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

2019-10-31     올리비에 피로네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이스라엘은 9월 17일 새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재선거를 실시했다. 그러나, 가자지구는 끝없이 무너져가고 있다. 하마스가 지휘하는 가자지구를 이스라엘은 13년 전부터 철저하게 봉쇄해왔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6월 아침, 햇빛이 가득한 해변에 늘어선 알록달록한 작은 배들이 눈에 들어온다. 빛나는 태양, 파란 하늘, 하얗게 넘실대는 파도….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풍경이 주는 착각은 오래가지 않는다. 지중해 바다는 오염됐으며 수평선에는 군함들이 줄지어 서 있고, 하늘에는 전투기와 드론이 돌아다닌다. 우리는 가자지구에 있다. 이스라엘에 포위된 가자지구는 365km²의 규모에 2백만 명이 거주 중인 과밀화된 영토다. 

 

저격대상이 돼버린 농어민들의 삶

가자지구의 가장자리에 있는 도시 베히트 라히야의 오두막집에서 우리를 맞이한 어민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스라엘은 13년 전부터 팔레스타인의 땅과 바다, 하늘을 무자비하게 봉쇄하는 중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어선들의 항해구역을 계속해서 줄여오다가 바다로의 출항마저 금지했다. 이스라엘이 내세운 이유는 연안 근처에 있는 이스라엘 영토, 주로 키부츠에 어선들이 방화 풍선과 연을 날려 보냈다는 것이다. 이틀에 걸친 전투가 소강상태로 돌아서자, 6월 18일 이스라엘은 조업을 허락했다.(1) 그러나 조업은 반경 18.5km까지만 허용됐다. 어획량이 풍부한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2006년부터 가자지구에서 집권한 하마스 정당은 이스라엘과 간접협상에서 계속해서 이 특별조치의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배들이 불과 3~4km 앞에서 해상을 감시 중이라 바로 코앞에서 보인다.” 지하드 알슐탄이 손가락으로 바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가자지구 북부 어민조합위원회의 책임자다. “바다에 팔레스타인 어민들이 있으면, 이스라엘은 경고도 없이 총을 쏘아댄다. 그래서 최근 배가 심각하게 망가지고 부상을 입은 어민들이 많다.” 2019년 1/4분기 동안 이스라엘 해군은 200번 이상 팔레스타인 어민들을 저격했다. 30여 명의 어민이 부상을 입었고, 12척의 배가 압류됐다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NGO단체 알메잔(Al-Mezan), 비슬렘(B'Tselem) 인권단체가 밝혔다. 2018년에는 어민 2명이 살해되기까지 했다.

2000년에는 가자지구의 어업 종사자가 약 1만 명이었다. 어획량이 풍부한 바다로의 접근이 금지된 후, 어민의 2/3가 사라졌다. 국제법상 접근이 허용된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해상구역 85%에 접근을 금지시켰다. 현재 어업 종사자는 약 3,500명으로 집계되며, 그들 중 95%는 빈곤선(하루에 5유로 이하) 이하에서 살고 있다. 2008년도에는 50%였다. 쿠자 방향, 칸 유니스 근처에 있는 남부의 주요 도시 중 한 촌락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비탄에 빠져있었다. 

예리한 눈매를 지닌 34세의 농민, 카레드 카데는 밭 가장자리에 있는 휴식용 텐트로 우리를 초대했다. 카데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우리에게 새참을 대접했다. 그는 이스라엘과의 국경장벽에서 몇백 m 떨어진 곳에 11두남(1.1헥타르)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세운 이 콘크리트 장벽은 국제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국경이다. 참호, 금속 방벽, 철망, 가시철사가 뒤엉킨 65km 규모의 국경장벽은 가자지구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 장벽은 300m에서 1.5km까지 다양한 깊이의 완충지대를 겸하고 있다. 이 군사 배제구역은 영토의 25%와 경작 가능한 토지 면적의 35%를 침범하고 있다. 

카데는 “우리 가족은 휴전선의 다른 편에도 20두남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1948년(이스라엘 공화국 설립연도)에 뺏겼다”라고 설명했다. 그에게 남은 작은 토지에서도 그가 마음껏 경작할 수 있는 땅은 1/3밖에 되지 않는다. 그는 “내가 소유한 밭의 나머지는 노 고 존(no-go zone)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접근하기가 어렵다. 그곳에 가려고 하면 이스라엘군이 막아서기 때문”이라며 분노를 터뜨렸다. 카데는 설명을 이어갔다. “탱크와 불도저로 입은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스라엘은 언제든지 쉽게 방아쇠를 당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까지 포함해서, 국경 지역의 모든 농민들은 저격대상이다. 간혹 전기가 들어오는 밤에 일을 했지만, 그것도 금지됐다. 그들은 아주 작은 움직임이라도 포착하면 일제사격을 퍼붓거나 폭탄을 터트린다.”

 

세계와의 단절, 아무도 살 수 없는 땅

그때 멀리서 이스라엘 장갑차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순찰을 하고 있었다. 2005년 가자에서 유대인 이주민들이 퇴거한 후 완충지대가 설정됐고, 그다음 해에 가자지구가 봉쇄되면서 수확량이 80% 감소했다. 농사가 유일한 수입원인 카데는 빚더미에 올랐다. 그는 작은 토지에서 농사를 지어 판 농작물로 한 달에 400세겔(100유로)을 벌어 생계를 잇고 있다. 노동자의 10%에 해당하는 4만 4,000명이 종사하는 농업 분야는 2014년부터 그 종사자의 수가 30% 넘게 감소하고 있다.(2)

농어민들의 처지는 연안 지역 전체가 겪고 있는 상황 그대로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의 부국장 이사벨 듀랑은 ‘재앙과도 같으며(catastrophique)’, ‘버틸 수 없는(intenable)’ 상황이라고 말했다.(3) 2012년부터 유엔은 이런 상황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사벨 듀랑은 “이집트와 합작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가 철회되지 않는다면, 2020년에는 아무도 살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4)

가자지구는 2006년에 이어 2008년~2009년 이스라엘이 두 차례에 걸쳐 일으킨 전쟁을 겪은 후 8년 전부터 세계와 단절됐다(당시 1,8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과 20여 명의 이스라엘인 사망). 그리고 2012년과 2014년, 또다시 두 차례의 전쟁(누적총계에 의하면 가자지구 거주자 2,500명 사망, 이스라엘인 72명 사망)을 겪고 난 2017년 이후,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로베르 피페 팔레스타인 영토 유엔 조정관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빠르게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 가자지구는 앞으로 거주가 불가능한 곳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5)

1948년부터 팔레스타인인의 70%는 난민이며, 그중 절반은 15세 이하다. 오늘날 실업률은 경제활동 인구의 53%에 달하며(청년층은 70%, 여성은 85%). 이는 세계적인 기록이다.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현지 경제는 무너졌다(2018년 -6.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6) 인프라는 물론, 생산력도 전멸됐다고 유엔무역개발협의회는 강조했다.(7) “최근에 일어났던 2014년 전쟁으로 파괴된 물자, 재건비만 110억 달러에 달한다.” 팔레스타인기업인협회 회장 알리 알헤엑이 말했다. 시내에 있는 본부에서 우리를 만난 그는 “1,000여 개의 공장, 작업장, 상점들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이스라엘은 우리를 경제전쟁에 빠트렸다”라고 덧붙였다. 봉쇄로 인해, 수많은 기업이 폐업하거나, 직원을 해고하거나, 급여를 삭감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전기도 물도, 약도 없는 ‘거대 감옥’

“가자지구는 거대한 감옥이다. 군사점령을 통해 가둬놓고는 폭발을 막기 위해 인도적 지원이라는 일시적 진정제를 처방한다.” 하마스 정부의 사회발전부 차관으로, 유력인사인 가지 하마드가 이렇게 요약했다. 범아랍 일간지 <알하야트(Al-Hayat)>의 공동발행인이자, 가자지구 주민인 파티 사바는 “2006년 하마스의 선거 승리 이후 우리는 모두 기한이 없는 형벌을 받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였다. “이 봉쇄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와 공모해 우리를 굴복시키기 위한 무력수단이다.”

 이스라엘의 포위 공격은 모든 일상에 영향을 주고 있다. 2006년 6월, 이스라엘이 유일한 발전소를 파괴하면서 에너지 수급이 불안정해졌다. 발전소는 일부 재건축됐지만, 중유의 부족으로 생산량은 발전가능량의 20%에 불과하다.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통해 이스라엘에서 전기를 사와야 하는데, 구입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다. 가자지구의 일상은 정전에 따라 출렁인다.

“우리는 24시간 중 8~12시간밖에 전기를 공급받지 못한다. 그나마 공급 시간도 수시로 변한다.” 34세의 언론인이자 번역가인 갸다 알 코르가 말했다. “대부분의 가정에는 정전에 대처할 발전장치가 없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결국, 냉장고에 음식물을 보관할 수도 없다. 우리는 그날그날 연명해야 한다. 2년 전에는 이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2017년 4월부터 2018년 1월까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는 경쟁 정당인 하마스를 압박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기세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가자지구 사람들은 하루 3~4시간밖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자지구 사람들은 물 부족에도 시달리고 있다. 이스라엘이 85%의 자원을 관리하는 연안 지하수층은 오염됐고, 가자지구에 주어진 지하수층의 95%는 위생에 문제가 있다.

봉쇄조치는 의료에도 큰 타격을 안겼다. 가자지구 최대병원으로 평판이 좋았던 알 시파 병원도 마찬가지다. 가자지구 사람들은 “그 병원에 들어가면, 죽은 다음에야 나올 수 있다”라며 수군거린다. 환자들은 넘쳐나고, 약품과 설비, 침대는 턱도 없이 부족한 가운데, 병원은 양로원이 돼버렸다. 필수품 수입금지 조치, 인력 부족, 전기공급 중단 그리고 이스라엘군이 고의로 입힌 부상…. 총체적 재난상태다. “우리는 모든 것이 부족하다.” 가자의 보건 당국 대변인 아슈라 알 카다르는 개탄했다. “50%가 넘는 기본 의약품을 구할 수 없고, 암 환자 65%는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수술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목숨을 건 ‘귀환의 대행진’

알 시파 병원의 통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병원에는 다리를 저는 환자가 매우 많은데, 그들 중 대부분이 청년들이다. 병원의 벽은 낡았고, 대기실에는 환자가 넘쳐나며, 의료진은 정신이 없다. 정형외과 의사 모하메드 차힌은 이스라엘 국경의 담장에서 매주 벌어지는 ‘가자의 귀환 대행진’ 시위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총상을 입은 환자들의 치료를 맡고 있다. 시위의 날인 매주 금요일, 의사들은 부상자들의 행렬을 맞이했다. “이렇게 많은 환자 중에는, 아이들도 있다”라고 차힌은 말했다. 

이스라엘은 신경세포, 관절, 근육조직을 파괴하는 폭발성 탄환을 사용한다. 이스라엘 저격수들은 가슴이나 머리를 겨냥하지 않을 때는 다리나 신체의 가장 예민한 부분을 저격한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 위해서다. 그 저격수들은 해부학 수업을 받은 듯하다. 수많은 시위자들은 평생 장애인으로 살거나 절단 수술을 받아야 한다. 의료장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엔에 의하면 ‘귀환의 대행진’이 시작된 이래 집계된 부상자는 3만 명에 이른다. 140여 명의 시위자들이 팔이나 다리를 잃었으며, 이 중 30명 이상이 아동들이다. 게다가 향후 2년 안에 절단 가능성이 있는 환자가 1,700명이다. 병원 후송을 이스라엘이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귀환의 대행진’ 시위대의 선봉에는 청년들이 나선다. 매주 수천 명이 집결하는 이 대중적인 비무장 시위는 2018년 3월 30일 시작됐다. 2018년 5월 15일 ‘Nakba’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연례기념일 전이었다.(8) Nakba는 ‘재난’이라는 뜻으로 1948년의 집단이주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1948년 집단이주 당시 8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가자지구, 서안지구, 또는 아랍의 이웃 나라로 피난을 떠났다.

금요일 오후, 우리는 시위 집결지들 중 한 곳인 말라카를 방문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가족적이었다. 안쪽에는 노인들과 다리를 저는 이들을 위해 거대한 텐트가 설치돼있었다. 확성기에서는 이 시위의 의미를 환기하는 연설이 울려 퍼졌다. 귀환의 권리를 요구하고, 미국이 바레인 콘퍼런스에서 제안한 새로운 중동평화 구상을 폐기하며, 팔레스타인 통일을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수많은 팔레스타인 국기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우리는 이스라엘 저격수와 맞설 각오가 된 용감한 청년들이 있는 위험지대에, 감히 접근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장벽 앞에 집결하자는 아이디어는 20명의 가자지구 청년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몇 년 전부터 팔레스타인에서 또는 이스라엘의 국경에서 있었던 시위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마드 아부 아르테마가 말했다. 35세의 평화주의자인 그는 차분하고 단조로운 어조로 말했다. 그와 그의 가족은 1948년 람라(Ramla)에서 추방됐다. “우리는 유엔 결의안에서 채택됐던 것처럼 이 대행진을 통해, 난민들이 고향 땅으로 돌아갈 권리와 존엄성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팔레스타인을 망치고 있는 하마스와 파타 사이의 불화를 해소하고, 통일된 팔레스타인을 위해 과격파들도 재빠르게 대행진 시위에 합류했다. 대행진에서 정당들은 오직 팔레스타인 국기만을 허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난민 문제는 국가 전체의 합의가 필요한 문제다. 따라서 모든 정당들이 대행진에 지지를 보내야 한다.” 아르테마가 우리에게 설명했다. 이스라엘에 맞서 투쟁 중인 무장정당 하마스도 이 평화로운 시위에 동참하고 있다. 하마스는 지하드,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전선(PFLP, 마르크스주의 단체) 등 다른 여러 조직과 함께 대행진 조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하마드는 말했다. “대행진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지만, 무기를 든 투쟁과는 그 방식이 다르다. 대행진은 우리의 대의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비폭력에 폭력으로 답하는 이스라엘

2018년 5월 15일까지만 지속될 예정이었던 대행진은 그 후로도 계속되고 있다. 봉쇄의 철회나 예루살렘의 방어와 같은 다른 주장들도 등장했다. 대행진은 비무장 시위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총격으로 응답하고 있다. 대행진 초기부터 50여 명의 아동과 기자, 구조대원을 포함해 2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공격에 1년 반 동안 살해당한 100여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더해야 한다. 2019년 2월, 유엔의 한 조사위원회는 대행진 시위 때 이스라엘이 저지른 폭력은 전쟁범죄나 반인륜범죄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9)

이스라엘 총리는 이런 비판을 무시했다. 베냐민 네타야후 이스라엘 총리는 시위자들이 이스라엘의 영토에 방화 풍선이나 연을 보냈기 때문에 이스라엘 시민의 주권을 보호하고, 자기방어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 시위대를 저격했다고 반박했다.(10) 그는 여론으로부터 힘을 얻었다. 이스라엘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2018년 5월 약 100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총격으로 사망한 것에 대해, ‘시위자들에게 총을 쏜 것은 정당하다’는 답변이 71%에 달했다고 한다.(11) 

비난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게도 쏟아졌다. 이스라엘 영토에 보낸 방화물체 때문에 물자피해가 생기고, 수많은 팔레스타인 시위대 희생자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와 서구언론은 청년들을 제물처럼 국경장벽 뒤에 숨은 명사수들에게 던졌다며, 하마스 등 과격파를 비난했다. 지하드의 가자 지부장이자 ‘귀환 대행진’의 국가위원회 멤버인 칼레도 알 바츄는, 이런 비난에 대해 이렇게 논박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평화적인 저항방법을 사용하라고 권장했고, 우리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행진 시위를 진행해왔다. 그럼에도 희생자가 늘자, 이제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진정한 책임자를 규탄하지 않는다. 우리와 우리 아이들을 죽이는 자는 누구인가? 훈련된 저격수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시위대의 죽음에 애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왜, 아무도 이스라엘을 제재하지 않는 것인가?” 2019년 6월 14일(12) 만난,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PFLP)의 지도자이자 대행진 조직위의 멤버인 마셰 미셰도 서구의 비난을 비판했다. 그에게 이 시위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하나는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귀환 권리에 대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대행진은 계속돼야만 한다. “나의 아버지와 형제 또한 총상을 입었다. 부상자들이 많지만, 우리의 권리와 우리의 영토를 되찾을 때까지 대행진은 계속돼야만 한다.” 33세의 모하메드 샬라는 말했다. 그는 장벽에 인접한 가장 위험한 구역으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가던 중 우리와 만났다.

그러나 청년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들려온다. 하마스가 대행진을 지휘하려 한 이후, 대행진에 하마스 색채가 강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더 이상 참가하지 않고 있다. “하마스는 이미지를 개선하고 정당성을 회복하고자 대행진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26세의 인권운동가 로아이가 말했다. 최근 몇 년간 이슬람 저항 정당인 하마스의 역할은 퇴색했다. 일부 시민들은 야하 시누아르가 이끄는 하마스가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회정책을 내놓지 않고, 권위주의와 도덕적 엄격주의만 강화한다고 비난한다.

지난 3월에는 대중시위에 대한 탄압이 있었다. ‘Bidna Na'ich(우리는 살고 싶어요)’라는 슬로건 아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물가상승과 삶의 질 추락에 대해 항의하러 모였다. 하마스는 파타가 조장한 시위라고 비난하면서 몽둥이로 대응했다. 수백 명의 시위자들이 구타와 체포의 대상이 됐다.(13) “하마스는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 우리를 진압했는데 어떻게 우리가 대행진을 지지할 수 있겠는가?” 라오아가 신랄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하마스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내 다리를 잃을 각오가 돼 있다. 그러나 최소한 목적을 가지고,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많은 청년들이 외국으로 떠날 생각만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갇혀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파타는? 파타의 수장이자 팔레스타인 정부 수반인 마흐무드 압바스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모두에서 신용을 잃었다. 평화 프로세스 당시 이스라엘과 맺은 화해정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점령지는 확대됐으며, 팔레스타인 경찰과 이스라엘 군대의 안보협력은 여론에 의해 폐기됐다.(14) 가자에서 파타 정당 집권 당시 부패가 기승을 부렸다는 점이 반발심을 일으켰고, 이는 비교적 청렴하다고 평가되는 하마스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파타가 정권을 잡았을 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날 시안지구의 상황은 더 나빠졌다. 마흐무드 압바스는 이주민 집단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점령에 대항하지도 않으며, 예루살렘을 방어하지도 않는다. 그는 유엔에서 연설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파티 사바는 설명했다. 시안지구와 가자지구 사람들 중 파타와 하마스, 양쪽 모두를 거부하며,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와 세대교체를 요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반목은 이스라엘에만 좋은 일”

 미래를 위태롭게 하는 봉쇄와 포위 공격으로 위기가 일상화된 가운데, 많은 이들이 희망을 잃었다. “나는 가자지구가 싫다. 나의 어린 시절은 세 번의 전쟁으로 파괴됐고, 나는 이곳을 떠나고 싶다.” 18세 학생인 아미라 알 아츠카가 우리에게 고백했다. 그녀는 8명의 형제자매와 직업이 없는 홀어머니와 함께, 누세랏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스라엘과의 평화를 원하는, 지적이고 멋진 사람들과 매일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한계에 이르렀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호사업 기구(UNRWA)의 가자지구 담당자 마티아스 슈말이 증언했다. “UNRWA은 28만 명의 아이들을 교육시켰고,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원조했다. 이스라엘이 한 민족 전체에 한 짓을 보면, 그들을 폭력으로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적극적인 제안도 없고 국제적 지원, 특히 아랍국가의 지원도 부족한 상황 속에서, 무엇보다 파타와 하마스 사이의 분쟁 해결이 급선무다. 2017년 10월 12일 두 정당은 가자지구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귀환을 허용하는 화해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압바스의 요구 때문에 화해 프로세스에는 진전이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장인 압바스는 하마스가 무장을 해제하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마스가 분명히 거절한 사안이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은 빈곤의 늪에 빠지고 있다. 가자지구는 마치 폭발 직전의 압력솥 같다.” 하마스의 영향력 있는 인사로, 두 정당의 화해를 원하는 아마드 유세프는 말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스라엘에 잘 대응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을 재건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권력의 공동운영 체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로 양보해야 한다.” 파타의 높은 책임자인 알 아갸도 비슷한 연설을 했다. “반목은 이스라엘에만 좋은 일이다. 그러니 반목을 그만두고 우리의 힘을 합쳐야 한다.” 어떤 이에게는 경건한 서약이며, 어떤 이에게는 긴급사항이다.
새로운 국가전략을 구상하는 데 있어 청년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까? 29세의 파타 당원인 하싼 오스타는 이렇게 주장했다. “현재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집단은 하마스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점령에 함께 투쟁하기 위해 분열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하마스의 청년당원들과 모임을 만들고 있다.” 28세의 모하메드 하니예는 대행진 조직위원회의 하마스 청년 대표를 맡고 있다. 하니예는 파타의 청년당원들과 공유하고 있는 사무실에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 역시 “이제는 공동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체하지 말고 공동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새로운 선거를 준비하고, 시안지구에서 가자지구까지 우리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미국이 계획하고,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지지하고 있는 ‘세기의 조약’이 있는 한, 단일국가란 어림없는 소리다. 평화론, 특히 팔레스타인 독립에 대한 생각은 수없이 묻혀버렸으며 가자지구는 서안지구와는 분리된 개체로 간주되고 있다. “암울한 현실이지요.” 유세프는 단언했다. 

 

 

글·올리비에 피로네 Olivier Pironet 
특파원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Tzvi Joffre, ‘IAF attacks targets in Gaza Strip after rocket fire’, <The Jerusalem Post>, ‘Israeliair force fires many missiles into Gaza’, International Middle East Media Center(IMEMC), 2019년 6월 14일.

(2)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연례보고서, 뉴욕, 2018년 5월./ Ali Adam, ‘Israel is intensifying its war on GAza's farmers’, <New Arab>, 런던, 2018년 3월 19일.

(3) Tom Miles, ‘UN bemoans unsustainable Palestinian economy’, <Reuters>, 2018년 9월 12일.

(4) 보고서, ‘Gaza in 2020: A liveable place?’, UN, 뉴욕, 2012년 8월.

(5) ‘Gaza ten years later’, UN, 2017년 7월.

(6) 관련 자료는 세계은행, 유엔무역개발회의, 팔레스타인 중앙 통계국의 홈페이지에서 열람 가능하다.

(7) ‘팔레스타인 민족에 대한 유엔무역개발회의의 지원에 대한 보고서’, 유엔무역개발회의, 제네바, 2018년 9월 12일.

(8) Akram Belkaid, ‘팔레스타인. 민족과 식민지 속의 Nakba’, <마니에르 드 부아>, n˚ 157, 2018년 2월~3월호. 

(9) ‘가자지구: 유엔 조사관들은 이스라엘이 시위대에게 저지른 반인륜범죄 혐의를 두다’ <UN Info>, 2019년 2월 28일, https://news.un.org

(10) 토바 라자로프, ‘Netanyahu: UN set new hypocrisy record with Israeli war crimes allegation’, <The Jerusalem Post>, 2019년 2월 28일.

(11) <The Peace Index>, 2018년 5월 2일, http://peaceindex.org/defaulteng.aspx 

(12) 이날 가자지구에서 28명의 아동, 4명의 구조대원을 포함한 90명이 넘는 팔레스타인인들이 부상당했다.

(13) Enstar Abu Jahal, <Human rights group documents Hamas abuses>, Al-Monitor, 2019년 4월, www.al-monitor.com

(14) Olivier Pironet, ‘En Cisjordanie, le spectre de l’Intifada 서안지구에서 인티파타의 효력 범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4년 10월호, 한국어판 2014년 11월호(제목: 불평등 공간에 갇힌 팔레스타인 사람들).

 

짜고 치는 토론회

 

1980년대에는 쿠웨이트, 1990년대에는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는 카타르와 아부다비가 상당한 재정을 들여 학술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가시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을 때는 국적을 불문하고 언론인들이 항상 주 타깃이 된다.(1) 여행에 초청된 언론인들이 투숙하는 곳에는 돈 봉투나, 명품 펜 등의 선물이 놓여있다. 이런 여행이 현지 지도자를 만날 유일한 기회인 경우가 많다.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 예멘 전쟁으로 지출이 불가피했던 아랍에미리트는 선물에 제한을 뒀다.

초대국가는 손님들의 다양한 윤리적 요구를 고려해 준비한다. 관대하지 못하고, 사리사욕이 없어 보이는 앵글로색슨 및 유럽 언론에는 아시아나 아랍 언론보다 돈을 덜 들인다. 그러나 예외는 존재한다. 여행자들을 안내하는 부처나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은 비밀을 지킨다는 조건하에 기꺼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일부 프랑스와 미국 일간지의 기자들이 태양열 충전기 대신에 이집트나 중국 동료들이 받은 최신 노트북을 요구한 일에 대해 들려줬다. 

두바이, 카타르, 아부다비 또한 여러 콘퍼런스와 토론회를 주최한다. 목적은 수많은 서구 국가의 언론인들을 초청해, 이웃 국가보다 자국을 널리 홍보하는 것이다. 토론회 주제가 평범하든, 연사의 발표가 조심스럽고 진부하든, 참석자가 별로 없는지는 중요치 않다. 토론회 발언자들은 퍼스트 클래스로, 덜 유명한 이들은 이코노미 클래스로 초청된다. 이들은 호화 호텔에 투숙한다.

관광객이 많지 않은 요즘, 이들 호텔은 미디어를 주제로 한 토론회 덕분에 투숙객 수를 채우고 있다. 가장 중요한 참가자는 비싼 선물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들은 암묵적으로 현지 군주국의 비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는다.(2) 2018년 3월 3일, 니콜라 사르코지는 아부다비에서 보수를 받고, ‘리더십을 파괴하는 민주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연설을 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시진핑이나 블라디미르 푸틴, 모하마드 빈 살만(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과 같은 능력 있는 대지도자의 탄생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연설은 아랍 반도의 실력자들, 특히 에미리트의 실력자인 모하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왕자를 기쁘게 했다.(3)

재정이 한정된 상황 속에서 국제기구 또한 원칙을 잊은 채 페르시아만의 국가들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한다. 정치적인 성격의 국제기구로는 가장 오래된 국제의원연맹(1889년 창설)이 있는데, 이 연맹은 지난 4월 카타르에서 ‘교육, 성 평등, 테러와의 투쟁’이라는 주제로 봄 총회를 개최했다. 카타르에는 국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슈라위원회(Shura Council)는 자문기구 역할만 한다. 두바이는 2020년 10월 ‘정신과 접촉하고, 미래를 건설한다’라는 슬로건으로 만국박람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런데 아랍 에미리트는 전 세계에서 인터넷 사용에 관해 가장 강압적인 법률을 가지고 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국박람회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토론회와 심포지엄에는 명망 높은 인사들이 참가할 것이다. 참가자들은 초청 국가의 현실에 대해선 눈감을 것이다. 이런 이중성, 특히 토니 블레어의 이중성에는 이미 익숙하다. 영국의 전 총리인 블레어는 페르시아만에서 돈벌이가 되는 자문업무를 많이 해왔다. 정치와 사교계를 개혁한다는 목적이라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다.(5)

 

글·아크람 벨카이드 Akram Belkaïd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Daniel Lazare, ‘La redoutable influence de Riyad à Washington 미국에 대한 사우디아라비아의 강력한 영향력’,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7년 7월호·한국어판 2017년 9월호.

(2) Akram Belkaïd, ‘Le Golfe par ses mots 단어로 본 페르시아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2013년 8월호.

(3) David D. Kirkpatrick, ‘The most powerful Arab ruler isn’t MBS. It’s MBZ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남자, 모하메드 빈 자이드’, <The New York Times>, 2019년 6월 2일.

(4) ‘Aux Émirats arabes unis, les utilisateurs de VPN risquent désormais la prison 앞으로 아랍에미리트연합에서 VPN 사용자는 감옥에 갈 수 있다’, <르몽드>, 2016년 8월 1일

(5) Edward Malnick, ‘Tony Blair is advising the Saudi government under a £9 million deal between the country and his institute’, <The Telegraph>, 런던, 2018년 7월 21일.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영토

 

2005년 8~9월, 이스라엘은 언론을 떠들썩하게 하며 8,500명의 유대인을 가자지구에서 집단 이동시켰지만, 가자지구는 여전히 이스라엘의 지배 아래에 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스라엘은 그 영토에서 행사하는 지배능력에 따라 여전히 점령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1)라고 평가했다. 2012년 유엔은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이 점령당한 영토 중 일부로 계속 간주된다”(2)라고 상기했다. 

아리엘 샤론 총리는 이스라엘 군대를 후퇴시키며 당시 국제사회로부터 박수를 받았지만, 이는 눈속임이었다. 샤론 총리의 전직 고문인 도브 바이스글라스에 의하면, 이는 사실 1993년 오슬로 평화조약을 동결해 팔레스타인을 ‘포르말린’(독성을 지닌 생물 표본의 보존용 화학물질)에 가두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3) 이 군사후퇴는 강제점령에 대한 이스라엘의 책임감에 면죄부를 주면서, 해당 지역의 지배권을 유지하도록 해줬다.

1994년에 건설된 장벽이 있음에도, 가자지구를 둘러싼 새로운 보안용 장벽이 유대인 이주민의 이동에 앞서서 건립됐다. 2005년 겨울부터는 콘크리트가 보강될 예정이었다. 두 번째 인티파다(2000~2005년)의 시작 이후, 봉쇄정책이 펼쳐짐에 따라 가자지구는 더욱더 고립됐다. 투명한 선거로 높이 평가받았던 2006년 총선에서 경쟁 정당인 파타(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마흐무드 압바스의 정당)를 누르고 하마스가 승리했다. 이를 구실로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고립화 전략을 정당화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지지를 받은 이스라엘은 하마스가 테러조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새 정부를 보이콧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가자지구는 봉쇄됐다. 

2007년 3월 파타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세워졌지만 지지부진한 가운데, 6월 하마스는 동족상잔의 전투를 치르고 가자지구를 지휘하게 됐다. 미국의 지원하에 파타에서 준비하던 쿠데타를 예방하기 위한 전투였다.(4) 팔레스타인 안보국장 모하마드 달란은 하마스를 전복시키기 위해 1,400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조직했고, 이 쿠데타 작전은 미국의 재정지원과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았다.(5)

그러나 특수부대는 하마스에 패배했고, 그때부터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유일한 권력으로 부상했다.(6) 가자지구의 새로운 정세 덕분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국가 운동의 균열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스라엘의 아모스 야드린 군사정보 부장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의 권력을 잡은 것이 기뻤다”(7)라고 고백했다. 덕분에 가자지구에 대한 제재는 강화됐고, 연안 지역은 적대적인 구역으로 분류됐다. 전면봉쇄가 실시된 것이다.


번역·김영란
번역위원

 

(1) ‘Report on Preliminary Examination Activities’, 국제형사재판소, 헤이그, 2016년.

(2) ‘Daily press briefing by the office of the spokesperson for the secretary-general’, 국제연합, 2012년 1월 19일.

(3) ‘Top PM aide: Gaza plan aims to freeze the peace process’, <Haaretz>, 텔아비브, 2004년 10월 6일/ Amnon Kapeliouk, ‘Les dessous du désengagement israélien 이스라엘군 후퇴의 내막’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4년 12월호/ Meron Rapoport, ‘Quitter Gaza pour mieux garder la Cisjordanie 서안지구를 지키기 위해 가자지구를 떠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05년 8월호.

(4) David Rose, ‘The Gaza Bombshell’, <Vanity Fair>, 뉴욕, 2008년 5월호/ ‘US plot against Hamas revealed’, <Al-Jazeera>, 2008년 3월 4일, www.aljazeera.com

(5) 1970년대 말 이스라엘인들은 하마스의 전신인 이슬람연합의 급부상을 격려했다. 이슬람연합이 파타를 견제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6) Barak Ravid(언론기관인), ‘Fatah asked Israel to help attack Hamas during Gaza coup, WikiLeaks cable shows’, <Haaretz>, 2010년 12월 20일./ Jean-Pierre Filiu, 『Histoire de Gaza 가자지구의 역사』, Hachette, coll. <Pluriel> 파리, 2015년, 15장과 16장.

(7) El País, Madrid, 20 décembre 2010, et repris dans Jean-Pierre Filiu, 『Histoire de Gaza 가자지구의 역사』, op.cit., note 22, 15장, p.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