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위기의 발화점은 어디인가?

‘미래의 병원’, 엘리트 개혁자들에게는 유토피아, 의료보조인력과 환자에게는 지옥

2019-10-31     프레데릭 피에루 l 사회학자

 

“꺼져라!” 파업 중인 응급실 의사들은 보건부 장관이 9월 9일 발표한 계획을 두고 이렇게 외쳤다. 장관은 사정이 어려운 다른 분야에 몫을 떼어주고 남은 빈약한 예산을, 폭발 직전인 응급실에 내밀었다. 공공병원의 기능을 민간에 떠넘기는 장황한 프로젝트를 두고 공공병원의 ‘위기’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파손’이라 해야 할까?

 

2016년 10월 1일 프랑스 동남부 샤모니(알프스 산맥 중 세계적으로 유명한 등산 근거지), 날씨는 매우 맑았다. 정부, 정당, 의료분야 결정권자들이 매년 개최되는 CHAM(의료연구경영협의회)에 참석하고자 이곳에 모였다. 몽수리 병원의 비뇨기과 교수이자 사르코지 대통령의 의료고문이던 기 발랑시아 교수의 주도로 모인, 프랑스 의료체계의 미래를 토론하는 엘리트들의 잔치다. 

회의장 자리 배치는 권투장을 연상시켰다. 가운데 사각 무대는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링을 닮았고, 그 주변에 참관자를 위한 안락한 좌석이 배치돼 있다. 하지만 비슷한 건 그뿐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뤽 페리 전 교육부 장관과 에릭 오르세나 작가의 대화만 들어봐도 알 수 있다. 철학적 고견과 ‘소수의 특권자(Happy few)’끼리 통하는 농담을 섞어가며 나누는, 만찬에서나 들을법한 담소에는 언쟁도, 심지어 토론도 없다. 실제로 이 작은 세계에서는 의견충돌이 거의 없다. 의장이 드물게 질문을 던지면, 발언자들이 정부가 충분히 받아 쳐낼 수 있는 논점들만 자세히 다루는 정도다. 대중의 개입은 철저히 배제된다. 정작 중요한 사안은 다른 장소에서 다뤄진다. 회의장 부근의 뷔페나 고급 레스토랑이다. 회의를 주최한 의료기업들은 바로 이곳에서 정책입안자들에게 ‘의료체계 위기’의 해결책을 풀어놓는다. 

의료 경영진들에게 의료부문에서의 지출 증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의료분야를 ‘유망시장’이자, 프랑스의 주요 ‘산업자산’으로 여긴다. 프랑스 제약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므로, 해외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는 정부와 민간,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엘리트들은 ‘테크노필리아’라는 이름으로 단결하고, ‘혁신’이란 이름의 파벌만 남는다. 

 

‘외래진료로의 전환’, 신자유주의 코드명

그들은 치즈에 샴페인을 즐기며, 유럽 인공지능산업이 미국, 중국보다 뒤처졌다고 걱정한다. 다행히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모든 희망 사항이 이루어졌다. 경제부 장관직을 사임한 에마뉘엘 마크롱 당시 대선 후보가 대표연설로 회합을 마무리했다.(1) 참석자들은 ‘스타트업네이션(창업국가)’에 대한 연설에 만족스러워했다. 프랑스는 원격의료, 빅데이터, 인공지능, ‘3P(예측성, 예방성, 개인맞춤형)’ 덕분에 만성적인 의료체계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고, 세계 의료시장의 선두주자가 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마크롱 후보가 한때 몸담았던 회계감사원(IGF)은 “그에 따른 수익률이 2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알프스 정상의 기술지상주의가 현장의 의료종사자들(물론 CHAM에 초대받지 못했다)이 있는 계곡까지 흘러 들어가진 못한다. 이들은 매일 역설적 명령을 맞닥뜨린다. 예산은 줄어드는데 절대적인 의료서비스의 질과 안전성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항상 더 나은, 더 빠른 서비스를 요구받지만, 인적·물적 지원은 늘지 않으며 오히려 줄어든 곳도 있다. 

2000년대 의료정책의 특징은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어 닥친 것이다. 민간병원이 정부의 공감을 얻어낸 것이다. 정부는 긴축재정이 필요하다면 프랑스의 ‘공공병원 중심주의’가 희생할 차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공병원에 예산 제한이란 채찍을 들이댔고, 민간병원에는 재정부양책이란 당근을 주며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했다. 공공병원은 전문적이고, 기술적이고, 비싼 “중추적 업무에 집중”하면서 공공서비스의 임무를 수행하고, 대신 수익성 좋은 나머지 분야는 민간부문(개업의, 클리닉 등)에 양보하라는 것이었다. 

이 대대적인 작전의 코드명은 ‘외래진료로의 전환’이다. 망설이는 의료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두 가지 장치가 사용됐다. 한편에서 예산을 제한하고, 다른 한편에서 T2A라는 약자로 알려진 ‘행위별수가제’를 이용해 의료기관끼리 실적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행위별수가제: 진료할 때마다 진찰료, 검사료, 처치료, 입원료, 약값 등에 따로 가격을 매긴 뒤 합산하여 진료비를 산정하는 제도). 이론상 두 장치는 양립 불가능하다.(2) T2A의 경우, 사회보장제도는 의료기관이 시행한 의료서비스의 종류와 양에 따라 보상한다. “돈은 환자를 따라간다”는 1980년대 말의 마거릿 대처식 슬로건처럼, 병원은 국내 의료시장 점유율을 높여야만 하는 기업이 됐다. 파리공립의료원(AP-HP)처럼 명망 높은 병원은 국제시장까지 노려야 한다. 진료 횟수에 비례해 수입도, 인력과 투자도 늘어난다는 논리다.

 

의료 불모지 증가, 지역별 불평등 심화

그러나 예산 제한 압박이 심한 상태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예산을 더 챙기려는 방법이 상당히 악독해진다. 의료기관들은 속임수를 써서라도 의료행위횟수를 최대한 늘리려고 했다. 입원 하루치를 여러 건으로 쪼개고, 의료비밀유지 의무가 없는 민간회사를 통해 의료행위 분류코드를 조작했다(생-말로 병원의 장-자크 탕크렐 의료정보팀장은 매장당할 각오로 이 사실을 고발했다).(3) 즉, T2A제도 안에서는 공공서비스보다는 비즈니스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예산총액 유지를 위해 의료수가를 낮추고 의료행위횟수를 높이기로 했다. T2A제도는 병원을 햄스터 쳇바퀴로 만들었다. 쳇바퀴를 더 빨리 돌리라고 압박했지만, 병원 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반면 생산성은 훨씬 높아졌다(2010년부터 진료량이 매년 3% 증가했고, 2015년부터는 2%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현장 노동 강도에 비례했다. 따라서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대기시간이 늘어나고, 1차 진료 이후 병원 재방문율이 높아졌다. 환자들은 2섹터(의사가 진료비를 자율적으로 책정)인 민간병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게다가 공공병원들은 시설이 낙후돼도 투자를 하지 않는다. 아니면 처참한 결과를 초래할,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예를 들어서 악성 대출(이를 “구조적” 대출이라 부르는데, 변동금리가 가입 당시에는 매력적이었지만 스위스프랑 폭등과 함께 치솟았다)을 받거나, 민관파트너십을 체결해서 방사선장비(MRI, PET)처럼 대여·유지비가 비싼 장비를 들이는 것이다. 

상황을 악화하는 요인이 또 있다. 의료기관들이 ‘외래진료로의 전환’에 따라 이양된 업무들을 수용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민간병원의 시설과 인력 상황이 쇠락세에 처해있다. 1927년 사회보험에 대응해 세운 원칙이 여전히 유효할 만큼 오래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일반의의 수가 줄어들었고, 노동시간도 줄었다. 21세기 프랑스 곳곳에 ‘의료 불모지’가 생겨나면서 지역 간 의료 불평등이 심해진 것은 신성불가침한 ‘병원 설치의 자유’ 때문이다. 이 불평등은 68혁명 이후 의대생이 급증하면서 잠시 가려졌다. 

그러다 1990년대, 개업의 노조가 “의사 과잉공급”을 외치며 ‘누메루스 클라우수스(Numerus clausus·대학정원제, 좁은 문)’ 제도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4) 그러나 의사들의 대규모 은퇴 후 의사 수가 부족해지자, 그들은 말을 바꿔 재무부와 손을 잡고 의사부족 현상을 비난했다. 그 결과 국민 1인당 일반의 진료 횟수가 2000~2013년 사이 15% 감소했다.(5) 인구노령화에 따라 일부 질병이 만성화되면서 의료수요가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그 감소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지역별 의료 불평등 심화를 의미한다. 

 

정신과 환자까지 응급실로 떠넘겨

힘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의사노조는 1971년 사회보장제도에 유일하게 양보했던 항목을 번복해왔다. 의사노조는 당시에 직접 자신들의 보수(진료비)를 결정할 권한을 포기했었는데, 이는 사회보장제도가 진료비의 80%를 환급해주면 환자의 지불 능력이 높아지고, 그러면 환자층을 넓힐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하지만 의사노조의 기대와는 달리, 수입은 늘지 않았다. 그래서 1979년 의사들의 수익을 고려한 민간형 의료기관인 ‘2섹터’가 생겨났다. 이제 의사노조의 다음 목표는 공공의료기관인 ‘1섹터’의 진료비를 올리는 것이다. 현재 1섹터의 경우, 의사들은 사회보장제도와 협의한 진료비를 따라야 한다. 

한편 진료비 과잉청구가 관행처럼 퍼지면서 환자들의 재정적 부담이 커졌다. 그 결과 프랑스의 ‘노란조끼’(서민층)는 공공병원으로 발길을 돌렸고, 특히 응급실에 환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암담한 상황에 처한 공공병원 정신의학과는 만성적인 인적·물적 자원 부족에 부딪혀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 아미앵, 생테티엔 뒤 루브래 등 몇몇 병원에서는 이 사태를 알리기 위한 시위가 벌어졌다.

한편 요양 시설 같은 의료사회부문에서도 관할 권한과 책임을 놓고 정부와 자치단체(재정적 이유로 빈곤과 불안정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가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다. 여러 해 전에 이미 위기를 맞이한 노인요양시설에서는 황폐한 설비와 노인학대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6) 이들 역시 부족한 재정과 열악한 의료설비 때문에 건강상태가 악화된 노인환자들을 응급실로 보내기 시작했다. 노인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병원의 무능력함 때문에 환자가 집에 머무르는 경우, 가족들이 ‘간병인’이란 이름으로 모든 짐을 떠맡고, 견디기 힘든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감내해야 한다. 

상부에서는 진정한 공공의료 정책이 부재하고, 현장에서는 의료부문이 망가진 것과 다름없으니, 이것이 ‘응급실 위기’를 초래한 진짜 주범이다. 설상가상으로 응급실은 병원 내에서도 하대 받고 있다. 의료, 정신과, 사회 문제가 뒤섞인 소위 ‘부정 탄’ 케이스(노숙자, 노인, 급격히 악화된 정신병 환자 등)를 도맡기 때문이다. 그래서 응급실에서 일하는 일반의들은 전문의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한다. 반면 전문의들은 장을 보듯 “유리한 케이스(병명이 질병분류학에 정확히 대응해, 환자가 병상을 오래 차지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케이스)”만 골라서 데려간다.

 

립서비스에 불과한 보건부 정책

느리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다. 이제 대학병원이 응급실을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2015년 말부터 응급의학도 전문학과로 인정받게 됐으며, 2017년에 그에 준하는 학위과정도 창설됐다. 또한, 파리 피에르-마리퀴리 대학의 브루노 리우 의과대학장, 앙드레 그리말디 당뇨병학과 교수, 파리공립의료원(AP-HP)의 안느 제르베 의학위원회 부위원장을 위시한 일부 공공병원 의료진도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응급실 의사들의 편을 들어줬다.(7)

한편, 클리닉들은 T2A제도 안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분야에 집중됐다. 특히 백내장, 치질 등의 치료가 전문화됐다. 이렇듯 정부가 만들어낸 의료시장은 ‘손실의 사회화, 이익의 사유화’라는 법칙을 따르게 됐다. 결국, 응급실의 위기는 시스템적 리스크다. 프랑스 의료체계가 병들었다는 징후이며, 과거의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료체계의 진부화, 만성질병을 급성질병에 비해 소극적으로 치료하는 자세, 공공병원 개혁과 그에 따른 무수한 부작용, 민간부문의 비개혁(정치학자들은 ‘무의사 결정’이라 부른다) 등 때문이다.(8)

이런 관점에서 마크롱 정부는 상징적 전환점을 보여줬다. 공공병원 의사 출신인 아녜스 뷔쟁 보건부 장관이 지난 20년간 정부들의 무능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녀는 기업형 병원과 T2A제도가 세월이 지나면서 의료정책의 ‘아킬레스건’이 됐다며, 이런 이데올로기는 끝내야 한다고 선언했다.(9) 마크롱 대통령도 기자 2명과의 TV 인터뷰에서 의료위기의 원인을 공공병원 밖에서 찾아야 한다고 인정했다. “사실상 위기에 대한 해답은 프랑스 의료서비스, 민간병원과 공공병원 간의 관계를 재조직해 모두가 응급실로 향하는 상황을 피하는 것이다.”(10)

마크롱의 이 발언은 시대변화에 저항하는 동업조합주의의 폐단을 운운하며 내심 생산성 향상에의 염원을 내비치는, 전문가와 결정권자들의 ‘정치적 주장’처럼 들렸다. 그리고 린 경영(모든 과정에서 낭비 요소를 최소화하려는 경영방식으로, 도요타 자동차가 시초-역주)과 리엔지니어링 방식을 제안하는 컨설팅회사들에 공공병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컨설팅회사에만 수익을 가져다 줄 뿐, 의료종사자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부가 초래한 이 불가능한 상황을 병원이 책임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2000년대 이후 정권들의 선택(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연속성을 보여준)을 비판하던 이들은 반대세력이 붙여준 ‘좌파’라는 딱지를 뗄 수 있었다. 

그러나 말과 행동 사이에 깊은 간극이 존재했다. 뷔쟁 장관이 소개한 개혁은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모두를 만족시키겠다고 내세운 수많은 목표들은 정의가 불분명하고 체계성이 없었으며, 운영방식은 모호했다. 게다가 민간병원을 재조직하겠다면서 온갖 연구와 실례를 통해 비실효성이 입증된 정책 논리에 집착했다. 즉, 형식적인 정책의 전형이었다. 

한 예로 보건부는 ‘의료인 지역 공동체(CPTS)’(자원봉사가 기반인 같은 지역의 의료인 모임)를 새로 만들어서 연계가 강화되길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상부의료기관의 재조직은 의료인(일반의/전문의), 직업군(의사/의료보조인) 간의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위험이 있다. 또한, 누메루스 클라우수스 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의료 불모지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병원 설치의 자유와 대학병원 교육력 향상 문제는 여전히 재고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학별 학생 수용률에 따라 비공식적 누메루스 클라우수스 제도는 존속될 것이다. 즉, 이번 개혁도 이전 개혁들과 마찬가지로 슬그머니 파묻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책의 끝, 민간기업 이익 극대화

마크롱 정부가 발표한 의료정책의 진정한 수혜자가 누군지 알려면, 보건부가 아니라 재무부를 관찰해야 한다. 예산국이 사회보장국을 감독하고 있는데, 사회보장국은 매년 가을 의회표결에 부칠 사회보장부문예산법안(PLFSS)을 입안한다. 여기서 진료비지출목표(ONDAM)라 불리는 연간 지출액이 결정된다. 무미건조한 법안은 제쳐두고, 연금자문위원회(COR) 회장이자 사회보장국장직을 지낸 명망 높은 고위공무원의 발언을 들어보자. “공공재정 목표달성을 위해 ONDAM을 2.3%만 인상하겠지만, 공공병원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건드리지 않고 이를 지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11)

이전 개혁의 지지자가 예산 제한을 더는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은 정부 발표에 반박하는 것인 만큼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러나 이런 발언들을 보면, 의료정책이 재무부에서 나왔음을 확신할 수 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가 추구하는 질서자유주의의 모범생을 희망하는 대통령의 의지가 정부로 하여금 사회보장제도의 두 매머드, 퇴직연금과 의료보험으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정부가 지출할 재정은 이미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아직 ‘대대적인’ 연금개혁이 세부적으로 발표되지 않았지만, 그 목적은 공공지출 감축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의료보험의 경우엔, 보건부 장관에게 미끼를 던지게 한 후, 공공의료를 은근히 압박함으로써 민간부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알프스산맥(샤모니에서 열린 의료연구경영협의회를 뜻함)에서 꿈꾸던 ‘미래의 병원’이 위풍당당하게 활강을 끝내고 도착한 종착지다. 스타트업과 의료기업에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첫째, 몇 년 전부터 공공병원 근처에 통원수술 환자가 머물 수 있는 ‘호스피텔’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통원수술이란, 병원에 도착한 당일에 수술을 받고 바로 집이나 ‘호스피텔’로 가는 것이다. 호스피텔에 머무는 비용은 사회보험 보장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환자 개인 부담이다. 결국 호스피텔도 불평등의 매개체다. 

두 번째 예를 살펴보자. 의료기기회사 ‘메드트로닉’은 공공병원 수술실에 고도첨단기술 장비를 제공했다. 그러면 병원은 반대급부로 일정 횟수만큼 의료행위를 시행한 후, 그에 상응하는 사용료를 회사에 납부한다. 그런데 스타트업 회사들은 절대 자선사업가가 아니므로, 이는 불필요한 수술을 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메드트로닉은 당당하게 의료분야의 ‘가치창출’을 말한다. 심지어 ‘의료 가치 클럽(Cercle Valeur Santé)’이라는 싱크탱크를 만들어, ‘가치에 기반을 둔 의료시스템을 위한 선언’까지 정립했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는 사회보장제도와 민간기업 간에 공정하게 분배되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신기술이나 신약이 높은 ‘가치’를 창출하는 즉시, 이를 판매한 기업은 실제 생산비용과는 무관하게 사회보장제도에 높은 가격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얀 가운, 노란조끼에 합류할까

결국 사회보장제도의 허점은 샤모니에서 주장한 ‘혁신’ 때문에 생긴 것이다. 반면 공공연구 예산은 계속 감축돼서, 공공의료는 점점 보건자본주의에 의존하게 된다. 유명한 C형 간염 치료제 ‘소포스부비르’는 12주 복용치 값이 초기에 4만 1,000유로(약 5,380만 원)였다. 프랑스 보건부가 소포스부비르를 개발한 미국 제약회사와 협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약값은 2만 8,700유로(약 3,766만 원)였다. 항암제 신약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다.(12) 이러다 ‘의료분야의 가치 창출’이 사회보장제도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프랑스 의료체계가 수명이 50세였던 시대의 유물인 만큼 진부화됐다는 진단이 많은 공감을 사고 있다. 만성질병의 위협이 커지고, 의료·사회·문화가 갈수록 복잡하게 얽혀감에 따라 근간을 재점검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엘리트들은 기술 강화와 민간부문의 참여 확대를 제안한다. 엘리트들은 경제위기, 의료위기의 해결책 모두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는 수두룩하다. 우선 미국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의료체계가 민영화될수록 의료비가 비싸진다. 또한, 수십 년의 사회학, 과학기술사 연구자료를 보면, 지적 나태의 형태인 기술결정론에 굴복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현실에서 다양한 주체들과 협력해서 시스템 전체를 점검해야 한다.

예산축소라는 근시안적 선택은 책임이 없는 의료보조인력들에게 불가피하게 발생할 시스템 재조직 비용을 떠넘겨 의료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보유한 작은 물통(응급실 의료보조인력 1명당 약 100유로의 고통 수당 지급 등)으로는 절대 끌 수 없을 만큼, 불길은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당장 내일 ‘노란조끼’ 투쟁에 하얀 가운도 합류할지…. 

 

 

글·프레데릭 피에루 Frédéric Pierru 
사회학자이자 CERAPS(행정·정치·사회연구소), CNRS(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 『세기의 파손. 공공의료 개혁에 관해』(Casse du siècle. À propos des réformes de l’hôpital public, 2019년)의 공동저자.

번역·이보미 lee_bomi@hotmail.com
번역위원

 

(1) 저자는 2016년 샤모니 세미나에 참석했다. 이와 관련해 CHAM 사이트에서 마크롱의 토론 내용을 볼 수 있다. L’auteur de ces lignes était présent en 2016 à Chamonix(en ethnologue). On peut cependant revoir l’intervention de M. Emmanuel Macron sur le site de la CHAM: https://www.canalcham.fr/fr/videos

(2) Anne Gervais, André Grimaldi, ‘공공병원, 지금은 세일중! La casse de l’hôpital public’,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0년 11월호.

(3) Jean-Jacques Tanquerel, 『Le Serment d’Hypocrite. Secret médical: le grand naufrage 위선적인 선서. 의료 비밀: 위대한 난파선』, 파리, <Max Milo>, 2014년. 

(4) 1971년에 설립된 누메루스 클라우수스는 다양한 의료분야(의학, 약국)의 학생 수를 제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Instauré en 1971, le numerus clausus vise à limiter le nombre d’étudiants dans divers domaines de la santé(médecine, pharmacie).

(5) Pierre-Louis Bras, ‘Les Français moins soignés par leurs généralistes 일반의들에게 진료를 적게 받는 프랑스인들’, <Les Tribunes de la santé 건강 포럼>, n° 50, Saint-Cloud, 2016년. 

(6) Philippe Baqué, ‘Ehpad: un produit rentable et attractif 요양시설: 수익성 있고 매력적인 상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3월호. 

(7) 의료 전문가들, ‘우리는 응급실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Un collectif de professionnels de santé, ‘Nous apportons notre soutien à la grève des urgentistes’, <Libération>, 파리, 2019년 6월 13일. 

(8) André Grimaldi, 『Les Maladies chroniques. Vers la troisième médecine 만성 질환. 세 번째 약을 찾아서』, <Odile Jacob>, 파리, 2017년. 

(9) <France Inter>, 2018년 2월 14일.

(10) Edwy Plenel & Jean-Jacques Bourdin의 대담, Mediapart/BFM TV, 2018년 4월 15일. 

(11) Pierre-Louis Bras, ‘2009년 이후 ONDAM과 병원의 상황 L’Ondam et la situation des hôpitaux depuis 2009’, <Les Tribunes de la santé 건강 포럼>, n° 59, Saint-Cloud, 2019년. 

(12) ‘항암제: 너무 비싼 가격 Anticancéreux: prix extravagants’, <Prescrire>, n° 342, 파리, 2012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