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여성 재소자들이 교도소에서 찾은 자유

2011-02-14     카티 푸레즈

산타마르타아카티틀라 여성교도소에 수감된 1,900명의 재소자는 교도소 생활에서 징계와 처벌에 의한 폭력에 노출돼 있다. 하지만 2009년 7월 진행된 글쓰기 교실에 참가한 재소자들이 밝힌 내용은 사뭇 놀라웠다. 남성이 없는 공간에서 일부 재소자들은 자신의 과거와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심지어 어느 정도 해방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산타마르타아카티틀라(이하 산타마르타) 여성 전용 사회재적응센터는 2004년 3월 29일 문을 열었다. 산타마르타는 멕시코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에서 가장 폭력이 심각하고 극빈 지역인 델레가시옹데이츠타파라파 지역에서 가깝다. 구치소이자 장기 복역수를 수감하는 중앙교도소이기도 한 산타마르타 교도소는 약 1,6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설계됐지만, 2011년에 집계된 재소자 수는 1,900명이 넘는다.

8각형 요새 형태의 교도소는 실용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섬이 1791년 구상한 판옵티콘(Panopticon; 원형감옥-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는 뜻을 지닌 ‘Opticon'의 합성어로, 중앙의 원형공간에 높은 감시탑을 세우고, 감시탑 바깥의 원둘레를 따라 죄수들 방을 만들도록 설계됐다-역주)을 모델로 했다. 최소비용의 최대효과를 내려는 경제적 목적에서 출발한 벤섬의 판옵티콘은, 반투명유리로 된 전체 시설을 중앙타워에서 항상 감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산타마르타 교도소는 나선형으로 된 통로를 따라 격자형 철창 벽이 이어져 있고, 재소자들은 매분 매초 감시된다. 재소자는 자신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가 늘 그들을 감시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다른 재소자가 상대방은 모르게 동료 재소자를 볼 수 있게 설계됐다는 점에서 일종의 ‘상호 고발 시스템’이다. 이에 따라 교도소 내 징계와 처벌의 공간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한 ‘실질적 처벌 공간’인 것이다.(1) 어디를 지나치든 시설 안에서는 동일한 구조에 다다른다. 수직으로 길게 홈이 파인 시멘트벽 때문에 복도는 실제보다 훨씬 넓어 보인다. 감방과 수수한 농구장, 원형 통로가 홈을 따라 구분된다. 복도는 지그재그로 돼 있거나 구부러져 있어 자동으로 걸음이 멈춰지고 현기증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통로를 지나치는 사람들을 어떤 형태로든 통제하려는 듯하다. 철저한 정형학적 메커니즘을 통해 재소자의 운동성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충동적이고 어두운 성향을 억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미로 속을 떠도는 감각의 요지경

재소자의 목소리가 교묘히 뻗어나가는 곳도 복도다. 교도소에서 남이 식별할 수 있을 만큼 분명하게 말하려면, 목소리의 음색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교도소 특유의 고독조차 시끄럽게 들끓는 소음 속 적막함 사이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하며 제가끔 불협화음을 이루는 소리가 모여 하나의 목소리로 건물 안에 울려퍼진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힙합과 쿰비아(콜롬비아 해안 지방의 흑인계 댄스 음악)를 배우는 ‘아마조네스들’이 박자를 맞추는 소리다. ‘우~’ 하는 야유와 큰 웃음소리, 불만을 토로하는 소리가 농구장에서 흘러나온다.

이것저것이 뒤섞인 혼잡함 속에서 터져나오는 귀를 찢는 비명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비명 지를 힘 말고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는 이만이 자신이 내지르는 비명을 듣는다. 야단법석 소란을 피우는 어린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2) 아틀리에가 있는 곳에서 의자를 타일 바닥에 끄는 소리가 들린다. 남성교도소 쪽으로 난 계단 벽 쪽에 갇힌 재소자들이 가족 소식이며 사랑의 말이며, 갖은 모욕과 외설적인 말, 야유와 조소를 던지며 내는 소리가 귀를 멍하게 한다. 멀리 떨어진 다른 교도소의 남성 재소자를 향한 욕구와 이로 인한 갖은 밀약의 말이 난무한다. 집단적인 웅성거림과 무언가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 경쾌한 소리가 갑작스럽게 울리는가 하면, 불평불만이 끊임없이 울려나온다.

끊임없는 웅웅 소리와 함께 잡다한 냄새가 사방에 퍼져 있다. 코를 찌르는 살균소독제 냄새가 강하지만, 거기에는 막힌 화장실에서 풍겨나오는 악취가 섞인 쇠 냄새와 통로를 채운 땀 냄새도 섞여 있다. 잡다한 냄새 속에는 맛있는 냄새도 섞여 있다. 가족이 보내왔거나 교도소에서 번 돈으로 만드는 음식 냄새다. 구운 토르티야 냄새와 구수한 수프, 사프란 쌀로 지은 밥, 매콤하게 양념된 고기 냄새가 감방에 갇힌 사람들의 후각을 자극한다. 서민 가정의 분위기를 연상시키고, 멕시코 구시가지에 나뭇가지처럼 뻗어 있는 시장과 가판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을 생각나게 하는 냄새다. 수익과 예산 문제, 시간 부족으로 맛을 잃은 밋밋한 교도소 음식을 잊어버리게 하고, 후각을 자극한다.촉각 또한 감각을 찾아헤매는 또 다른 감각이다. 몸이 누워 있는 곳에서 정신적·신체적으로 존재감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황량함밖에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재소자가 촉각이 주는 느낌을 되찾으려 노력한다. 특히 성적 감각을 통해서 말이다. 일부 재소자의 눈길은 단지 바라보는 눈길이 아니다. 이리저리 깊숙이 살피고, 만지고, 쓰다듬고, 심지어 옷을 벗기는 듯하다.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시위에 투입된 남성을 선정적으로 바라보는 눈길이다. 눈이 아니라 마치 손가락이 몸 여기저기를 지나며 만지는 것 같다. 남편과 헤어진 일부 재소자는 초기에 잠시 동성애에 눈을 돌리거나, 시간이 가면 아예 동성애자가 되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이성애가 사회 표준인 ‘벽 밖의 세계’에서와 달리 이 ‘벽 안 여성만의 세계’에서는 그때까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억제했던 해방감을 찾는 것이다.

 

각자의 사연에는 ‘고통’이라는 공통점


대부분의 재소자는 수도와 멕시코주 출신이다. 이 중 절반이 초등교육만 받았고, 20%가 문맹이다. 고등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은 재소자는 드물다.(3) 거의 대부분 최빈곤층이다. 모두 각자의 사연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은 공통적이다. 산타마르타 교도소 재소자는 각기 다른 시련을 겪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비슷한 고통을 담고 있다. 많은 이들이 교도소에 수감되기 전에는 가정주부였고, 일부는 공장 노동자였다. 상당수는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했다.

교도소 내 세공 아틀리에를 담당하는 호세 루이스 카스트로 곤살레스 변호사의 조사에 의하면, 재소자의 86%가 유년시절 신체폭력을 경험했다. 86% 중 55%가 부모나 친척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54%가 가출했거나 부모와 헤어졌고, 70%가 배우자의 폭력에 시달렸다.

 

감옥에서 처음 가족애를 느끼다

구불거리는 머리와 반항적인 느낌, 동그스름한 볼과 포동포동한 옆구리, 교태스러운 걸음걸이의 20대 초반 이셀라가 글쓰기 교실에 수다를 떨며 상큼하게 들어선다. 처음 이곳에 수감됐을 때, 이셀라는 마약과 술로 찌들어 있었고, 성매매로 황폐해진 상태였다. 이셀라는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살았고, 거리에서 체포됐다. 그가 살아온 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불안정하고 더러운 거리였다.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고 더욱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자살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듯한 거리였다. 이셀라는 세상에 태어난 순간이 바로 형벌이었다. 집 없는 삶, 그가 몸을 기댈 곳은 좌절과 황폐함이 뒤섞여 있었다. 일기쓰기 아틀리에에서 이셀라는 황폐해진 자신의 몸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내비치며 털어놓았다. “내가 폭력적이었던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폭력적이었다.”(4)이셀라의 목소리는 정열적이고 흡족한 듯 들리지만, 속속들이 깊은 상처로 얼룩졌다. 그는 죄로 인한 형량을 살면서 비로소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치유할 시간을 가지게 됐다. 교도소에 갇혀서야 고통의 잔재 속에서 인생을 재건할 바탕을 찾아가고 있다. 이셀라는 자유 없이 갇혀 있고 고립됐지만, 감옥에서 처음으로 가족을 찾았다. 아틀리에에서 자신의 감방에 대해, 아셀라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에는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지금도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당신과 공유하고 있어요. 지금은 진짜 집도 있고요. 제 집을 한번 보여드리고 싶네요.” 지금 이셀라는 새로운 ‘집’을 만들며, 신체도 자신을 보호하는 곳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감옥의 세계는 이 과정에서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이다. 숱이 무성한 짧은 파마머리에 선글라스를 꽂고, 어깨에 진한 파랑색 스웨터를 묶어 내린 채 에델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저는 세 아이의 엄마고, 아이들을 무척 사랑합니다. 여기서, 바로 제가 갇힌 이곳에서 저는 엄마로서의 인생을 박탈당했고, 행동의 자유를 빼앗겼지요. 하지만 생전 처음으로 성적 정체감을 표현할 수 있었고, 이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간 억눌렸던 제 동성애주의가 비로소 가족과 사람들의 잣대에서 벗어나 여자들만 있는 속에서 해방됐습니다.”다른 재소자도 말했다. “저는 동성애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같은 감방에 있는 다른 동료가 저를 만지고, 제게 관심을 보이고, 입을 맞추고 안아주며, 저와 함께해주고, 애정어린 말을 속삭여주는 것이 정말 좋아요.” 1층에 있는 식당에서는 몇몇 엄마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팔고 있다. 옥수수가루와 팥을 기본으로 한 교도소 음식과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다. 이 음식은 재소자들에게 제공되는 ‘농장 음식(재소자가 교도소 음식을 일컫는 말)’과 경쟁한다. 교도소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재소자들은 나후아틀어(중앙아메리카 토착어로 나우아인이 사용했고, 멕시코 중부 지방이 핵심지역이다)에서 연유한, 즉 멕시코 서민지역의 대규모 시장을 의미하는 ‘티앙기(Tianguis)’의 분위기를 이곳에 풍기고 있다. 산타마르타 교도소에서 아이들은 신성한 존재다. 엄마들도 신성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이 시끄럽게 하는 것을 싫어하는 수감자들이 교도소 내 다른 구역을 차지했기에, 일부 엄마는 가사를 하는 구역에서만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임신한 재소자나 아이가 있는 재소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가사를 하는 엄마들은 재소자에게 일종의 모델을 제공한다. 수감돼 가족과 자녀를 빼앗긴 재소자에게 가족과 자녀가 되는 것이다. 가족과의 생활을 되찾으려는 재소자들 간에 엄마와 딸, 손녀나 이복동생 같은 가족관계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연대감 속에는 약에 찌들고, 알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 내뱉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두서없이 떠다니고 있다. 걱정과 두려움과 공허함이 담긴 말들이다. 버려진 고통과 혼란한 심정이 담긴 말들이다. 어렴풋이 알아들을 듯한 말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일 뿐이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자’에게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끊임없이 서로 스치고, 또 스쳐가고, 그중 많은 수가 고독 속으로 빠져드는 이곳에서 시간이 흐르면 그런 말에 관심 두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성 정체성을 찾은 세 아이의 엄마

노년기에 접어든 마르가리타는 감옥에서 늙었고, 감옥에서 더 늙어갈 것이다. 그의 죄명은 살인이지만, 마르가리타의 잘못은 잘못된 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가에서 가판대를 놓고 음식 장사를 했다. 매일같이 물통과 오악사카 치즈, 우이틀라코체 파르시, 할라피뇨칠리가 담긴 둥근 바구니를 한쪽에 놓고 오후까지 케사디야를 화덕에 구워 팔았다.(5) 검소하지만 당당하고 용기 있게 살아가는 마르가리타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얼굴이었다.

어느 날 그가 ‘닉스타말’(옥수수가루 반죽)을 반죽하던 길목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곧 아수라장이 됐다 한 남자가 칼에 찔려 살해된 것이다. 분명 서로 반목하던 범죄집단 사이에 붙은 싸움이었을 것이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도 마르가리타는 자리를 뜨지 않았다. 경찰은 처음에 그를 주요 증인으로 경찰서로 호출했지만, 곧 범죄 혐의가 씌워졌고, 결국 살인죄로 재판을 받았다. 대강대강 행해진 그의 재판 내용은 상세히 알 수 없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마르가리타는 그 앞에 놓인 모든 서류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서명했다.

멕시코 경찰이 세계에서 가장 부패한 경찰 중 하나고, 형편없는 교육과 봉급 때문에 타락했으며, 범죄집단에 매수됐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마르가리타는 그를 위해 일하는 공권력이 아닌, 그를 적으로 삼은 경찰과 사법부를 만난 결과 이중으로 버림받았다. 평민에게 무관심한 사법부, 그리고 두려움에서였든 비겁함이었든 무관심이었든 그가 목격한 싸움에 대해 입을 닫아버린 시민사회로부터였다. 그는 자신이 받은 재판과 죄목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려 하지만, 현재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거울을 만드는 옛 마약여왕

2009년 7월 20일 월요일, 곧 비가 올 듯 우중충한 회색빛이 세공 아틀리에실을 비춘다. 작업대에는 물감통과 석판 및 벽지 조각, 몰딩 쇠시리, 반죽, 단추, 가구 손잡이, 솔, 붓통으로 쓰는 녹슨 깡통이 놓여 있다. 여기서 재소자들이 만든 옷걸이, 음식 받침대, 앨범, 액자 등은 다른 재소자나 지역상점에 판매된다. 나무용 풀냄새가 그득한 아틀리에실 내부, 두꺼운 붓과 딱딱하게 굳은 종이들 사이에서 ‘태평양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산드라 아빌라 벨트랑의 황갈색 신발이 빛을 발한다.

시날로아 출신 대부호이자, 정부로부터 멕시코 마약거래 중심 인물 중 한 명으로 기소된 벨트랑은 2007년 9월 이곳에 수감됐다. 반짝이는 크림색 블라우스와 벨트를 맨 밤색 바지가 마름모꼴로 다듬은 갈색 머리와 들쭉날쭉한 손톱과 조화를 이룬다. 프랑스의 유명 고급 브랜드를 몸에 걸치고 수백만 달러를 쥐고 흔들며, 멕시코에서 가장 힘있는 세력과 친분을 쌓고 지내던 그가 지금 거울 사이즈에 대해 아틀리에 지도 선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최근까지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그는 이제 혼자 남겨졌고, 그가 만들 거울 속에서 이전의 영광을 추억하고 있다. 상당수 재소자들에게 ‘다른 곳’을 찾는 일은 곧 잊혀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임을 뜻한다. 좀처럼 잠들기 힘든, 무덤 속처럼 사방이 벽인 음울한 색깔의 공간이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이고, 우울한 절규와 다른 재소자들의 싸움 소리, ‘우두머리들’의 명령을 담은 휘파람 소리가 귀를 괴롭힐 때,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년 넘는 형벌이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 채울 형벌이 거의 현재 자신의 나이와 같은 와중에 친구와 가족에게조차 잊혀졌을 때는, 세상에 부딪혀보는 것도 힘들고, 감옥에 갇혀 있다는 데에서 의미를 찾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많은 재소자들이 종교에 빠져들거나, 기독교 복음주의, 여호와의 증인, 모르몬교로 개종한다. 문화 프로그램과 달리 이런 종교들은 교도소에서 쉽게 확산된다. 재소자 개개인의 사연에 따라 교도소 내 생활도 모순되고 괴리된 가치로 넘쳐난다. 이런 가치는 각자의 과거와, 바깥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이나, 기다리지 않는 것으로 뒤섞여 있다. 일부 여성 재소자에게 교도소 생활의 끝은 무덤과 같다. 가족에게 버려지고, 직장도 없이 혼란이 가득한 길거리에 혼자 남겨지는 것이다. 교도소에서 수년, 심지어 수십 년을 생활하고 다시 만난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낯설기만 하다. 바깥세상도 ‘전과자’라는 모욕적인 시각으로만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하여 다시 교도소로 돌아오는 여성들도 있다. 2008년 12월 석방된 젊은 재소자 42명 중 18명이 이듬해 1월 말 다시 교도소로 돌아왔다.

 

카티 푸레즈 | 프랑스 릴3대학 강사

탐정 문학과, 폭력, 성, 그리고 멕시코 등 중남미에 관심이 많으며,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에 글을 자주 기고하고 있다.  

번역 | 김윤형 hibou98@naver.com

 

(1)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갈리마르, 파리, 1975.

(2) 일부 여성은 교도소에서 출산하며, 출산 후 5년 11개월까지 아이를 키울 수 있다.

(3) 호세 루이스 카스트로 곤살레스가 조사했고, 산타마르타아카티틀라 여성교도소의 루이스 마누엘 세라노 디아스 교수가 2009년 멕시코 현지에서 실시한 두 번의 인터뷰 때 설명한 내용이다.

(4) 본 기사에 인용된 재소자들의 말은 2009년 7월 산타마르타아카티틀라 여성교도소에서 실시된 글쓰기 아틀리에 때 기록된 것이다.

(5) 우이틀라코체는 옥수수에 기생해 자라는 검회색 버섯이고, 할라피뇨칠리는 멕시코산 고추를 뜻한다. 케사디야는 치즈가 들어간 옥수수가루로 만든 부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