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당은 과연 브렉시트에 반대할까?

2019-11-29     리처드 시모어 l 작가

2019년 5월 유럽연합(EU) 유럽의회 선거에서 영국 자유민주당의 구호는 ‘브렉시트 저지’였다.(1) 영국 제3당인 자유민주당은 이 선거를 통해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2010~2015년)와 한때 손잡고 빚은 ‘브렉시트 참극’으로 먹칠한 당의 명예를 회복하고 싶어 한다.

 

자유민주당이 영국 정계에서 다시 두각을 나타내려 애쓴 지는 오래다. 그들은 영국 버전의 (친기업적이고 중도성향인) 미국 민주당을 꿈꾸고 있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자유민주당은 반대 운동을 펼치며, 좌우갈등을 뛰어넘어 정부에 실망한 이들을 결집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의회 내 의석수 확대 전략은 명확하지 않았다.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자유민주당’은 보수당 의원들과 협력 관계를 맺었는데, 그중에는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로리 스튜어트와 동성결혼 및 이민에 적대적인 필립 리 같은 우파 의원도 있었다. 이를 볼 때, 자유민주당은 브렉시트를 지지하는 토리당(보수)과 연합할 수도 있겠지만, (브렉시트 철회에 관한) 두 번째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노동당과는 연합할 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자유민주당은 ‘합의 없는 탈퇴(노딜 브렉시트)가 최악’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이를 막을 가장 쉬운 방법은 논외로 하고 있다. 보리스 존슨 총리의 불신임안에 자유민주당이 동의하면, 야당 대표 제레미 코빈이 임시정부를 구성해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당의 계보를 잇는 자유민주당

자유민주당의 이런 전향을 이해하려면, 당 창설의 근간이 된 우선 과제를 알아야 한다. EU 잔류와도 일맥상통하는 그들의 우선 과제는 급진좌파의 앞길을 막는 것이다. 자유민주당의 근간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19세기 영국 정계를 좌지우지했으나 1900년 노동당 창당으로 쇠약해진 자유당이다. 나머지 하나는, 1980년대 초 노동당이 좌파로 기조를 변경했을 때 분리돼 나온 일부 우파, 즉 자유주의자와 범대서양주의자, 친원자력파들이 1981년 설립한 사회민주당(SDP)이다.

SDP와 자유당은 곧바로 연합전선을 형성했다. 유럽 통합을 지지한 그들은, 전투적 노동운동을 지지하고 반인종주의를 비난하는 이른바 ‘어리석은 좌파(Loony Left)’에 대한 거부감을 바탕으로 결집했다. 이 둘의 연합은 무엇보다 친기업적인 영국의 ‘시대 기류’에 완벽하게 영합하는 뜻을 공유하며 돈독해졌다. 마침 마거릿 대처가 산업근대화의 장애물로 지목된 노동자단체를 무력화하겠다는 공약에 힘입어 집권했다.

‘철의 여인’ 대처가 1984년 전국광부노조(NUM)의 파업 노동자에 맞서 전투를 개시했을 때, 이들 연합은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 밝혔다. 데이비드 스틸 자유당 대표는 파업을 주도한 노동운동가 아서 스카길에 대해 “마르크스 제국을 확장할 생각밖에 없는 인물”이라고 비난했다. 한편 SDP의 대표는 스카길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열혈 공산당원”이었다고 지적했다. SDP는 ‘파업파괴자(파업 시 투입되는 대체근무자)’ 지지 동의안을 표결에 부치고는, “정부가 노동운동 진압에 지나치게 물렁하다”고 몰아세웠다.

연합당은 1983년 총선거에서 득표율 25.4%를 보이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1988년 두 당이 합당해 자유민주당이 되자, 그들은 “노동자들의 권력 획득을 위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했다”며 자화자찬했다. 그리고 1994년 앤서니 블레어가 노동당 당수가 된 후, 노동당이 신자유주의로 전향한 ‘신노동당’으로 거듭나면서 공조가 더 수월해졌다. 블레어 전 총리는 자유민주당과의 파트너십을 꿈꾸며, 2000년 2월 노동당 창당 100주년 기념 당시, 노동당이 진보진영을 분열시킨다는 점에서 노동당 창당은 실수였다는 뉘앙스까지 풍겼다.

그러나 양당은 친해지지 못했다. 자유민주당은 좌파에 반대하면서 노동당의 우경화를 요구했다. 찰스 케네디 당수의 지휘하에 자유민주당은 블레어 전 총리에게 거침없이 반기를 들었다. 특히 9.11테러 발발 이후 이라크전 개입과 ‘테러와의 전쟁’을 명목으로 한 개인의 자유 제약에 반발했다. 그들은 2005년 총선에서 노동당을 전통적인 텃밭인 맨체스터, 리즈, 카디프, 브리스틀, 런던에서 몰아내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당내 우익은 케네디의 온건한 전선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고, 특히 케네디가 우정 공사(Royal Mail: 우체국) 민영화 안건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분개했다. 2007년 케네디는 내부 모의로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5개국어가 가능한 명문가 출신 청년 니콜라스 클레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자유민주당은 노동당을 본격적으로 공격하며 우익부터 공략하고 나섰다.

 

“공약이 지켜져야 할 시간입니다”

시장 근본주의의 결함을 드러낸 서브프라임 사태에도 동요하지 않았던 클레그 대표는 2009년 『자유주의의 시대 The Liberal Moment』라는 소책자를 펴냈고, ‘시대적 요구와 동떨어진’ 국가의 절대권력을 비판했다. 이 구호가 (이미 신노동당에서 주창되기도 했거니와) 사람들을 움직이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한 자유민주당은, 2010년 총선거에서 ‘이전 총리들의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음’을 비난하는 데 몰두하면서 정치색이 옅은 정책을 내놓았다. 클레그 대표는 선거유세 영상에서 “최근 지켜지지 않은 공약이 너무 많습니다. 국내 도처에 산재해 있습니다. (…) 바뀌어야 할 시간입니다. 정의를 구현할 시간입니다. 공약이 지켜져야 할 시간입니다”(2)라고 호소했다.

공약은 자유민주당도 내놓았다. 고학력자가 많은 유권자층이 큰 반응을 보인 공약은, 다름 아닌 ‘대학 등록금 폐지’였다. 클레그 대표는 “당연합니다. 대학 등록금은 폐지돼야 합니다”라며 “청년들이 성인이 되기도 전에, 취업도 하기 전에 빚더미에 깔려서는 안 됩니다”라고 강조했다. 클레그 대표의 돛은 부풀어 올랐고, 유권자들의 지지 의사도 ‘맑음’이었다. 개인적 치부를 드러내는 스캔들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그의 신뢰도가 잠시 떨어지기도 했지만, 젊은 얼굴의 클레그 대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정직한 인물’이 돼 있었다. 그의 성공을 점치는 여론조사도 있었고, 그가 곧 영국을 통치하게 될 것이라며 ‘클레그마니아’라는 제목의 기사를 낸 언론도 있었다.

그러나 2010년 5월 6일 발표된 선거결과는 ‘클레그 효과’가 언론의 과대포장임을 드러냈다. 자유민주당은 평소보다 고작 1%p 오른 득표율을 확인했다. 그리고 의회에서 5석을 잃었다. 보수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하자, 자유민주당은 그들과 연합해 정권을 손에 넣었다. 케네디 대표 시절이라면 상상조차 어려웠겠지만, 클레그 대표는 그의 저서『자유주의의 시대』에서 “여전히 집산주의적인 노동당 외에는 어떤 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선거유세 기간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영국인들에게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조지 오즈번 경제부 장관과 백만장자 구성원이 가장 많았던 내각을 이끌며 이 공약을 지켰다. 자유민주당은 2013년 연립정부가 추진한 동성결혼 합법화에 찬성해 시대 흐름에 나름 부응했지만, 클레그 대표가 대학 등록금 폐지 주장을 번복하면서 당 이미지가 많이 구겨졌다. 정부는 학생들의 주머니를 터는 상황을 종식하기는커녕 악화했다. 그러나 클레그 대표는 유권자층의 불신이 “뿌리 깊은 감정적 태도(3)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연립정부는 자유민주당에 있어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자유민주당은 자기 당의 주요 정책을 실행하지도 못한 채, 영국인들의 소득을 평균 10% 삭감시킨 긴축정책의 책임을 함께 지게 됐다. 연립정부를 통해 꾸준히 우파 기조로 정책을 펼친 보수당은 ‘추잡한 당(Nasty party)’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자유민주당의 명성은 실추됐다. 2015년 총선에서 8% 득표에 그친 자유민주당은 영국의 EU 탈퇴를 지지하는 영국독립당(UKIP)에 제3당의 자리를 내줘야 했다.

 

브렉시트 투표, 자유민주당에 힘을 줘

그 후로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자유민주당은 2015년 7월 영국 국교도이자 중도성향의 티머시 패런을 대표로 선출해, 끔찍했던 연립 정부시기를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중도는 곧 전방위적으로 공격을 받게 됐다. 우측에는 반동 소수파의 세력이 점차 커지고 있는 토리당이 있다. 좌측에는 패런 대표 선출 몇 달 후 노동당 당수가 된 코빈이 있다. 페런은 코빈이 “민간 부문을 자기의 평등주의적 망상에 몰아넣으려는, 역사상 최악의 당 대표”라고 평가했다.(4) 그리고는 “코빈은 대단히 위험한 인물이므로, 자유민주당이 노동당을 실패하게 할 수 있다면 보수당과 다시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2016년 브렉시트 찬반 국민투표는 자유민주당이 다시 두각을 나타내는 계기가 됐다. 보수 성향의 EU 탈퇴 지지자들은 사회보장제가 과하고, 코빈 대표는 친기업적 노선을 취한다고 유럽을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유민주당은 EU 잔류를 지지하고 있다. 패런은 선거결과를 받아들일 만큼 민주주의의 미덕에 대한 신념이 깊지 않아 첫 번째 국민투표 결과를 정정할 두 번째 국민투표를 시행해보려고 분투 중이다.

자유민주당의 주요 인사 빈센트 케이블 경은 “이런 시도가 유권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은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당 대표를 지냈던 제러미 애슈다운 경은 ‘잔류’에 투표했던 이들이 과연 재차 견해를 밝히고 싶어 할 것인지 자문했다.(5) 패런과 클레그는 이런 회의적인 견해를 무시한 채 두 번째 국민투표 시행을 2017년 총선의 우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2017년 총선은 다시금 참패로 끝났다. 자유민주당의 전국 득표율은 8%에 불과했다. 클레그는 노동당 후보에게 하원의원 자리를 빼앗긴 채, 지금은 페이스북에서 로비스트로 활동 중이다.

2년이 지난 지금, 바람의 방향이 바뀐 듯하다. 지금까지 거대 양당 중 한 당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힘써줄 것을 기대했던 기업 대표들이, 권력과의 소통 채널을 잃은 듯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설적인 상황에서, 자유민주당은 다분히 친기업적이고 친유럽적으로 보인다. 보수당-자유민주당 연립정부에서 여러 차례 장관직을 맡았던 조앤 스윈슨이 이끄는 자유민주당은 보수당의 브렉시트 지지자들과 코빈의 ‘급진주의’가 주요 언론에 불러일으킨 혐오감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친유럽 성향의 보수주의자들과 우파 노동당원들, 이 양극의 하원의원들이 결집한 것도 그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하지만 언론이 여론을 대표하지는 않는다. 이 모든 지지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당은 여론조사에서 여전히 3위에 머물고 있다. 어쩌면 그들은 친유럽 지지자들의 표 일부를 끌어오는 동시에 존슨 총리의 재선을 보장하는 데 필요한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EU 탈퇴)’를 수월하게 하는 역할을 맡을지도 모른다. 자유민주당이 (친유럽 유권자들이 지지하는) ‘EU 잔류’와 (코빈과 같은) ‘급진좌파 억제’라는 두 우선 과제 해결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글·리처드 시모어  Richard Seymour
『트위터링 머신 The Twittering Machine』(The Indigo Press,
Southampton, 2019년)의 저자

번역·서희정
번역위원


(1) EU 탈퇴 관련 협의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영국은 EU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2) 이 영상과 다음 단락을 확인할 수 있는 웹사이트. https://www.monde-diplomatique.fr/2011/03/A/20190
(3) Nicholas Clegg, 『Politics. Between the Extremes』, The Bodley Head, London, 2016.
(4) 2016년 1월 16일 보도자료.
(5) Heather Stewart, Jessica Elgot, ‘Lib Dem split emerges over policy of seeking second EU referendum’, <The Guardian>, London, 2016년 9월 19일.