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재앙, 관리법은 있다
[Corée 특집] 민주주의의 스토커, 언론
1조4천억여 원.
지난해 12월 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선정한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 4곳의 자본금을 모두 더하면 나오는 규모다. 한마디로, 이 돈은 조·중·동과 매일경제 등 신문사 4곳이 동원한 MB 정권의 ‘정권 재창출 자금’이라고 규정해도 그다지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종편은 여론 지형 재편을 통한 보수 획일화라는 국가권력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기획 성격을 지닌다.
이런 측면에서 조·중·동과 매일경제에 종편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한 한국의 사례는, 1972년 일본에서 자민당 정권이 신문들에 방송을 넘긴 것과 닮은꼴이다. 그때 일본에서는 ‘1개 사업자가 신문·텔레비전·라디오의 3개 사업을 동시에 경영하지 못하게’ 하는 이른바 제한적인 신문의 방송 소유 및 지배가 이뤄졌다. 말이 제한적이지, 그때 일본 상황에서는 전면 허용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결과, 요미우리신문-니혼테레비, 아사히신문-테레비아사히, 산케이신문-후지테레비, 니혼게이자이-테레비도쿄, 마이니치신문-티비에스(TBS)의 계열 구조가 구축됐고, 이 5개 방송에서 127개에 이르는 일본 민영방송 프로그램의 85%를 공급하는 현실을 낳았다.
1조4천억, 정권 재창출 자금
<교도통신>에서 22년간 기자 생활을 한 아사노 도시노 일본 도시샤대학 교수는 이런 식의 신문의 방송 소유 및 지배로 인해 “일본에서 저널리즘이 죽어버렸다”고 평가한다. 방송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신문의 젖줄이 됐는데, 5년마다 정부의 재허가를 받아야 하는 방송은 정권에 목줄을 잡히게 됨에 따라 신문의 저널리즘까지 망가졌다는 게 아사노 교수의 설명이다. 2009년 3월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 야당 추천 위원들이 지적했듯이, 일본에서 벌어진 신문의 방송 소유 및 지배는, 자민당 장기 집권의 인프라나 마찬가지였다. 집권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저널리즘이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에서 벌어지는 조·중·동의 종편 소유 및 지배는 일본 사례보다 훨씬 더 극악하다고 해야 정확하다. 적어도 일본에서는 신문의 방송 소유 및 지배가 특정 방송권역에서 이뤄지는 한편, ‘동일 지역 안에서 1개 사업자가 복수의 방송사를 소유하는 것이 금지’된다. 반면 한국에서 종편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방송이다. 네트워크를 가진 사업자는 반드시 종편을 방송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사실상 공영방송의 지위를 누리는 게 조·중·동이 소유하는 종편이다.
게다가 한국의 조·중·동은 MB 정권 아래에서 방송을 소유하기 위해 그나마 견지해오던 알량한 저널리즘 한 조각까지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아버렸다. 방송을 소유하면서 저널리즘이 망가졌다고 하는 일본의 사정과는 전혀 딴판이다. 정권 재창출에 적극 복무하겠다는 공개 선언을 한 것이다. 주지하듯이, 조·중·동은 식민지 시대나 독재정권 시대의 부역 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개 사과를 한 적 없는, 초록이 동색인 보수, 아니 수구 신문들이라는 데 이르면, 그나마 논조의 차별성을 보이는 아사히나 마이니치 같은 신문이 방송을 소유한 일본의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아 보이기까지 한다.
조·중·동이 누릴 공영방송의 지위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현실성이 없다. 광고총량제(총광고시간만 규정하고 이를 어떻게 운용할지는 방송사 재량에 맡기는 것) 도입, 민영 미디어렙 도입, 크로스 미디어 광고 판매 허용 등 방송광고 판매제도가 바뀔 경우 연간 3천억 원 정도의 광고비가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허무맹랑한 궤변에 가깝다. 광고주들에게 광고판매제도가 개선된다는 의미는 ‘동일한 비용 대비 광고효과 증가’다. 똑같은 광고예산으로 광고효과가 늘어나는데 어떤 광고주가 광고예산을 늘릴 동기를 갖겠는가?
유료방송 수신료가 오를 가능성 역시 거의 없다. 이는 국내 유료방송 시장의 성장 역사를 살펴보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유료방송 시장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가입자(시청 가구) 시장이다. 가입자 시장을 확보하면 ‘지대’(Rent)를 얻을 수 있는데, 지대란 “개별 자본 내부가 아니라 그 외적 조건에 의해 획득되는 생산성 우위의 조건”(강남훈)를 일컫는다. 곧, 대도시의 가입자를 확보하면 대도시라는 외적 조건으로 얻을 수 있는 유리함, 이를테면 밀집된 아파트가 제공하는 네트워크 효과, 대도시 거주자들의 높은 지급 능력 등을 뜻한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주도하는 케이블 플랫폼이 유료방송 플랫폼 시장에서 지배적 사업자가 된 것은 1997년 말 외환위기 직후부터 2000년 방송법 제정, 그리고 2008년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이르기까지 전폭적인 탈규제 정책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탈규제 정책에서의 핵심은 중계유선방송사업자(RO)가 확보했던 가입자 시장의 흡수·통합과 권역별로 독립된 SO들을 겸영할 수 있게 함으로써 한 기업이 확보할 수 있는 가입자 시장의 범위를 대폭 늘려준 방송법 및 시행령의 개정이었다. 이는 최초의 뉴미디어 플랫폼 사업(선발 사업자)이 실패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한 정부 차원의 배려와, 1997년 외환위기라는 예외적 상황이 낳은 우연의 산물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특혜의 호흡기를 달지 않으면…
한국에서 유료방송 성장은 우수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가 출현하고, 이들 채널을 배치해 가입자를 확보하는 정상적 방식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거꾸로, 77개 방송권역에서 지역 독점에 기반한 SO가 탈규제 정책을 틈타 인수·합병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우면서 가입자 시장을 획득하는 과정이었다. 문제는 종편이 우수한 콘텐츠를 제작해 가입자가 시청료 인상을 수용하게끔 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혼자만 안 죽고 언론계 전체 파괴할 것
개인적으론 불가능하다고 본다. 종편의 제작비 예측을 위하여 문화방송 본사, SBS의 제작비 현황을 참고해 추정해보자. MBS(매경 종편)의 연간 1600억 원의 제작비와 jTBC(중앙 종편)의 연간 외주 제작비 1500억 원이라는 지출 계획은 문화방송과 SBS의 외주 총액(2009년 기준)인 941억 원과 1160억 원을 훨씬 상회하는 규모다. 여기에는 임직원에게 지급되는 임금 및 기타 간접제작비가 제외됐기 때문에 종편 1개사에 요구되는 제작비 규모는 훨씬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편성 계획과 프로그램 콘텐츠의 수급 방안이 구체화되지 않았으나 jTBC의 외주 비율(1564억 원, 전체 제작물 중 60% 할당)과 그 제작비로 추정하면 연간 약 2천억 원을 웃도는 제작비가 들 것이다. 여기에 초기 시설 및 장비 투자 비용과 4~5년에 걸친 콘텐츠 투자 비용을 고려하면 방통위가 제시한 최소 납입자본금 규모인 3천억 원을 상회하는 지출이 방송 시작 약 1년차 안에 소모될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로 증권가에서는 종편 연간 유지 비용을 2천억~3천억 원으로 추산한다(삼성증권).
문제는 종편이 방통위에 제출한 사업계획서상의 이런 계획이 ‘공약’(空約)에 그칠 게 불을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것은 연예·오락 분야에서 새로운 포맷 등을 시도할 것이라는 점뿐이다. 지상파 방송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연예·오락 포맷을 선보이고(제작비 최소화), 정권을 뒷배로 삼아 보도를 무기로 광고주를 압박하며, 미디어렙이라는 규제의 틀 밖에서 신문과 방송을 넘나드는 크로스 미디어 광고판매를 통해 중소 PP와 신문들로부터 광고수입을 약탈해오는 방식이 종편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인 전략이다. 이렇게 볼 때, 종편을 통한 우수한 콘텐츠 공급이 유료방송 수신료 인상으로 이어지리라고 보는 것은 순진한 낙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종편이 낳을 수 있는 순기능은 전혀 없고, 오로지 미디어 생태계 파괴라는 역기능만 예상된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종편이 미디어렙 규제를 받지 않은 채 크로스 미디어 광고판매를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중소 PP와 종이신문들에는 재앙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케이블TV 광고시장에서는 2009년 기준으로 중소 PP들이 차지했던 18.5%(약 1403억 원)의 상당 부분이 잠식당할 것이고, 종이신문도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 투쟁’ 맞불 놔야
현재로서 종편에 대한 가장 시급한 대응은 특혜를 저지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종편 의무송신은 종편에 사실상 공영방송 지위를 주는 것으로서 당장 폐지하는 게 타당하다. 현 정권 아래에서 어렵다면, 정권 교체 이후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종편에 전문의약품 및 의료기관 광고를 허용하려는 기도는 보건의료 생태계마저 파괴시키는 행위로서 반드시 막아내야 한다. 종편에 낮은 채널 번호를 부여하기 위해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이라는 논리가 동원되고 있는데, 이 역시 정당성이 없다.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을 위해 같은 장르는 같은 장르끼리 묶는다는 원칙은 모든 채널에 적용돼야 하지 종편에만 적용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방통위가 ‘행정지도’라는 카드를 꺼낸다면 그 자체가 위헌에 해당한다.
이런 특혜 기도를 막아낸다면 종편으로 인한 미디어 생태계 파괴는 최소에 그칠 수 있다. 대신에, 종편은 시민들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대폭 확장하는 기폭제가 되는 역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종편이 보수 획일화를 위한 현 정권의 기획이었다면, 이에 대한 응전은 모든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전면적으로 확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2년 대선은 커뮤니케이션 지형을 둘러싼 일대 결전일 수밖에 없다. 지금 한국 시민에게 필요한 헌법 개정이 있다면, 말하고 듣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넓히고, 언론 자유에 대한 정치권력의 침해로부터 방파제를 확보하는 것이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결코 아니다. 1987년 민주항쟁은 ‘권력 창출 방식’을 둘러싼 헌법 투쟁이었다. 2012년 대선은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를 둘러싼 헌법 투쟁이 돼야 한다. 거기에서 승리할 때 종편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남게 될 것이다.
글•조준상
공공미디어연구소 소장. 미디어 공공성 확대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