관련 비용을 들 수 있다. 그밖에도 수익성이 높지 않아 단념해야 했던 투자사업의 기회비용, 즉 기업이 주주들의 반대로 포기한 이익의 총량도 기업의 부담해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이자의 합으로 간단히 계산하는 부채와 달리, 다양한 형태를 띠는 각각의 자기자본과 자본비용은 단일 기준으로 환산해 상호비교(예를 들어, 자기자본 대비 부채의 계산 등) 하기가 쉽지 않다. 부채는 상환 의무가 있지만, 자기자본은 상환 의무가 없는 차이점 역시 일차적으로 혼란을 유발한다. 주식을 기준으로 차이를 설명하자면, 배당기준일이 지나 배당락한 주식이라도 해당 주식을 보유하는 한 계속해서 이익배당금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주식을 보유할 경우 부채와는 달리 주주총회를 통해 주주권(株主權)을 행사할 수도 있다(이 권한에도 값어치를 부여할 수 있다).

‘주식시장이 계속 유지되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주식시장은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글·<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편집부

번역‧이푸로라 poorora@daum.net
번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