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의 고통

남아공의 땅은 아직도 피가 마르지 않는다

2019-10-31     세드릭 구베르네 l 기자

 

9월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외국인 혐오에 따른 폭력사태가 발발해 이민 노동자 10명이 사망했다. 남아공은 아프리카 대륙의 경제 대국이지만, 불평등이 만연해 있다. 경제 활동인구 중 무려 40%가 실업자이며, 이 중 대부분이 흑인이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여전히 방치된 토지분배 문제는 심각하다. 현재 민간토지의 3/4을 백인 부농이 소유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당이 지난 5월 8일 개최된 총선에서도 이변 없는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득표율은 57.5%에 불과해, 1994년 남아공 첫 민주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배출하며 집권한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백인 부농이 민간토지의 3/4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에서, 토지 재분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제1여당의 무능함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이 표출된 것이다. 

콰줄루나탈의 푸르른 초원, 사탕수수밭과 멋진 전원주택 사이에 작고 허름한 판자촌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는 아프리카너(Afrikaner: 남아공에 정착한 네덜란드계 백인-역주) 농장주가 고용한 줄루족과 호사족 노동자들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고 있다. 이스턴케이프주 인근 지역에서 온 이 노동자들은, 1981년 농장주를 따라 이곳으로 이주한 이후 지금까지 1,500~3,000랜드(약 90~185유로)의 저임금에 착취당하고 있다. 이는 2019년 1월 확정된 최저임금 3,500랜드(약 215유로)를 훨씬 밑도는 수준이다. 

 

조상의 무덤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

“농장주는 2016년 다른 백인에게 농지를 팔았어요. 새 농장주는 우리의 퇴거를 원했고요.” 줄루족 농민 데이비드 티가 설명했다. 새 농장주는 변호사를 대동해 농장에 기거하던 이들에게 토지를 포기하는 대가로 5만 랜드(약 3,080유로)를 제안했고, 총 15가구 중 2가구가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농장주는 불도저를 끌고 와서 제안을 거부한 농민들을 위협하고 있다. 

데이비드는 옆의 밭을 가리키며 하소연했다. “바로 저기에 우리 조상의 무덤이 있어요. 그런데 백인들이 출입을 금지시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십자가까지 뽑아버렸어요.” 그는 “이곳은 조상 때부터 내려온 삶의 터전”이라고 주장했다. 이곳에는 수도도, 의료시설도 없다. 일주일에 두 번 저수통에 물을 공급하러 오는 트럭과, 드문드문 방문하는 이동식 병원을 통해 생활용수와 의료서비스를 해결해야 한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주민들은 “도대체 우리가 어디로 가서 살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주민 보니스와 비는 “이곳에 40년이나 뿌리를 내리고 정착한 주민들은 당연히 토지에 대한 권리가 있으며, 그들에게 폭력에 노출될 것이 뻔한 시내로 이주하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뷰 중 택시가 어느 집 앞에서 멈췄다. 창문으로 아이들 머리와 팔이 삐져나와 있다. 아이들이 무려 8명이나 택시에서 우르르 내린다. 아프리카민족회의(ANC)당은 스쿨버스 운행을 총선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주민들은 장을 보러 가려면 20km나 떨어진 호위크까지 택시를 타거나, 차를 얻어 타는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남아공 민간토지 3,700만 헥타르 중 약 3/4은 백인 소유이며(1) 총 3만 개 농장에서 약 84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2) 1979년부터 흑인 농민들을 지원하고 있는 피터마리츠버그 소재 농촌진흥협회(AFRA) 회장 로렐 오에틀은 “흑인 농민들은 심한 고초를 겪고 있다”고 증언했다. 계절 노동자들은 몇 달씩 무수입으로 살아가고, 농산물로 임금을 대체해서 받는 경우도 있으며 성폭력을 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리고 흑인들이 조상의 무덤에 방문하려면, 백인들과 충돌을 피하기 어렵다. 이스턴케이프 대학교수이자, 빈곤문제 및 토지분배 문제 전문가 벤 커즌스는 “농업의 기계화로, 흑인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분석했다. 1994년에는 1헥타르당 투입되는 노동자 수가 1명이었으나 오늘날에는 2헥타르당 1명이 투입된다. 즉, 일자리가 절반으로 줄어든 셈이다.

‘Boer(보어)’는 네덜란드어로 ‘농민’이라는 뜻이다. 17세기에 남아프리카에 당도한 네덜란드 식민자, 보어인은 곧 원주민의 토지를 강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보어인들과 남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식민지 확장에 나선 영국인들 사이에 앵글로-보어전쟁(1899~1902)이 발발했다. 이어 두 민족은 남아공에서 공존의 길을 가기로 합의해 종전을 선언한 후, 제도적으로 흑인 원주민의 토지 약탈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보어인과 영국인이 1차 대전에서 연맹을 맺기도 한다.(3)

1913년 제정한 원주민 토지법(Native Land Act)은 ‘원주민’의 토지 소유율을 전 농지 중 7%로 제한했고(1936년 13%로 확대), 농민 400만 명이 토지를 빼앗겼다. 남아프리카 인권위원회(SAHRC) 회장 테리소 티판얀느는 “원주민 토지법의 목적은 노동력 착취였으며, 흑인 농민은 소작농이나 광부가 됐다”며 비난했다. 크론스타드(오렌지자유국)에서 토지를 몰수당했던 테리소 티판얀느 인권위 회장은 “흑인 원주민이 오직 힘이 없어 자기 땅을 빼앗기는 심정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라고 토로했다. 

원주민 토지법은 광업 분야에서 백인의 일자리 보장정책까지 포함한 명백한 인종차별 법안이었다. ANC는 이 법안이 논의단계에 있던 1912년, 원주민 토지법을 제지할 목적으로 창당됐다. 그리고 1955년에는 ‘토지에서 땀을 흘리는 농민’을 위한 정당한 토지분배를 주장하는 자유헌장을 발표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ANC는 당시 시류와 타협했다. ANC는 국제 금융기관의 원조를 받고,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마지막 대통령, 프레데릭 드 클레르크와의 합의를 끌어내고자(드 클레르크 대통령은 당시 ANC의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와 대타협을 통해 아파르트헤이트를 종결시켰다-역주), 사회주의 대신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전향했다.

 

20년 만에 이뤄진 약속, 달라진 것은 없다

1996년 정부는 5년 이내에 토지의 30%를 흑인들에게 재분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소작농들이 강제 퇴거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토지 일부를 요구할 권리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6년에는 소작농보호법(LTA), 그리고 1997년에는 거주권확대법(ESTA)을 시행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사유재산권을 중시하는 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법안 시행 10년 후인 2006년, 소작농들에게 재분배하기로 했던 농지 8,700만 헥타르 중 실제로 소작농들에게 소유권이 주어진 것은 3.1%에 불과했다.(4) 2009년 야콥 주마 정부는 토지 재분배 문제를 주요 국정 현안으로 지정해 농촌진흥토지개혁부(DRDLR)를 신설했으나, 이 기관에 편성된 예산은 전체 국가 예산의 1%도 되지 않았다.(5) 

헥타르 당 지가(地價)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토지를 배당받으려면, 해당 토지면적을 정확히 산정해 신청서를 작성한 다음, 무려 5개 기관에서 일일이 소모적인 심사를 거쳐야만 정부가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할 금액이 결정된다. 그런데 토지 배당은 복불복이어서 토지 배당을 받기 위한 부정부패와 비리가 비일비재하다. 이스턴케이프 대학의 토지분배 문제 전문가 루쓰 홀 교수는 “토지 배당은 토지가 정작 필요한 이들이 아닌, 기득권층에게 토지를 분배하는 문제를 야기했다”라고 지적했다.(6)  

2017년 12월, ANC는 백인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해 흑인들에게 재분배하고자, ‘무상토지수용(EWC: The expropriation without compensation)’을 위한 결의안을 표결했다. 2018년 2월 사퇴한 주마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도한 이 결의안의 목적은 좌파 정당 경제자유전사(EFF)의 지지율 상승을 막고, 시릴 라마포사 신임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것이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당선 초기에는 민간소유 토지를 위협하지 않았다. 농산물 협동조합, 은행, 관련기업 등이 소속된 애그리비즈니스 협회(Agbiz)의 존 퍼체이스 대표는 지난 1월 말 “EWC를 즉각 시행하려는 ANC당내 주마 전 대통령 지지파와는 달리, 신임 대통령은 시간을 두고 착수하려 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5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은 강경한 입장으로 선회해 3월 말 에벤하에저(웨스트케이프)에서 1920년대 강제퇴거를 당한 코이족과 그리콰족에게 토지 1,566헥타르를 공식적으로 반환했다. 1996년 정부가 흑인에게 토지 재분배를 약속한 이후, 20년 만에 처음 실현된 이 토지반환에는 정부 예산 3억 6,200만 랜드(약 2,200만 유로)가 투입됐다. 대통령은 “정당한 소유주에게 토지를 반납할 때가 됐다”며 토지분배에 대해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리고 백인 농장주들에게 “정당한 토지분배를 막을 수도, 저항할 수도 없다. 함께 협력하자. 이 땅은 우리가 모두 공유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또한, 향후 토지분배 과정에서 “우리는 단 한 푼이라도 철저히 계산하고 집행하겠다”며 부정과 비리 척결을 예고하기도 했다.(7)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남아공의 토지개혁은 토지분배 구조, 농민의 삶, 그 어떤 것도 개선하지 못했다. 벤 커즌스 교수에 의하면, 토지반환 요청서는 쌓여가고 있지만, 전체 농지 중 약 8~9%만이 원주민에게 돌아갔다.(8) 토지개혁이 이렇게 성과를 보지 못한 것은 바로 집권당 ANC의 정치적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다. ‘흑인 해방의 당’이 집권 이후부터는 농촌 흑인의 민생을 돌보지 않고, 도시 흑인 중산층의 지지율을 높여 권력을 유지하는 데 몰두했다.

 

“짐바브웨의 상황이 재현될까 두렵다”

선거철마다 토지분배 문제가 거론되기는 했으나, 최근에는 주요 현안으로 급부상했다. 그 첫 번째 배경은, 백인에게 혐오감을 드러내고 토지 국유화를 주장하는 흑인 좌파 민족주의당(극좌파)의 득세다. ANC의 청년 연맹 전 의장, 줄리어스 말레마가 2013년 창당한 좌파 정당 경제자유주의전사(EFF)는 2019년 5월 총선에서 의석수를 25석에서 44석으로 확대해, 제3당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총선 결과 전체 400개 의석 중 ANC는 230석, 민주연맹(DA, 중도 우파)은 84석, 경제자유주의전사(EFF)는 44석, 줄루족 정당 잉카타자유당(IFP)은 14석, 자유전선플러스(VF+, 백인 보수파)는 10석을 차지했다. 그리고 EFF의 전 의원 안다일 엠그지타마는 2016년에 백인의 토지를 몰수해 흑인에게 돌려주자는 ‘BLF(Black First Land First)’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두 번째 배경은 ANC 내부 위기감이다. ANC 전 당수였던 제이콥 주마 대통령은 2017년, 온갖 비리 의혹에 휘말리자, 비난 여론을 잠재우고자 전략적으로 백인 농장주에 대한 반감을 부채질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백인에 대한 반감을 고조시키려 영국 마케팅 에이전시까지 동원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WhiteMonopolyCapital이라는 해시태그로 도배해 버렸다. 

17세기 남아프리카로 이주한 프랑스 위그노의 후손으로, 남아공에서 대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루소우 실리에는 다음과 같이 하소연했다. “1994년 ANC 정권 출범 이후, 백인들 사이에서 호주로의 이민 붐이 일었습니다. 정부의 계획은 모르겠지만 만약 토지수용을 당한다면 우리도 나라를 떠날 것입니다. 우리 농장에는 현재 700명의 상주노동자가 있으며, 계절노동자도 1천 명 가까이 됩니다. 이들도 걱정하고 있습니다.” 

라스테리프에서 약 2만 헥타르 토지에 농장 7개를 운영하며, 과채류를 국내외로 판매하는 실리에는 토지수용으로 경제가 무너졌던 짐바브웨의 상황이 재현될까 근심을 떨칠 수가 없다고 한다. 짐바브웨에서는 독재정치를 펼쳤던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 백인의 토지 소유권을 강제 압수해 독립전쟁 용사와 정권의 측근에게 농장을 분배했다. 그 결과 생산량은 급감했으며, 극도의 인플레이션을 겪었다.(9) 농장 대부분은 결국 파산했다. 남아공에서 토지반환을 반대하고 불평등한 토지 구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는 농장주들은 짐바브웨서 벌어진 이런 재앙이 남아공에서 재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주장한다. 

 

“남아공 흑인들의 삶, 경제적 아마겟돈” 

루스 홀 교수에 의하면, ANC는 25년이나 토지분배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왔기에, 이제는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무상토지수용(EWC)을 이행하려면, ‘정당하고 적정한’ 보상금 지급 없이는 정부가 공익을 목적으로 토지수용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1996년 헌법의 제25관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을 개정하려면 의원 2/3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즉 EFF당도 지지를 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남아공 대규모 수출 농장 연합, Agri SA에서 농지분배 문제를 담당하는 아넬리즈 크로스비는 “기본 권리를 침해하면서 유권자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헌법을 개정하려는 것이 개탄스럽다”면서도, 25년 동안이나 토지분배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흑인들 사이에 실망감이 증폭한 상황에서 농장이 파산으로 무너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농지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Agri SA는 무상토지수용(EWC)에 반대하며 ‘민관협력’(PPP)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PPP는 대규모 예산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거의 없었다.(10)

남아공 농업 경영자 연합은 역대 최악의 가뭄을 겪었던 남아공에서 무상토지수용(EWC)을 감행한다면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 주장한다.(11) 물론 라마포사 대통령이 식량안보를 위해 가장 비옥한 농지는 수용하지 않기로 했으나, 전국 농지의 15%를 차지하는 대규모 농장이 전체 농산물의 80%를 생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을 저격하면 식량안보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모든 가치 사슬 체계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Agri SA는 지가가 하락하면 생산량이 줄고, 식량 가격은 상승할 것이며, 대출 평가를 하는 은행은 대출금리를 올릴 것이라며 EWC로 인해 연쇄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이미 불확실성의 징조가 보이면서 투자자들이 남아공에서 발을 빼고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5년 이내에 외국 직접 투자를 1억 달러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2013년부터 남아공의 경제는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애그리비즈니스 협회(Agbiz) 존 퍼체이스 대표는 “10년 이래 이렇게 신용도가 낮았던 적이 없었다”고 한탄하며, 경제불황의 이유를 토지분배 문제가 야기한 불확실성, 가뭄 그리고 브렉시트를 꼽았다. 그는 남아공 사람들조차도 자국보다는 잠비아에 투자하는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남아공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2천억 랜드에 육박하는 농민 대출 중 77%가 토지를 담보로 하는 상황에서 무상토지수용(EWC)으로 지가가 하락하면, 전체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빠질 것이라 경고했다.  

하지만 강력한 무상토지수용(EWC)을 주장하는 Black First Land First(BLF)당 지도자 엠그지타마는 라마포사 대통령은 쓸모없는 토지만 수용하려 하면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유권자만 끌어들이는 토지수용은 하나 마나 한 ‘헛짓거리’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EWC로 경제불황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경제적 아마겟돈이 올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남아공에서 흑인들의 삶 자체가 이미 경제적 아마겟돈이다!”라고 반박했다. 

엠그지타마 당 지도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프리토리아 근교에 위치한 고풍스러운 저택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곳의 문은 열린 채였고, 수영장에는 물이 없었으며, 수도도 전기도 끊겨 있는 곳이었다. 그는 해외로 떠난 보어인 농장주가 버리고 간 집을 3년째 불법 점거하며 사용하는 중이었는데, 당의 슬로건 ‘White Monopoly Capital, 우리가 너희를 물리치러 왔다!’를 실천하는 것이라며 웃었다. 어릴 때 농장에서 자란 엠그지타마는 12세 때 백인 농장주에게 ‘bass’(주인님)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EFF당원이었으나, EFF가 우파로 변질했다며 탈당했고 BLF를 설립했다. 인터뷰한 지 며칠 후, 1월 말 BLF 대변인은 트위터에 학교가 무너져 백인 아이들 4명이 사망한 사건을 공개적으로 조롱해 공분을 샀다.(12) 그러나 한편, 이 사건은 BLF가 얼마나 남아공 백인들에 대한 반감이 강한지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요하네스버그에 소재한 위트와테스트란트 대학교수 겸 민주운동기금(Democracy Works Foundation) 싱크탱크 부소장 윌리엄 구메드는 “토지 문제를 감정적으로 처리하려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과거에 토지를 갈취당한 조상을 위해 복수를 하려다, 오히려 농업에 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인 농장주로부터 땅을 되찾아온다 해도, 당장 내일 먹을 식량도 없어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지만 반대로 법적 원칙에 따라 토지를 분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농민과 소작농 30만 명이 소속돼 있는 남아공 농민연합(Afasa) 의장 네오 마시테라는 남아공은 독재국가 짐바브웨와 달리 법치국가로써, 불법토지점령 없이 법을 준수하면서 무상토지수용(EWC)을 완수할 것이라 강조했다. 그는 1994년 남아공이 성공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것처럼, 이번에도 어떤 혼란이나 자본 유출 없이 남아공의 ‘시한폭탄’ 같은 토지분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EWC를 이행할 수 있도록 당국과 협조하고 있다. 

 

비단뱀과 사자로 원주민 위협하는 ‘자연보호구역’

그런데 현재 줄루족의 토지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토지분배 문제가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반투스탄(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일환으로 남아공에서 지정한 흑인 거주 지역-역주) 지역에 거주하는 줄루족의 망고수투 부세레지 왕자가 창당한 IFC와 ANC 간에 분쟁(1986년~1994년)이 이어져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남아공에서 처음으로 모든 인종에게 투표권을 주고 다민족 선거를 치른 1994년 4월 27일 바로 3일 전에, 줄루족의 왕 굿윌 즈웨리티니 카베쿠줄루(부세레지 조카)는 줄루족 소유 토지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인고냐마 신탁(Ingonyama Trust) 창설 허가를 받았다. 인고냐마 신탁(Ingoynyama Trustu)은 인고냐마 신탁협회(Ingonyama Trust Board, ITB)가 운영한다. ITB가 관리하는 토지는 2백 8십만 ha에 이르며, 이곳에 45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ITB가 줄루족 주민들의 재산을 탈취하려 한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잉카타 영토 내 우룬디에서 멀지 않은 사바나 초원에 외딴 촌락이 있다. 7가구가 거주하지만, 수도나 전기는 들어오지 않는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토코자니 느다오는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에 가족과 함께 보어인 농장주를 위해 일했으나, 노동 착취만 당한 채 결국 강제 퇴거당했다”고 말했다. 1997년 그는 토지반환을 요청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런 예고 없이 ITB가 토지 소유권을 취득한 이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느다오가 사육하던 가축들은 ITB가 들여놓은 얼룩말, 기린들과 함께 방목돼있는 상태다. 느다오는 “ITB는 심지어 비단뱀까지 풀어놓았다. 그리고 사자를 들여놓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곳은 바로 여기다. 만약 다른 곳으로 떠난다고 할지라도, 그곳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의 권리는 없다”고 호소했다. 백인 농장주에게 고용돼 일했던 다른 흑인 소작농들의 상황도 느다오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노동자들은 무상토지수용(EWC)으로 삶의 터전을 되찾길 희망한다. 

은퇴한 경찰관 봉가니 지크할리도 마을 족장이 요구해 집안의 토지를 ITB에 신탁했다. 그런데 줄루족 왕과 부족을 위해 토지를 신탁했음에도 불구하고 ITB는 연간 토지 임대료 3,000랜드를 요구했다. 그는 신탁의 겁박에도 주눅 들지 않고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줄루족만 부당하게 재산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었다. 소토족 에드워드 엠페코는 해변가에서 숙박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족장과의 분쟁 이후, 숙박업소가 신탁의 손에 넘어갔다. 물론 법정에서 에드워드 엠페코의 손을 들어주었으나, 피해보상금은 받지 못했다. 에쇼웨 인근 주민들은 ITB가 사전 동의도 없이 그들의 토지를 인디언 광부들에게 양도하려는 것을 투쟁으로 막아냈다. 토지는 공동체의 소유가 돼야 하지만, 실상은 족장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불만이 쌓여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한 주민은 “불평등한 사회 체제에 시민들이 항거했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남아공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고냐마 신탁(Ingonyama Trust)은 인터뷰 요청을 수차례 했음에도 응하지 않았다. 칼레마 모틀란테 전 대통령(2008~2009)은 조사 위원회를 구성해 수집한 증언들을 근거로, 2017년 인고냐마 신탁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리고 해산을 권고했다. 이에 잉카타자유당은 즉각 반발했다. 줄루족 왕 즈웰리티니는 “전쟁을 선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내가 제지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13) 안전상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정부는 내전이 발발할까 두려워 봉건적인 신탁을 해체하지 못하고, 정부 안에 정부가 있는 상태를 만들어 버렸다”고 분석했다. 인고냐마 신탁 창설 자체가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철폐한 ‘1994년 대합의’의 결실이었음에도,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해 향수를 품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보어족 거주지, 오라니아와 반 데르클루프를 허용했다.(14) 

아이러니하게도 즈웰리티니 줄루족 왕은 무상토지수용(EWC)을 강력히 반대하는 보어인 권리보호협회, AfriForum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특이한 결탁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루스 홀 교수는 “AriForum과 줄루족 왕은 모두 개인의 권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한 보수파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글‧세드릭 구베르네 Cédric Gouverneur
기자

번역‧정수임
번역위원

 

(1) <2017년 토지 감사 보고서>, 농촌개발 및 농지개혁 주관부서, 프리토리아, 2018년 2월 5일.

(2) Ben Cousins, Amelia Genis, Jeanette Clarke, ‘The potential of agriculture and land reform to create jobs (policy brief 51)’, Institute for Poverty, Land and Agrarian studies(Plaas), 웨스턴케이프 대학, 케이프타운, 2018년 10월.

(3) Martin Bossenbroek, 『L’Or, L’empire, et le Sang, La guerre anglo-boer(1899~1902) 금, 제국, 그리고 피, 앵글로-보어전쟁(1899~1992)』, Seuil, 파리, 2018년.

(4) Ward Anseeuw, Chris Alden, <From freedom charter to cautious land reform-Politics of land in South Africa>, 프리토리아 대학, 2011년 10월.

(5) Sabine Cessou, ‘L’ANC, aux origines d’un parti-Etat(ANC, 일당체제의 기원을 찾아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3월호·한국어판 2019년 2월호.

(6) Ruth Hall, Tembela Kepe, ‘Elite capture and State neglect: new evidence on South Africa land reform’, <Review of African Political Economy>, vol.44, n°151, 케이프타운, 2017년.

(7) Thabo Mokone, ‘Land refom can no longer be resisted-Ramaphosa’, <The Sunday Times>, 요하네스버그, 2019년 3월 23일. 

(8) Ben Cousins, ‘Land reform in South Afrika is sinking. Can it be saved?’ Plaas, 넬슨 만델라 재단, 2016년 5월. 

(9) Colette Breackman, ‘Bataille pour la terre au Zimbabwe 짐바브웨 토지를 위한 투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2년 5월.

(10) Marc Laimé, ‘les partenariats public-privés sont nuisibles et minent la démocratie 유해하고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민관협력’ Carnets d’eau, 2007년 9월 8일, http://blog.mondediplo.net.

(11) 케이프타운 지역의 경우, 이 가뭄으로 농산물 생산량이 20% 감소했으며, 59억 랜드(3억 6,000만 유로)의 경제적 손실을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식량농업정책부(BFAP: Bureau for Food and Agricultural Policies).

(12) Iavan Pijoos, ‘BLF to be reported to Human rights commission over racist Hoërskol Driehoek remarks’, <The Sunday Times>, 2019년 2월 3일.

(13) Lwandile Bhengu, ‘Zulu king says he prevented war over legal action against Ingonyama Trust’, <The Sunday Times>, 요하네스버그, 2019년 3월 14일. 

(14) James Pogue, ‘The Myth of white genocide’, <Harper’s Magazine>, 뉴욕, 2019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