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무지가 자극한 미국과 이란의 갈등

2019-10-31     세르주 알리미 외

 

이란과 미국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정권인 오바마 정부가 지난 2015년 주요 강대국과 함께 체결한 이란 핵 협정에 불만을 표출했고, 이후 이란에 대한 선전 포고와 금수 조치가 이뤄지자 이란은 미국의 드론(무인정찰기) 격추로 맞불을 놓았다. 그런데, 이런 양국의 접전을 다루는 미국의 보도행태가 이상하다.

 

이란의 드론 한 대가 플로리다 상공에서, 혹은 플로리다 해안 가까운 곳에서 격추됐다고 치자. 그럼 미국 언론에서는 드론의 정확한 위치를 따지기보다 이란의 정찰기가 왜 테헤란에서 1만 2,000km나 떨어진 이곳에 와 있는지를 두고 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6월 20일 (미국 측 주장대로) 국제 공역을 정찰했든, 혹은 (이란 측 주장대로) 자국의 영공을 침범했든 이란이 미국 측 드론 1기를 격침했을 때, 미국의 무인정찰기가 아랍-페르시아만에 와 있는 합당한 이유에 대해 자문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렇듯 우리는 국제법을 위반한 나라가 자유 민주주의 체제하의 (좋은) 나라인지 혹은 권위주의 정권의 (나쁜) 나라인지에 따라 차별화하는 서구 언론의 행태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 

캐나다 구엘프 험버 대학의 미디어 전문가 그레고리 슈팍에 따르면, 이와 같이 워싱턴과 테헤란 사이에 연일 긴장이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핵무기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이란을 항상 위협적인 국가로 표현하다 보면 결국 이 나라를 공격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어 그는 “이란이 미국을 위협한다기보다는 사실 미국이 이란을 위협한다고 보는 게 지금의 현 상황에 더 가깝다”면서 “현재 이란 국민들이 식량과 의료품을 지원받지 못하도록 제재를 가하면서 이란 경제를 무너뜨리고, 각종 군사기지와 육해공 병력으로 이란을 에워싸는 장본인은 바로 미국”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란의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는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1) 

가해자인 미국의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는 이 주객전도의 상황은 과거 사건에 대한 선별적인 기억이 만들어낸 결과다. 잊고 싶은 기억은 정치적으로 가공하고, 일부 사실은 의도적으로 누락해 언론공작을 펴낸 결과인 셈이다. 따라서 오늘날 서구권에서 미국이 이란의 여객기 655편을 격침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1988년 7월 3일, 이란 영해를 정찰하던 미국의 순양함 USS 빈센스 함은 승객 290명을 싣고 두바이로 향하던 여객기 한 대를 격침했다. 

미국은 일단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한 뒤, 이어 빈센스 함이 국제법상 어느 나라의 영해에도 속해있지 않은 공해 위를 순항 중이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빈센스 함을 전투기로 오해한 이란의 에어버스 여객기가 빈센스 함을 향해 위협적으로 하강했다고 주장했지만, 곧 두 주장 모두 거짓임이 밝혀졌다. 이에 대해 미국은 “심히 유감”임을 표명한 뒤 유가족 측에 6,180만 달러를 배상했다. 

이 사건은 (물론 당사자인 이란을 제외하고) 세간의 기억에서 빠르게 지워졌다. 반면 그보다 앞서 일어난 소련의 여객기 격침 사고는 서구권에서 오래도록 매우 강렬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두 개의 추락사건, 전혀 다른 보도

냉전이 한창이던 1983년 9월 1일, 승객 296명을 싣고 서울-뉴욕 구간을 운항하던 대한항공(KAL) 007편 보잉 747 여객기는 사고로 항로를 이탈해 한밤중에, 그것도 민감한 군사시설 상공의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소련의 정찰기인 Su(수호이) 15기는 이를 전투기로 오해해 요격했고, 소련 측은 민항기를 정찰기로 오해해 벌어진 사건이라 해명했다. 상당히 많은 자료로 뒷받침되고 있는 이들 두 사건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비슷한 상황을 차별적으로 다루는 언론의 보도방식에 대해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대한항공 007편과 이란항공 655편의 격침사건에 대한 언론의 차별적 보도방식에서는 서구 언론, 특히 (전 세계 언론에서 인용하는) 미국 언론의 이념적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소련 정찰기가 KAL기를 격침한 직후, <뉴욕타임스>(1983년 9월 2일)는 ‘공중에서의 살상’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내보내며 “한 나라가 무고한 여객기를 격침한 일에 대해서는 그 어떤 변명의 여지도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미국이 여객기를 격침한 장본인이 되자 이제는 “한 나라가 무고한 여객기를 격침한 일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생겨난다. 해당 일간지는 이에 대해 “끔찍한 사건이긴 하나,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미 해군 입장에선 격침이 불가피했다”는 사설을 게재했기 때문이다(1988년 7월 5일). 게다가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에게 기이하게도 역지사지의 관점을 제시한다. “(미사일 발사를 명령한 윌리엄 C. 로저스) 해군 제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해당 여객기에 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그를 비난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심지어 동반 책임론까지 들먹였다. 이란이 “자국도 연루된 전투지역에서 민항기들의 접근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2) 

1991년 두 사건을 비교 연구한 로버트 엔트맨 정치학 교수는 소련의 격침사고에 대한 미국 언론의 전반적인 보도방침이 “정신적인 충격을 강조하고 가해 당사국의 책임론을 부각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에 반해 미국의 격침사고와 관련해서는 가해 당사국의 책임론을 축소하고, 기술력이 크게 좌우하는 군사작전에 얽힌 복잡한 문제들에 역점을 뒀다.”(3)

이런 편파적 보도양상은 사안을 다루는 비중이나 기사에서 사용되는 용어나 표현, 그리고 피해자에 대한 지칭 방식에서도 확인된다. KAL기 폭파사고 직후 이 사건이 표제 기사로 다뤄진 비중은 이란 항공기 사건의 2~3배에 달했다. 그리고 <타임>지와 <뉴스위크>지에서 KAL기 사고를 다룬 비중은 51페이지에 달한 반면, 이란 항공기의 경우는 20페이지에 불과했다. <뉴욕타임스>에서도 KAL기 관련 기사는 286건이나 내보낸 반면 이란 항공기 관련 기사는 102건 정도에 그쳤다. 소련의 여객기 폭파 이후에는 표지 기사 제목에서도 저마다 분기탱천한 모습을 보여준다. “공중에서의 살상: 피도 눈물도 없는 매복 폭격”(<뉴스위크>, 1983년 9월 13일), “죽음의 폭격: 하늘에서의 만행 –민항기 격침한 소련”(<타임>, 1983년 9월 13일), “소련, 왜 이런 일까지 저지르나?”(뉴스위크, 1983년 9월 19일) 같은 제목들이 표지를 수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객기를 격침한 무자비한 미사일의 국기가 성조기로 바뀌자 곧 어조가 달라진다. 행위의 잔인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을뿐더러 의도적인 공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표현 방식도 능동태에서 수동태로 바뀌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됐는가?”(<뉴스위크>, 1988년 7월 18일) 같은 식으로 마치 참사의 주체가 없는 것처럼 표현한다. <타임>지 같은 경우는 아예 화성 탐사에 대한 기사를 표지로 내보내고 항공기 사고는 “걸프만에서 일어난 비극”이라는 제목의 내지 기사로만 다뤘다.

KAL기 사고 관련 보도에서 <워싱턴포스트>지와 <뉴욕타임스>지가 가장 많이 사용한 수식어는 ‘무자비한’, ‘잔인한’, ‘고의적인’, ‘중죄의’ 등이었고, 이란 항공기 사고의 경우 ‘실수에 의한’, ‘비극적인’, ‘비운의’, ‘이해가 가능한’, ‘정당한’ 등의 형용사를 사용했다. 피해자에 대한 시각도 사고 주체에 따라 달라졌다. 전자의 경우, ‘무고한 사람들’이라거나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경험’이라는 식의 서정적인 표현을 쓴 반면 후자에서는 ‘승객’, ‘여행객’, ‘사망자’ 같은 중립적인 표현만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왜곡과 가짜뉴스

오늘날의 가짜뉴스보다는 유행에 뒤처진 면이 있지만, 자국에 불리한 기술은 피하려는 이런 보도방식은 정보의 왜곡을 야기하며 전형적인 거짓 보도행태를 확산한다. 하지만 이란을 미워하고 미 국방성의 거짓말을 퍼뜨려주면 언론계에서의 성공은 따놓은 당상이다. <워싱턴포스트>지의 저명한 논설 기자 리처드 코헨도 “페르시아인들은 융단 상인들처럼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 기술했고(2009년 9월 28일),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체결한 제네바 협약은 “뮌헨 협약보다 최악”(2013년 11월 25일)이라고 논평한 이스라엘 우파 변호사 겸 저널리스트 브렛 스티븐스 역시 <뉴욕타임스>의 유명 칼럼니스트로 자리매김했다. 

사우디를 비판하던 고정 칼럼니스트 자말 카슈크지가 2018년 10월 무참하게 토막 살해당했음에도 <워싱턴포스트>지에는 이란의 적국인 사우디 왕실에 대한 찬사가 넘쳐난다.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트럼프 현 대통령을 선호하는 것은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PBS 방송국도 이란과 관련해선 입장이 다르다. 언론인 베이비드 브룩스의 경우,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이 자제하길 바랐지만, 이는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라고 논평했는데(2018년 5월 11일), 그에 의하면 “이란은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이는 국가이고, 전 세계에 폭력과 테러를 수출한다. 따라서 트럼프는 그런 이란에 맞서기에 합당한 인물이다. 어쩌면 지금의 미 대통령은 가방끈이 긴 똑똑한 사람들보다 이런 부류를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전쟁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목표 국가의 역사나 문명에 대해 전혀 모르는 편이 낫기 때문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 박사 출신으로 파리 8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2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 합류한 뒤 2008년 이그나시오 라모네의 뒤를 이어 발행인 겸 편집인 자리에 올랐다. 신자유주의 문제, 특히 경제와 사회,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 신자유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그 폐해를 집중 조명해 왔다.

피에르 랭베르 Pierre Rimbert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번역위원 

 

(1) Gregory Shupak, ‘Creating a climate for war with Iran’, <Fairness and Accuracy in Reporting(FAIR)>, 2019년 7월 2일, https://fair.org

(2) ‘KAL 007 and Iran Air 655. Comparing the coverage’, <Extra!>, no. 4, New York, 1988년 7~8월호.

(3) Robert M. Entman, ‘Framing US coverage of international news: Contrasts in narratives of the KAL and Iran Air incidents’, <Journal of Communication>, vol. 41, no. 4, Washington, DC, 1991년 12월. 뒷부분의 인용 내용 및 관련 자료는 이 기사에서 참고했다. 이와 관련한 조사 작업에 도움을 준 클로에 보나푸 Chloé Bonafoux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