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부보다 우세한 사헬 지역 프랑스군

2019-10-31     레미 카라욜 l 기자

 

프랑스군의 바르칸 작전, UN의 다국적군 파병 등 대대적인 군사 개입에도 불구하고 말리의 수도와 지방에서는 시민학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최악의 상황을 유발한 원인 중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사헬 지역을 꽉 잡고 있는 프랑스군이 효율성을 내세워 외무부로 하여금 오로지 안보문제에만 집중하도록 편협한 시각을 가지게 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프랑스 공군은 차드의 반정부 무장단체 UFR(저항군사동맹)의 트럭 수십 대를 폭파했다. 언론은 “과거 차드를 식민 지배했던 프랑스가 독립 이후에도 내정간섭을 계속하고 있다”고 꼬집었다.(1) UFR의 대원 몇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에서 한 가지 주목할 부분이 있다. 프랑스로서는 거의 최초로 차드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무력을 동원해 개입함으로써, 동맹관계지만 독재자로 악명 높은 이드리스 데비 이트노 차드 대통령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것이다.(2)

“프랑스는 차드군이 승리할 여건을 마련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반군 처단에 나서고 있다”고 정치학자인 마리엘 드보스는 지적했다.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반군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명시한 차드 독재정권의 선전물을 증거로 들어, 프랑스 공군의 개입이 말리의 세르발 작전과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2013년 1월, 세르발 작전은 말리의 수도 바마코를 위협하던 이슬람 반군의 진격을 막는 데 성공한 바 있다.

2011년 처음 당선됐고, 2016년에 재선에 성공한 마하마두 이수푸 니제르 대통령도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수많은 사례가 있었음에도, 차드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다. 이수푸 대통령은, 사헬 지역 테러리스트들의 움직임을 감시한다는 공식적인 명분하에 니아메에 본부를 두고 드론을 띄우는 프랑스군에 백지 위임장을 준 상태다.(3)

“프랑스군은 군대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테러리스트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국가의 수장 자리에 강력한 인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지역의 프랑스 외교관이 설명했다. “독재정권을 지원할 경우 시민들이 테러리스트 집단에 동참하거나, 적어도 테러리스트 그룹을 지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외교관들의 자리를 채운 “장군들의 복수”

2013년 이후 사하라와 사헬 지역에 프랑스군이 개입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프랑스군 참모부의 정치·외교적 영향력은 날로 커지고 있다. “오늘날 사헬 지역에서는 안보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결과적으로 군은 정치인들에게 필수적인 대화 상대자가 됐습니다. 그들의 분석이 우리 외교관들의 분석보다 더 크게 고려됩니다.” 한 외교관이 씁쓸하게 말했다. 사헬 지역의 일부 국가들에서는 심지어 국가 수장이 대사보다 군 간부를 우선적인 대화 상대자로 여긴다. 

2013~2016년 은자메나, 2016~2018년 바마코의 대사였던 이블린 드코르는 이런 ‘경쟁 관계’에 대놓고 불만을 표시했다. 2018년 바마코에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2년 만에 프랑스로 복귀한 그녀는, 한직으로 알려진 TAAF(프랑스령 남부 및 남극 지역)의 고위 관리자로 임명됐다. 프랑스 외무성에는 그녀가 군의 눈 밖에 나 좌천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녀의 상황은 군의 선택을 따라야 하는 프랑스 외교관들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두 가지 흐름과 2013년부터 가속화된 상황이 맞물린 결과다. 첫 번째 흐름은 프랑스 외무부의 세력 약화다. “군은 외교관들이 기피하는 자리를 채웠을 뿐입니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로랑 파비우스와 불화를 겪으면서 2013년 좌천된 외무부의 서아프리카부 부대표 로랑 비고가 강조했다. 지난 30년 동안 외무부의 인원은 53% 감소했는데, 줄어든 인원은 대부분 아프리카 대륙 담당 직원들이었다. 2017년 의회 보고서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아프리카 및 인도양 지역 담당 직원들의 약 40%가 줄었다.(4) 이런 대규모 인원 감축의 원인으로는 아프리카가 외교관들이 선호하는 근무지가 아니라는 점이 꼽힌다. 

“반대로, 군에서는 아프리카 근무가 좋은 경험이자 자부심의 상징입니다. 군은 이 지역에 투자하고 외교관들의 역할을 ‘대체’함에 있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5) 연구원인 알린 르뵈프와 엘렌 케노-수아레즈가 말했다. 외무부의 영향력 약화와 더불어, 두 번째 흐름이 30여 년 전부터 관찰되고 있다. 공공업무와 정치적·외교적 선택에서 군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레고리 다오는 이런 현상을 “장군들의 복수”라 불렀다.(6) 

 

“평화로운 식민지를 이룬 영광의 주역들”

파리 1대학 교수인 다오에 의하면, 알제리 전쟁 이후 오랜 시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군이 최근 들어 정치적 사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해외 군사작전이 기술화되고 작전 추진과정이 관료화되면서 군 장교들이 외교정책과 관련된 의사 결정에 부분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많아졌다”고 다오는 설명했다. 그들의 전문성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프랑스는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한 후에도 기술적·군사적 지원을 계속했기 때문에 군은 아프리카와 관계의 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전문가는 현재 상황에 꼭 필요한 경쟁력을 갖춘 인재”로 평가받는다”고 다오는 말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전략을 고수했던 그들은 전술과 실전에 능하다. 게다가 최근 20년 동안 특히 대서양동맹을 중심으로 “억제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조제프 갈리에니와 토마 뷔고 사령관처럼 “평화로운 식민지 시대를 이뤄낸 영광의 주역들”이 주창한 폭동진압 이론이 다시 지지를 받게 되면서, 군은 한층 더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됐다. 

이처럼 외교관들이 소외될 경우 “현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려워지고 채용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분석의 품질이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로랑 비고는 우려했다. “외무부는 더 이상 제안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미 군이 현지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외교관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견을 냅니다. ‘군’의 의견을 말이지요.” 국가를 재건할 능력이 없는 이브라힘 부바카르 케이타 말리 대통령을 프랑스가 계속해서 지원하는 이유도, 그가 프랑스군에 말리 국토 내에서 전적인 자유를 보장해주기 때문으로 추측된다.(7)

군의 영향력은 엘리제궁 내에서도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대통령은 군의 최고 지도자로서 외부 활동(OPEX)에 대한 명령을 내린다.(8) 의회 보고서에 의하면 “대통령 특별 참모총장의 권한도 계속해서 늘고 있으며, 외무부 외 인사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9)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2007~2012)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2012~2017)의 대통령 특별 참모총장이었던 브누아 푸가 장군 역시 2013년 세르발 작전을 추진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특공대를 긴급 투입하도록 올랑드 대통령을 설득했다. 프랑스의 ‘아프리카통’으로 불리는 푸가 장군은 해군 출신으로, 프랑스 해군의 역사는 식민지 건설 과정과 관련이 깊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르 드리앙의 설득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로랑 파비우스는 아프리카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의 신임도 받지 못하고 있었지요. 반대로 르 드리앙은 올랑드 대통령의 측근이었고, 말리의 세르발 작전과 뒤이어 2013년 12월 중앙아프리카의 상가리스 작전까지 주도하면서 단숨에 거물급으로 떠올랐습니다.” 익명의 외교관이 회고했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에서 외무부 장관이 된 르 드리앙은 아프리카 ‘세력권’ 국가 수장들의 대화 상대자를 자처했고, 그가 이끄는 참모부는 곧 엘리제궁의 아프리카 담당 부서와 외무부의 행정처보다 더 큰 힘을 갖게 됐다. 인권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르 드리앙은 차드의 데비 대통령을 비롯해 콩고-브라자빌의 드니 사수 은게소 대통령과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도 개인적인 친분을 자랑한다.

 

“우리는 테러리스트와 전쟁 중”

지하디스트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안보문제가 중요해짐에 따라, 모든 것을 선악의 대결 구도로 보는 이분법적인 시각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 무장단체들은 ‘광신도적인’ 테러리스트보다는 사회적·경제적 요구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모인 지역단체에 가깝다. 이들의 어려움이 해결된다면, 2017년 4월 말리 당국이 개최한 국가회의에서 언급됐듯 협상을 할 필요조차 없어진다. 그러나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장-마르크 아이로는 이런 제안을 무시한 채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를 상대로 명백한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법은 오로지 한 가지뿐입니다.” 

몇 년 전부터는 프랑스 개발청(AFD)에서도 군의 입김이 세지고 있다. 지난 5월 22일 하원의원들의 질문에, AFD의 대표 레미 리우는 “AFD의 대표직에 올랐을 때부터 군 참모부와 안보 및 개발 주제에 관해 더 긴밀하게 협력하기를 원했다”고 답했다. 협력은 직원 교환을 통해 구체화됐다. 현재 장교 한 명이 AFD에서 파견 근무 중이고, AFD 소속 공무원 한 명이 은자메나의 바르칸 작전 본부에서 근무하고 있다. 심지어 연구소에서 대학교 관계자들과 군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군은 당연히 만족하고 있다. 다오에 의하면, 군의 입장에서는 해당 구역에서 군 조직과 민간 주체들 간의 관계를 조율하는 모든 활동을 지칭하는 민군 협력(Cimic)이 “현지 주민들로 하여금 군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군에는 군사적 이익이 다른 고려사항들에 우선하게 마련이다. AFD에 파견 구역의 프로젝트에 더 많은 돈을 지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연구원들과 개발정책 담당자들로서는 이가 갈릴 일이다. “어려운 문제입니다. 두 조직은 환경부터 다릅니다. 개발 담당자들은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반면, 군은 단기적으로만 생각합니다.” AFD의 간부가 털어놓았다.

우물을 파고, 보건소와 시장을 만들고, 식량을 배분하는 등 프랑스군은 가시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함으로써 작전지역 거주민들의 마음을 빨리 얻고자 한다. 그러나 ‘개발자들’로서는 당국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이런 프로젝트가 양날의 검이다. 이미 바닥을 친 정부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리고, 정부 기관을 향한 현지 주민들의 불신을 한층 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식 접근법, 과연 그 효과는?

이처럼 프랑스에서는 오랫동안 관심 밖이었던 3D(외교·국방·개발)의 개념이 마크롱의 집권과 함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통합적 접근법의 지지자들은 이 접근법이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적용했던 방식과는 차별화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식 접근법은 지방 당국을 지원하는 민군 협력팀을 설치함으로써 군사·경제·사회·외교 전략들의 상호작용을 이끌어내는 방법이었다. 사헬 지역에 프랑스 특사로 파견된 장-마르크 샤테니에는 “미국식 접근법의 첫 번째 목표가 현지 주민들로 하여금 군의 존재를 인정하게 하는 것이었던 반면, 프랑스의 통합적 접근법은 목표들의 우선순위를 정해놓지 않고 지속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최적의 조합을 찾아가는 것이 핵심”이라고 적당히 포장해가며 설명했다. 

그러나 프랑스식 접근법의 효과는 증명된 바가 없다. 2013년 프랑스가 말리 사태에 개입한 이후, 군은 지하디스트 지도부를 포함해 지하디스트로 추정되는 인물 수백 명을 사살했다. 또한, 차량과 무기의 은닉처 수십 곳을 폭파했으며, 시민들을 위해 셀 수 없이 많은 우물을 팠다. 그러나 사하라 및 사헬 지역 전체적으로 폭력과 민간인 희생자의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은 희생자가 많았다. 초기에 말리 북부와 리비아 남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테러리스트’ 그룹들은 말리 중부, 부르키나파소 북부와 동부, 니제르 북서부에 이르기까지 활동 범위를 크게 넓혔으며, 이제는 코트디부아르, 베냉과 같은 서아프리카 연안국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여러 단체들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민간인들끼리 서로 공격하는 일도 많아졌다. 말리의 경우 지난 18개월 동안 마을 습격이 급증했다. UN 인권 고등판무관의 집계에 의하면, 2018년 3월부터 2019년 3월까지 6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6만 6,000명 이상이 거주지를 옮겼다. 2019년 3월 23일에는 도곤족 출신의 민병대원 단 나 앙바사구가 말리 중부에 위치한 풀라족 마을을 습격해 157명을 사살하고 마을 일부를 불태웠다. 부르키나파소와 차드에서도 이런 학살사건들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군에는 ‘평화정착’ 작전이 진행되는 중에 사건 책임자들을 처벌한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지방군과 해외 파병군을 늘리고, 병력을 강화하고, 안보와 개발 문제를 섬세하게 아우르는 대책을 수립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도,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하고 있습니다.” 외무부의 안보 국방 협력부 대표였던 브뤼노 클레망-볼레 장군이 말했다.(10) “안보제일주의의 악순환은 이미 한계를 드러냈다”고 그는 덧붙였다. 현재 1만 3,000여 명의 UN 다국적군, 4,500여 명의 프랑스군, 말리 정부군, 그리고 미국, 이탈리아, 독일에서 파견된 수백 명의 군이 말리의 안정화를 위해 니제르를 중심으로 사헬 지역 곳곳에 주둔 중이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글·레미 카라욜 Rémi Carayol
기자

번역·김소연 dec2323@gmail.com
번역위원 

 

(1) Marielle Debos, ‘Que fait l’armée française au Tchad 프랑스군은 차드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Libération>, Paris, 2019년 2월 8일.

(2) Delphine Lecoutre, ‘Le Tchad, un ami indispensable mais encombrant 차드, 꼭 필요하지만 귀찮은 친구’, <Manière de voir> n° 165, ‘France Afrique. Domination et émancipation (프랑스 아프리카. 정복과 해방)’, 2019년 6~7월.

(3) Rémi Carayol, ‘Les migrants dans la nasse d’Agadez 니제르 사막 한가운데 버려진 난민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9년 6월호·한국어판 2019년 5월호.

(4) Henri de Raincourt, Hélène Conway-Mouret, ‘Sahel: repenser l’aide publique au développement 사헬 지역, 정부개발원조에 대한 재고’, <프랑스 상원의 외교, 국방, 군사 문제 위원회가 작성한 정보 보고서> n° 728, Paris, 2016년 6월 29일.

(5) Aline Leboeuf, Hélène Quénot-Suarez, ‘La politique africaine de la France sous François Hollande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대아프리카 정책’, 프랑스국제관계연구소(IFRI), Paris, 2014.

(6) Grégory Daho, ‘L’érosion des tabous algériens, une autre explication de la transformation des organisations militaires en France 알제리 금기의 소멸, 프랑스군 조직 변화에 대한 또 다른 해석’, <Revue française de science politique>, Paris, n° 64/1, 2014년 2월.

(7) Rémi Carayol, ‘Au Mali, la guerre n’a rien réglé 국가안보가 무너진 말리의 비극’,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8년 7월호.

(8) Philippe Leymarie, ‘De N’Djamena à Kaboul, opérations françaises secrètes 은자메나에서 카불까지, 프랑스의 비밀스러운 활동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8년 3월호.

(9) Jean-Claude Guibal & Philippe Baumel, ‘La stabilité et le développement de l’Afrique francophone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국가들의 안정과 개발’, <프랑스 하원의 외교문제 위원회가 제출한 정보 보고서> n° 2746, Paris, 2015년 5월 6일.

(10) Bruno Clément-Bollée, ‘Au Sahel, arrêtons le(s) massacre(s) 사헬 지역의 학살(들)을 중단하자’, Jeune Afrique, Paris, 2019년 6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