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의 독

‘서브프라임’ 위기가 남긴, 알려지지 않은 유산

2019-10-31     프레데릭 르메르 외

2007~2008년 위기 이후 서구권의 중앙은행들은 다양한 경기부양책을 시도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성냥공장 안에 화약통을 계속 쌓는 격이었다. 대형 은행들은 금융 분야에 자금을 수혈하겠다는 목표로 제로 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했다. 그러나 불균형 현상은 오히려 심화돼 이제는 새로운 위기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데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러나 독일, 그리고 최근에 스위스에서는 30여 개 금융기관이 가장 부유한 고객들의 예금에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UBS의 스위스 자회사는 2019년 11월 1일부터 200만 스위스 프랑(약 180만 유로) 이상의 예금에 0.75%의 수수료를 부과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의 경우 아직은 이 같은 조치가 논의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A예금(livret A: 프랑스의 대표적인 저축예금)’을 비롯한 일부 저축예금의 이율은 물가상승률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보다 이미 낮게 책정돼 있다. 즉, 저축하면 손해를 보는 셈이다. 이런 모든 신호들은 점점 심각해지는 금융 분야의 기능장애를 보여준다. 가히 ‘경제의 비정상화’라 할 수 있는 이 문제의 핵심은 다름 아닌 ‘마이너스 금리’다.

어떤 경제 주체가 누군가로부터 돈을 빌리면 원금보다 더 많은 액수를 상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해진 이율로 계산된 이자를 원금에 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율이 마이너스가 되면 이야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2%의 이율로 100유로를 빌리면 12개월 후에 98유로만 갚으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마이너스 금리의 상황에서는 빚을 지면서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해진다.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고? 전혀 그렇지 않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와 독일의 국채는 이미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고 있다. 따라서 프랑스와 독일은 빌린 돈의 원금을 모두 갚지 않아도 된다. 예금에 수수료를 부과하는 일부 은행들의 정책도 결국은 마이너스 금리의 논리와 뿌리를 같이 한다. 예금자는 통장에 예치한 금액에 비례해, 은행 측에 보관료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기이한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2007~2008년 금융위기 직후에 도입됐던 조치들을 되짚어 봐야 한다. 금융위기 발발의 주된 원인이었던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구권 정부들은 거대 금융기관들에 자금을 지원해줬다. 그러나 긴급하게 도입된 이 ‘구제금융 계획’은 작전의 첫 번째 단계였을 뿐이다. 사실상 핵심이라 할 두 번째 단계는, 전례 없는 규모의 비(非)전통적 통화정책(Non-conventional monetary policy)이었다. 
이 통화정책의 원칙은 경제 주체와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2011년과 2012년에 유럽중앙은행(ECB)은 회원국 은행들에 파격적인 조건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제도인 장기대출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특히 초기 36개월 동안에는 제로 금리가 적용됐다. 유럽중앙은행은 이 같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처한 은행들에 자금을 공급해주고자 했다. 

 

유동성 요인들은 어떻게 축적됐는가

유동성 공급은 채권매입의 형태로 이뤄지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2010년 5월 그리스 부채 위기를 계기로, 유럽의 대형은행들이 국공채 시장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뜨린 이후부터 두드러졌다. 당시 유럽중앙은행은 유통시장(Secondary market)에서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 부채비율이 높은 국가들의 채권을 은행과 투자자로부터 매입했다.(1) 그리고 2015년 1/4분기부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뒤를 이어 양적 완화 정책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2016년 6월 8일~7월 15일 유럽중앙은행은 100억 유로 이상을 투입해 민간영역 채권들을 매입함으로써 채권가격을 지지하고 채권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 노력했다.

세 번째 단계는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하한 것이었다. 기준금리란 금융기관 간에 단기거래의 기준이 되는 금리를 말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위기가 시작될 무렵인 2007년 9월부터 일찌감치 기준금리를 하향조정했다. 유럽중앙은행은 관례상의 문제를 들어 주저하다가, 2011년에야 기준금리 인하에 동참했다. 그리고 기준금리의 지속적인 인하로 유럽중앙은행을 비롯한 몇몇 중앙은행들은 마이너스 금리에까지 근접하게 됐다. 기준금리 인하의 목표는 시중은행들이 실물경제에서 얻은 이익을 경제 전반으로 확산시키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경제에 자금을 유입함으로써 투자를 유발하고 성장을 촉진하며,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낮은 금리는 경제를 활성화하기는커녕 금융시장의 급팽창과 경제 불안의 상승을 가져왔고, 그 신호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사실, 금리 인하는 필연적으로 몇 가지의 역효과를 동반한다.

우선, 은행의 경우 대출을 통해 얻는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독일은행처럼 금리 관련 활동에 의존적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대출로 얻는 수익이 줄어들면, 은행은 각종 수수료를 올리고 예금 금리를 낮추게 된다. 채권거래를 늘리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또한, 국공채의 수익성 악화는 보험회사와 연금 펀드 등 기관 투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채권과 관련된 부채가 그들 자산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권의 수익성이 떨어져 계약이행이 어려워질 경우 그들은 리스크가 크더라도 수익성이 더 높은 투자처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금융 불안의 요인들이 누적된다. 왜냐하면, 대출금리가 내려가 채권거래가 활성화되고 고위험 투자 상품이 증가하면서, 경제 주체들이 거액의 대출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공공분야와 민간분야 모두에서 부채가 급증했다. 전 세계의 GDP 대비 부채비율은 2008년에는 200%를 기록해 당시로선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2018년 이 수치는 230%로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내 전 세계의 부 생산 증가는 약 35%에 그쳤다. 그리고 대출이 급증하면서 주식과 채권의 가격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2000년대 금융시장의 호황을 이끌었던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이사장 앨런 그린스펀까지도 2018년 2월 버블 형성을 경고했을 정도였다. 금융위기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처럼 소위 신용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국가들의 국공채에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됐다는 사실은 경제와 금융시장의 성장 전망이 비관적이라는 증거다. 이자가 제로 수준이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임에도 불구하고,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이유로 이 채권들을 투자자들이 사들이는 이유다.
낮은 대출금리는 사회적 불평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돈은 부자에게만 빌려준다’는 속담처럼, 대출도 결국 돈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을 예로 들면, 현재와 같은 상황은 가장 부유한 투자자와 개인이 부동산 자산을 늘릴 절호의 기회다. 그 결과 지난 10년 동안 유럽의 주요 대도시 대부분에서 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높은 집값과 월세의 부담은 집 없는 서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게다가 파리를 비롯한 일부 도시는 부동산 가격에 존재하는 투기 거품이 꺼질 경우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 한편, 또 다른 ‘자중손실(自重損失, Deadweight loss)’의 예로, 몇몇 대기업은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자사주 매입(Buy-back)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는 게 아니라, 주가를 인위적으로 높이기 위해 자사주를 사들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이너스 금리는 통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낮아지면 유동자본은 중국, 브라질 등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개발도상국으로 흘러든다. 그러면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는 상승하고 수출경쟁력은 약화된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개도국의 중앙은행들은 외환보유고를 풀어 환율의 상승과 급변을 억제한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경제 규모 상위 15개 개도국의 외환보유액은 2015년 5,141억 달러 감소했다.(2) 특히 중국은행의 경우 2015년 12월과 2016년 1월 사이 외환보유액이 2,074억 달러나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에는 마치 마약처럼, 낮은 금리를 오랜 기간 유지하다 보면 심각한 기능이상과 중독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중앙은행들에 있어서 통화정책의 변경은 매우 민감하고 우려스러운 사안이다. 그 첫 번째 우려는, 부실기업들의 지급불능 위험이다. 대출금리를 크게 올릴 경우 초저금리 덕분에 근근이 버티고 있는 부실기업들의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두 번째 우려는, 채권시장의 대폭락 위험이다. 대출금리가 상승하면 기존의 낮은 금리로 대출된 돈의 가치가 떨어지므로, 채권시장에서는 채권을 급매로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이는 채권의 폭락으로 이어진다. 세 번째 우려는, 통화전쟁 위험이다. 중앙은행의 입장 변화에 따라 일부 통화의 가치가 올라가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관련국들의 수출이 위축돼 통화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중앙은행들의 무능, 저금리 정책의 실패

이처럼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그 명백한 무익함에도 불구하고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본래 이 정책은 금융시장을 지지하고 위기를 타개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금융 불안은 오히려 확대됐고 경제는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세계 경제의 침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구조적 장기침체’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됐다고 말한다. 중앙은행들의 무능함과 저금리 정책 실패의 여파는 특히 유로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유럽중앙은행이 프랑스 GDP에 맞먹는 2조 6,000만 유로 이상을 유럽의 금융시스템에 쏟아부었음에도, 유로존은 전 세계에서 경제침체가 가장 심각한 지역이 됐다. 실업률도 증가해 2019년 유로존의 평균 실업률은 9%에 달했다. 

그렇다면 중앙은행들의 특별조치는 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지적했던 ‘유동성 함정’ 때문이다.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대량공급하는 방식으로 경제를 살리려면 높은 대출수요가 필수다. 즉 투자를 위해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대출수요가 부족하면 금융시장에 공급된 유동성이 투기로 이어진다. 유럽연합의 경우가 이 메커니즘을 잘 보여준다. 경제 불안이 심화하고 소비는 줄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불투명해지면, 기업은 저금리로 돈을 빌려 생산력을 높이는 게 아니라, 자사주를 매입한다.

유동성의 대량공급이 초래한 심각한 결과는, 근본적으로는 유로존에서 시행 중인 신자유주의 정책의 모순적인 성격과 관련이 깊다. 한쪽에서는 유럽중앙은행이 통화 가속기(monetary accelerator)를 계속 작동시키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현재 고수하는 저금리(혹은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포기할 경우, 엄청난 규모의 새로운 금융위기가 도래할 위험 때문에 전진도 후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정부와 기업의 긴축정책으로 경제활동과 고용이 위축되고 생산부문의 투자가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 낮은 금리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공공지출이 증가하면, 투자가 촉진되고 임금이 상승하며 고용이 창출될 수 있다. 따라서 생태학적 및 사회적 변화의 목표를 우선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우리는 최소한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변화를 위해 요구되는 대규모의 장기적인 투자를 민간차원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다는 것. 금리가 아무리 낮아지더라도 말이다. 

 

 

글·프레데릭 르메르 Frédéric Lemaire & 도미니크 플리옹 Dominique Plihon
두 사람 다 금융거래 과세와 시민활동을 위한 연합(ATTAC: l’Association pour la Taxation des Transactions financières et pour l’Action Citoyenne)의 회원들로, 르메르는 파리 13대학 경제센터(CEPN)의 연구원이며, 플리옹은 파리 8대학 금융경제학 교수다.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국공채 시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1차 시장은 발행시장으로, 정부가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판매한다. 2차 시장은 유통시장으로, 투자자들이 만기 이전의 채권을 재판매한다. Renaud Lambert, Sylvain Leder, ‘L’investisseur ne vote pas’(한국어판 제목: 투기꾼들의 ‘먹잇감’이 된 정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7월호·한국어판 2018년 8월호.

(2) Jamie McGeever, Sujata Rao, ‘Chute de $500 mds des réserves de change des émergents 개도국의 외환보유액 5,000억 달러 감소’, <Reuters>, 2015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